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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지존기 80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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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80화

제2장 유인(誘因) (1)

 

시야를 가리는 어두운 운무 속에 4개의 바위산이 감싸고 있는 성.

언제나 굳게 닫혀 있던 제왕성의 문이 열렸다.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야 했던 제왕성의 전사들이 기지개를 켰다.

전쟁에 필요한 군수물자는 사혈운무 밖으로 옮겨 놓은 상태였다. 성의 규모가 크다고는 하나 물자의 보급은 외부의 조달이 필수적이다. 대막과 초원지대의 상권에 압력을 넣어 물자를 충당했다. 은밀하게 구축해 놓은 정보망과 상권을 개방한 것이다.

제왕성의 전사들은 무공을 익혔다. 또한 전쟁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까지 숙지했다. 그렇기에 제왕성은 무인이나 병사가 아니라 전사가 되었다. 개개인의 무력이 일류고수에 육박하는 초인집단이다. 따라서 대규모 집단전술에 약한 무인과 소수 단병접전에 취약한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지녔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참아온 전사들은 피에 굶주려 있었다. 전쟁을 선언한 순간 전사들은 환호했다. 전쟁에 대한 굶주림은 투지가 되어 불타올랐다.

혈신의 명령에 의해 11명의 천왕이 전쟁에 필요한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때 소식이 들어왔다. 뜻하지 않은 소식에 천왕들은 당황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사실인 것이오!”

천왕들은 서신의 내용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혈신의 무력이라면 자금성을 초토화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혈신이 쫓기고 있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혈신의 무력을 체감했던 천왕들이다. 감히 고개조차 들 수 없게 만든 혈신의 무력이었다. 천하에 대적할 만한 존재가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언가 다른 변수가 발생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냉정할 때요!”

냉혈천왕(冷血天王) 야율천은 상황을 냉정히 살필 필요가 있음을 직감했다. 감정에 치우쳐 대계를 어그러뜨리기에는 기다린 세월이 너무 길었다. 서신에 적힌 내용만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칸께서 위급한 상황이 아니오! 어떻게 침착할 수 있단 말이오!”

사자천왕(獅子天王) 구양천강의 말에 대부분의 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신은 제왕성의 총화다. 철무성의 존재 자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초원의 제국도 제왕이 있어야만 한다.

“그럼 어찌했으면 좋겠소?”

“무슨 일이 있어도 칸을 구해야 하오!”

제왕성의 무력을 총 동원하는 한이 있어도 철무성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신하 된 도리였다. 제왕성은 철무성을 위해 존재했다. 구양천강의 주장에 야율천을 제외한 천왕들은 동조를 했다.

“놈들의 제국은 근간이 흔들리고 있소. 대비를 하기 전에 전쟁을 치러야 하오!”

제왕성의 전사들은 총 10만에 달한다. 근본이 썩어가고 있는 명의 병사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전쟁과 동시에 혈신을 구하고 초원의 제국을 다시 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보았다.

“그렇게 합시다!”

“옳은 결정이오!”

천왕들의 뜻이 일치했다. 야율천도 천왕들의 뜻에 동조를 했지만 무언가 석연치가 않았다.

혈신의 능력은 천하최강이다. 강대한 힘을 조절하지 못한 파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식이 생각보다 빨리 전해졌다. 은밀하게 추적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흔적이 알려졌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물론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었다.

‘아니겠지.’

야율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허억! 허억!

호흡이 거칠다. 터져 나오는 호흡에 단내와 혈향이 동시에 풍겼다. 한 호흡조차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도망을 쳐야 했다. 추적자들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으윽!”

무성은 단전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에 신음성을 터뜨렸다. 단전엔 아직도 단검이 박혀 있었다. 작은 단검에 불과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무림3대 금지마병이라고 불린 이유가 있었다.

내공의 운기조차 마음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혈신의 능력이 온전했다면 흡혈마검이라고 해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혈신의 기운이 불안정했다. 하단전과 중단전, 상단전으로 가는 길이 수라탄강기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는 지금 신법을 전개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내가 이런 비참한 상황에 처하다니!’

무진과 대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무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목숨을 연명하기도 힘든 처지에 놓였다. 무성은 흑영대의 집요한 추적에 숨조차 돌리지도 못했다.

문제는 그가 한없이 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앞뒤 재지 않고 무진의 반대편으로 도주를 했는데, 이제는 방향을 바꿀 수가 없게 되었다.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려면 흑영대가 포위망을 구축해서 방해를 해왔다.

