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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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52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3권 - 2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단 소리로군.’
루스티 히에브는 피식거리듯 입가에 미소를 짓다 깨끗이 지워버렸다.
“블루 키메라를 세 마리 이상 투입하는 것은 현재로써는 어려운 일이니…… 그렇다고 르완 지방마저 제외할 수는 없는 일. 최대한의 가능성에 맞춰보는 수밖에. 그럼 르완 지방으로 블루 키메라를 두 마리 투입하는 것으로 결정을 봐도 되겠습니까?”
크루거 아크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스승님께서 전하란 말씀이 있었습니다.”
원탁에 둘러앉은 6인들 가운데 가장 어려서 짐짓 이들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회의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콧날에 새하얀 피부는 미청년이란 꼬리표가 절로 따라 붙을 정도였다.
“바이텐 님께서?”
“그렇습니다.”
청년, 아르마다는 베논 바이텐의 하나뿐인 수제자로 연금술학계에서는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고 있었다. 사실, 블루, 레드, 블랙 키메라의 구조와 다크 웜에 관한 것들이 아르마다의 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어리다고 결코 얕볼 수 없었다. 더욱이 그는 연금술사의 탑 최고 권력자인 베논 바이텐이 아끼는 수제자이기도 하니 차기 탑주가 될 가능성도 가장 높은 인물이었다.
아르마다는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혹시라도 한 지방에 블루 키메라를 두 마리 이상 투입하는 일이 벌어지거든 반드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방금 결정된 일을 미리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한 말에 모두가 놀란 얼굴로 아르마다를 바라봤다.
아르마다는 그들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블루 키메라는 물론이고, 레드, 블랙 키메라에도 한 가지씩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스승님과 저밖에 모르는 일로써 그것은…….”
아르마다의 말이 이어질수록 모두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웬만해서는 감정의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는 루스티 히에브까지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그게 사…… 사실인가?”
떨리는 카르무 리엔의 음성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역력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험 내내 그런 징후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어! 어떻게 그럴 수…….”
아르마다는 너무나 차분하게 가라앉아 오히려 섬뜩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눈으로 카르무 리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와 스승님은 처음부터 이것을 염두에 두고 키메라를 만들었습니다. 저와 스승님이 아니면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 어째서 우리에겐 그런 사실을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았던 건가?”
제브리의 물음에 아르마다는 그를 바라봤다.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과를 하는 아르마다의 모습에선 말과는 다르게 어떤 미안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르마다가 말한 의미는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키메라들에 대한 비밀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며 일을 진행시켰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들만의 착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아르마다를 제외한 원탁에 둘러앉은 다섯 사람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나는 과연 이번 일의 주체자였던가?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렇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아르마다로 인해서 그 믿음이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이용당하고 있는 건가?
모두의 머릿속에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그 역시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자리에서 아르마다를 제외한 그 누구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모두 같았다.
***
제국력 1384년 9월 2일.
두두두두-!
일로니아의 드넓은 농지에서 한창 바쁘게 밀농사를 하고 있던 농민들은 뿌연 먼지 구름을 동반하며 요란스럽게 일로니아 성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대다수의 농민들은 일로니아 성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관심을 끓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들의 곁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그들이 타고 있는 만티곤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무시무시한 사자의 모습이지만 얼핏 보면 화를 내는 듯한 노인의 얼굴로도 보이는 만티곤. 기이한 머리에 딱딱한 껍질로 이뤄진 들소-고르곤-와 같은 몸통과 네 개의 다리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무섭고도 두려운 생김새였지만 한편으론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롭기만 한 생명체였다.
“만티곤이로군.”
일손을 잠시 멈춘 늙은 농민이 허리를 펴며 반가운 님을 보는 듯한 눈으로 멀어져가는 만티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젊은 농민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저것이 만티곤입니까?”
늙은 농민은 젊은 농민을 빤히 바라봤다.
“자네 만티곤 본 적이 없나?”
“그게…….”
머리를 긁적이는 젊은 농민. 만티곤이 그리 보기 힘든 키메라도 아닌데 난생 처음 본다는 그의 모습에 늙은 농민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야 말로 세월의 연륜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그 기회를 살려 자신의 일감을 두 눈을 반짝이는 젊은 농민에게 은근슬쩍 일부 떠넘길 수 있다는 것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늙은 농민이 뜸을 들이자, 주변의 아이들까지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늙은 농민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농민과 아이들은 두 눈에 깊이 박아 넣었던 반짝이는 별은 그 빛을 잃고 뭔가를 몽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 늙은 농민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늙은 농민이 한창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의 이야깃거리가 된 만티곤을 탄 일행들은 일로니아 성을 향해서 빠르게 내달렸다.
30분가량을 빠르게 내달린 일행들의 눈에 일로니아 성이 눈에 들어왔다.
높고 단단한 성벽. 성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깊이를 짐작하기 힘든 해자와 수십 명의 병사가 길게 늘어서 한꺼번에 진입해도 넉넉할 정도로 넓고 단단한 진입로와 그에 걸맞은 거대한 도개교만 하더라도 일로니아 성이 얼마나 웅장한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일로니아 성.
카르타 제국의 일곱 공작 중의 일인인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의 성으로,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이었다.
그리고 그 웅장한 규모로 인해 우스갯소리로 카르타 제국 제2의 수도라고까지 불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뿌우우우우우-!
성의 첨탑에서 성 주변을 주시하던 병사가 성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일행들을 알아보고는 급히 곁에 있던 거대한 나팔을 힘껏 불었다.
나팔 소리가 길게 한 차례 이어지면 아군이 성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으니 도개교를 내릴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도개교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급히 도개교를 내릴 준비에 들어가는 사이 만티곤을 탄 일행들은 진입로에 들어서며 속도를 늦추었다.
