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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지존기 65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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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65화

제3장 단죄(斷罪)의 장 (4)

 

팽관혁과 남궁훈은 사정사정했다. 좀 전까지 죽일 듯이 바라보던 자의 눈동자가 아니다.

공오대사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물었다.

“시…주는 도대체…어디까지 갈 생각인 것이오?”

“내 세상이 될 때까지.”

“세상은 세상 사람의 것이지 그대의 것이 아니오!”

“이제야 좀 중다워진 건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불교의 진리다. 그러나 공오대사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무진의 말이 실현될까 두려워서 한 말에 불과하다.

“시주는…정녕…악마…가 될 생각이시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

굳이 말리지는 않는다. 악마라 칭하든, 마황이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무진이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획했던 일을 바꿀 생각 따위는 없다.

“악마가 된 김에 알려주지.”

무진은 이제까지 정천맹을 상대로 벌인 일을 나열해 주었다. 정천맹의 변화와 더불어 그동안 벌어진 혈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주체하기 힘든 지경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현재 봉문만 당하지 않은 것뿐이지 이미 상당히 망가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원무림 전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무진이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천하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력과 상식을 넘어서는 악마와 같은 귀계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무진은 장황하게 부풀리거나 길게 말하지 않았다. 간단한 단어의 조합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조합된 단문의 공포는 가공했다. 단문의 마지막은 그들도 쉬이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다.

“네놈들은 원의 간세가 되었다.”

“거…짓말!”

“사람은 본 것만 믿지.”

“어…떻게 그런 짓을!”

무진은 각 문파의 비기로 문파를 멸문시키거나 봉문시켰다. 허점이 많은 이간계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본 것을 믿으려고 한다. 그것이 설혹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다.

“시주! 차라리 우리로 끝내시오! 왜 무고한 사람들까지 파멸로 이끄는 것이오!”

“네놈들만으로 끝내려면 애초부터 계획은 세우지 않았어. 이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네놈들의 하찮은 몸뚱이가 대단하다 여기는 건가.”

“그…건!”

무진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복수를 하려고 했다면 세력을 만들지도 않는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혼자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져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세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아직 진정한 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짐작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천무상회의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알아낸 사실이 있다. 그리 놀라운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진의 대업에 방해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 외에도 능력을 감추며 시기를 기다리는 놈들이 있었다.

과거부터 중원무림은 자존을 지켜왔다. 그들이 가진 저력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해서 과대평가를 하지도 않는다. 놈들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무진에게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평생을 지내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버러지 같은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몸소 체험하도록.”

“안…돼!”

“시주! 멈…추시오!”

“죽일…놈!”

“이건 선물로 남겨 주지, 문파의 신물을 보면서 위안이라도 삼아라.”

동혈의 한곳에 소림, 화산, 제갈세가, 사천당가의 신물을 쓰레기 치우듯이 던져 놓았다.

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는 목적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돌아서 가는 무진을 향해 죽일 듯한 살기를 띠며 아우성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무진은 돌아서지 않은 채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 뒤를 차중천이 말없이 따랐다.

동혈을 나온 무진이 물었다.

“준비는 해 놓았겠지.”

“그렇습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자들은 가끔 상식을 벗어난 일을 할 수 있지. 어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지켜봐주지.”

단순히 복수를 위했다면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복수가 허망하다 여겨 포기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은 무진의 성미가 맞지 않는다.

무진은 복수가 아닌 세상을 원한다. 복수는 세상을 얻기 위한 부수적인 과정에 불과했다. 부수적인 과정에 얽매여 목적을 잃어버릴 생각은 없다.

“단죄의 장이라, 내가 생각해도 부끄럽기는 하군.”

유치한 장난이었다.

 

동혈에 남겨진 자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으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이것은 죽은 것만도 못한 신세였다. 문파와 중원무림이 무진에 의해서 망가져 가는데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진을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더 비참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궁훈의 외침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대로 여기서 놈들이 주는 밥이나 먹으며 삶을 연명하거나 자살하는 것이 전부였다.

세상을 좌지우지했던 자신감은 승천해 버린 지 오래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없다. 무진에게 당한 것을 복수하지 않은 이상 편히 죽지도 못했다. 아니 죽어서도 현세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어! 반드시 죽여버린다!”

핏물이 흐르는 입술을 닦지도 않은 채 분노를 토해내는 육진풍이었다. 그는 정신이 들기가 무섭게 발광했다. 점점 광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육진풍의 눈에서는 귀기(鬼氣)까지 번뜩이고 있었다. 광기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그와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육진풍을 막지 않았다. 그들 모두 육진풍과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자신들도 미쳐버릴 것이다.

쿠우웅! 쿠우웅!

육진풍은 뼈가 부러질 정도로 이리저리 주먹질을 했다. 살이 찢겨지고,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찢겨진 피부 사이로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더 이상 놔두면 안 되겠다 싶은지 공오대사가 마지못해 말렸다. 그나마 지금 제일 멀쩡한 사람이 공오대사였다.

“그만 하시오!”

“뭘…그만 하란 말이야! 놔! 난 놈을 죽일 거야!”

“이런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이오!”

“그럼 어떻게 해! 내가 미치게 생겼는데! 놈과 나는 하늘아래 같이 있을 수 없다고!”

쿠웅!

쩌저저적!

