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40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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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40화 (완결)
140 무혼과 아이네스(3)
귀환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이네스가 다시 돌아온다는 올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라에뮤 3세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엘라드를 따라 산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모두 올라와도 좋다고 했다. 무혼과 함께 미라크네의 왕궁을 출발한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산의 작은 공터였다.
“여기인가?”
“예.”
그곳에는 아직도 희미한 마법진이 남아 있었다. 엘라드는 그 위에 마법진을 다시 그렸다.
라에뮤 3세는 완성된 마법진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왕궁의 시녀들이 마법진 밖으로 간이 벽으로 빈틈없이 가렸다. 그리고 그 밖을 왕실의 경비무사들이 등을 돌리고 다시 가렸다.
가진 물품은 같이 오지 않기에 맨 몸일 공주를 위한 조치였다.
어느새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더니 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에서 아이네스 공주님도 준비가 끝내셨을 거예요. 그동안 만나서 반가웠어요, 무혼 경.”
“고맙습니다, 엘라드. 그리고 다른 분들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무혼은 주위에 있는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보았다. 그리고 마법진에 오르니 그 옆에 엘라드가 하프를 들고 연주할 준비를 했고 엘세타가 엘라드의 오른쪽에서 두 손을 펼친 채 엘라드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같은 시간, 중원에서는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이미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아이네스가 마법진의 중앙에 앉아 있었고 그 주위에는 마교와 무림맹의 조사단이 마법진 밖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정심회의 원로 고수들이 무림맹으로 돌아갔기에 조사단의 사람들만 무혼을 맞이하기 위해 함께 온 것이다.
“하지만 꼭 이곳에서 마법진을 펼쳐야 하다니, 좀 의외군요.”
고명우는 뒤쪽을 흘깃 보았다. 아직 검은 안개가 하늘을 향해 있는 망인곡의 진이 불과 이십오 장(=75미터)정도 떨어진 곳이다.
아이네스도 고명우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에 마법진을 펼친 이유는 바로 검은 안개를 불러오는 진 때문이다. 저번에는 고위 마법사이자 신성력을 가진 아이네스가 가이오스트 대륙에 있었기에 중원은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혼이 가이오스트 대륙에 있기에 엘라드가 확실한 안전을 위해 두 차원이 연결되어 있는 진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마법진을 구성한 것이다.
“언니, 보고 싶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예소소가 아쉬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네스가 중원에 온 후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 바로 예소소일 것이다. 비슷한 면도 많았기에 더욱 친숙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예 동생, 고마워…….”
예소소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이던 아이네스에게 무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네스 소저, 준비가 다 되셨나요?
- 예, 무혼 경.
- 그런데 이곳과 중원이 함께 보이니 조금 어지럽군요.
그러자 아이네스의 머리에 엘라드의 연주를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자신도 그때 꽤나 어지러웠다.
- 필요한 마나와 신성력은 문제가 없나요?
- 엘라드와 엘세타가 마법진에 마나를 넣어주고 있습니다. 아, 마법진의 제일 끝부분이 밝아졌습니다.
아이네스도 살펴보니 그녀가 앉아 있는 마법진의 테두리에도 빛이 어리고 있었다.
- 잘 되고 있나 봐요. 이곳의 마법진도 밝아지고 있어요.
마법진에 앉아 무혼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네스를 노려보는 눈이 있었다. 그는 조용히 걸으며 서서히 마법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에게는 다행히도 주위를 특별히 경계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마법진의 끝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자 모두들 그것에 신기해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끝장을 내주마.’
점창파의 문종후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이네스를 주시했다. 수개월 동안 도망자의 생활을 하였으나 개방의 눈은 어디에나 있었고 무림맹의 집법부 무사들은 집요했다.
남궁장천의 목을 날리고 싶었으나 무공의 수준이 차이가 심해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복수를 꿈꾸던 그는 그의 인생을 망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색목의 여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술사이기에 기회만 주어진다면 쉽게 목을 벨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마교의 중요 인물이라 했으니 그녀의 목을 벤다면 마교는 틀림없이 무림맹을 공격할 것이다. 어차피 살 생각은 없었다. 그저 화려한 복수만을 꿈꾸고 있었다.
