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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78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78화

078 무인(3)

 

 

 

 

 

촤아아악!

 

‘하북팽가!’

 

도황을 배출한 하북팽가의 절기가 팽조덕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석장과 함께 라마승까지 베어버리는 오호단문도가 또 다른 라마승을 노리며 강렬하게 질주를 했다.

 

그들을 보며 입술을 살짝 문 무혼은 눈앞의 라마승을 향해 거세게 돌진했다.

 

갑자기 가까워진 무혼을 보며 라마승이 얼굴을 굳힌 채 뒤로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그의 뒤를 노리며 날아드는 파이어 애로우에 주춤하는 순간 무혼의 의지를 품은 혈랑검이 그를 반으로 가르며 지나갔다.

 

- 무혼 경?

 

- 예, 아이네스 소저.

 

- 어쩐지 초조해 보여요.

 

아이네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자 무혼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공의 길에는 왕도가 없는 것을…….’

 

눈앞에 강력한 무공실력을 보이는 자들이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급한 마음을 먹은 듯했다. 외당의 무술대회 참가가 결정된 날, 귀룡일검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의 끊임없는 노력이 너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고 자만하지 않도록 하여라.>

 

 

 

 

 

‘그 말을 일 년도 되지 않아 잊고 있었다니…….’

 

다시 머릿속에 새긴 무혼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의 앞을 막고 사혈을 노리는 라마승의 손을 발로 차낸 뒤 허리를 베었다.

 

- 아이네스 소저.

 

- 예, 무혼 경.

 

- 감사합니다.

 

- 뭐가요?

 

- 그냥요.

 

- 아앗, 무혼 경. 또 말 안 할 거예요? 저 삐질 거예요!

 

아이네스의 토라진 목소리에 입가에 미소를 띄운 무혼은 라마승들이 모인 곳으로 힘차게 몸을 날렸다.

 

 

 

 

 

어느덧 대지를 피로 적셔가던 싸움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네스의 파이어 애로우들이 라마승들을 공격하며 빈틈을 만들어 내었고 무혼과 같이 싸우던 정파의 무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끄아아아!

 

마지막으로 남은 라마승이 제갈세가의 무사가 휘두른 판관필에 머리가 깨지고 비명을 지르며 대지에 쓰러지면서 혈전은 막이 내렸다.

 

아이네스의 마법으로 구현된 파이어 애로우들이 무혼과 팽조덕 그리고 남궁장천이 상대하는 자들을 계속 노리고 있었다.

 

혈랑검에 묻은 피를 라마승의 가사로 닦아낸 무혼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니 남궁장천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검을 들었다. 남궁장천과 무혼은 서로를 향해 스치듯 지나쳤고 짧은 순간 무혼은 한 점을 향해 검을 질러 넣었다.

 

“후…….”

 

갑작스러운 손속에 주위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으나 곧이어 나오는 작은 웃음소리에 굳은 얼굴을 풀었다.

 

“후후후, 잊지 않으리다. 내 옷은 비싼 것이니 꼭 대가를 받아 내리다.”

 

“후후, 나 역시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남궁장천이 무혼의 검에 살짝 베인 그의 장포를 보자 무혼도 무복에 뚫린 구멍을 보며 만져보았다. 비록 비무라는 생각에 서로에 대한 살기는 없었지만, 호승심을 참지 못하고 일검을 나눈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살검이었다면 오늘 결코 승패를 점칠 수 없으리라.’

 

남궁장천은 다시 한번 혈랑검에 베어진 장포를 보았다. 이 작은 자국이 눈앞의 호적수와 다시 겨룰 약속의 증표가 되어 줄 것이다.

 

스무 살의 나이로 무림의 첫발을 내디딘 이후로 남궁장천은 그의 또래에서 검이라는 무기로 그와 승부를 겨룰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검 못지않은 검격을 가졌으며 그를 감탄시킨 호적수가 눈앞에 있다. 오늘 제대로 된 비무를 하지 못함이 아쉬웠지만 작은 약속을 남겨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실력으로 어떻게 도제를 이길 수 있었을까?’

 

남궁장천은 검을 거두고 포권을 하자 무혼도 혈랑검을 거두고 그를 보며 포권을 하였다.

