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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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6화
제5장 석가장 (4)
석철심은 달이 중턱에 오른 밤늦은 시간까지 정원을 서성였다. 아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방법을 찾지 못하면 폐인 되어 스스로 수저조차 들지 못하게 될 수 있었다. 부인이 아들의 방에서 극진히 간호를 하고는 있지만 치유할 방법이 없기에 발만 동동 굴렀다.
석철심은 아들을 반병신으로 만든 놈들을 절대 그냥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석가장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석가장에 대한 석철심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제 올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때였다.
퍼어어엉! 쿠다다당!
정문을 지키고 있던 2명의 수위무사들까지 문짝과 함께 날아가는 바람에 충격을 받고 즉사해 버렸다. 석가장의 위엄을 상징하는 문짝이 가공할 무기가 되어 전각을 들이받아 버렸다. 전각의 일부분이 박살나고, 문짝이 꽂혀 있게 되었다.
갑작스런 폭발음과 더불어 벌어진 엄청난 참상에 한동안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놀란 가슴을 지정시키고 평정심을 회복한 석철심이 정문에서 들어오는 존재를 보았다. 석가장의 문을 부수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놈들의 행태가 석철심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웬놈들이냐!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큭!”
석철심의 노기 섞인 응대에 대한 대답이 비웃음이었다. 비웃음을 들은 석철심은 노화가 치밀어오고 있었다.
청삼 청년이 유유히 걸어 나와 석철심을 응시했다.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비친 것은 무심(無心)이었다. 석철심은 순간 심장이 덜컹 가라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살을 에는 한겨울의 한파를 겪은 것도 아닌데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뭐…뭐지? 도대체 저자는 누구란 말이냐?’
압도적인 위압감에 위축이 되어 버린 석철심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상단을 유지해오면서 석철심이 아는 한 저런 눈빛을 가진 존재는 단연코 없었다. 또한 이런 압도적인 위압감은 정천맹주조차 가지지 못했다.
청삼 청년이 석철심을 응시했다.
철렁!
예리한 검이 석철심의 단단한 마음을 가차 없이 잘라 버렸다. 심령에 막대한 충격을 받은 석철심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석가장의 장주가 고작 상대의 눈빛을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석가장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철인공(鐵人功)을 운용하여 청년의 기세에 대항하였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나오고, 전신의 힘줄이 튀어나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심령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
“당…신은 누군데 석가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전신의 털이란 털이 모조리 다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상대가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석철심의 말투는 전과 달라졌다. 저런 자는 되도록 은원(恩怨)을 맺지 않아야 했다.
씨익!
청년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무서웠다. 절대로 웃는 게 아니었다. 지옥의 무저갱 속에서 올라온 악마의 미소가 바로 그와 같았다.
“아들은 잘 있나.”
석철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석가장의 장주이자 대륙6대상단의 주인이다. 청년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다. 청삼 청년이 석철심이 생각하는 자가 맞다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안귀검 진무심을 비롯한 석가장의 일류무인들이 모두 당했다는 뜻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했다. 평소에는 잘 돌아가는 머리가 정지해 버리는 것 같았다.
“설마?”
“현실은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지. 이미 벌어진 결과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고 본다면 그건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모자란 놈에 불과하겠지.”
청년의 대답에 석철심은 들끓는 화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이건 음모였다. 청삼 청년과 같은 범상치 않은 존재가 석가장과 우연히 얽히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원인 모를 그의 행태와 아들의 처참한 상태는 석철심의 노기를 더욱 부추겼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석가장을 위협하는 것이냐!”
“그런 사소한 감정 따위는 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먼저 건드린 것은 내가 아니고 석가장이 아닌가.”
“뻔한 수작질은 집어치워라! 석가장을 건드리고 정천맹에서 가만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네놈들은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위협이 통할 것이라 보는 것인가. 명색이 한 가문의 수장이라면 눈치가 있어야지.”
석철심은 불같은 노호성을 터뜨렸다. 놈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까지 모욕을 받고 참을 수만은 없었다.
“저놈을 쳐라!”
정문이 박살나면서 석가장 내의 무인들이 전부 뛰쳐나온 상황이었다. 무사들이 무진과 밀영대를 포위하며 다가섰다.
석가장에 머물고 있는 3대 빈객인 진산마권(振山魔拳) 장두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파에 의한 진동소리가 석가장을 울리자 위험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달려왔다.
“장 대협! 저놈을 잡아 주시오! 그럼 원하는 것을 뭐든지 드리겠소이다!”
“흠!”
장두환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흥정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별호에서도 나타나듯이 절대로 호협한 사나이가 아니다. 그의 권이 강소성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호(拳豪)이기는 하지만 성격은 이해 타산적이었다. 석가장에 머무는 이유도 돈 때문이었다. 그는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자였다.
장두환은 마치 목적을 다 이룬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눈앞의 청년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많아봤자 약관을 갓 넘은 애송이 따위가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장두환이 무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섰다. 그는 독문기공이라고 불리는 진천기공(震天氣功)을 끌어 올렸다. 기운을 끌어 올리자 장두환의 눈빛이 변했다.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몸은 장두환이 공격 전에 보이는 일련의 동작이었다.
