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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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48화
제4장 함정(陷穽) (6)
무진은 뒤처리를 한 후 걸어갔다.
툭!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발로 살짝 두드렸다.
“끄응!”
두드림에 정신이 든 이가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무진만이 홀로 서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갈수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기절하기 전까지의 상황을 유추해 보았다. 진을 해체하려고 움직이려는 찰나에 쇠몽둥이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 기억은 실 끊어진 바늘처럼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니 무진이 버티고 있었다.
제갈수혁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형 자체가 변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천하16대고수에 속하는 5명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반면에 무진은 생채기하나 없이 멀쩡하게 서 있다.
“설…마.”
제갈수혁은 현실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 잘 돌아가는 머리로도 작금의 상황을 타계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맹의 절대고수 5명을 쓰러뜨린 괴물 같은 놈에게서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인가!
“열어.”
“무슨?”
“말귀가 어둡군.”
무진의 손바닥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빠아악! 쿠다다당!
머리통을 맞은 제갈수혁은 바닥을 한없이 굴렀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또다시 무진을 보았다.
군사이기는 해도 절정에 달하는 무공을 익혔다고 자부했던 제갈수혁이다. 그런데 반응은커녕 보지도 못했다.
“열어.”
“알…겠습니다!”
무진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 제갈수혁은 그 즉시 진의 한 축을 열었다. 또다시 얻어맞기는 싫었다. 우선은 살고 봐야 하지 않는가! 이대로 여기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고했어.”
“아…닙…커억!”
퍽! 퍼퍽!
무진이 돌아서자 안심했던 제갈수혁이었다.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기운이 있었다. 바람에 맞은 제갈수혁은 단전이 깨지고, 턱이 돌아갔다. 공중에서 4바퀴를 회전한 후 바닥에 안착한 제갈수혁은 부들거리다가 기절해 버렸다.
백운산(白雲山)의 중턱부근부터 9백 명의 무인들이 진을 포위하며 지키고 있었다. 상당한 수련을 겪은 이들은 제법 잘 정련된 기운을 뿜어내었다.
그들은 정천맹의 8당에 속하는 청룡당, 무천당, 명현당이었다. 맹을 상징하는 무력부대라고 할 수 있었다. 개미새끼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망을 구축했다.
맹주의 명령에 의해서 포위하고는 있지만 그리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진 안에 존재하는 이들이 누군지 알기 때문이다.
천하16대고수가 포진하고 있는 곳을 뚫고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겼다.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맹의 무력부대가 안심하고 있을 때, 서쪽에서 폭음이 울렸다. 굉장한 기파가 사방을 뒤흔들고 있었다.
청룡당주(靑龍黨主) 번천일수(륙天一手) 종리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지키고 있는 지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무슨 일이냐?”
“서쪽에서 무언가 터진 것 같습니다!”
“어서 각 당에 연락하고, 서쪽으로 간다.”
“예!”
종리현은 재빨리 수하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했다. 그가 50명의 청룡당원을 이끌고 폭음이 들린 장소로 이동했을 때 본 것은 참혹함이었다.
서쪽 바위 지형을 감싸며 지키고 있던 청룡당원 30명 전원이 박살날 채 살조각들만 남아 있었다.
청룡당원들 개개인은 일류를 상회하는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다. 30명이 모이면 웬만한 문파는 삽시간에 정리해 버릴 수 있다. 그런 청룡당의 무인들이 촌각을 버티지 못하고 당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스슥!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수풀 속에서 들렸다. 신경이 예민한 이들이 곧바로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하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다. 다만, 무섭도록 빠른 도기가 번개처럼 뻗어 나왔다. 수풀에 가까이 있던 청룡당원은 반항도 못하고 도기에 베어 육편이 되었다.
수하들이 당한 것을 본 종리현이 분노를 터뜨렸다. 맹의 무력부대 중에서도 상위부대라 할 수 있는 청룡당이다. 이처럼 허무하게 당할 실력이 아니었다.
