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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113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99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113화

113 무림맹과 마교의 의문(2)

 

 

 

 

 

석 달 전, 청해의 덕령합 분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은 무림맹은 당황했다. 아무리 많은 인원이 몰려와도 덕령합 분타가 그리 쉽게 무너질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교가 중원으로 나서게 되면 사천을 취하지 않고서는 중원 진출이 어렵기에 필히 덕령합을 지나야만 하는 것을 이용하여 막강한 요새로 만든 것이 덕령합 분타였다.

 

덕령합 분타에 청해의 문파들이 모여 버티는 동안 거대한 백도 문파가 많은 사천에서 문도들을 모아 그들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그동안 무림맹에서 나머지 지역에 무림첩을 돌려 세력을 모은 후 다시 덕령합 분타를 거점으로 마교 세력을 압박하여 신강으로 몰아넣는다는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지만 사천에서 지원할 문파들이 모이기도 전에 덕령합이 마교에 점령을 당하자 그들의 전략을 크게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무림맹은 무림첩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임시총단을 사천의 면양(綿陽)에 마련하고 마교의 삼로대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무림맹의 임시 총단은 마교의 중원 진출이 아닌 다른 이유로 회의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마교는 더 이상 진격을 하지 않고 있소이다.”

 

“그놈들이 무림의 협객들에게 발목이 잡혀 더 이상 진격을 할 수 없어서 얕은수를 쓰고 있는 것이오. 이 사건들은 그놈들이 꾸민 흉계가 틀림없소.”

 

“하지만 일설에는 그자들도 지금 흉수들을 찾고자 진격을 멈춘 거라 하던데?”

 

격앙된 목소리와 신중히 꺼내는 의견들이 회의장을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문사복을 입은 자가 회의장의 앞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두들 조용해지며 시선을 돌렸다.

 

“군사. 언제 섬서에 추가 인원을 보내줄 생각이오. 이번 사건은 마교가 섬서를 노리며 양쪽을 함께 압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틀림없소이다.”

 

종남파의 장로인 상산진인(霜山眞人)이 묻자 제갈하벽은 그의 모습에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지금 8만의 마교도들이 사천 땅을 노려보고 있는데 네놈은 그게 보이지도 않느냐?’

 

청해와 감숙을 휩쓴 마교의 중원 진출 부대를 섬서와 사천의 경계에서 간신히 막아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마교가 걸음을 멈추었기에 가능했을 뿐 급하게 모인 무림맹의 세력으로는 그들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교 수뇌부의 명령이 떨어지면 순식간에 사천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 팔만의 마교도들이 청해와 사천의 경계를 노려보고 있음을 알고 있는 무림맹의 군사로서 오로지 자기 문파의 안위만을 챙기려 드는 그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일 뿐 종남파를 대표하여 나온 상산진인에게 직접 욕설을 할 수는 없었다.

 

“산서의 사건과 마교와는 관련이 없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가 섬서의 종남파가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인 산서의 사건을 딱 부러지게 부정하자 상산진인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산서의 백도 문파 셋이 분명히 사라졌소. 당금 어느 세력이 그 문파들을 없앨 수 있겠소.”

 

감숙으로 몰려온 이만 오천의 마교 일로대로부터 종남파를 지키기 위해 지원을 받을 핑계를 만들고 있는 상산진인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제갈하벽이었지만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말하는 세 개의 백도 문파가 실제로 멸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교의 소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멸문당한 문파들이 있는 마을의 양민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바로 그 점이 무림맹의 수뇌부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마교도들은 양민들에게 손을 쓰지 않는데…….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이지?’

 

비록 흑도의 악행처럼 소문은 나돌고 있지만 하류배들이 아닌 흑도의 고수들이 양민에게 손을 쓴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제갈하벽의 의아심이 날로 더해져 갔다.

 

만일 지금 정사대전 중이 아니었다면 그가 직접 그 마을로 조사를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중원의 정파 무림을 책임지고 있는 무림맹의 군사로서 사사로운 호기심에 무림맹을 떠날 수도 없었고 이미 조사를 나갔던 제갈세가의 가솔들도 별다른 것을 찾아내지 못한 상태라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에서 빠져나온 무림맹의 군사는 새로 들은 이야기를 해주며 상산진인의 말을 막았다.

 

“마교의 인솔하에 있는 흑도의 문파도 비슷한 경우를 당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 마교가 진격을 멈추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허어, 그 말이 사실이오?”

 

분천벽력검(焚天霹靂劍) 모진공(茅眞工)은 눈살을 찌푸리며 확인을 하듯 되물었다.

 

안휘의 선주(宣州)에 있는 분천검문(焚天劒門)의 문주인 그는 함께 싸우자고 연락을 했던 친우(親友) 운해비룡검(雲海飛龍劍) 구당도(瞿唐島)가 사라진 후 비슷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예, 모문주님. 마교에서도 적사회(赤獅會), 흑교방(黑鮫幇)이 비슷하게 사라졌다고 하였습니다. 이 문파들 역시 사라질 이유가 없는 터라, 산서의 세 문파와 비슷한 일을 당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흐음.”

