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14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14화
114 무림맹과 마교의 의문(3)
같은 시간, 제갈하벽이 말한 대로 휘하의 문파가 사라지고 있는 문제로 마교에서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1갑자에 가까운 시간을 준비하여 시작한 중원 진출이 뜻하지 않은 문제로 멈추자 마교의 교주인 천혈마존 동방천무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의 앞에는 마교의 장로들과 마장들이 줄지어 서 있었으나 그 누구도 교주의 얼굴을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교주의 기세가 노기로 인해 회의장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이러한 일이 발생을 하면 흑도천하를 어찌 이룩하고 어떻게 혈채를 받아내겠나? 이 문제로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마총사, 이만큼 기다렸다면 무엇인가 확실한 대응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복을 하고 있던 마총사는 겨우 고개를 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회의장의 사람들 중 가장 무공이 약한 그였지만 직책상 교주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교주가 한껏 기세를 피워 올리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명을 받은 이상 뭐라도 말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교주의 분노를 한 몸에 받게 될 가능성이 컸고 결과는 그로서도 예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반대쪽 끝에 있는 중손면인의 모습을 흘깃 보았다. 회의에 들어오기 전, 중손세가의 가주가 자신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 그러니까 현재 이유 없이 휘하의 무사들과 함께 행방불명된 고수들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선두에 서서 용맹하게 싸웠던 자들로서 갑자기 사라질 이유가…….”
“그 이야기는 이미 들었네. 그래서? 이대로 그들이 나타날 때까지 멍하게 있겠다는 건가?”
교주의 눈매가 날카로워지자 마총사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더 이상 교주의 분노가 커진다면 그로서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길을 바닥으로 돌렸다. 그리고 정말 제대로 선택한 것인지 짧은 순간 다시 생각을 했다.
‘망할. 며칠 전에 미리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좀 나누기라도 했으면…….’
중손면인이 회의 직전에 말을 꺼내며 두툼한 서류를 주었다. 자세히 읽어볼 시간이 없어 대충 읽고 품에 넣어왔지만 지금 그가 빠져나갈 방법은 품속의 서류밖에 없었기에 괜히 죄도 없는 중손면인을 원망했다.
“산서로 조사단을 파견하고자 합니다.”
“산서에 조사단을?”
교주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난데없이 산서성이 왜 나온단 말인가? 산서성이면 지금 정파 나부랭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현재 정파에도 사라진 문파들이 있다고 보고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산서의 한쪽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을 조사한다면 고수들이 사라진 이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세히 말해보라.”
교주의 어투가 누그러진 것을 느끼며 마총사는 황급히 대답했다. 지금은 어찌 되었든 교주의 분노를 잠재우고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그곳에 있는 백도의 세 문파가 완전히 멸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은 저희에게 중요하지 않으나 중요한 것은 그 문파들이 있는 마을의 양민들도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흐음.”
교주는 생각에 잠겼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예정보다 빠르게 준비가 되어 마교 총단의 문을 나선 지 석 달이 지나가고 있다.
청해와 감숙에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흑도와 백도의 싸움을 기다렸다는 듯 사라진 일부 흑도 문파들의 소식 때문에 진격의 발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서야 무림맹의 소행이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초기에는 무림맹의 얕은 책략인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세력이 마교와 무림맹이 서로 상잔하다 지치기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주의 눈치를 보던 마총사는 중손면인이 준 서류를 품에서 꺼냈다. 회의장을 지키는 무사에게 내밀자 무사는 공손히 서류를 받아 교주에게 가지고 갔다.
교주는 그 서류를 받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서류에 의하면 세 개의 마을이 파괴된 원인 중에는 마교의 중원 진출도 있었다.
정파의 모든 세력이 마교의 앞길을 막느라 모여들었기에 그들 문파에서도 무림첩(武林牒)에 호응하여 제자들을 파견하느라 남아 있던 무사들의 숫자가 평소보다 적었다.
게다가 무림맹으로서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적보다 몰려오고 있는 마교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그래서 사라지는 문파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한발 늦었던 것이다.
한동안 마총사가 준 서류를 만지고 있던 교주는 심각하게 생각을 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사를 누구에게 맡길 생각인가?”
“중손세가의 예소소 소저와 아이네스 소저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호위무사들을 조사단으로 보낼까 합니다.”
“그 아이들을?”
“중손세가의 예소소 소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네스 소저 역시 대단한 술법사로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둘이 힘을 합한다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총사의 확신하는 듯한 대답에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이라면 무공보다는 술법에 능통했기에 분명 조사에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도록 하라.”
“그런데 산서는 무림맹이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무림맹에 조사단에 대해서 알려야 할까요?”
“그럴 필요 없다.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이 산서를 향하는 것을 알아낸다면 당연히 조사단이라 생각할 터. 굳이 무림맹에 말할 필요는 없겠지. 게다가 그 아이들을 공격한다면 우리가 곧바로 사천과 섬서를 향해 진격하리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네스 소저와 저의 외손녀는 정파의 무사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정체를 알고도 해를 끼칠 정파의 무사는 없을 겁니다.”