자신의 계획한 복수를 생각하자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문종후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무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아이네스는 마법진이 모두 밝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아이네스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고 무혼이 아이네스의 입과 자신의 입을 동시에 움직이며 외쳤다.
“메이즈(maze :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마법).”
마법진에 빛이 강해지는 순간 아이네스는 그녀를 노려보는 낯선 남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무혼은 그 남자의 눈빛에서 살기를 느꼈다.
“위험해!”
챙!
문종후가 순식간에 검을 뽑으며 아이네스에게 달려든다. 그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일제히 검을 뽑으며 그를 막고자 했고 가까이 있던 화면귀수 은소예는 그녀의 독문절기인 귀결수(鬼決手)를 펼쳐 문종후의 등을 길게 갈랐다.
그녀 외에도 여러 사람의 검들이 문종후의 몸을 베어갔으나 그는 자신의 검에서 결코 손을 떼지 않으며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으로 앉아 있는 아이네스의 머리를 노리고 검을 찔러 갔다.
‘성공했다!’
문종후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려 할 때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술법사라고 알고 있는 서역의 여인이 몸을 일으키며 품고 있던 검으로 검집 채 그의 검을 튕겨낸 것이다.
하지만 문종후가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온몸을 던져 공격하였기에 검은 막았으나 그의 몸이 부딪쳐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꺄아아아.”
문종후의 몸에 밀려 마법진의 밖으로 튕겨진 아이네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법진을 보았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 그곳에는 피투성이인 문종후가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환한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큰일 났습니다.”
아이네스를 기다리며 무혼을 보고 있던 라에뮤 3세 그가 당황하자 가슴이 덜컥했다.
“무슨 일인가?”
“어떤 자가 아이네스 공주님을 습격했습니다. 공주님은 무사하지만 습격한 자가 대신 마법에 휩싸…….”
마법진에서 환한 빛이 쏟아지며 무혼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사라졌다. 놀란 라에뮤 3세는 엘라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법을 되돌려 주시오.”
그러나 엘라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발동되어 차원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되돌린단 말인가? 마법을 중단하면 이동 중인 사람들이 차원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라에뮤 3세도 마검사이기에 자신의 말이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 소리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애가 탔기에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무혼이 사라진 마법진 위에 새로운 환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을 보던 라에뮤 3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라에뮤 3세가 애타게 기다렸던 그의 사랑스러운 딸이 아니라 피투성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황토인이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이이익!”
아이네스가 아님을 확인한 라에뮤 3세는 망설이지 않고 황토인의 목을 노리며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황토인이 몸을 돌렸기에 오른쪽 가슴에 검이 파고들었다.
써걱.
문종후는 인상을 찌푸리며 독기에 찬 눈을 하고 라에뮤 3세의 배를 향해 손을 뻗어 갔으나 옆에서 휘둘러지는 검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팔이 잘렸다.
그가 고통 속에서 얼굴을 돌려보니 강철 전신 갑주를 걸치고 살기를 띤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같은 갑주를 입고 있는 자들이 일제히 문종후를 향해 손에 쥔 검을 찔러 넣는 것이 보였다.
“우아아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진 문종후를 발로 걷어찬 라에뮤 3세는 엘라드를 보았다.
“이제 어찌해야 공주를 다시 불러올 수 있소?”
“방법이 없네요.”
엘라드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카락을 꼬며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의 아버지에게 딱 한 번이라는 말을 들은 데다 무혼과 아이네스처럼 서로 대화가 되는 대상이 없는데 아직 평등의 관조자가 아닌 엘라드로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 모습을 본 라에뮤 3세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아니 무혼 경이 저쪽 세상으로 갔는데 아이네스가 이쪽 세상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아니오?”
“그건 아닌 모양이에요. 이곳에서 한 명이 가고 저쪽에서 한 명이 오기만 하면 되나 보네요.”
대충 대답을 한 엘라드는 머리를 꼬며 속으로 투덜댔다.
‘젠장 누가 제대로 사용한 적이 있는 마법이라야 정확히 알지.’
“공주야…….”