“죽어랏!”
수풀을 향해 종리현이 번천권(륙天拳)의 번천일쇄(륙天一碎)를 사용했다. 번천일수다운 빠름이었다. 비호처럼 빠르고, 맹호처럼 강력했다. 수강에 근접한 위력을 지닌 번천일쇄가 수풀을 휘저었다.
파파파팡!
수풀이 조각조각 흩어졌다. 어둠 속에 사라진 존재를 찾아 안으로 파고든 종리현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기겁하고 말았다.
“도…강!”
강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놀란 것이 아니다. 도강을 넘어서는 뇌력도강(雷力刀剛)이었다.
천지간에 가장 강력한 기운이 뇌기(雷氣)라고 하지 않는가! 감히 그로써는 막아설 엄두가 나지 않는 위력이다.
종리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뇌력도강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한 명뿐이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존재는 벽력도제가 아니다.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경종이 울렸지만 그는 말하지 못했다. 뇌력도강이 그의 미간을 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커어억!”
수풀 속에 들어갔던 종리현이 일도(一刀)를 버티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날아갔다.
청룡당원들이 기겁하며 원진(圓陣)을 형성했다.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이 달려들든 말든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인형은 찬란한 광휘를 뿜어내며 뇌력을 있는 대로 뿌렸다.
뇌력의 줄기에 닿는 순간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잘려나갔다. 무인지경(無人之境)의 상황이었다.
“이…건…꿈이야!”
휘리리릭! 뎅강!
악몽을 꾼 듯 소리를 지른 무인의 목이 잘리면서 끝이 났다. 서쪽 부근을 지키고 있는 청룡당을 완전히 처리해 버렸다.
달아난 무인도 일부 있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무진은 애초부터 이곳을 지옥혈(地獄血)의 장소로 선택했다. 놈들은 포위했다 여기겠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무진의 시선이 동쪽과 남쪽을 향했다. 각 지점을 지키고 있던 무천당과 명현당이 기파를 느끼고 달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천라지망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것은 무진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반각이 되기도 전에 무천당과 명현당이 무진의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무진은 또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그 자리에서 연기와 같이 꺼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500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청룡당의 참혹한 주검을 보자 기겁하고 말았다.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무천당주 분광신검(分光神劍) 도천명과 명현당주 철권(鐵拳) 황보군현조차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천명이 청룡당의 시신을 확인하다가 놀라고 말았다. 시신의 상흔에 남겨져 있는 뇌기(雷氣)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명한 뇌기였다. 이만한 뇌기를 지닌 자는 한 명뿐이다.
“그…분이 왜?”
놀라움이 채 가시기 전에 장력이 뻗어왔다.
푸아아아아앙!
“으아아앗!”
장력의 범위에 속한 20명의 무인들이 한 줌의 혈수(血水)로 변해버렸다. 무지막지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금빛 서기가 실린 장력이라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대…력…금강장이닷!”
“어서 피햇!”
맹주의 절기이자 무상의 장법인 대력금강장이었다. 그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사방의 어둠 속에서 대력금강장이 지속적으로 날아왔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몸이 기운에 반응하기도 전에 대력금강장이 포탄처럼 날아와 무인들을 박살냈다.
“도대…체 왜?”
도천명과 황보관운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력금강장은 맹주의 독문장법이다. 맹주가 왜 자신들을 죽인단 말인가!
무인들은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맹주가 돌변한 것을 쉬이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매화의 짙은 향기가 진동하더니, 자색의 검강이 무인들의 주변을 에워쌌다. 그 향에 취에 있을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자색기류에 제압을 당한 무인들은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했다. 한순간에 매화의 흩날리는 꽃잎처럼 피륙이 잘게 잘려지고 말았다.
“자…하검강!”
자색검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매화검제의 매화삼절검형이 틀림없다.