“놈들은 나를 남쪽으로 유인하고 있다. 무얼 노리는 거지?”

이성이 돌아오자 무성은 의심을 하게 되었다. 길게 고민할 여력이 없는 상태이기에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하지만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북방과 반대…설마!”

순간 스친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무진이 일부러 자신을 놔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영대의 무력은 초절정에 달한다. 개개인의 무력이 상상을 불허하고 있었다. 흑영대가 지친 자신을 잡지 않고 추적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비약일 수도 있으나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제왕성을!”

만약 그렇다면 제왕성은 막을 수 없다. 혈신의 무력으로도 무진에게 패했다. 무진의 무력을 제왕성이 감당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빌…어먹을!”

무성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날카롭게 벼린 예리한 비수가 그의 목숨 줄을 노리며 날아왔기 때문이다.

흑영대는 주변을 철저하게 폐쇄하며 무성을 한곳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사나운 맹수를 우리 속에 가두어서 말려 죽이는 지독한 작전이었다.

슈슈슈슝!

위험을 감지한 무성이 허리를 비틀어 방향을 틀었다.

파파파팟!

비수가 신형을 꿰뚫고 바닥에 꽂혔다. 깊숙이 박힌 비수의 주변이 검게 물들었다. 찰나 자칫 잘못했으면 비명횡사할 뻔했다.

약간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무성은 고통스러웠다. 지금 당장은 제왕성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목숨을 챙겨야 할 때였다. 제왕성이 무너지더라도 그가 완벽한 힘을 되찾는다면 세상을 한손에 움켜쥘 수 있었다.

“절대로 네놈만은 용서하지 않겠다! 뿌드득!”

흑영1호 단유성은 무성의 지독한 집념에 경탄을 보냈다. 이번에 던진 비수는 단순한 위력을 넘어섰다. 일수에 절정고수의 생명을 앗아가 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일격이다. 기력, 체력, 심력이 전부 소모된 상태에서 저만큼이나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할 따름이었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흑영대가 감당할 존재가 아니다.’

단유성은 소름이 돋았다.

무진은 어설프게 추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무성이 원래의 힘의 삼분지 일만 회복될 시간이 주어져도 흑영대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단유성도 최선을 다했다. 무성에게 기회를 주는 날에는 단유성의 목숨도 장담하기 힘들다. 어찌 보면 쫓기는 자와 추격하는 자 모두 절박했다.

현 시점에서 무성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정해진 계획대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뜻하지 않는 변수가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다.

무진은 변수를 줄이고, 흑영대의 전력을 가다듬을 기회를 주었다. 단유성이 전력을 다할수록 흑영대의 무력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추격에 고삐를 늦추지 마라. 방심은 금물이다.”

단유성은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흑영대를 조율했다. 먹이가 다가올 때까지는 상처받은 맹수를 죽일 수가 없는 시점에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 *

 

자금성이 초토화된 후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는 서북쪽의 궁에서 대전회의가 열렸다. 주하영은 대전회의 전에 황제를 보필하지 못한 간신들을 숙청했다.

주하영이 천주령(天主令)을 발동하고 10일이 지났을 때 간신들은 대부분이 숙청되었다. 또한 그동안 황제의 죽음에 대한 대외적인 증명과 이후의 제위에 대한 사전준비를 마쳤다.

대전회의의 분위기는 엄숙하다 못해 숨 막힐 지경이었다. 숨조차 마음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삼공(三公)과 삼고(三孤)의 최고 명예직을 갖춘 자들 중 황제의 스승이었던 태사 임여충을 비롯한 3명을 갈아치웠다. 또한 육부(六部)와 도찰원(都察院), 한림원(翰林院) 등 내정을 관리감독하고, 총괄하는 자들조차 주하영의 명령에 의해서 숙청되거나 선출되었다.

주하영은 얼음같이 차가운 모습으로 회의의 중심에 자리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누구도 주하영을 똑바로 바라보는 자들이 없었다. 그녀의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시작하세요.”

그녀의 명이 떨어졌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자들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육부의 상서(上書) 종리관이 나섰다.

“황위를 오랜 시간 비워두게 되면 근간이 흔들릴 수 있었다. 제국의 천년영광을 위해서는 보위를 결정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황위를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종리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찬성하는 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주하영은 말없이 좌중의 의견을 지켜보았다. 물론 이미 짐작하고 있는 일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포섭해 놓은 상태였다. 정해진 떡밥을 깔아 놓고 반대하는 자들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작은 분란의 씨앗도 남겨두어서는 안 되었다. 일을 시작한 이상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했다.