엘라드의 말에 라에뮤 3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마법진을 보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카세팜 후작이 라에뮤 3세를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전하, 무혼 경이 있으니 공주님을 잘 보살펴 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예, 분명히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라에뮤 3세는 그 말을 들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우리 공주를 잘 부탁하네, 무혼 경.”
마법진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아이네스는 눈앞에서 터져 나오는 빛에 눈을 살짝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물론 모든 옷을 벗고 있는 무혼이었다.
“꺄악.”
순간적으로 뺨이 붉어지며 얼굴을 손으로 가렸으나 손가락 사이로 눈동자가 다 보이는 아이네스를 보며 무혼은 몸을 옆으로 돌리고 얼굴을 붉혔다.
“저기 아이네스 소저 얼굴을 좀…….”
무혼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돌리는 아이네스를 본 고명우가 옷을 주며 말했다.
“닳는 것도 아닌데 좀 보면 어때서 그래?”
“형님!”
하지만 그런 농담을 즐기는 고명우임을 알고 있는 데다 오히려 변한 것이 없어 보이자 무혼은 반갑게 웃어주었다.
“오랜만입니다, 고 형님.”
“잘 왔네, 공야 아우.”
고명우의 손목을 굳게 잡으며 반가움을 표시한 무혼은 어느새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네스를 보았다.
“아이네스 소저.”
그러자 고명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다시 이 진을 발동시켜서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저쪽에도 진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무혼이 아이네스를 보았으나 아이네스는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죠. 양쪽 세상에서 같은 시간에 같이 열어야만 가능한 마법진이니까요.”
눈길을 바닥으로 향한 채 설명하는 아이네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런 그녀를 보던 무혼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이네스 소저, 힘을 내십시오. 제가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눈을 드는 아이네스의 눈가에 눈물방울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무혼은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어주었다.
아주 오랫동안 알았지만, 처음으로 느껴지는 서로의 체온에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중에 무혼 경의 고향에 있다는 호수……. 음, 음.”
“홍호(洪湖).”
“홍호, 맞아요. 나중에 그곳에 데려가 줄 거예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음음. 그럼 소, 소, 아. 소주원림(蘇州園林)은요?”
“예, 그곳도 데려가겠습니다.”
“그럼, 장강삼협(長江三峽)에도요?”
“예, 물론입니다. 아이네스 소저가 원한다면 중원의 어디든 데려가 주겠습니다.”
무혼이 다시 한번 웃어주자 그제야 아이네스도 웃었다. 그리고 무혼이 내미는 팔을 잡고 일어났다.
무혼이 옆에 떨어져 있는 혈랑검을 주워드니 앞에 나서는 자가 보였다.
그를 본 무혼은 내력을 끌어올렸고 빠르게 질주하며 오랜만에 잡는 혈랑검을 이끌어 하나의 선을 그어갔다.
챙강!
그 모습을 본 모든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리고 주위를 경계했다.
모든 무사들을 긴장시킨 두 사람. 무혼과 남궁장천은 이미 검집에 검을 넣었고 베어진 자신의 옷자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약속이 생겼군요, 공야 소협.”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남궁 소협.”
마주 보던 두 사람의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자 다른 무사들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무혼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아이네스, 고명우, 공극소, 천월강, 마진풍, 능미류, 은소예, 예소소, 제갈운혜, 남궁장천, 도안, 팽조덕, 교해, 그리고 이곳 망인곡에서 같이 고생을 했던 흑도와 백도의 젊은 무사들.
‘정말 돌아왔구나.’
무혼의 그러한 모습을 보던 고명우는 무혼의 등을 살짝 쳤다.
“공야 아우, 자네 이럴 시간 없네.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 라마혈교도 해결해야 하고, 흑백공존의 방법도 찾아야 하네. 빨리 가세.”
고명우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무혼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가 지고 있는 망인곡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다 잠시 뒤로 고개를 돌려 아직도 검은 안개가 나오고 있는 진이 보았다.
그때 그의 뺨에 닿는 손길이 느껴졌다. 손길이 이끄는 대로 고개를 돌리니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맑은 눈동자가 그를 보며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던 무혼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