대륙지존기 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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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84화
제2장 유인(誘因) (5)
무진은 사방을 옥죄는 화세운과 연철인의 수법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무진이다. 이제는 혈신이 오더라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다.
손에 들고 있던 엽도의 시신을 연철인을 향해 집어 던졌다. 시신이 화살보다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사람의 몸무게가 일반적으로 100근 정도다. 연철인의 몸은 일반인보다 족히 한 배 반은 더 크다. 150근에 달하는 연철인을 화살처럼 날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쌔애앵!
아무리 극악한 마인도 죽어버린 시신을 무기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화세운과 연철인은 무진의 지독한 수법에 치를 떨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력을 회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철인의 탈혼멸살과 엽도의 시신이 부딪쳤다. 피륙으로 이루어진 엽도의 시신이다. 죽어버린 시신은 생전의 강인함을 갖지 못한다. 연철인은 엽도의 시신이 산산이 부서져 버릴 것이라 확신했다.
터어엉!
“크윽!”
시신과 부딪친 연철인의 검력이 뒤로 밀렸다. 금성철벽을 두드린 듯한 충격이었다. 휘청거리며 족히 6장 가까이 날아가야 했다.
어처구니없니 밀려난 연철인은 건곤신화공(乾坤神化功)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흔들렸다. 간신히 신형을 멈춘 연철인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는 비릿한 피맛을 봐야 했다. 피를 본 것도 오랜만이지만 그것을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이…럴 수는 없다!”
공세를 취했던 화세운도 놀라서 반 박자 정도 반응이 늦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무진에게는 큰 허점이었다.
“한눈팔 때가 아닐 텐데.”
“허억!”
화세운은 믿을 수 없는 일에 경악했다. 만개의 손이 하늘을 뒤덮는다는 무영만겁수의 총화가 일수에 깨졌다. 무진의 일권이 무영만겁수의 흐름을 뚫고 들어와서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수강(手剛)의 위력을 넘어서는 무영만겁수조차 단 한 번의 찌름을 막아내지 못했다.
화세운의 양손이 만세를 열창한 것처럼 역으로 꺾였다. 무진의 주먹과 부딪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양팔이 부러진 것이다. 무진의 주먹이 화세운의 심장을 가볍게 때렸다.
파팟!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심장이다. 심장이 멈추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무인이라고 해도 살아나지 못한다. 기괴한 마공이나 사술을 부리지 않는 이상 죽는 것이 당연하다.
부들! 부들!
화세운은 눈이 뒤집힌 채 풍을 맞은 것처럼 떨었다. 무진의 주먹이 살과 가슴뼈를 관통하고 심장을 으깨버린 것이다. 원동력을 잃은 화세운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털썩!
화세운은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지옥천왕에 이어 무영천왕도 일수를 버티지 못하고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들끓는 기혈을 억지로 추스른 연철인은 눈앞의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말을 잃었다. 천왕이 개나 소나 무인이라고 여기는 삼류무인이었다면 일수에 죽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왕은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절대고수가 맥도 못 추고 죽어버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이런 말도 안 되는 무력이라니! 제왕성의 주인이자 혈신에 버금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문득 든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연철인은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북해의 지하 만장아래 숨죽이고 있다는 빙천혈수(氷天血水)에 몸을 담근 것처럼 전신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우리보다 놈이 사실을 더 잘 안다. 더군다나 혈신과 비견되는 무력…설…마!’
혈신이 패해서 도망치고 있다는 만귀당의 서신을 믿지 않았다. 사실이라면 놈들이 비열한 수를 썼거나, 대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무진의 강력한 무력을 경험한 순간 원인과 결과가 맞물리는 톱니처럼 맞아 떨어졌다.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네놈이 설마?”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군.”
“그…럴 리 없다! 혈신께서 네놈 따위에게 당했을 리 없어!”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무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굳이 부정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안다고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철인은 서신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성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중원에 혈신을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천인혈의 대법을 통해 탄생한 혈신이다. 혈신을 위해서 제왕성과 초원의 전사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완전무결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혈신을 인간의 무력으로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놈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냐?”