좀 전에 문을 부순 일격은 충분히 위협적이긴 했다. 그렇기에 경솔하게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돈에 움직이는 장두환이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다. 싸움에 대한 타고난 감각이 있었다. 기세를 끌어 올려 무진에게 쏘아내었다.
휘이익!
강소성의 3대 권호다운 흉폭한 기세가 뻗어 나왔다. 장두환의 시선이 청년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나 무진은 장두환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석철심을 보고 있었다.
“기회를 주지.”
“이놈!”
장두환은 자신을 무시한 무진을 향해 무시무시한 분노를 터뜨렸다. 자존심이 상한 장두환이 무진을 향해 공격을 가해 왔다. 개벽신권(開闢神拳) 전삼식의 마지막 초식인 천암파(天巖破)를 시전하였다. 바위덩어리조차 일격에 부숴 버린다는 뜻을 가진 위력적인 절초라고 할 수 있다.
진천기공을 8성 이상 끌어 올린 천암파를 맞고 버틴 자가 극히 드물었다. 장두환은 애송이 놈이 한방에 부서져 버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죽어랏!”
슈슈슈슉!
위력적인 공격이 뻗어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무진은 태연했다. 시선 또한 여전히 석철심을 향해 있었다. 장두환의 공격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석철심에게 의사를 묻고 있었다.
“나의 휘하에 들어오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닥…쳐랏!”
석철심은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명백히 거절을 뜻을 내비쳤다. 무진의 입가에 또다시 미소가 맺혔다. 오히려 석철심의 거절을 반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석철심이었다.
석철심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 마치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 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터어엉!
장두환의 천암파가 무진의 심장을 가격하자 쇠를 두드리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장두환은 상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가 버렸다.
데굴! 데굴!
처참하게 바닥을 뒹굴다가 멈추어 섰을 때 장두환의 눈빛은 잿빛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입을 열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무진의 정면을 두드렸을 때 받은 기운이 장두환의 내부를 갈가리 찢어 발겨 버렸기 때문이다.
고작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린 장두환이었다. 강소성을 대표하는 무인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장두환이 공격하다가 절명하고 말았다.
석철심은 순간적으로 느낀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진이 눈짓을 보내자 밀영대가 어둠 속에서 튀어 나와 석가장을 에워쌌다.
무진이 돌아서며 밀영1호에게 명했다.
“살아 숨 쉬는 자는 모두 죽여라.”
“존명.”
무진이 돌아서자 석철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석가장의 모든 인원을 죽인다는 뜻이었다.
다급해진 석철심이었다.
“잠…시…만!”
돌아선 무진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냉정했다.
“늦었다.”
“잠…깐!”
무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밀영대가 석가장에 들이닥쳤다. 밀영대는 혈풍(血風)이었다. 밀영대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석가장의 무인들은 일수(一手)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호위무사들과 장원 내의 식솔들이 별반 차이가 없다. 모두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었다.
“까아아악!”
아내인 단소련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는 아들을 간호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죽었다는 뜻이 되었다.
석철심은 상상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참혹한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느닷없이 쳐들어온 적은 악마와 같았다. 어찌 인간이 돼서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 죄도 없는 자들조차 죽이는 마왕이었다.
“이놈!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러는 것이냐!”
석철심이 무진을 향해 악에 바친 듯이 소리쳤다. 핏발이 선 석철심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원한 같은 건 없다.”
“네놈이 사람이냐! 이러고도 하늘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하늘이 용서를 해주든 말든 네가 나를 단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힘도 없는 나약한 놈이 나를 어찌할 것이냐.”
“네…놈은 악마다! 절대 세상이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욕망을 위해 사람을 짓밟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지.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석가장은 사라질 뿐이야.”
무진은 거침없이 말했다. 거창한 대의 따위는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석가장을 무너뜨릴 뿐이다. 그 이상의 이유 따위는 거론조차 하지 않는 무진이었다.
“이노움!”
석철심이 피눈물을 흘리며 무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생애 이토록 분노하고, 처절한 적은 단연코 처음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눈앞의 악마를 죽이지 못하면 억울해서 눈을 감지도 못할 것이다.
탕!
무진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석철심의 머리통에 부딪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석가장주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석가장은 무진과 밀영대를 제외하고 산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순식간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조리 다 정리가 되었다.
“모두 처리했습니다.”
“석가장을 전부 소각한다.”
“존명!”
밀영대가 미리 준비한 기름을 사방에 뿌리고 불을 붙이자 석가장이 불타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는 석가장은 마지막을 불태우듯이 뜨겁게 타올랐다. 불 그림자가 일렁이는 곳에서 무진은 서 있었다. 무진의 기운을 받은 불기둥이 악마의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원한이라. 하긴 네놈들이 중원인이라는 게 나는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욕망을 채움과 동시에 네놈들의 모든 근원을 오늘처럼 말소시켜 주겠다.’
어린 시절의 원한은 아직 잊지 않았다.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번개에 맞은 것처럼 찌릿했다. 분명 오늘의 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무고하든 그렇지 않든 무진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들은 살아 존재할 수 없다.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