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0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0화
제4장 준비 2 (3)
-천풍각(天風閣).
모용세가는 진시황이 통일하기 전의 7개의 왕국 중에 하나인 연나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중원과는 멀리 떨어진 세력이지만 요동성에서는 가장 오래된 명문으로 명성을 날렸다. 도(刀)와 검(劍), 두 가지 병기를 수련하며 뛰어난 검객과 도객을 많이 배출했다.
천풍각은 모용세가의 중추 건물이다. 이름만큼이나 하늘처럼 크고 넓으며, 왕족의 웅장하고 우아한 기품이 느껴지고 있었다. 모용세가의 가주와 장로가 세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였다.
선풍신도(旋風神刀) 모용중경.
모용세가의 가주이며 요동성의 5대고수로 수좌에 꼽힌다. 그가 펼치는 선풍참마도법(旋風斬魔刀法)은 모용세가의 최강도법으로 불린다. 모용중경이 펼치는 선풍참마도법은 빠른 회전을 중점으로 하는데, 그의 경지가 극성에 다다르자 요동성 내에서 맞상대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요동성에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용중경은 선풍(旋風)이라는 별호와는 다르게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외모를 가졌다. 곧게 뻗은 콧날과 호쾌한 두 눈, 굳게 다문 입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제 환갑이 다 되었지만 안면에는 아직도 홍조를 띠었다.
항상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하는 모용중경은 화를 잘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모용중경의 훤칠한 이마를 수심 깊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형님!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가문의 명성을 더럽힌 천무상회를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차분하게 대하거라.”
말을 꺼낸 인물은 모용세가의 6대 장로에 속하는 노호광검(怒虎狂劍) 모용진이다. 화통하고 우직한 성격에 비해 다소 성급해서 말보다는 검이 먼저 나가는 인물이다. 그는 모용중경의 동생이기도 하다.
모용진의 거친 해결방법에 모용중경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이번 일은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만약 무력을 사용하게 될 경우, 요동성에 어떤 식으로 소문이 퍼질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말 따위에 쉽게 흔들릴 세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 요동성 내에서 오랫동안 명문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인심은 때론 큰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었다. 서툰 행동으로 모용세가의 명성을 더럽힐 수는 없는 일이다. 태생이 왕족이라서 그런지 민심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형님! 그렇게 쉽게 볼 일이 아닙니다.”
“네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너는 한 가지만 보고 있다.”
“무엇이 말입니까?”
“이번 일이 천무상회에서 벌인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 만약 그렇다 한들 증거는 있느냐?”
“하지만 정황이……!”
“고작 정황만으로 천무상회를 압박하자는 말이냐? 천무상회는 만만치 않다. 우리에 비해 손색이 있지만 천도문을 멸문시켜 버릴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실패하는 날에 우리는 그간의 일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패를 하거나 소문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면 이제까지 모호했던 무성한 소문의 무림세력이 모용세가가 될 수 있었다. 신중하게 대처해도 힘든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모용중경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천무상회주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이번 일은 모두 그의 심계안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섣부른 행동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모용중경의 조리 있는 언변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모용진은 모용중경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다. 천도문 따위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처리해 버릴 수 있었다. 하물며 상회 따위가 모용세가의 적수가 될 리 없다고 보았다.
회의장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을 때, 천풍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는 인물이 있었다. 모용세가의 대외정보수집을 맞고 있는 비연수(飛燕手) 이진환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인가?”
“천무상회가 우리의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상권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뭐야?”
자중하고 있어도 부족한 판국에 대놓고 활개치는 천무상회였다. 모용세가가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가만있을 수가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모용세가가 오랜 세월 요동성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무력과 명성,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은 주변 상회에서 걷어 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객잔, 점포 등에서 충당한다.
또한 비밀리에 운용하는 고리대업, 기루, 도박장 등은 전면으로 내세우진 않지만 자금을 충당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모용중경은 침착하게 물었다.
“어느 정도냐?”
“객잔 주변의 경우 대규모의 호화객잔을 지어서 상권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또한 비밀리에 운용하는 기루와 고리대업, 도박장 역시 같은 수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금력에서 천무상회의 상대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관에서 허락을 했단 말이냐?”
일정 규모 이상의 객잔과 기루, 고리대업, 도박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관의 허락 없이 영업을 하게 되면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 아예 사업 자체를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이진환은 그에 대한 정보도 얻어 온 모양이었다.
“관에서도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묵묵부답입니다.”
“크음!”
침음성이 천풍각 안에 맴돌았다. 관에서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은 천무상회에서 손을 써 놨다는 것을 의미했다. 평소에도 돈을 밝히는 관리들이다. 천무상회는 관리들에게 모용세가보다 많은 돈을 풀었을 것이다.
“감히! 상회 따위가 모용세가를 이토록 농락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습니다! 형님!”
모용진이 참지 못하고 노성을 터뜨렸다. 그에 반해 모용중경의 눈빛은 차갑게 식었다. 이전까지의 내용은 참고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천무상회의 도발은 멈추지 않고 있다. 마치 모용세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활개를 치고 있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랜 전통을 지닌 모용세가를 무시한 천무상회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필요한 때였다. 무리한 도발에도 응수하지 않으면 모용세가를 우습게 볼 수 있었다.
모용중경의 결의가 장로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장로들도 응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진환은 아직 전할 말이 끝나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할 말이 또 있는 건가?”
“철혈세가에서도 같은 일을 당하고 있다 합니다.”