중손면인의 말에 교주는 동감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좋다. 빠른 시간 내에 조사를 마치고 보고를 하게 하라. 그 결과를 보고서 결정하겠다.”
교주의 결정이 떨어지자 앞에 늘어선 마교의 수뇌부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제길, 이제야 혈채를 받아낼 때가 되었는데 난데없는 일이 생기다니, 어떤 놈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내 손으로 사지를 갈라주고야 말겠다.’
자신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자들에게서 창밖으로 눈길을 돌린 교주는 분노에 못 이겨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았다. 수십 년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시작된 복수인데 방해받으니 몹시 불쾌했던 것이다.
한동안 노기를 달랜 교주는 아쉬운 눈빛으로 점점 밝아지는 밖의 풍경을 보았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추운 겨울 날씨를 말해 주듯 넓은 대지를 지키는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보여주었고 어느새 중천까지 떠오른 해가 메마른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1갑자를 기다렸는데 몇 달을 더 못 기다릴까.’
교주가 보고 있는 창문을 넘어 계속 가다 보면 마교 총단의 약사전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약전(藥殿)이 있다.
거의 한 달 동안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약전을 차지하고 있는 환자들은 깊은 상처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할 자들 뿐이다. 이들도 곧 총단으로 호송이 되어 약사전에 좀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약전에서 동쪽을 보면 건장한 무사들이 지키고 있는 작은 장원이 하나 보인다. 장원의 담벼락 안에는 조그마한 정원과 연못이 보였고 그 연못의 옆에 세워진 건물 입구에는 고명우와 공극소가 문의 양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문 안에서 여인들의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언니, 이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요. 이게 공간이동을 하는 술법이라면 여기에는 왜 현상 왜곡을 일으키는 중원의 술법을 넣은 것일까요?”
“글쎄?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전체적으로 이 진이 무엇을 원하고 만든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어려운 것 같아.”
마교와 무림맹의 싸움이 소강상태를 맞이하고 환자들이 줄어들자 아이네스와 예소소는 중단했던 망인곡의 마법진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진인지조차 알지 못했기에 연구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수십 겹으로 된 거대한 진이다. 게다가 군데군데 중원의 술법과 섞여 있었고 마법과 중원의 술법 모두 오래된 것이라 그녀들이 알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분이 해독되면서 연구가 조금씩 빠르게 진척되고 있었다.
“그런데 예 동생, 이건 아무리 봐도 소환마법의 일종인 것 같아. 전체적인 계산이 나오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야.”
“제 생각도 비슷해요, 언니.”
두 여인이 마주 보며 복잡한 수식을 떠들고 있는 동안 다른 두 여인은 서로를 가끔 째려보며 방의 반대편에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저 계집은 지치지도 않나?’
‘자신의 나이를 좀 생각해야지. 대체 무혼보다 몇 살이나 더 많다고 생각하는 거야?’
바로 능미류와 은소예였다. 다른 호위들이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같은 여인의 몸으로 방안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명목상이었고 그녀들은 간혹 찾아오는 무혼을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 부분은 뭘까요?”
“만약 예 동생의 말이 맞는다면 이건 마물을 부르는 소환 주문일 거야.”
“마물(monster : 몬스터)이 뭐죠?”
“그러니까 중원으로 따지면 악귀 같은 것?”
그 말을 들은 예소소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왜 그래, 동생?”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뭔가 복잡한 이야기군요.
“아, 무혼 경.”
무혼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자 주위의 모든 여인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눈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예소소의 얼굴도 상기가 되었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능미류와 은소예도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아이네스는 일부러 소리 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혼 경, 오랜만에 왔네요.”
- 그렇습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도 무혼 경을 걱정하고 있어요. 인사를 하시는 게 어때요?”
잠시 후 아이네스의 입에서 투박한 남성의 말투가 흘러나왔다.
“예 소저, 은 소저, 그리고 미류, 모두 잘 지냈나요?”
아이네스의 목소리였지만 말투는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무혼의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히 채워졌다.
그동안 무혼이 몇 번 왔었지만 아이네스가 바쁠 때 왔었기에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유로울 때 찾아온 것이다.
“공야 소협…….”
“공야 소협!”
“무혼.”
세 여인의 목소리가 함께 울리자 무혼은 약간 난감했다. 이제까지 여인들과 그렇게 친숙한 시간이 없었기에 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어색한데 3명이 빤히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예 소저, 아이네스 소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예소소에게 고개를 돌린 무혼은 살짝 목례를 하고 감사의 인사를 뜻했다. 그와 중원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아이네스가 중원에서 쉽게 자리를 잡은 것은 예소소의 도움이 크다고 할 수 있기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소소는 비록 아이네스의 얼굴과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무혼을 직접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쩐지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무혼과 아이네스가 서로 직접 볼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몸은 불편한 곳이 없으신가요?”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자 다른 할 말을 쉽게 찾지 못했다. 사실 무혼과 단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많은 여자들의 시선도 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예소소가 그렇게 조용히 물러나자 능미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무혼, 무혼의 친구들도 호위대에 합류했어.”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