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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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21화
121 제갈두휘의 길(4)
어느 날, 검은 안개에서 나온 두 명의 라마승이 계곡의 구석에 있는 작은 샘을 향해 가는 것을 본 두휘는 몸을 숨기며 그들을 앞질러 샘으로 향했다.
게다가 샘은 망인곡의 출구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다짐하며 그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저들이 씻기 위해 패를 벗어두었을 때 그것을 들고 출구를 향해 가기만 하면 된다. 어느 바위와 어느 나무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는지도 확인해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릿속에 잘 담아두었다. 패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것이 잘 끝날 것이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라마혈교의 장로인 둘루네는 수하의 목소리에 자신이 머물고 있는 막사 밖으로 뛰어나왔다.
준비하는데 오십 년, 그리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데 백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라마혈교의 중차대한 일이 문제가 생겨서는 절대 안 된다.
“어떤 자가 현류패를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뭣이?”
둘루네는 기가 막혔다. 그게 어떤 물건인데 도둑을 맞는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현류패와 현무석(玄霧石)이 부족하여 고심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뺏기다니.
“당장 잡아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이미 육도승(六度僧)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삼십육법승과 호국승들이 쫓아갔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에 온 라마승들의 삼 분의 이에 해당하는 무력이 쫓아갔다는 말이 된다. 둘루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쫓기고 있는 자가 어떠한 자이든지 탈출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육도승과 삼십육법승은 검은 안개를 위해서 특별히 교육을 받은 승려들이다.
내공과 외공을 적절히 익혀 검은 안개 속에서도 다른 자들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었기에 상대가 특별히 강한 외공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그들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이곳을 들어왔지? 그리고 그가 도망친 곳은 어디냐?”
“이곳의 출입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는 출구로 탈출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둘루네는 눈살을 찌푸렸다. 검은 안개와 현류 강시를 다룰 수 있는 라마승들이 거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라마혈교의 정예 무승들을 데려오고 싶었지만 현류대법을 받지 못한 자들은 현류 강시의 공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대법이 하루 이틀 만에 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린 나이에 현류대법이 받아들여지는 아이들을 골라 수십 년 동안 천천히 시행해야 했기에 대법이 완성된 라마승은 그가 이끌고 있는 자들이 모두였다.
그리고 대법이 시행된 자들이 대부분 무공이 약하다는 것도 약점이었다. 거세게 훈련을 시켜도 무공에 대한 성취가 무승들에 비해서 턱없이 떨어진다.
게다가 벌써 다섯 번째의 현무석을 깨우면서 대법을 받은 자 중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육도승들조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 경계가 부족했다 하여 탓하기도 어렵다.
“젠장. 지금 열릴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좀 더 많은 아이들을 찾아내어 가르쳤을 터인데.”
‘문’이 열리는 때를 알았다면 훨씬 많은 아이들을 찾아내 대법을 부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에 대비해 라마혈교의 모든 전력을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결국, 지금은 부족하지만 대법이 완성된 자들만으로 어떻게든 꾸려가야만 했다.
“그리고…….”
“또 뭐냐?”
“패를 들고 탈출한 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인가?”
“탈출하기 직전에 그는 실험을 위해 가져온 혈류강시의 항아리에 빙의되었습니다.”
“흠…….”
제대로 된 대법을 취하지 않고 빙의가 된다면 인간의 몸으로 버텨내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달아났을지는 모르나 오래 살기는 힘들다는 의미였다.
“보통 대법을 취하지 않고 빙의가 되면 얼마나 살 수 있지?”
“반 시진도 힘들 것입니다.”
제갈두휘는 쫓기고 있었다. 그는 두 개의 검은 패를 들고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그의 몸도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는 이상한 음성은 그의 의지를 점점 꺾고 있다.
패를 가지고 도주할 때 라마승 중 한 명이 던진 항아리가 그의 옆에서 깨지면서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제기랄.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냐.’
어떻게든 알려야 했다. 서장의 무리가 검은 안개를 통해서 중원의 무림을 좀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망인곡을 빠져나왔을 때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검은 안개였다. 안개 자체가 위협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제갈두휘는 목에 패를 걸고서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육중한 덩치를 가진 여섯 명의 라마승들이 멀리서 쫓아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빌어먹을, 경공이 조금만 더 빨랐어도…….’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르기로 달리고 있던 제갈두휘는 단전에서 내력이 순식간에 비어가는 것을 느꼈다.
‘뭐지?’
내력이 없으면 빠르게 달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내력이 없다면 탈진할 수도 있다. 그 생각에 미친 제갈두휘는 경공을 그만두고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개 속에서 내력을 운용하면 급속하게 소모되는 기능도 있는 듯하였지만, 그것을 자세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를 쫓고 있는 여섯 명의 승려들은 아직도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제기랄, 외공의 소유자들이었나?’
그리고 그들의 뒤로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는 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두휘가 훨씬 빠르게 달리고 있지만, 그가 멈춰서는 순간 그 악귀들은 순식간에 덤벼들 것이다.
