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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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41화
제3장 연전연승(連戰連勝) (3)
한 달이 흘러갔다.
비무는 벌어지지 않았다. 무진의 무력을 경험한 무인들은 발길을 돌렸다. 목숨을 걸고 비무에 참여하는 무인은 없었다.
무진은 정천맹에서 시간을 끈다는 것을 파악했다. 시간을 끌며 정천맹의 움직임에 모든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때 나서려는 의도다. 정천맹만이 유일하게 무진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극적인 순간에 무진을 이긴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무진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더 나은 방법이 될지는 도제와의 결전이 벌어지면 알 일이다.
무진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상계의 일을 정리해 나갔다. 대명상회는 아직까지 건드리기 까다롭다. 제국의 도움을 받는 상회라 무너뜨리게 되면 황실과 척을 지게 된다.
우선은 빈번하게 반항을 하는 자잘한 것들을 소탕해 버리는 것이 먼저였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았다. 무진이 친히 상계 정리에 들어간 이상 반항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해일처럼 삽시간에 삼켜버리고 난 후 안정을 시켰다.
그와 동시에 암흑계의 흑도를 비밀리에 정리해 나갔다. 매춘이나 도박, 소매치기, 임신매매 등으로 먹고사는 흑도들은 세상의 기생충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작정하고 소탕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흑도가 벌어들이는 돈이 만만치가 않다. 또한 그 돈을 탐내는 이도 적지 않다. 정천맹이 흑도를 토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드러내면서 하기 힘든 일들을 흑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무진은 정천맹의 자금줄을 조금씩 끊어갈 계획이다. 정천맹이 눈치를 챌 때는 모든 일이 끝나 있을 것이다. 무진은 흑도와 타협할 생각이 없다. 언제고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벌레들을 남겨두는 것은 무진의 성격상 맞지 않았다. 아주 씨를 말려 버릴 작정이다.
암흑계를 정리해 나갈 때쯤에 비무대회가 다시 열렸다. 제대로 된 비무가 벌어지지 않는 시기가 길어지자 사람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비무장에 모였다. 이유는 16대고수 중에서도 도법의 1인자라고 불리는 하북팽가의 벽력도제 팽관혁이 출전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비무대 아래로 모인 사람들의 좌측 끝에서부터 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함성소리가 울렸다.
와아아아!
“벽력도제 팽관혁 대협이시다!”
“이번에는 냉혈무신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이겨주십시오!”
사람들은 더 이상 변방 오랑캐에서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는 이겨서 중원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무인들 전체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16대고수의 위용.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 당장 팽관혁의 실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를 직접 본 사람도 드물었다. 정사대전이 끝나고 난 후부터 16대고수는 대외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활약할 명분도 없을뿐더러, 그들이 나설 정도로 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16대고수가 등장했다.
벽력도제 팽관혁의 주변으로 팽가의 무인과 화산파의 무인들이 보였다. 백의 무복에 자색으로 수놓아진 매화무늬는 화산파를 상징했다. 팽가와 화산파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도(刀)의 절대세가와 검(劍)의 절대문파, 서로는 앙숙이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오래전 일이다. 정사대전 당시 벽력도제 팽관혁과 매화검제 육진풍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맺는 바람에 하북팽가와 화산파는 서로를 존중하게 되었다. 각 문파의 최고 고수이자 연배를 지닌 그들이 하는 일에 반론은 제기되지 않았다.
화산파에서 나온 무인은 육진풍의 손자인 육영기였다. 육영기는 화산파를 대표하는 매화검수(梅花劍首)에 속하며 매화신검(梅花神劍)이라 불린다. 육진풍에 비견되는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능력 또한 또래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가졌다.
“팽 대협!”
“왜 그러느냐?”
“변방의 오랑캐와 손을 섞는데 팽 대협까지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끝을 내겠습니다.”
“그는 권패를 이긴 자다.”
팽관혁은 무진의 실력을 간과하지 않았다. 육영기가 매화검수에 속하는 화산파의 절정고수이기는 하나, 상대는 권패를 이긴 강자다.
“화산의 무인으로서 비무를 하고 싶습니다!”
육영기는 다시 한 번 간청했다. 팽관혁은 뼛속 깊이 무인이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팽관혁으로서는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육진풍은 현재 폐관수련 중이었다. 불현듯 다가온 깨달음을 갈무리하기 위해서 폐관에 들어갔다.
만약 육진풍이 팽관혁에게 부탁을 했다면 달라졌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인으로서의 부탁을 거절하게 되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뜻대로 하거라.”
“반드시 중원무림의 위대함을 보여주겠습니다!”
팽관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육영기가 화산파의 절정신법이라고 불리는 청운신법(靑雲身法)을 펼쳐 비무대 위에 구름처럼 사뿐하게 안착했다.
육영기는 눈꼬리가 약간 올라갔고, 입술이 가늘다. 약간은 간사하다 할 수 있는 외모를 지녔다. 또한 턱 끝을 위로 당기고 있어 오만함의 표상을 보여주었다. 그는 비무대로 올라서서 무진에게 소리쳤다.
“변방의 오랑캐 따위가 중원무림을 깔본 대가를 치러주마!”
육영기는 화산파의 절기인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운용하여 기운을 퍼뜨렸다. 중원무림을 넘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무진은 육영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진의 시선은 팽관혁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것을 본 육영기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그리고 모욕을 참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수양은 깊지 않았다. 이번에 팽관혁을 따라온 것도 무진을 이겨 명성을 날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시끄럽게 짖지 마라.”
“뭐…뭐라고! 네놈이 감히 나를 개 취급해!”
“개를 때려야 주인이 올라오겠지.”
무진의 비틀린 미소. 명백한 조롱이다.