내리친 주먹에 핏물이 흘렀다. 그런데 흘러내리는 것은 핏물만이 아니었다. 세월에 부식되어 버린 동굴의 벽면이 작게 갈라지면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색이 바란 헝겊이었다. 헤진 흔적을 보아 오랜 시간 동안 동굴의 벽면에 숨겨져 있었던 것 같았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그때 당사혁의 눈이 헝겊에 향했다. 종이나 헝겊은 세월이 흐르면 부식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헝겊은 낡아 보이긴 해도 거의 멀쩡했다. 재질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잠사.”

양피지는 천잠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도 헤어지지 않은 것이다. 조심스럽게 양피지를 펼치자 글자가 보였다.

 

-한이 깊다. 나의 한의 너무나 깊어 측정할 길이 없다. 나의 모든 것이 허물어져 가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놈들의 비열한 계책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절대 이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양피지의 내용을 읽은 당사혁은 구구절절 공감했다. 글자 하나를 읽을 때마다 분노가 전해졌다. 절절한 사연이 그들의 현 상황과 같았다.

 

-놈들은 나를 죽이지도 않았다. 내공을 전폐시키고 이곳에 나를 가두어 놓았다. 개처럼 주는 식량만으로 삶을 연명해야 했다. 너무도 비참하고 억울해서 죽을 수도 없는 심정이다.

 

평상시라면 관심도 끌지 못했을 글들이 당사혁의 심금을 울렸다. 현 상황과 어찌나 비슷한지 글을 쓴 자를 한번 보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연구했다. 내 몸을 실험체로 삼아 부서진 단전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알고 있는 모든 내공술을 결합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비결을 만들어 내었다.

 

당사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단전이 망가지면 무인으로서 끝난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내공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경악할 일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사혁이다. 그는 눈을 떼지 못하고 글을 읽어 나갔다.

 

-역천마혈회생대법(逆天魔穴回生大法)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하늘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이미 내 몸은 혈이 굳은 지 1년이 넘었다. 천기를 거스르는 역천의 대법은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주어져 있었다. 기간이 넘으면 아무리 대법을 연성해도 내공을 회복할 수 없다.

원수 같은 놈들이 세상을 활보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이곳에 갇힌 자는 나와 같은 신세일 것이다. 만약 내가 적은 양피지를 발견한다면 복수를 해주기 바란다.

 

당사혁도 처음에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피지의 마지막에 적힌 별호와 이름을 보는 순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구유마제 구천강이라니!”

구유마제(九幽魔帝) 구천강은 200년 전 세상을 질타했다가 갑자기 사라진 전대의 십강초인(十强超人)이었다. 구유마제의 독문수법인 지존천강수(至尊天强手)는 산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한다는 설이 있었다.

특히 그는 특수한 내력을 기반으로 무공을 펼쳤는데, 염력(念力)이라고 불리는 마라천력(魔羅天力)이 내공과 조화를 이루어 극강의 위력을 선보였다고 한다. 당대의 천하제일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무력을 지녔던 그가 직접 남긴 글이니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다.

당사혁은 구천강이 남긴 역천마혈회생대법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독공의 고수답게 인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확보하고 있었다. 적힌 내용은 그럴듯한 것만이 아니라 가능성이 충분했다.

1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혈맥이 굳기 전까지라는 소리였다. 완벽하게 굳어 버리면 더 이상의 회생은 신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당사혁은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를 한 후 시험을 해 보았다.

“8개의 맥과 12개의 경락을 먼저 회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맥부터 시작을 할 수 있다니!”

기경8맥(奇經八脈)과 12정경(十二正經)을 순서로 공력의 전이가 되고, 점차적으로 폭을 넓혀 기운을 전신 혈맥(血脈)과 세맥(細脈)으로 분산시켜 회귀시키는 것이 보통의 방법이다.

사실 8맥만 온전히 대주천을 이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역천마혈회생대법은 세맥에 흩어진 몸 안의 선천지력을 끌어올려 굳어가고 있던 맥과 경락을 살리고 부서진 단전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가히 마(魔)의 회생대법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통해 감각을 조율해 보았다. 당사혁이 무진에게 맥없이 무너졌다고는 해도 절대지경의 경지에 올라선 무인이다. 그의 재능 자체는 천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났다.

‘음! 느낌이 있다.’

살아서 꿈틀대지 않을 것 같은 기운이 아주 조금이지만 느껴졌다. 기운이 턱없이 작고 흐름이 부정확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는 것치고는 대단한 성과였다. 임의적으로 기운을 움직인다는 것은 통제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메마른 대지에 한줄기 단비와 같았다.

당사혁이 감았던 눈을 떴다. 공오대사가 당사혁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해 물었다.

“뭘 하는 것이오?”

“맹주, 이것을 보시오!”

당사혁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무진을 막을 수 없다.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

공오대사는 글을 읽는 내내 당사혁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다 읽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사실이오?”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반응이 왔소이다.”

“허어!”

공오대사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길이 없다 여겼다. 절망과 좌절만이 남겨졌다 생각했었다.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소이다!”

“간악한 적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하늘의 뜻이오!”

당사혁은 모두에게 양피지의 내용을 공개했다. 저마다 흥분한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동굴 내부에 무진의 감시자가 있다면 얻어진 기연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팽관혁과 육진풍은 내공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자 당장 운기를 했다. 그들은 무진을 죽일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죽여주마!”

“네놈의 모든 것을 파멸시켜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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