연철인은 울분을 터뜨렸다. 오랜 세월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이제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다가왔다. 그런데 100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전부 허물어져 버릴 위기에 처했다.
사람은 목적을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했던 것이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리면 감당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질문이군.”
“무엇이 어리석단 말이냐! 네놈이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알기나 한단 말이냐!”
“그래서 위안이라고 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크아아아악! 죽여버리겠다!”
숨죽이고 있으려면 애초에 끝까지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세상에 발을 들인 이상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니면 좀 더 강력한 힘과 암계를 동원해서 그 어떤 방해물도 물리쳤어야 했을 것이다.
“이놈! 절대 네놈만은 살려두지 않겠다!”
“각오만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연철인은 죽음을 각오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무진만은 절대로 살려 둘 수 없었다. 놈으로 인해 염원하던 초원의 제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릴 위기에 처했다. 목숨을 바쳐 무진을 죽일 수만 있다면 자신의 죽음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야야얍!”
건곤신화공을 한계점 이상으로 끌어올려 탈혼마환겁법의 최후초식인 탈혼멸천강(奪魂滅天剛)을 시전했다.
내력은 한계점 이상을 벗어나 원천진기까지 소모하게 되면 다시 회복하기 쉽지 않다. 사막에 물을 부어봤자 대지로 변하기 어려운 것과 같았다. 그렇기에 무공을 익힌 자들은 본원진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연철인은 본원진기를 전부 동원했다. 본원진기의 사용으로 전보도 족히 2배 이상 내력이 강해졌다. 한계점을 넘어선 내력을 탈혼멸천강에 집중했다.
푸아아아아앙!
대기를 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엄청난 내력으로 인해 사방이 검력에 휘말리고 있었다. 땅거죽조차 기력에 소용돌이치면서 뒤집혀졌다. 목숨을 담보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반경 20장에 달하는 지축이 흔들렸다.
휘몰아치는 폭풍 앞에서도 무진은 발에 못을 박아 놓은 것처럼 흔들림이 없다. 무진은 손바닥을 부챗살처럼 폈다. 강기가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쳐 오는 상황에서 검력 안으로 손바닥을 휘저었다. 대기의 기운이 무진의 의지에 의해 밀려 나갔다.
퍼어어어어어어엉!
바람과 강기가 부딪치며 격렬한 진동과 굉음을 냈다.
무진과 연철인 사이의 공간이 폭탄 맞은 것처럼 움푹 들어갔다. 사방으로 퍼진 강기의 파편들이 바위와 나무를 가리지 않고 조각조각 박살내 버렸다. 충격의 여파가 휘몰아치고 난 후 뿌연 먼지가 어둠을 가렸다.
추춤! 추춤!
기력이 다한 연철인은 서 있기도 힘들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다.
타탕!
수족이나 다름없는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눈의 초점조차 제대로 맞지 않고 있었다.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안정을 취하려고 해도 하얀 백치처럼 변해가고 있는 연철인이다.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했고, 탄력 넘치던 얼굴과 몸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것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소모된 기력은 다시 돌아올 줄 몰랐다. 내력을 잃은 무인은 무인이라고 할 수 없다.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다해가고 있음이었다.
연철인은 허탈함을 느꼈다. 무진의 대응은 고작 손바람에 불과했다. 가볍게 휘두른 손바람은 대기를 폭풍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폭풍은 아니다. 사방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은 강할지언정 강기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러나 무진이 만들어낸 폭풍은 면이 작았다. 작은 규모로 바람이 휘몰아친 것이다. 그 위력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위력을 넘어섰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무진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여긴 연철인은 자신이 한없이 작은 인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네…놈은 사람이…아니다!”
시야를 가린 먼지를 뚫고 무진이 걸어왔다. 먼지조차 무진의 주변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무진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연철인을 직시했다.
무진의 눈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렸다. 세상을 관통하는 청안이 번쩍거리자 연철인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굳었다.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릴 수조차 없었다. 통천안의 지배력이 가동된 것이다. 이미 다 타버린 심지가 되어 버린 연철인으로서는 버티기 힘들었다.
