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77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77화
077 무인(2)
“혜아야.”
제갈상휘가 반가운 목소리로 부르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런데 옆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랑환검!”
그 말의 뜻에 놀란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입을 막고 있는 거지가 보였다.
“급난개, 무슨 소리야?”
남궁장천이 외치자 개방의 4결 제자인 급난개는 속으로 그의 실수를 탓했다.
‘멍청한 급난개야, 제갈 소저가 아직 잡혀 있는데 그의 정체를 밝히면 어쩌자는 것이냐?’
급난개가 보고 있던 자가 누군지 깨달은 사람들의 시선이 무혼에게 향했고 분위기는 급속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고수가 10여 명이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자신을 노려보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무혼은 다시 검을 뽑았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침중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색의 혈랑검.”
귀접 9조를 쫓았던 사람들이 그림으로 확인했었던 혈랑검의 실제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보라색의 혈랑검을 소유한 자가 혈랑환검이라 했으니 눈앞의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가 급난개가 말했던 것처럼 혈랑환검이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아직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다. 무혼의 옆에 제갈운혜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갈운혜의 목숨을 위협하며 그들을 핍박한다면 위험할 처지에 놓일 것은 그들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 보고 있을 때 무혼이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제갈 소저,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제갈 소저께서는 가족들께 돌아가심이 좋으실 듯합니다.”
“하, 하지만…….”
눈앞의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는 제갈운혜는 가식 없는 무혼의 이야기에 한편으로는 기뻤고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위험한 이 순간에도 무혼은 그녀의 목숨을 위협해 풀어가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제 그와 헤어질 순간이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를 인질로 몸을 피신해도 될 것을…….’
그녀의 상식을 깬 마교의 청년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제갈운혜는 무혼의 다음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제 주위는 이제 위험해질 것입니다. 소저를 맞이하러 온 분들은 한눈에 보아도 대단한 무공실력이 지니신 분들로 보이니 이제 제갈 소저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무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들을 앞에 두고 제갈운혜를 돌려보낸다니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오?”
“무슨 뜻입니까? 그러면 소협은 제갈 소저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편이 낫다는 말입니까?”
남궁장천의 말에 무혼은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러자 남궁장천은 무혼의 본심을 알고자 얼굴과 눈을 살펴보았으나 특별한 점을 알지 못했다.
제갈운혜는 무혼에게 인사를 하고서 걸어왔다. 그리고 일행 쪽으로 돌아오자 제갈상휘가 그의 여동생에게 물어봤다.
“괜찮으냐?”
“예,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라마승들에게 중독이 되어 운신하기가 어려웠으나 저를 도와주신 공야 소협께서 해독까지 해주어 이제 원기만 회복하면 될 듯합니다.”
“해독을?”
납치되기 전에도 완전히 해독이 되지 않아 불편한 몸으로 지내던 제갈운혜였다. 그리고 다시 중독이 되었는데 해독을 시켜주었다는 말에 제갈상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에 대해서 정통하신 모양이군요.”
“아닙니다. 독에 그다지 조예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독을 할 수 있습니까?”
“그저 잠시간의 도움을 받아 해독이 가능했을 뿐입니다.”
제갈상휘와 무혼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남궁장천이 결심을 한 듯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무혼에게 포권을 하였다.
“소협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남궁 형님, 마교도와 일 대 일로 겨룰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남궁 형님.”
그러나 남궁장천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갈 소저를 무사히 데리고 와주고 은혜까지 베푼 사람을 협공하자는 이야기냐?”
그러자 팽조덕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남궁장천의 이야기에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제갈상휘도 마찬가지였다. 도움을 받은 여동생이 뻔히 보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는 할 수 없다. 만일 무혼이 정파의 사람이었다면 세가에 초대해 귀한 손님으로 대접했을 것이다.
팽조덕과 제갈상휘가 뒤로 물러서자 이제 남궁장천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작스러운 비무 신청에 무혼은 남궁장천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서는 은근한 기대감이 묻어나온 것이 보였고 다른 의도는 없는 듯 눈에 진실함이 엿보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겨루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던 상대였다.
“저의 일천한 실력으로 소협과 손을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혼의 답을 듣고 혼자 앞으로 나선 남궁장천이 그의 검을 뽑고 창궁무애검법의 기수식을 펼치자 그의 몸에서 푸른색의 기운이 남궁장천의 몸을 감쌌다.
‘도안스님과 비슷한 경지…….’
무혼도 혈랑검법의 기수식을 펼치고 혈랑초출의 초식으로 남궁장천을 향해 검을 겨누었고 혈랑검은 붉은 기운을 일렁이고 있었다.
- 이번에도 무인들의 대화인가요, 무혼 경?
- 그렇습니다.
- 저도 같이 싸울까요?
-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혼자서 겨루어 보고 싶습니다.
- 무인들의 대화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이네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때 동시에 상대를 노린 무혼과 남궁장천의 검이 서로 격돌을 했다.
콰콰쾅.
주위의 흙먼지들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회오리치듯 떠오르며 밖으로 밀려 나갔고 흩어져가는 먼지 속에 다른 사람들은 검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자세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잠시 후 무혼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격돌하여 큰 피해가 나기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는 듯하군요 ”
무혼의 말에 남궁장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우리가 겨룰 날이 아닌 듯하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보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공야무혼과 남궁장천은 몸을 틀어 쏜살같이 날아오는 것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터진 작은 자루 속에 있던 뿌연 가루가 안개처럼 주위를 감싸자 두 사람은 뒤로 재빠르게 물러났다.
