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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29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22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29화

129 은휘패와 라마혈교의 문(1)

 

 

 

 

 

- 드디어 완성이 되었어요.

 

그들은 망인곡에서 물러나 감숙의 서화(西和)에 여장을 풀었다. 그때부터 아이네스를 주축으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고 오랜 시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류패와 비슷한 모양을 가졌으나 은백색으로 빛나는 패가 만들어졌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우선 아이네스는 예소소와 제갈운혜의 도움을 받으며 현류패의 술법을 풀어냈다. 하지만 현류패가 기본적으로 흑마법에 기초를 둔 흑마나로 움직이는 것이기에 흑마법을 구사하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백마법으로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마나를 움직이는 마법수학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이었고 현류패를 만들어낸 자가 그녀보다 떨어지는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7클래스의 마법을 이해하고 있는 아이네스로서는 동일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백마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무림맹과 마교의 지원 속에서 백마나로 구동이 되는 현류패를 만들어냈다. 아니 검지 않기에 은류패라 부르는 것이 어울릴 듯하다.

 

망인곡의 검은 안개 속에서도 성능을 확인했기에 확신을 가지고 무혼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 아이네스 소저가 만든 패가 가이오스트에서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 응용하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중원의 검은 안개가 감각을 속이고 내공의 소모를 빠르게 하는 것이라면 가이오스트의 검은 안개는 백마나의 작용을 막는 것이니까요. 만일 이 패를 응용한다면 빛의 마법은 여전히 힘들겠지만, 기사들은 자신의 마나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가이오스트에서는 검은 안개에 대한 자료가 없었기에 이러한 도구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망인곡의 거대한 마법진과 현류패의 마법진은 검은 안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이오스트에 있을 때 은색의 패를 만들었다고 해도 마인에 대해 대책이 없기에 결국 무혼을 가이오스트에 부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물론 은색의 패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혼은 마인들을 쓸어낼 수 있더라도 무혼 혼자서 적의 성을 점령하고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무혼이 마인들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기사들이 동맹군의 병사들을 막아줘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만든 패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 그런데 패의 이름은 정했습니까?

 

- 그, 그게…….

 

중요한 물건에는 당연히 이름을 붙인다. 은색의 패나 아이네스가 만든 패라고 부를 수가 없기에 누구라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한 것이다.

 

무혼이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아이네스는 머뭇머뭇하면서 조그만 소리로 패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 은휘패(銀暉牌)라고…….

 

- 예?

 

무혼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아이네스의 별호인 은휘성녀에게서 빌려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의 손에 쥐어진 은색의 패를 보고 있으니 그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 이름을 잘 지은 것 같습니다.

 

- 그, 그게 급난개라는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불러서 이름이 되어버렸어요.

 

무혼은 직접 아이네스의 얼굴을 본다면 지금 새빨갛게 되어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이야기를 나눈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녀의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 그렇다면 이제 패를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퍼뜨려야 하겠습니다.

 

- 예, 무혼 경.

 

 

 

 

 

동맹군이 검은 안개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네스는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낮에는 무림맹과 마교의 도움을 받으며 중원에서 사용할 은휘패를 만들었고 무혼을 찾아갔을 때는 가이오스트의 검은 안개에 맞는 은휘패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은휘패들은 완성이 되어 필요한 자들에게 주어졌다.

 

 

 

 

 

“좀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네스는 그녀의 손에 있는 은휘패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중원의 은휘패가 먼저 완성이 되었지만, 중원에는 마법사가 없었기에 가이오스트 대륙의 은휘패에 비해서 그 수가 훨씬 적었다.

 

은휘패 제작을 위한 도면과 마법진을 받은 연합군은 카세팜 후작의 지휘 아래 장인의 대명사인 드워프들의 협조를 받고 마법사들을 동원하여 수많은 은휘패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마법사의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마법 물품의 능력도 높아지는 것이 당연한 만큼 중원의 은휘패는 가이오스트의 은휘패에 비해 수는 적었지만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 달의 시간을 통해 백여 개의 은휘패를 만들어낸 아이네스는 조사단의 무사들과 정심회의 원로 고수들에게 은휘패를 나누어 주었다.

 

“이제 망인곡으로 갈 때가 되었어요.”

 

아이네스의 말에 남궁장천, 고명우가 이끄는 젊은 무사들과 정심회의 원로 고수들은 모두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눈빛으로 그동안 신세를 지고 있던 서화를 뒤로하고 망인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욱 넓어진 검은 안개를 보며 중원의 무사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은휘패를 다시 한번 몸에 단단히 묶었다.

 

만에 하나라도 은휘패가 떨어진다면 그 순간 바로 목숨을 잃게 되기에 무사들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은휘패가 검은 안개의 작용을 억제해 내공 소모의 속도를 최대한 막아준다고 해도 검은 안개 속에서는 내력이 평소보다 빨리 소모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검은 안개 속으로 발을 들였을 때 아이네스는 마지막으로 다시 당부를 했다. 그 말을 잊을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경공을 쓰지 않고 일반적인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그들이다.

 

“후우, 긴장이 되는데?”

 

고명우가 슬쩍 웃으면서 걸음을 옮기자 그 모습을 보던 공극소가 같이 웃어주었다.

 

“자넨 어느 때라도 쾌활하게 웃는군? 그런데 그 모습이 나쁘지 않군.”

 

“하하,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좋지.”

 

그러나 웃으면 이야기하는 그들의 손에 살짝 땀이 밴 것을 보면 그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다.