 

“신기한 화살이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또 공야 소협의 검을 견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말에 무혼도 입가에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저 역시 다음에 남궁 소협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파의 후기지수들은 말없이 무혼의 등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 무혼의 모습이 사라지자 팽조덕이 입을 열었다.

 

“혈랑환검을 정말 저렇게 보내도 될까요?”

 

“글쎄?”

 

남궁장천은 발걸음을 옮겨 제갈운혜에게 다가갔다.

 

“제갈 소저.”

 

“말씀하세요.”

 

“제갈 소저의 눈에 비친 혈랑환검을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제갈운혜는 남궁장천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남궁장천의 뒤에 모인 다른 사람들도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혼이 사라진 산의 능선을 향해 눈을 돌린 제갈운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는 동안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호북 땅에는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강을 옆에 둔 홍호(洪湖)가 있다. 적벽대전으로 유명한 적벽(赤壁)을 마주하고 있으며 한 도시를 삼킬 수 있는 거대한 호수는 겨울 날씨에도 고고한 운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 이렇게 끝이 없어 보이는 물이 강이고 호수라니 정말 놀라워요. 게다가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감싸는 안개라니…….

 

- 저도 말로만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하남성의 북쪽에서 제갈운혜와 헤어진 무혼은 계속 남쪽으로 길을 잡고 내려오다 그에게 알리는 춘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암림에 숨은 음암단창(陰暗短槍) 복사유(服四維)를 처치하고 그가 가져간 밀단패를 회수하라.’

 

마교가 중원 진출할 때를 대비하여 설치한 아홉 군데의 비밀 요새가 있다. 그 요새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단체가 밀단이다.

 

교주와 마 총사 외에는 누가 알고 있는지조차 모르며 위치도 아는 자가 없었다. 그 아홉 개의 요새는 각자 한 개의 패가 있어 그 패들이 열쇠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교 밀단의 일원이었던 음암단창이 9개의 패 중 하나의 패를 훔쳐 여러 군데에서 많은 죄를 짓고 숨어 살던 자들이 모인 숲인 암림으로 도망갔다.

 

총단에서는 재빨리 무혼에게 명령을 내렸고 명령을 따라 무혼은 계속 남쪽으로 길을 재촉하여 호북의 땅을 밟게 되었다.

 

임무의 내용과 함께 음암단창의 모습과 함께 밀단패의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전해 받았던 무혼은 호북의 땅에 들어서자 종이를 깨끗이 태웠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대지를 보았다. 도를 쥐고 일어선 하북 땅의 하북팽가와 다르게 호북에서 그들의 절기인 거력패왕권(巨力覇王拳)으로 대표되는 ‘권’으로 일어선 호북팽가가 독식을 하고 있는 땅이지만 1갑자의 시간이 흐르기 전에는 공야세가가 호북팽가와 양분하고 있던 이 땅을 밟자 어린 날 아버지 공야패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머리에서 떠오른다.

 

암림으로 가는 길에 공야패가 가끔 찾아갔었다던 이곳을 지금 무혼이 찾아왔다.

 

조용히 눈 앞을 흘러가는 강과 강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넓은 호수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에워싼 산과 나무들이 눈과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지고 온 술을 한 잔 마시며 눈앞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무혼에게 아이네스가 말을 걸어왔다.

 

- 이곳이 무혼의 세가가 있던 곳인가요?

 

-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되돌아와야 할 곳이죠.

 

아이네스는 그 말에 다시 한번 천천히 둘러보았다. 무혼의 조상들이 태어나고 무혼이 돌아올 땅이라 생각하자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남달라 보인다.

 

- 무혼 경.

 

- 예, 아이네스 소저.

 

- 무혼 경은 당당히 이곳으로 되돌아오실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무혼은 해가 산에 걸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암림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후 멀리 암림이 보이는 숲에서 무혼은 나무 사이를 날듯이 달리고 있었고 그가 간간이 바라보는 암림을 본 아이네스는 암림과 무혼의 거리를 계속 가늠해 보고 있었다.

 

- 아직은 무혼 경의 마나로 텔레포트 하기에는 거리가 멀어요.