“라마승이다!”
제갈상휘가 이를 가는 듯이 외쳤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둘러싸듯 나타난 라마승들을 발견했다.
타마우는 무혼과 제갈운혜를 원독에 찬 눈으로 보더니 제갈운혜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네년 때문에 이 중원 땅을 몹시도 헤매고 다녔다. 네 이년, 이번에 끌고 갈 때는 개처럼 질질 끌고 가주마.”
타마우의 가사를 보니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이 제갈운혜를 찾는 동안 많은 격전을 벌여왔던 듯했다.
타마우의 명령에 따라 라마승들이 전열을 갖추자 무혼도 다른 정파의 후기지수와 함께 라마승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것을 본 타마우는 무혼을 쳐다보았다.
“네놈은 저들과 적대적인 듯한데 왜 이들을 돕는 것이냐?”
무혼을 붙잡아 껍질을 벗긴 후 사지를 토막 내고 낭떠러지로 던져버리고 싶은 타마우였으나 무혼의 무공실력이 제갈운혜를 잡는 데 방해가 될 듯하자 마음과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네놈은 언젠가 꼭 살아 있음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러나 무혼은 타마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고 그의 얼굴을 싸늘한 시선으로 보며 검을 한 번 뒤척였을 뿐이다.
“공야 소협도 저들과 원한이 있소?”
“제갈 소저를 구해주면서 원한이 생겼습니다.”
그 말에 남궁장천은 고개를 돌려 제갈운혜를 보았고 제갈운혜는 무혼의 이야기가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 소저를 구해준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나는 중원인입니다. 중원의 여인이 서장의 놈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는데 어찌 모른 척한단 말입니까?”
남궁장천의 입가에 웃음을 떠올랐다. 그의 눈앞에서 흑도의 여인이 라마승에게 핍박을 받았더라면 그도 무혼과 같은 행동을 했으리라.
“동감이요.”
“저 계집만 남기고 모두 죽여라!”
타마우가 앞으로 달리며 외치자 스무 명이 넘는 라마승들이 일제히 공격해 왔다.
그러자 무혼이 온몸에 붉은 마기를 감싸고 라마승에게 달려가며 혈랑검을 휘둘렀고 남궁장천과 팽조덕도 그 뒤를 따라 달리며 그들의 손에 든 병장기를 이끌어갔다.
“끄아아아!”
무혼의 검에 반으로 갈라진 석장을 든 라마승이 등을 깊숙이 파고든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혈랑검이 다시 목을 꿰뚫자 땅으로 꼬꾸라지며 얼굴을 땅에 묻었다.
휘이익.
거센 바람 소리를 내며 무혼의 허리를 가르고자 날아오는 석장을 튕겨내고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린 무혼은 가슴이 훤히 드러난 다른 라마승의 심장을 갈랐다.
따땅땅땅.
혈난보로 세 명의 라마승의 포위를 뚫으며 그들의 석장을 혈랑검으로 막아낸 무혼은 낭조파천의 검로를 따라 거센 힘으로 공기를 가르자 라마승들은 무혼에게서 물러났다.
- 무혼 경?
- 예.
- 저도 무혼 경과 함께 할까요?
무혼은 라마승들을 경계하며 생각을 해 보았다. 싫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이네스와 함께 적들을 맞이해 싸운다는 것에 은근한 즐거움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아이네스의 본신이 여기에 있어 옆에서 같이 싸우겠다면 말리겠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자신의 몸뿐. 언제나 아이네스를 지키면서 싸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싫지 않았다.
- 감사합니다, 아이네스 소저.
무혼의 대답에 아이네스도 속으로 배시시 웃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꺼리는 무혼이 그녀의 도움만은 순순히 받아들인다.
물론 아이네스도 안다. 이제까지 본 무혼의 성격을 비추어 생각해 보면 자신의 본신으로 돕겠다면 분명히 말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싫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염려해 준다는 것, 특히 무혼이 자신을 염려해 주는 것은 하나의 기쁨이기도 했다.
- 그런데 이 사람들도 모두 대머리인 것을 보니 그때의 사제와 같은 신을 모시는 사람들인가요?
- 그렇습니다. 단지 중원을 적대하는 새외의 사람들이죠.
아이네스는 캐스팅을 시작했다. 무혼이 오른손에 쥔 혈랑검을 휘두르며 검집을 거꾸로 잡았다.
‘군랑만소!’
다섯 개의 회전검기가 사방을 휘감기 시작하자 라마승들도 그들이 들고 있는 석장을 휘두르며 무혼이 그려낸 검기에 대응해 갔다. 그때 하얀빛과 동시에 3개의 화살이 격전지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훨씬 빨라졌군.’
파이어 애로우가 생성되는 속도와 날아다니는 속도가 도제를 상대했을 때보다도 훨씬 빨라졌다는 것을 무혼은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다가 내 성취가 아이네스 소저의 성취보다 늦겠어.’
이미 아이네스가 마법을 이용해 검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자신은 아직도 혼자 마법을 구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라마승들을 상대하고 있는 남궁장천과 팽조덕의 모습이 보였다.
‘저것이 남궁세가의 창궁무예검법인가?’
단 한 초식을 나누어봤을 뿐이었으나 혈랑검을 통해 흘러온 느낌은 무혼으로 하여금 투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단한 쾌검이다.’
석장을 막고 라마승을 베어 넘기며 틈틈이 보고 있는 남궁장천의 창공무애검법은 화려하면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푸른 검기를 머금은 그의 검이 석장을 가르고 라마승의 미간을 뚫으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