 

남궁장천과 팽조덕 그리고 고명우와 공극소를 선두에 두고 젊은 무사들은 세 여인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걸어가고 있었고 정심회의 고수들은 그 뒤에서 따라가고 있다.

 

그렇게 걸어간 지 반 시진이 가까워졌다. 다른 곳이었다면 모두들 경공으로 반각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최대한 내력 운용을 자제한 채 걸어왔기에 그 거리는 길게만 느껴진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아.

 

기괴성과 함께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마인들을 보며 그들은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를 하고 다시 내력을 가라앉혀야 차후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기에 그들의 행동은 빨랐다.

 

쓰윽!

 

산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고명우의 도에 두 조각이 나는 마인은 썩은 계란의 냄새를 풍기며 땅에 뒹굴었고 그 냄새를 맡은 고명우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내뱉었다.

 

“취유(臭풴 : 냄새나는 족제비, 스컹크)의 변의 냄새를 맡고도 당당히 살아 있는 몸이라고! 그따위 냄새로 날 괴롭게 할 순 없을걸?”

 

그 말을 들은 공극소는 벌써 다른 마인을 향해 도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젓고는 화룡편을 휘둘렀다. 그의 화룡편은 먹이를 발견한 뱀처럼 순식간에 마인의 몸을 관통했다.

 

펑!

 

강력한 내공이 실린 화룡편에 맞은 마인은 폭음을 내며 온몸이 산산이 떨어져 나간다.

 

그 옆에서는 젊은 무사들과 원로 고수들도 각자 마인을 노리며 강력한 한 수를 마인의 몸에 격중시키고 있다.

 

“저, 저거…….”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라마승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은 안개 속에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설마 했지만, 저들은 모두 현천패를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어, 어떻게? 설마 저들이 현천패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겠지?”

 

“쉿! 이건 중요한 일이네. 이곳을 조용히 빠져나가서 즉시 보고를 해야 해.”

 

두 명의 라마승이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훌훌. 쥐새끼들이 여기 숨어 있었구먼.”

 

그 목소리에 놀란 라마승들이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흰 수염을 휘날리며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세 명의 노인들이 보였다.

 

“어떻게 우리를?”

 

“찾아냈냐고? 훌훌. 이놈들아, 내가 정파 무림 최고의 정보문인 은형문(隱形門)의 태상가주다. 네놈들이 숨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야!”

 

그 말과 동시에 노인의 오른쪽 어깨가 사라진 듯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나타난 그의 오른손에는 피를 흘리고 있는 라마승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훌훌. 은수조(隱手爪)라는 것이지. 어떠냐? 네놈의 눈깔에 내 손이 보이더냐?”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노인의 모습에 라마승이 옆을 보니 머리가 사라진 동료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지고 있다.

 

“네놈이 살 생각을 하고 있진 않겠지?”

 

얼굴색이 창백해진 라마승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그들이 데리고 온 현류 강시들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땅에 널려 있었고 두 노인이 그를 보며 입가에 웃음을 띤 채 다가오는 모습이 생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만일 은휘패가 없이 이곳에 들어왔다면 우린 저 마물들에게 모두 죽었을 게야.”

 

한 손에 피가 가득 묻은 은형문의 태상가주가 라마승의 가사에 손을 닦으며 중얼거리자 다른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망인곡에 왔을 때 실수로 검은 안개에 들어섰다가 낭패를 당한 기억이 생생한 그들로서는 서역의 여인이 만들어준 패가 신기하기만 했다.

 

“어찌 되었든 은휘패가 있는 한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먼.”

 

그 말을 끝으로 계속 가고 있는 일행들을 따라가는 노인을 보며 다른 노인들도 뒤처질세라 걸음을 급하게 옮긴다.

 

 

 

 

 

세 번의 습격을 막아낸 조사단은 검은 안개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을 했다. 마인들과의 싸움이 긴장한 것에 비해 맥 빠진 싸움이었기에 검은 안개를 빠져나오자 긴장이 풀리면서 모두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

 

“오랜만에 오는군.”

 

남궁장천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자 젊은 무사들 중 대부분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형님, 이곳이 특별한 곳입니까?”

 

“그렇지. 망인곡을 빠져나오면 이곳으로 나오게 된다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팽조덕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장천은 한쪽으로 걸어가 바위에 걸린 덩굴을 뜯어내었다. 그러자 덩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망인곡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망인곡인 것이지.”

 

그것을 보던 아이네스는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무혼과 바꿔치는 마법인 메이즈(maze)로 바뀌었을 때가 생각이 난 것이다.

 

어느새 익숙해져 가는 중원의 생활에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서술한 고서가 생각이 났다.

 

무혼의 눈으로 봤을 때는 중원의 생활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생활을 하니 그럭저럭 살아갈 만했다. 다만 가끔씩 찾아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없다면 더 빠르게 적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곳 중원에서 그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그녀로서는 가이오스트에서 좋은 소식이 있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교대로 운기를 하며 내력을 회복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마인들과의 싸움을 가벼운 준비운동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은휘패의 보호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안개의 영향으로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자도 있었다.

 

“쯧쯧. 신나게 싸우는 것 같더니.”

 

운기를 마친 팽조덕은 장천의 이야기를 들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할아버지인 도황의 영향으로 싸울 때는 화끈하게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는 마인들을 상대로 정말 화려한 도법을 펼쳤고 그 대가로 망인곡을 나왔을 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내력 고갈로 죽기라도 하면 그게 무슨 망신인가? 자네가 화끈하다는 것을 여기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 다음부터는 좀 적당히 하게.”

 

“예,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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