 

무림맹의 회의장은 다시 소란 속에 잠겼다. 이제껏 마교의 술수에 의해 몰살을 당한 것이라 생각해 왔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그들의 소행이 아니라면 더욱 미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날 문주가 사라지거나 멸문을 당한 문파들을 거론하며 열띤 토론이 벌어졌지만 결국 탁상공론이라는 말처럼 결론 없이 끝났다.

 

아직 모든 백도의 세력이 집결하지 못했기에 마교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는 탓이다.

 

‘정사대전 이후 흑도 문파의 대부분이 마교의 총단 내부에 터전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린 중원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전체적인 인원은 많다고 하나 동원이 가능한 인원은 오히려 부족하구나.’

 

각 문주들의 억지 주장을 받아주느라 파김치가 된 얼굴로 회의장을 나온 제갈하벽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교의 중원 진출 이후로 웃음을 잃고 있었다. 오랜 시간 평온한 삶을 유지했던 많은 정파의 문주들이 마교의 대군세 앞에서 우왕좌왕하면서 그에게만 많은 책임을 전가했던 탓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녀를 발견하자 입가에 웃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의 딸이 건강한 모습으로 해맑은 미소를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납치사건 이후 그녀를 괴롭히는 독기가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후 그녀는 건강을 되찾았다.

 

제갈하벽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독기가 얼굴에서 사라진 모습을 보자 절로 기쁨의 웃음이 났다.

 

“어서 오너라. 네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올 것을 그랬구나.”

 

“아니에요. 마교와의 대전으로 정신없으실 텐데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예쁜 딸이 번거롭게 만들어준다면 그것은 이 애비가 환영한단다.”

 

“아이참, 아빠도.”

 

제갈운혜는 하벽의 말이 싫지만은 않은지 곱게 웃음을 띠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벽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머나먼 면양까지는 어쩐 일로 왔느냐? 네가 이곳에 놀러 오지는 않았을 터이고.”

 

“산서에서 사라진 문파들 때문에 왔어요.”

 

제갈하벽의 물음에 제갈운혜는 아버지의 겉옷을 받아들며 대답을 했다.

 

그러자 제갈하벽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의자에 몸을 묻었다.

 

“산서의 세 문파… 그렇지 않아도 오늘 회의에서도 그 문파들이 거론되었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나요?”

 

“결론 없이 끝났지.”

 

오늘의 회의가 지긋지긋하다는 듯 제갈하벽은 눈을 살짝 감으며 딸의 물음에 답을 해주었다. 정말 피곤한 회의였다.

 

특히 상산진인이 끝까지 우겨대는 통에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문파들도 덩달아 무림맹의 추가지원을 거론한 터라 군사의 입장으로 그들의 입을 봉하기 위해서 힘겨운 논쟁을 벌여야 했다.

 

그 기억이 제갈하벽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났고 피곤해 보이는 그녀의 아버지를 보며 제갈운혜는 말을 꺼냈다.

 

“소녀가 직접 가서 조사를 해보려고 해요.”

 

그러나 제갈하벽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딸이 총명한 것은 알지만 추운 겨울에 어떠한 위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겨우 건강을 되찾았는데 다시 험한 곳으로 보내기는 싫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고 너를 보낸단 말이냐? 그리고 네가 다시 아프기라도 한다면 아버님의 분노에 내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야.”

 

“할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왔는데요?”

 

“뭣이?”

 

딸의 대답에 제갈하벽은 눈을 크게 뜨며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아비인 자신보다도 운혜를 더 생각해 주는 사람이 제갈세가의 문주이자 하벽의 아버지인 제갈단경이다. 그가 허락을 했다면 분명 생각이 있긴 할 것이다.

 

“거짓은 아니겠지?”

 

“그럼요.”

 

다른 사람을 들먹이며 거짓을 말할 운혜가 아니었기에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던 하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단경이 결정한 일을 반대할 수도 없었다.

 

“같이 가는 사람들은 누구냐?”

 

“남궁 소협과 팽 소협이 소녀와 함께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소협들이 이끄는 신천신룡대(新天神龍隊)도 함께 움직인다 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제갈하벽은 마음을 놓았다. 그의 손에 무림맹의 모든 정보가 있었기에 지금 그녀와 동행하는 자들의 무력을 잘 알고 있다.

 

비록 그의 귀중한 딸이라고 하지만 그녀를 보호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능력을 지닌 자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아버지시군. 내가 직접 혜아의 호위를 뽑는다고 해도 저만한 자들을 뽑지 못했을 것인데.’

 

“조심하도록 해라. 이번 사건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녀, 명심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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