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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55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2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55화

055 모레스 성(2)

 

 

 

 

 

사천을 넘어오면서 무혼의 일행은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3개 조로 나눈 후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달리고 있었다. 무림맹의 척살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조심하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조심히 달렸다.

 

그렇게 도안이 알려준 길로 25여 일을 달리니 청해의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장님, 건포가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저 마을에서 보충해서 가야 할 듯합니다.”

 

“그럼 오늘은 마을에서 쉬도록 한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에 찾아보니 객잔이 하나뿐이었다. 무혼과 강 조장 그리고 삼호가 먼저 들어가서 방을 잡으니 일각쯤 지나 다른 조원들도 객잔에 들어서며 방을 잡는다. 물론 서로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었다.

 

객잔의 한쪽 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중앙에 자리 잡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무림인들의 대화가 살짝 들려왔다.

 

[이 근처를 장악한 백도 은남도문(恩濫刀門)의 무사들이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지 마라.]

 

풍귀흑각은 전음으로 모두에게 경고하며 그들의 대화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총동원령이라지?”

 

“백은에 내로라하는 고수가 수백 명이 모였다고 하더군.”

 

“후우, 도제의 목을 벨 정도의 고수가 포함된 마교의 무사들이라면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그러자 덩치가 큰 은남도문의 무사가 입을 열었다.

 

“글쎄? 우리가 상대할 수 있을 자들일까?”

 

“소문에 의하면 흑도 문파 두 개가 그들 손에 멸문당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헛소문이야. 마교가 왜 흑도의 문파를 치겠나? 그것도 한 마을을 장악하던 문파들인데.”

 

그 말에 다른 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행적이 사라져 개방에서 찾아 헤매고 있다면서?”

 

“어딘가에 숨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네. 지금 감숙에 개방의 문도들이 잔뜩 몰려 있다더군.”

 

“설마 이쪽으로 오진 않겠지?”

 

한 사람이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이 네모나게 생긴 자가 고개를 흔들며 이야기를 했다.

 

“여기를 오려면 사천을 지나야 하는데 사천이 어떤 땅인가? 아미파와 청성파가 있고 사천당가가 있는 땅이 아닌가? 그놈들이 죽을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사천 땅을 밟을 리가 없지.”

 

“그들이 사천땅을 통과해 이곳에 온다고 해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저 사악한 술수만 강한 자라고 하던데? 그놈들만 잡으면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잖아?”

 

그러자 실눈을 가진 사람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헛소리하지 마! 중요한 것은 술수든 무술 실력이든 도제의 목을 베어낼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거야. 게다가 도제의 눈앞에서 풍아도를 피한 자다. 그런 놈이 우리의 도에 맞아줄 것 같아? 그들을 만나면 우리들의 목이 어깨 위에 붙어 있기만을 기도해야 할 거야.”

 

그러자 주위에 앉은 같은 문파의 사람들은 얼굴을 굳히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도제가 누구인가? 도산검림을 헤치고 수십 년 동안 강호를 흔들던 이황칠제의 한 사람이 아닌가? 지방의 작은 문파들이 모두 덤빈다고 해도 도제의 옷자락 하나 건드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 사술요귀를 만나게 된다면 무조건 보고도 못 본 척을 해야 하겠군.”

 

“그 별호도 입 밖에 내지 마. 그러다가 나중에라도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자네의 목을 베고 심장을 꺼내 제사라도 지내면 자네는 구천을 떠돌지도 모른다고.”

 

“히익!”

 

“하하하!”

 

그 말을 들은 자는 입을 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웃었다.

 

“설마 이 객잔 안에 있진 않겠지.”

 

그의 말에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씌운 듯 모두들 조용해지면서 눈으로 객잔을 살폈으나 따로 앉아 모르는 척 음식을 먹고 있는 무혼의 일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이 친구야, 사람 간이 순식간에 작아지는 말은 하지 말게.”

 

다들 사람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꺼낸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식사를 마친 무혼의 일행은 조용히 객잔에서 하룻밤을 머물렀고 건량을 구한 후 별다른 일 없이 조용히 그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

 

산속에서 합류한 귀접 9조를 보며 강 조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무명 스님의 말이 맞군. 도제를 꺾고 사천땅을 통과한 덕분에 오히려 안전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중원의 백도 녀석들이 평온한 날을 오래 보낸 탓에 예전과 같은 지독한 성질이 많이 사라졌어. 작은 문파들이 있는 지역으로만 다닌다면 우리는 안전하게 총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을 띠며 강 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까지 반신반의했던 것이 어제 은남도문 무사들의 대화 속에서 확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길만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면 총단에 도착한다.

 

그들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귀접 9조를 쫓고 있는 제갈 두휘와 무림맹의 무사들은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놓친 행적에 시간을 생각해 보면 신강에 거의 가까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제길,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 도안 형님이나 혜아의 도움만 있었어도 그놈들을 놓치지 않았을 것인데.”

 

무림맹과 구파일방의 고수들로 구성된 격살대는 감숙을 중심으로 귀접 9조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도제의 죽음을 듣고 몸을 사리는 각 지역의 작은 문파들로 인해 무혼 일행을 쫓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5일 후 귀접 9조는 신강 초입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이제 총단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명우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에게 그리웠던 신강의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등을 치고 웃으며 총단을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하하하하하!”

 

총단의 마존궁에서는 교주인 천혈마존 동방천무의 앙천대소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주의 앞에 늘어선 마 총사와 장로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마교의 영웅들이 지금 신강에 들어섰다는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청해를 통해서 온 듯합니다.”