“뭐라!”
모용중경과 모용진, 장로들은 할 말이 없어졌다. 모용세가만으로도 천무상회는 쓸어버릴 수 있다. 천무상회가 모용세가와 쌍벽을 이루는 철혈세가마저 자극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다 못해 허탈할 지경이다. 천무상회가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도발을 넘어 만용이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수도 있겠군.”
모용중경은 천무상회의 상회주가 이처럼 무모한 일을 꾸미는 것은 믿고 있는 것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힘으로 부딪치면 안 될 것이다. 모용세가의 주력을 전부 사용해야 할지도 몰랐다. 어설픈 공격은 후일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다. 모용세가가 지금까지 요동성의 패권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확실한 처세술 때문이었다.
“철혈세가에 함께 하자고 연통을 넣어라.”
“형님! 천무상회 따위를 공격하는데 협공이라니요.”
“시끄럽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위험을 감수하란 말이냐?”
한 세가의 수장은 결정을 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작은 위험이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이익과 손실을 따져 보고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세가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 * *
후릅!
단숨에 술잔을 넘기며, 한가롭게 경치를 구경하는 청년이 있다. 그 옆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들이 술을 따르고, 연주를 하였다. 청초하면서도 순수한 미모를 가진 여인들이 주변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그다지 관심 없는 듯했다. 그저 술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청년의 웃음은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광폭한 마성이 그것이었다. 청년은 요동성의 풍운을 일으킨, 폭군 강무진이었다.
“한잔 올리겠어요.”
작고 둥그런 얼굴에, 가녀린 콧날, 눈물이 글썽일 것 같은 눈망울을 소유한 소녀였다. 천하를 오시하는 경국지색의 아름다움과는 다른 청초함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천중루(天中樓)에 처음으로 들어온 기녀였다. 천중루는 강무진이 모용세가와 철혈세가의 기루를 타격하기 위해 세운 기루다. 기루를 만들고, 얼굴과 몸매, 금기서예에 능한 여인들을 사들였다. 세상은 돈과 힘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강무진의 눈동자에 여인의 눈빛이 투영이 되었다. 여인은 어렸다. 고작 16세의 나이에 기루에 팔려 기녀가 되었다. 세상을 알기도 전에 어둠과 직면해 있었다.
“슬픈가?”
“예?”
“기녀가 된 것이.”
“아…니에요! 회주님!”
“그런가.”
강무진의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인생을 간직하고 있던 그것은 그녀의 인생일 뿐이다. 무진이 그녀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이 무진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진리였다. 세상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는 무변(無變)의 결정체다.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면 끝이다. 또한 희망은 없다. 모든 것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냉혹한 말이다.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고작 16세의 기녀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에는 사내들의 시중을 받다가 늙어갈 뿐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웃음을 팔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된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인으로서의 삶은 포기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상항이라면 그 안에서 바닥을 치더라도 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의지와 독기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것도 없다.
강무진은 소매 속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색혼미염공(色魂美艶功)〉
사내를 유혹하고,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내공술이다. 300년 전 색혼마녀(色魂魔女)가 익힌 미염공으로 수많은 사내를 유혹하여, 미모를 증진시키는 재물로 사용하였다.
특히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올라서면 그 미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 효용이 있다. 그렇게 되면 풍기는 기운, 눈빛, 입술만으로도 사내의 방심을 흔들어 버릴 수 있다. 철혈(鐵血)의 심장을 가진 사내도 일각을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색혼미염공만으로 사내의 정기를 빼앗는 것은 아니다. 색혼마녀의 경우 혈정흡기공(血精吸氣功)이라는 특수한 흡성대법을 사용하였다. 사내의 피와 정기를 흡수하는 악독한 기술이라 결국에는 강호공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어린 기녀의 손에 들어간 것은 무진의 뜻이었다.
“마녀의 심공이다.”
“예?”
강무진은 진실을 전했다. 쓸데없는 말로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감언이설은 무진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다. 강무진은 그녀를 이용할 따름이다. 기녀들에게 색혼미염공을 가르쳐 기루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색혼미염공을 익혀 강해지는 것은 기녀들이다. 그녀들이 어떤 선택을 하건 전적으로 그녀들의 몫이다. 단, 무진의 계획에 방해가 되거나 거치적거린다면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무진은 앞일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살려둘 정도로 아량이 넓지 않았다.
“강해지고 싶다면 익혀라.”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색혼미염공을 잡았다.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죽이고 있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어린 기녀가 보기에도 무진은 강자였다. 그에게 풍기는 기도만으로도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런 인물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리고 나약한 기녀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욕망은 그 어떤 것보다 크게 요동쳤다.
“그만 물러가라.”
무진은 기녀들을 물렸다. 기녀들이 물러나고 나자 조용함이 자리 잡았다. 그 순간 공간의 뒤틀림 속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밀영1호 차중천이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어 무진을 향해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모용세가와 철혈세가가 움직였습니다.”
“좋군.”
천무상회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서 철혈세가와 모용세가에서 무사 3천을 동원하기로 했다. 3천의 무인들은 전부 세가의 정예무사들로 요동성의 중규모의 문파 따위는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위험한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무진은 차분히 술잔을 기울였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한 미소가 입가에 맺혔다.
“개를 길들이기에는 좋은 날이야.”
“계획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요동성을 대표하는 2대세가, 모용세가와 철혈세가가 무진에게는 사냥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