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89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89화
089 망인곡(亡人谷)(1)
객잔에서 빠져나온 무혼은 비영을 만났다. 그가 마을 밖으로 안전하게 안내해주겠다고 했을 때,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안내할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무혼과 다른 무사들은 모두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이 비영을 따라 걸은 지하 통로는 금천에서 꽤나 떨어진 숲속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산의 허리를 둘러싸고 있는 숲의 가운데로 나왔으며 비영은 그들이 모두 빠져나오자 한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신강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이곳에서 석집을 거쳐 가기보다는 아패를 거쳐 감숙으로 들어갔다가 신강으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할 것입니다.”
그가 가리킨 방향을 눈으로 보던 무혼은 포권을 취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들을 도와준 그 사내가 고마웠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마을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요?”
“아닙니다. 저희 하오문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혈랑환검 소협, 부디 소협이 맡은 일이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저희 문주님께서도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하오문? 그리고 문주님이시라고요?”
“문주님께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담담면을 먹으러 오라 하셨습니다.”
그제야 무혼은 하오문의 문주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심상치 않은 요리 솜씨와 맛이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10만에 가까운 하오문의 문주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꼭 그러겠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그 말을 끝으로 비영은 금천 쪽으로 몸을 돌려 달려갔다.
“하오문에서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차 정사대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무혼이 바라보니 고명우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입을 열었다.
“그것 때문에 공야 아우를 찾아온 것이야. 지금 대산에서 소환 명령을 내렸네.”
“그럼 대산으로 빨리 가죠.”
그러자 고명우가 무혼의 목을 끌어안았다.
“공야 아우, 도대체 그 아리따운 소저는 누군가? 자네에게 관심이 많아 보이던데.”
갑자기 고명우에게 목이 졸리고 있는 무혼은 영문을 몰라 얼굴을 보자 화룡마편이 설명을 해주었다.
“현재 대산에 중손세가의 사람들이 있소.”
“아!”
고명우가 말하는 소저가 누구인지 알아챈 무혼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소소 소저가 와 있습니까?”
“그렇다네. 예 소저가 자네를 빨리 불러와야 한다고 했었네. 그렇게 급하게 묻는 것을 보아하니 그 소저와의 관계가 의심스럽군. 하하하.”
무혼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말려들면 또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르니 빨리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저는 천기를 읽고 중원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기를?”
“그렇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저를 찾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보고 있던 다른 자들도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무혼을 쳐다보았다.
그중 한 사람이 못 참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분이 정말 도제를 쓰러뜨린 혈랑환검 공야 소협입니까?”
그러자 고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의제이지. 이쪽은 반선검문(半旋劍門)의 녹허주(祿虛宙) 소협이라고 하네. 신강의 총단으로 찾아오던 중에 우리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
무혼은 반갑다는 듯 포권을 취하고서 다시 고명우를 보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정파의 세력권에서 정파의 무사들과 부딪치게 된 것입니까?”
“아하하, 그게 말일세…….”
그들의 대화를 보고 있던 화룡마편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들은 천마시조님에 대해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소. 고소협이 먼저 뽑았을 뿐 모두가 함께 뽑은 것과 마찬가지요.”
그 말을 들은 무혼도 고명우를 보며 웃어주었다.
“잘하셨습니다, 고형님.”
“그게 잘했다고 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네. 내 만용 때문에 괜히 많은 사람들이 곤란을 겪게 되어서 말일세.”
그러나 무혼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좋지 않게 된 것은 제 잘못도 있습니다. 얼굴을 좀 가리든지 해야 했는데 제 얼굴이 중원에 그렇게 잘 알려졌는지 몰랐습니다.”
“그건 자네의 잘못이 아니지. 일단 각설하고 신강으로 가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세.”
고명우의 말을 끝으로 그들은 모두 발걸음을 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
경공을 이용해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는 무혼의 일행은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눈동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혼의 일행이 아패를 향해 달리고 있을 때 무림맹의 감숙지부 합작(合作)분타에서는 남궁장천이 전서구가 가지고 온 서신을 읽고 있었다.
“일단의 흑도 고수들이 금천에서 정파의 무사들을 살해하고 감숙으로 도주 중?”
전서를 보던 남궁장천은 옆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의 앞에 도열해 있는 스무 명의 무사들은 한 명 한 명이 일정 수준을 넘은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남궁장천과 엇비슷할 정도의 나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제갈 아우가 말하던 신성들이라는 자들이 이들인 모양이군.’
신성의 출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무림맹에서는 중원 전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뛰어넘은 신진 고수들을 무림맹으로 모았었다.