 

- 알겠습니다. 아이네스 소저.

 

혼자 숲을 달리는 무혼을 보며 아이네스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 그런데 무혼 경, 계속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으세요.

 

- 하하, 혼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네스 소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인데요.

 

-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무혼겨어엉?

 

‘허헉!’

 

갑자기 아이네스의 콧소리를 들은 무혼은 당황하여 눈이 내린 나뭇가지를 잘못 밟았고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다 다른 나뭇가지를 잡았다.

 

- 어머나? 무슨 일이에요?

 

- 아, 아닙니다. 잠시 발을 헛디뎠습니다.

 

- 조심하셔야죠.

 

나뭇가지에 올라선 무혼은 숨을 고르게 가다듬은 후 내력을 끌어올려 보았다.

 

‘하마터면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군. 아이네스 소저의 콧소리라니 생각도 못 해봤었다.’

 

그러나 그걸 절대로 말할 수 없었던 무혼은 몸을 가볍게 푼 후 다시 암림을 행해 뛰어갔다.

 

- 이 정도라면 충분히 텔레포트가 가능할 거예요.

 

아이네스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은 무혼은 주위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공터를 찾아냈다.

 

- 이곳이면 될까요?

 

- 좋은 곳이네요. 충분히 그릴 수 있겠어요.

 

명령을 받아 암림으로 오는 동안 아이네스와 임무에 대해 상의를 한 무혼은 마법을 이용한 한 가지 작전을 세웠다.

 

아이네스가 지금 그리고 있는 것은 텔레포트의 마법진이다. 무혼과 음암단창의 싸움이 시작되어 소란스러워지면 암림에 거주하는 자들이 침입자를 살려 보내지 않기 위해 끝없는 공격을 해올 것이다.

 

하지만 대응 마법진을 이용한 텔레포트라면 그들과 격전을 벌이지 않고서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된다.

 

- 무혼 경의 마나가 좀더 많았다면 제가 좀 더 도와드릴 수 있을 텐데요.

 

- 손쉽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으로도 가장 큰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 하지만…….

 

지금 무혼의 마나는 5번째의 고리가 약간 더 완성되어 있었다. 즉 지금 무혼은 한 번의 텔레포트로 가지고 있는 마나를 모두 쏟아야 했다.

 

 

 

 

 

며칠이 지난 후 낮잠을 청해 무혼에게 온 아이네스는 그녀가 그렸던 텔레포트 대응진의 점검을 마쳤다.

 

- 원할 때 언제라도 올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 제가 아이네스 소저를 귀찮게 해 드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무혼의 말에 아이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내심 기쁜 그녀는 그저 마음대로 올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모든 점검을 마친 무혼은 초승달의 연한 빛을 의지하여 암림으로 들어섰다. 아이네스는 어떠한 기척도 내지 않으며 나무 사이로 조용히 날아드는 그의 동작을 유심히 느끼며 기억했다.

 

그가 목표로 삼은 나무가 어느덧 눈앞에 다가오자 나무의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 무혼 경, 저곳이죠?

 

- 그렇습니다.

 

총단에서 넘겨준 정보는 정확했다. 서로의 영역에 대해 철저히 지킨다는 암림의 규칙이 무혼으로 하여금 잘못된 상대를 노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음암단창이 그의 움막 앞에서 단창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본 무혼은 망설였다. 단창을 휘두르고 있는 그의 실력이 짧은 시간 내에 쓰러뜨릴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넘겨받은 정보보다 더 고수다. 기습을 해야 하겠군.’

 

나무 위에 숨어 그가 움막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린 지 한 시진이 지나서야 음암단창이 수련을 끝내고 움막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반 시진.’

 

서서히 움직이며 움막에서 멀지 않은 나무 위로 자리를 옮긴 무혼은 드디어 때가 되자 기척을 지운 채 검을 앞으로 내밀고 움막으로 뛰어내렸다.

 

- 위험해요!

 

아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무혼의 눈에도 달빛에 희미하게 반사된 얇은 실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내력을 끌어올린 무혼은 붉게 검기를 머금은 혈랑검으로 그를 위협하는 실들을 베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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