한참을 달리던 제갈두휘는 두 명의 사람이 보였다. 악귀의 기운이 몸을 잠식하고 있는지 시력은 많이 약해졌으나 그들이 자신의 뒤를 쫓던 집법부의 무사들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들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제갈두휘의 흔적을 쫓아온 집법부의 무사들은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난 자를 보고 경악성을 터뜨렸다.
“뭐? 뭐냐 이자는?”
그러나 한 사람이 곧 그를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제갈 공자?”
그들이 수개월 동안 쫓아다니던 제갈두휘가 엉망이 된 모습으로 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제갈두휘가 내미는 패의 의미를 몰랐지만 두휘의 목에도 같은 모양의 패가 있다는 것을 본 그는 패를 받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
“이 안개를 빨리 탈출해야 하오.”
기진맥진해 보이는 두휘의 뒤쪽에서 라마승들이 나타나자 집법부의 무사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즉시 제갈두휘의 목에 걸려 있던 패를 빼낸 후 동료에게 넘겨주고 두휘를 부축했다.
“이 안개를 탈출해야 하네.”
다른 집법무사는 그가 가리키는 곳에서 달려오고 있는 라마승들을 보며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두휘를 부축하고서 경공을 펼쳐 안개의 바깥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내력이…….”
빠른 속도로 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낀 두 사람 앞에 이상한 존재가 나타났다. 인간의 얼굴과 팔다리가 달렸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저건 뭐냐?”
즉시 검을 뽑아 베어 넘기고서 달렸지만, 괴물은 죽지 않고 두휘의 발목에 매달렸다.
그것을 본 집법무사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러 팔을 갈랐다. 그러자 더 이상 잡을 것이 없던 괴물은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안개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미 내력을 다 소진한 상태였기에 기진맥진한 그들은 품에서 피리를 꺼내어 불었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근처에서 같이 수색을 하고 있던 집법부의 무사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집법부의 무사들을 이끌던 설풍쾌검(雪風快劒) 월무외(越無畏)가 숨을 고르고 있는 무사들을 보았을 때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끄아아아.”
놀란 무사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두휘의 온몸이 타들어 가며 지글거리고 있자 그를 보던 한 명이 물었다.
“이거… 사람인가?”
“우리가 쫓던 제갈 공자야.”
두휘는 그의 발목에 있던 괴물의 팔이 급속히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며 느릴 뿐 자신의 몸도 같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혈랑환검에게…….”
마지막 힘으로 말을 꺼내자 집법부의 무사들이 말을 기다렸다.
“중, 중원의 백도 무림을 위해, 혈랑환검에게 패를…… 그리고 망인곡…….”
그 말을 끝으로 제갈두휘는 그의 의식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해냈어…….’
제갈두휘는 바닥에 쓰러지며 움직임을 멈추었으나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 무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편히 눈감으시오, 제갈 공자.”
“마지막 순간 편안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네. 우리는 제갈 공자가 목숨을 걸고 전한 것을 무림맹에 알려야 하네.”
설풍쾌검의 말에 다른 무사들도 모두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릴 수 없을 것이다. 네놈들은 모두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할 테니 말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법부의 무사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수십 명의 라마승들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길, 제갈 공자의 모습에 저들을 잠시 잊었군.”
“무슨 말인가?”
“검은 안개에 들어가면 행동이 느려지고 내력이 빠르게 없어집니다. 그리고 저 안에 처음 보는 괴물들이 있습니다.”
겨우 십여 명으로 육십 명이 넘어 보이는 라마승들을 상대하여 살기 힘들 것이다.
라마승들을 쭉 둘러보던 설풍쾌검은 손에 쥐고 있는 두 개의 패를 말없이 다른 무사에게 넘겼다.
그러한 설풍쾌검의 행동을 본 집법부의 무사들은 자신의 병장기를 쥔다. 그리고 설풍쾌검이 움직이자 그가 돌진하는 곳을 향해 일제히 돌진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갑자기 부딪쳤으나 이미 삶을 포기한 집법부 무사들의 검은 매서웠다. 짧은 순간 라마승들의 포위망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무림맹에 전해야 한다.”
“대장님.”
“가라!”
떠나는 무사는 동료들을 빠르게 훑어본 후 경공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라마승들은 그자를 쫓고자 하였지만, 앞에 늘어선 집법부의 무사들을 보고 그게 수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연신보(飛燕神步), 자네의 별호에 기대를 걸겠네.’
그들 중에서 가장 빠른 신법을 가진 그가 무림맹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원해야만 했다.
이미 재처럼 흩날리고 있는 제갈두휘를 보며 설풍쾌검은 결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친구들! 무림맹에 쫓기던 제갈 공자마저도 백도 무림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 우리가 누군가? 무림맹의 정예들이다. 죽을지언정 잡혀서 치욕을 당하지 않기 바란다!”
제갈두휘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다른 무사들도 검에 다시 한번 힘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눈에서 정기가 서려가자 그것을 보고 있던 서장의 승려는 비연신보가 사라진 방향을 보더니 이가 갈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죽여 버려라!”
그 말과 동시에 서장의 무사들과 무림맹의 무사들이 격돌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길을 막는 무림맹의 무사들의 검은 라마승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수적으로 너무나도 부족했던 무림맹의 무사들은 한 명씩 쓰러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