육영기는 이제껏 이렇게까지 무시당한 적이 없다. 권패를 이겼다고 하나, 자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대화산파의 매화검수가 권패 따위에게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진이 권패를 이긴 것도 운이라고 여겼다.
“운이 좋아 지금까지 왔다만 여기서 끝이닷!”
화산파의 보신경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암향표(暗香飄)가 펼쳐졌다. 회오리바람과 함께 매화의 향기를 뿌리며 무진을 향해 검을 뻗었다. 매화이십사수검법(梅花二十四手劍法)의 매화혈우(梅花血雨)였다. 육영기의 검에서 피를 머금은 자색의 기류가 형성되어 뻗어나갔다.
퍼퍼퍼퍼퍼펏!
노을빛에 물드는 매화의 기운이 빗살처럼 날아와 무진의 신형을 꿰뚫었다.
육영기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육영기의 바로 옆으로 무진이 다가왔다. 무진의 신형을 확인했을 때 육영기는 반응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가 반응하기에는 무진의 신형이 너무 빨랐다.
“아…니?”
“개는 꺼져라.”
퍼퍼퍼퍼퍼퍼퍽!
무진의 곤에서 청룡팔연타(靑龍八連打)가 펼쳐졌다. 한순간에 육영기의 얼굴, 몸통, 단전, 팔다리를 가격했다.
꾸웨에엑! 철퍼더더덕!
개의 멱을 따는 소리와 함께 육영기는 비무대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볼썽사납게 바닥에 떨어진 육영기는 눈이 돌아가 있었다. 이미 기절해 버린 것이다. 화산파의 위대함을 선보이기는커녕 비루한 모습만을 보였다.
“자네는 강하군.”
어느새 비무대 위에 팽관혁이 올라왔다. 군살 없는 덩치를 지닌 중년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여든이나 되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팽관혁의 화후가 극에 달해 있다는 반증이었다. 과거에 비해 전혀 퇴색하지 않은 투기를 지니고 있었다. 쓰지 않는 무공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팽관혁은 점점 더 강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음성의 고저는 없지만 무진을 꾸짖는 듯한 말투였다. 무진은 그다지 신경을 쓰는 기색이 아니다. 이제까지 상대해온 놈들 전부 처음에는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짖다가 패대기쳐졌다.
“그러면 처음부터 말렸어야지.”
팽관혁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천하16대고수이며, 최고의 배분을 지닌 팽관혁이다. 그를 향해 하대를 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난다. 또한 어떤 누구도 그런 간 큰 짓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무진은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입이 짧군.”
“말보다는 실력이지.”
“허!”
도제 앞에서 실력을 운운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대답이다. 팽관혁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눈앞의 청년은 예절이나, 겸손을 모른다. 젊은 패기가 나쁘다 할 수 없으나, 만용은 죽음의 지름길이었다. 어른은 후인에게 부족함과 겸손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만한 실력이 된다고 보는가.”
“물론.”
“자신감이 과하군.”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하긴 네 말이 맞겠지. 무림은 말보다는 실력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네.”
“그럼 나를 아나.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일 텐데.”
“좋아, 그럼 어디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는지 확인해 주지.”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될 거야.”
팽관혁과 무진은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둘 중 누구도 패배를 염두에 두지 않는 얼굴이었다. 자신감은 바로 이들과 같은 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무진은 팽관혁의 능력이 이제껏 만난 자들보다 한참이나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진은 팽관혁이 대적한 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늘 그 힘을 개방할 생각이다. 도제를 재물로 삼아 중원무림에 보여줄 것이다. 평범한 그릇으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는 것을.
후우우웅!
쌀쌀하고 메마른 가을바람이 비무대 위를 훑고 지나갔다. 팽관혁과 무진의 머리카락이 갈대밭의 갈대처럼 흔들렸다.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는 그 찰나의 순간!
모두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결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팽관혁과 무진에게 기수식이나 예의는 쓸데없는 허례의식에 불과했다.
파팟!
기파가 부딪친 공간 사이로 불똥이 튀었다. 벼락같은 기운의 여파였다. 공간마저 흔들리고 있는 지경이었다. 뿜어내는 무형의 기운이 순환하던 기운의 흐름을 뒤틀어 버린 것이다. 초극에 달한 고수는 공간마저 흔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괴물들이었다.
‘광오한 이유가 있었군.’
매화검수인 육영기가 어처구니없니 당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초극의 고수는 무형지기가 공격의 수단이 된다. 일반적인 고수는 무형지기에 당해 심한 내상을 당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팽관혁의 무형지기는 도기(刀氣)와 비견되었다. 그런 살벌한 기운을 무진은 아무렇지 않게 와해시켰다. 분명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 할 수 있었다.
찌릿!
팽관혁은 몸으로 느껴지는 무진의 기운에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전율이라고 일컫는 감각이다. 30년 전에 벌어진 정사대전을 기점으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팽관혁은 전율과 동시에 잃어버렸던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살을 베고, 뼈를 가르는 전장 속에서만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감각이었다. 전의(戰意)가 끓어오르는 팽관혁이다.
“봐주지 않는다.”
“얼마든지.”
우우우우웅!
무진과 팽관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로 인해 비무대를 중심으로 칼바람이 불었다. 초극고수들의 대결을 기대하는 사람들 모두 뒤로 물러서야 했다.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의 파장이었다. 반경 30장을 초토화시켜 버릴 수도 있었다.
“저…럴 수가!”
“모두 물…러서!”
“말려들면 뒈진다!”
싸우기도 전에 사람들은 허겁지겁 물러섰고, 무인들은 기겁하고 말았다.
절대의 경지에 달한 무인이 발하는 기운 하나하나가 살인무기였다. 기운에 서린 초극무인의 의지가 사람들의 심령마저 부숴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