“황위는 제국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분이 되어야 합니다. 예로부터 황위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단결된 힘을 갖출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당연히 이번 황성의 혼란을 해결하고, 만인에게 뜻을 보여준 2공주께서 황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주가 황위에 오르는 파격적인 일에 반대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진의 뜻을 받아들여 주하영은 단호하게 손을 썼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주하영은 황위를 단번에 수락하지 않았다. 당장은 내정의 주도권과 명분을 가져오는 것이 시급했다. 불순분자를 처리한 후 황도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일부는 공주의 잔인함을 지탄할 수도 있다. 그전에 충분히 설득을 하고, 명분을 쌓으면서 능력을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황위보다 제국을 위협하는 적을 막아야 할 시기예요. 북방의 세력이 호시탐탐 제국을 노리는 있는 누란의 상황에서 자중지란을 일으켜서는 안 될 때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명심하겠나이다!”

“명심하겠나이다!”

주하영은 황위를 후일로 미루는 대신에 황제의 대리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했다. 실상 내정을 완벽히 제압한 주하영이다. 황제의 대리라고는 하나 힘의 집중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제국의 전력을 전시 체제로 바꾸세요!”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전쟁 준비는 10일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만에 달하는 부대를 이동하는 일이다. 최소한 1개월의 시간은 필요했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최대한 전쟁준비에 차질을 빚지 않아야 한다.

‘이제 됐어!’

그녀의 행보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 *

 

자금성과 멀지 않은 태사의 장원.

피의 숙청이 벌어지고 난 후 태사의 식솔들 절반이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옥되었다. 그로 인해 장원이 텅 비어 버렸다.

비어버린 청송장원을 주하영은 무진에게 주었다. 황궁을 위험에서 구해준 공을 인정해서 준 것만은 아니었다. 혈신이 다시 쳐들어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무성이 쫓기고 있다는 것은 무진만 알고 있었다.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주하영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무진은 장원의 지하실에서 연공 중이었다. 철무성과의 대결을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보았다.

“내력에서 밀렸다.”

무력은 내력과 다르다. 내력은 힘의 크기지만, 무력은 내력, 체력, 기력, 심력, 적응력, 판단력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종합적인 면에서는 무진이 혈신을 압도한 대결이다. 하지만 무진은 태만하지 않았다.

만약 혈신의 기운이 조금 더 강했다면 무진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무진은 단 하나의 결점도 용납하지 않았다.

무진의 경우 삼라만상과 조화를 이룬 조화지경의 경지를 초월했다. 내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경지다. 공능의 신체를 지닌 무진에게 내력을 늘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깨달음을 통해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무진은 눈을 감았다.

통천안을 통한 무성의 모든 것이 무진의 뇌리에 입력이 되어 있었다. 작은 흐름조차 무진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어 혈신이 된 무성이 나타났다. 가상의 대상이지만 그 힘의 여파는 가공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져 버렸다.

무진은 연공과 가상대결을 10일 동안 끊임없이 수행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진은 목숨을 걸 수 있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여태까지 이루지 못한 것이 없다. 반드시 전보다 강해질 것이다.

주르르륵!

가상의 대결은 치열하게 진행이 되었다. 무진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무진은 전략에 의한 대결이 아닌 정면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무성이 혈신이 되었을 때의 힘에서 무진이 뒤져 있었다. 이제까지 정면대결을 해서 10일 동안 수백 번이나 패배를 경험했다.

하지만 한 번의 패배가 있을 때마다 무진은 배워나갔다. 약점을 보완하고, 힘을 기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우우웅!

내력이 분출되는 것이 아니었다. 몸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패력이 발산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실이 붕괴될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력에 몸서리가 처질 지경이다.

무진의 몸이 잔 경련을 일으켰다. 10일 동안 무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번쩍!

눈을 떴다.

“반초 차이인가.”

가상의 대결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서 싸웠다. 그리고 반초 차이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반초 차이는 얼마든지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것이 결투다.

더군다나 생사를 가르는 결투에서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패배를 한다 한들 결국은 약해서 진 것이 된다.

패자의 변명 따위는 세상이 원하지 않는다.

무진은 지하실에서 나왔다. 대결을 통한 깨달음은 여기까지다. 다시 대결을 벌인다고 해서 한순간에 깨달음이 오는 것이 무리임을 인정했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진은 강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무진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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