 

“우하하하하! 우리도 생각지 못했으니 무림맹의 그 멍청이들도 지금 감숙만 헤매고 있을 것이다. 도제의 목을 베고 무림맹의 천라지망을 따돌리고 돌아오다니 장하도다. 하하하!”

 

교주는 몇 십 년 만에 통쾌하게 웃어본 듯했다. 정사대전 이후 들려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교주를 침울하게만 만들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외당의 작은 작전조 하나가 무림에 파란을 일으키고 복귀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백도 놈들의 간이 서늘했겠지.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야!”

 

“교주님, 이번에 도제의 목을 베고 온 공야 소협의 포상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신강으로 들어선 것이 확실한 이상 미리 정해두어야 합니다.”

 

“허허허, 어린 나이에 참 대단하다. 장로들도 상대하기 힘든 도제의 목을 베고 오다니. 그래, 마 총사는 어찌했으면 좋겠나?”

 

“무림맹과 백도의 놈들을 칠 준비가 생각보다도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곧 중원으로 진출할 교내의 기세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라도 공야 소협에게 후한 상을 내렸으면 합니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그리고 지금 강호에서는 도제를 꺾은 그를 사술요귀라 부르고 있다고 하오나 그것은 정파 나부랭이들이 부르는 말이옵고 교주님께서 그의 별호를 혈랑환검이라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수염을 잠시 쓰다듬던 교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부른다고 다른 자들도 그렇게 부르겠나?”

 

“그것은 저에게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직위 문제이옵니다만…….”

 

“직위라… 그렇군.”

 

“도제를 꺾었다면 장로급이오나 아직 나이도 어리고 연륜도 부족하여 문제가 있습니다.”

 

그 말에 천혈마존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마교는 힘의 논리, 나이, 출신을 떠나서 강한 자가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것이 마교의 정신인 것이다.

 

“마 총사, 그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나이는 상관없사옵니다. 하오나 직위가 높으면 그 자리에 맞는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그만한 연륜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뺏기게 됩니다. 그것은 그에게도 좋지 않을 듯합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나?”

 

“그렇다고 큰 공을 세운 자의 상이 작으면 교내에 사기가 꺾어집니다. 서열은 걸맞게 정하여 주시고 직위는 교주님께서 혈랑환검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정하심이 좋으실 듯하옵니다.”

 

“음, 그게 좋겠군. 참, 참마도 그자의 애병도 가져오고 있다면서? 수많은 흑도 무사들의 피를 빨아들인 풍아도를 내가 직접 고철로 만들어 버리고야 말겠다. 하하하하하.”

 

 

 

 

 

마존궁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마교가 새로운 영웅탄생에 환호를 지르고 있을 때 모레스 성을 공격하고 있는 동맹군의 막사에서는 두 사람이 긴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적의 지원군이 이틀 후에 도착한다고……?”

 

“그렇습니다. 대규모의 병력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지원군에 그 공주가 있는 것이 확실하겠지?”

 

“예, 정보대에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였답니다.”

 

검은 갑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있는 기사가 눈을 돌려 그의 작전관인 호레이스를 보았다.

 

“할 말이 있나?”

 

“점령할 생각도 아닌 모레스 성에 무리하게 온 것이나 6클래스의 마법사를 3명이나 동원을 한 것은 나중에 동맹본부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나도 오래 끌 생각은 없다. 어차피 이제 며칠만 더 머무르면 된다. 성공하면 강한 빛의 신성력을 몸에 간직한 공주를 하나 잡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실패를 하게 된다면…….”

 

“그녀의 목을 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녀의 능력만 확인하고 물러나면 되겠지. 공주에게서 알 수 없는 능력이 발견된다면 전략적으로도 꼭 필요한 정보가 된다.”

 

입을 열고자 하던 호레이스는 베트란 3군단장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이곳을 공격한 이유도 알고 있고 동맹군의 최연소 군단장인 그의 의지를 꺾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호레이스도 마음의 한쪽에서는 군단장의 결정에 찬성하고 있기에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공주가 도착하기 전에 모든 가능성을 두고 작전 계획을 다시 검토해 보도록.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호레이스가 군례를 붙이고 막사 밖으로 나가자 베트란은 몸을 뒤로 젖히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베르노…….”

 

베트란은 외동아들이다. 그리고 사촌 중에서 맏이인 그는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컸다.

 

그가 군에 투신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바로 아래의 동생조차 열 살을 넘지 못했다. 많은 삼촌들에게서 많은 동생들이 태어났으나 그들을 보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드는 녀석은 없었지.’

 

베트란은 부대 내에서 차갑고 냉정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었지만, 부대 밖에서는 더욱 심했다.

 

본가에서 만나는 동생들에게도 언제나 냉랭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 겁을 먹은 동생들은 언제나 뒤로 한 발짝씩 물러났다. 베트란은 그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특이한 동생이 그의 눈에 띄었다. 거의 막내에 가까운 베르노는 베트란의 어디가 좋은지 그의 매서운 눈에도 웃으며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베트란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트란이 생각하기에도 냉정한 성격에 정이 붙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그저 신기한 놈이라고 생각을 하며 한 번 물끄러미 봤을 뿐이다.

 

동맹군의 출세가도를 달리며 놀라운 수준의 검술을 구사하는 그는 어느새 3군단장의 지위에 올랐고 삼촌들은 앞다퉈 그들의 자식을 맡겨왔다.

 

물론 베트란은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수련한 방식으로 동생들을 며칠만 냉혹하게 굴리면 견디지 못한 녀석들은 모두 도망을 갔다. 그리고 다시는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노는 달랐다. 베트란이 요구하는 모든 수련을 버티었고 이겨냈다. 과로와 열병에 시달려도 수련장에 나왔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려도 베트란을 보며 웃었다. 결국, 혹독한 훈련을 모두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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