“몬테로 백작이다!”
일행들은 다름 아닌 몬테로 백작과 강철의 기사단 그리고, 위드와 피에나였다.
그들은 드래번이 아닌 만티곤을 타고 네드벨 시에서 일로니아 성까지 달려온 것이다.
망루에서 몬테로 백작임을 확인한 병사가 신호를 보내자 육중한 소리를 내며 도개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도개교가 완전히 내려오자 몬테로 백작을 선두로 일행들은 일로니아 성에 들어섰다.
‘프레타 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구나.’
위드는 내려오는 거대한 도개교를 바라보며 그렇게 감탄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공작님을 뵙도록 하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는 몬테로 백작을 위드가 불러 세웠다.
“이미 많은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프레타 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클라우드 공작님을 뵙도록 해주십시오.”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거기다가 언제 프레타 영지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니 되도록 빨리 클라우드 공작을 만나서 일을 해결하고 싶은 위드였다.
“자네 심정은 알겠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니 내일 공작님을 뵙도록 하게.”
딱 잘라서 거절을 한 몬테로 백작은 위드가 채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방을 나가버렸고, 강철의 기사단 기사들은 문을 닫아버렸다.
“빌어먹을…….”
웬만해선 욕을 하지 않는 위드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자 곁에 있던 피에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봤다.
피에나의 동그란 눈에 위드는 미안하다는 듯 씁쓸하게 웃고는 방을 둘러봤다.
방은 넓고 화려했다. 하지만, 방문밖엔 강철의 기사단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으니 그야 말로 감금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언제 프레타 영지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피에나의 물음에 위드가 답했다.
“곧 갈 수 있어.”
그녀 역시도 지금 자신들의 상황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위드의 말에 빙긋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똑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네 명의 시녀가 들어왔다.
피에나가 경계어린 눈초리로 그녀들을 바라봤다.
시녀들은 피에나의 눈초리가 어떻든 간에 피에나의 외모에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녀들의 도움으로 깨끗하게 씻고, 옷까지 갈아입은 위드와 피에나는 또 다른 시녀들이 가져온 음식으로 식사까지 마쳤다.
상황은 감금상태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극빈대우라 할 정도로 훌륭했다.
클라우드 공작은 처음 몬테로 백작이 말한 대로 다음날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클라우드 공작이네.”
금발의 클리쉬 클라우드 공작은 라인하르트 공작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미중년의 남성이었다. 이미 그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역시 소드 마스터이기 때문인지 나이보다 외모가 10년 이상 젊어 보였다.
“페르만 왕국의 위드 카일러 준남작입니다.”
위드의 인사에 클라우드 공작은 입가에 작은 웃음을 머금었다.
위드가 살아온 삶보다 곱절 많은 세월을 치열한 정치판 속에서 살아온 클라우드 공작이다. 그런 그이기에 위드가 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포장해서 소개하는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클라우드 공작은 이어서 피에나를 바라봤다.
“30년 전에 타이먼 족을 한 번 본 적이 있지.”
옛일을 회상하는 클라우드 공작의 모습을 바라보는 피에나의 눈동자는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공작과 마찬가지로 그 경지를 짐작할 수 없는 강자였기에 그 눈빛만으로도 그녀에겐 커다란 자극이 되는 모양이었다.
위드는 그런 피에나의 상태를 잘 알기에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빌라노비치의 일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페르만 왕국의 준남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저의 목숨마저도 우습게 앗아가려 했습니다. 클라우드 공작님께서는 이 점을 반드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위드의 말에 클라우드 공작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스스로 귀족이라 드러내며 자부하진 않았지만 위드는 지금의 상황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 귀족임을 떳떳하게 강조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빌라노비치의 죽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클라우드 공작의 화를 피하는 것뿐이었다.
보통의 귀족들이었다면 위드의 말에 비웃음부터 흘렸을 것이다. 준남작이다. 반쪽짜리 귀족인 기사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준남작을 기사보다 높게 생각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준남작도 엄연한 귀족임은 분명한 사실. 위드는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아무런 말도 없이 위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클라우드 공작이 입을 열었다.
“빌라노비치 역시 귀족이네. 윗대에서 작위를 박탈당한 몰락 귀족이지만 그 역시 귀족임은 분명한 사실이지.”
빌라노비치 역시 귀족이라는 사실을 위드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었다. 대륙 귀족법에 의하면 같은 귀족끼리의 분쟁은 어떠한 관섭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즉, 분쟁이 일어났다면 힘 있는 자가 이기면 그걸로 끝이다. 단, 여기에도 조건이 하나 있는데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위 귀족은 상위 귀족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개 상인인 빌라노비치는 준남작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작위를 가진 위드보다 하위 귀족임으로 어디서 하소연 할 곳이 없는 처지였다.
“빌라노비치는 내게 아주 중요한 인물이지. 자네는 대륙 귀족법을 방패막이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한테도 통할까?”
클라우드 공작은 말과 함께 진한 살기를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으윽.”
위드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소드 마스터의 살기다. 인간은 물론, 이종족까지 통틀어 최강의 존재 중의 하나인 소드 마스터의 살기이니 이제 고작 익스퍼트 하급에 도달해가는 위드가 받아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방 안은 팽팽한 투기와 끈적끈적한 살기로 가득 들어찼다. 클라우드 공작의 살기에 피에나가 투기와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 타이먼 족이야.”
피에나의 투기와 살기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지상 최강의 몬스터인 오우거조차도 잔뜩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강한 투기.
하지만, 그 조차도 클라우드 공작에게는 입가에 웃음을 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