눈을 통해 파고든 푸른빛이 연철인의 뇌리에 숨어 있던 비밀을 끄집어내었다. 무력뿐만 아니라 정신력에서도 연철인은 무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크으으윽!”
마른 우물 안의 마지막 한 방울 남아 있는 기력을 가다듬어 대항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통천안은 하늘을 관통하는 무상의 공능을 지녔다. 정상적인 몸을 지니고 있는 연철인이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안…돼! …악…마같은!”
“악마는 목적을 가지고 적을 죽이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 생명을 죽이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양면성이 존재한다. 화합과 공존, 멸살과 소멸이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화합과 공존만 있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수 있으나 발전이 없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앞으로 나가가지 않은 이상 세상은 제자리에 고인 물처럼 나태해질 뿐이다.
반면에 소멸과 멸살이 반복되면 세상은 파멸하게 된다. 한 가지에 몰입하여 파괴만을 일삼는 존재를 악마라 칭할 수는 있으나 무진은 파괴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제왕성의 위치는 거기였군.”
무진조차 짐작하지 못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며,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제왕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초원의 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며 사람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곳이니 알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어…찌 할…작…정이냐?”
“몰라서 묻나.”
연철인은 무진이 제왕성을 없애버리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확실할 것이다. 놈의 무력이라면 제왕성은 버티지 못한다.
연철인은 끝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제 자신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초원의 전사들을 생각하니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분노, 울분, 안타까움, 연민의 감정이 연철인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충정이 깊군.”
“닥…쳐랏! 네…놈에게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잘 기른 개를 가진 놈이었어. 그래서 위험하기도 했지.”
무진은 철무성은 간과하지 않는다. 살아나면 위험한 놈이었다. 이런 충직함은 쉽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무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충정만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다. 오롯이 일어서려면 진정으로 강한 능력과 힘이 바탕이 돼야 한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으며, 절대로 패하지 않아야만 대륙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고통스럽게 죽이지는 않겠다.”
무진의 기세가 대기를 장악했다. 해가 내리쬘 때의 선선한 바람은 시원하며 달콤하다.
반면에 차가운 겨울의 바람은 황량함이 칼과 같다. 바람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며,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바람에 의지를 실어 병기를 형성하면 그 자체로 신병이기를 능가하는 무상의 병기가 된다.
삽시간에 그물망 같은 기세가 연철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스윽!
일순간에 연철인의 몸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좀 더 끌어들여야겠지.”
직접 움직이기에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지금 당장 무진이 출전하게 되면 혈신이 없는 제왕성 따위는 하루 안에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전쟁이 쉽게 끝나면 무진으로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 피를 많이 흘릴수록 지배력은 강해지게 된다.
꽈꽈과광!
갈라진 육편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분산되었다.
핏물에 담가진 듯한 신형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혈륜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천득구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거친 숨결만큼이나 지존천마공의 내력이 썰물 빠지듯이 소모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천득구를 쫓는 특급전사들은 기가 질렸다. 고작 한 사람에 의해서 전력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들이 합공을 하면 천왕들조차 한 수 접어주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이없을 지경이다.
천살강기를 휘감고 있던 천득구는 지치는 것을 느꼈다. 제아무리 천득구가 강해도 특급전사들 30명의 합공은 쉽지 않았다.
“이래서 나는 떼거리가 싫다니까!”
숨을 돌리기도 쉽지 않은 순간 천득구의 시선에 무진이 들어왔다.
‘응?’
무진은 여유롭게 대결을 구경하고 있었다. 치열함과는 상관없는 존재로 보였다. 천득구는 특급전사들이 혈륜진을 가동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두면서 대결을 벌였다. 그로 인해 무진과의 거리가 제법 멀어졌다.
‘벌써!’
천득구는 특급전사들보다 3명이 더 거슬렸었다. 솔직히 일대일이라면 승산이 있지만 3대 1은 어려웠다.
그런데 벌써 끝을 내 버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천득구조차 기가 질릴 지경이다. 그것은 특급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3천왕이 다 죽을 줄은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