그리고 예언된 날, 그렇게 모인 신진 고수 중 많은 자들이 그들의 한계를 깨는 데 성공했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무공을 지니게 되었다.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확인한 무림맹의 수뇌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그들의 각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천기가 마련한 대로 미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새로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른 그들을 모아 신천신룡대(新天神龍隊)를 편성하고서 그들에게 실전의 기회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의 임무가 이들로 하여금 생사투(生死鬪)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할지도 모르겠군.’
남궁장천의 눈에도 그들의 기세는 절정 고수라도 실전을 겪지 않은 자들임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가 이들을 이끄는 임무를 맡게 된 것입니까? 나는 이들을 통솔할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남궁장천에게 전서구의 내용을 넘겨준 합작 분타주는 고개를 저었다.
“남궁 공자, 그것은 나도 모른다오. 내가 아는 것은 여기서 남궁 공자가 이끌 무사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라오.”
고개를 끄덕인 남궁장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서에는 삼백 명의 신진 고수 중 서른 명을 파견한다고 하였으니 아직도 다 모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흑도의 무사들이 이동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열 명의 신룡을 기다린다면 놓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할 수 없군. 우선 이들만이라도 이끌고 먼저 출발하는 수밖에.’
합류하기로 한 신진 고수 중에 팽조덕의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한 남궁장천은 합작 분타주를 보았다.
“다음에 오는 신룡들은 팽조덕 소협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팽 공자에게 그 말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개방에서 협조를 하기로 했으니 추적을 하시는 동안 쫓고 있는 흑도의 무사들에 대한 정보를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그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분타에서 이쪽으로 전서를 하나 보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장천은 검을 한 번 뽑아 살펴본 후 출발할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뒤를 보니 다른 무사들도 모두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남궁장천을 선두로 정파의 신룡들은 흑도의 무사들이 달리고 있다는 섬서의 끝자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 시각에 한 통의 전서를 받은 제갈두휘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어 펼쳐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예정대로 되어가고 있긴 한데…….”
몇 번을 계산해 보아도 그의 계산은 틀린 것이 없었다. 백도의 신룡대와 무혼의 일행들이 만날 지점과 날짜가 눈에 보이는 듯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서의 마지막에 쓰인 한 줄의 글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있어 제갈두휘로 하여금 생각을 복잡하게 하였다.
<현재 신천신룡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창궁쾌검 남궁장천>
‘신룡대를 이끄는 사람이 하필이면 남궁 형님이라니, 이를 어쩐다?’
제갈두휘가 글귀를 계속 반복해서 읽으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의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뒤에서 다가온 문종후가 서신을 보았다.
“뭔가 문제가 되는 것이 있나?”
“남궁 소협이 신룡대를 이끌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멀지 않아 일어날 이차 정사대전을 위해서라도 그를 빼내어 돌려보내는 것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
추청령의 목소리에 제갈두휘와 문종후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추청령은 문 옆에 기대어 특유의 음산한 미소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그를 빼돌릴 시간도 없지만, 굳이 뺄 필요가 없잖아? 계획을 수정하여 진행시킬 시간이 없는데 새로운 계획을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이고, 게다가…….”
추청령의 입가에 있는 미소가 더욱 진해지며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 사이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렸다.
“난 그놈이 마음에 안 들어. 이번 기회에 혈랑환검과 함께 지워버리는 것도 좋겠지.”
추청령의 말에 제갈두휘는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해 보았던 일이라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추공자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문종후의 목소리에 다시 두휘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남궁장천의 시선을 피해서 계획을 수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무공 수위가 높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성실하고 머리가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게다가 남궁장천은 남궁세가의 직계로서 어릴 때부터 가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기에 서투르게 속이려 들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만일 남궁 형님이 지금의 계획을 조금이라도 눈치를 챈다면 형님의 성품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두휘가 추청령과 문종후와 같이 움직이는 이유가 평소같이 다니던 사람들의 곧은 성품 때문이지 않은가?
잠시 눈을 감은 제갈두휘는 스스로를 달래듯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남궁 형님, 미안합니다. 혈랑환검과 같이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니 자부심을 느껴도 되실 것입니다.’
생각을 마친 제갈두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입을 열었다.
“추 공자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 일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이니 계획에 창궁쾌검과 신룡대의 전원을 포함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서로를 마주 보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제갈두휘는 가슴의 한쪽이 두근거렸지만 애써 외면을 하며 지도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무혼의 마지막이 될 곳이 표시되어 있었고 망인곡(忘人谷)이라는 작은 글자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