맹의 무인들이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절대고수가 어둠 속에 스며들어 암습을 날리자 400의 무인들은 혼비백산했다. 벌써 100명이나 죽어버렸다.
“현천무벽검진을 펼쳐랏!”
우선은 방어진을 형성하는 게 급선무였다.
절대고수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도망친다고 한들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방어진을 형성해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도천명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군일 때는 든든한 존재들이었지만 적이 되니 겁이 났다. 맹주를 비롯한 천하16대고수의 위력은 감히 측정이 불가능했다.
‘어쩌다가!’
천무상회주를 죽이고 난 후 절강성에서 준동을 하는 사파무림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였다. 천무상회주는 그저 지나가는 교차점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왜 아군이 적이 되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살아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둠 속에 동화되어 있는 무진은 일부러 뭉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었다. 무진은 한곳에 모인 순간을 기다렸다가 한 번에 힘을 쏟아낼 작정이다. 개미새끼들이 뭉친다고 해서 범을 이길 수는 없다.
사삭!
수풀을 해치고 무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어진을 펼치고 있던 이들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무진이 나타나자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맹주를 비롯한 절대고수들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네놈은 천무상회주!”
무진이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검을 뽑아 그들을 향했다. 무진의 검에서 창천검왕의 제왕검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설…마!”
제왕검법의 마지막절초이자 최강의 검법이라고 불리는 제왕군림검강(帝王君臨劍剛)이 무천당과 명현당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놀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당문의 암기와 편법이 동시에 출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림의 금강복호신권과 혼원벽력도법, 매화삼절검형이 줄을 이어 뻗어 나왔다. 거의 초식과 초식의 연계에 틈이 없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혼비백산(魂飛魄散).
망연자실(茫然自失).
무인들 모두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지막지한 절기에 기가 막혀했다.
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야 한다.
투꽈꽈광! 파파팡!
“피…해!”
“으아아아악!”
비명성이 산을 진동시켰다.
방어진이 종잇장처럼 찢겨졌다. 한곳에 모여 방어진을 펼친 것이 오히려 족쇄가 되었다.
천지사방을 뒤덮는 무진의 막강한 공력이 불을 뿜었다. 일시에 400명의 무인들이 갈가리 찢기면서 팔방으로 흩날렸다.
휘이이잉!
혈향이 바람을 타고 산의 어둠 속으로 번져나갔다.
주변이 온통 핏물과 살 조각들뿐이다. 사람의 형체를 구분하기 힘든 지경이 되어 있었다. 지옥의 참상 속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꿈틀! 꿈틀!
간신히 목숨줄만 연명하게 된 도천명은 죽어 버린 수하들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의 시선에 핏물을 밝고 유유히 다가오는 무진이 보였다. 피의 화신이자, 악마의 현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를 익혀도 대성하기 힘든 절기를 한꺼번에 출수하고도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더군다나 그는 맹주를 비롯한 절대고수들까지 상대했을 것이다. 인간의 강함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자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어!’
파팟! 털썩!
무진은 살아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도천명의 목숨을 거두었다. 죽은 척 연기를 해도 무진에게는 소용없다. 기감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귀식대법을 펼친다 한들 부질없는 짓이다. 마지막 삭초제근을 한 무진이 돌아섰다.
무진이 돌아서는 그 뒤로 30명의 무인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들은 무진의 직속무력부대인 밀영대였다. 밀영대 중 일부는 공오대사, 팽관혁, 육진풍, 남궁훈, 당사혁, 제갈수혁을 업고 있었다. 미약하게 들썩이는 등을 보아 아직 죽지는 않았다.
“처리했나.”
“백운산 일대에 살아남은 존재는 없습니다.”
무진은 철두철미했다. 무진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해도 밀영대가 백운산 일대를 포위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도망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궁지에 몰린 것은 무진이 아니라 정천맹이었다.
“돌아간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