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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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53화
053 도제와 천기(4)
도제의 알 수 없는 행보의 의문이 풀리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까지는 다들 왜 도제처럼 그 사악한 흑도들을 척결하지 않고 내버려두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다만 최근에 새로이 나타난 현상에 작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갑자기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인재들. 그들은 40년 전부터 15년 전까지 많은 별들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쉬운 말로 해주게.”
팽조덕의 이야기에 제갈두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한다.
“하늘은 정사대전을 더욱 거세게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쏟아져 나온 기재들에게 대리전을 시키려는 것인지 파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알고 하셨든 모르고 하셨든 하늘의 움직임에 거슬렸던 도제께서는 하늘에서 떨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도제를 떨어뜨린 별이 혈랑성. 그 혈랑성은 지금도 자신의 길을 벗어나 하늘을 흔들며 누구도 천기를 읽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누군지 아는가?”
“혈랑성은 호북의 흑도세가였던 공야세가의 별입니다.”
“공야세가…….”
남궁장천이 입에서 중얼거리자 교해도사가 말을 했다.
“쫓아가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혈랑성의 주인을 잡아 천기를 알아보려 합니다. 잡지 못하더라도 그를 직접 보려 합니다.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리고 백도의 수많은 문파의 멸문을 막을 방법이 있는지…….”
“그건 미봉책일 뿐이네. 오히려 나중에 더욱 큰일을 당할 수도 있는데… 무량수불.”
“어쩔 수 없습니다. 나중 일은 후손에게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고요.”
곰곰이 생각하던 팽조덕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백도의 문파들이 잠시 피하는 게 어떨까? 1갑자가 지나면 다시 세상의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 하지 않았나?”
“정사대전에서 살아남은 흑도 문파와 세가의 많은 사람들은 마교로 피해 몸을 의탁하였습니다. 지금 마교가 더욱 강성해진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백도가 쫓겨난다면 어디로 갈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흑도는 침범당하지 않을 거대한 총단을 가진 마교가 있다. 하지만…….
“소림사로 가서 몸을 의탁하며 복수의 검을 갈겠습니까? 아니면 무당산으로 가서 그리하겠습니까? 무림맹과 정파는 밀려나면 의탁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새외로 가서 오합지졸로 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의 모습을 세 사람은 말없이 보고 있었다.
“도안 형님이 도와주셨더라면 도제 어르신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다못해 제 동생 혜아라도 있었다면…….”
“어째서인가?”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별을 쫓아갈 수 있는 추성자는 그 두 사람뿐입니다. 둘 중 한 사람만 있더라도 혈랑성의 주인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도안 형님은 자네가 말한 것을 모두 알고 있을까?”
“그러실 겁니다. 그분의 사승께서는 마교를 치는 것에 가장 반대하셨던 분이니까요.”
“대운(大雲) 대사님 말인가?”
“예…….”
묵묵히 생각에 잠기던 남궁장천은 갑자기 일어서며 팽조덕에게 고개를 돌렸다.
“답답하군. 우리 간단하게 몸을 풀지 않겠나?”
그러자 팽조덕은 망설이지 않고 일어섰다. 도를 뽑은 뒤 도집을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던져두더니 남궁장천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궁 형님.”
그러더니 도를 맹렬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남궁장천도 웃으며 그의 검을 뽑고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황칠제 중 검황 남궁태령에게서 지도받은 이래 정파의 후기지수 중에서 검으로는 따를 자가 없다는 남궁장천이다.
남궁세가는 그가 검의 최고 명가라는 남궁세가에 검황이라는 명예를 다시 안겨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는 팽조덕 역시 도황 팽하림의 진수를 이어받고 있다.
두 젊은 용이 마주 보고 있으니 멀리 떨어진 모닥불도 그들의 기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스스스스.
남궁장천의 오른발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팽조덕은 침을 삼키며 몸을 기울여간다. 베는 위주의 하북팽가 도법으로 남궁장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진중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유연하게 휘두르는 그의 검막을 하나의 획을 긋듯 내리쳐 균열을 시켜야 다음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시작하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팽조덕은 도를 일직선으로 세웠다.
다음 순간 남궁장천이 맹렬한 기세를 뿜으며 쏟아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팽조덕도 달려 나가며 남궁장천을 반으로 가를 듯 오른손에 잡힌 도를 거세게 내리긋고 있다.
그러나 팽조덕의 도는 허공을 갈랐고 그의 옆으로 남궁세가의 문양이 찍혀 있는 검이 질주를 한다.
휘익- 챙!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다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몸을 낮춘 팽조덕이 거친 황소처럼 밀고 오자 가볍게 볼 수 없던 남궁장천은 유연하게 보법을 밟으며 팽조덕의 기세를 탄다.
휘이잉…….
하북팽가의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가 남궁장천을 노리고 거세게 밀려들자 남궁장천은 오른 손목을 움직여 팽조덕의 도를 튕겨 올렸고 그의 등을 향해 검을 내리꽂는다.
파앗!
땅속에 꽂힌 검을 뽑으며 다시 검을 질러갔으나 팽조덕의 도가 다시 검을 튕겨내었다.
교해 도사와 제갈두휘가 보고 있는 가운데 검광과 도광이 어지러이 날리더니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챙챙!
시간이 흐른 후 5장의 거리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이 숨을 가다듬으며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남궁장천이 입을 열었다.
“팽 아우, 자네 혼원벽력도가 중원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나?”
“말도 안 됩니다. 하북팽가의 도법이, 그것도 혼원벽력도가 사라진다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나도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이 중원에서 없어질 날이 올 것이라 생각지는 못하겠네.”
남궁장천은 씁쓸하게 웃으며 제갈두휘를 본다.
“혈랑성의 주인을 꼭 만나봐야겠군. 그 사람이 천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했나?”
제갈두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에게 힘이 되어줄 사람이 생긴 것이다.
“남궁 형님,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장담은 못 하겠네. 하지만 검왕가인 남궁세가와 남궁세가의 모든 무공은 지켜야 하겠지만 정도가 아니라면 오히려 남궁세가를 욕보이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남궁장천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며 이야기한다.
“협의 길을 따르면서 세가를 지킬 수 있으면서 더 좋겠지.”
옆에서 팽조덕도 남궁장천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후,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 해봤군.”
제갈두휘는 고개를 돌려 교해 도사를 보았다.
“교해 형님은 어찌하실 것입니까?”
그 말을 들은 교해는 세 사람을 천천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문파의 어르신들도 노력을 하겠지만 하늘의 뜻이 굳이 정파의 멸망이라면 무당파의 멸문도 각오하고 있을 걸세. 하지만 난 아직 어른들만큼 도를 깨닫지 못한 것 같군. 남궁 아우와 생각이 같네.”
“우선은 혈랑성의 주인을 만나야 합니다. 도안 형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니 운혜가 세가 밖으로 움직일 만큼 몸이 회복되지 않은 지금, 어려운 추적이 되겠군요. 그리고 분명히 말하는데 전 형님들이 뭐라고 해도 제갈세가를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제갈두휘를 보고 있는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고민하는 시간에 제갈세가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잘못 본 것은 아니더냐?”
“아니에요. 분명 풍광성이 떨어졌어요. 도제 어르신은 유명을 달리하신 모양입니다.”
“허어.”
무림맹의 군사이자 소가주인 제갈하벽이 혀를 찼다.
“천기는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구나. 어찌 풍광성이 혈랑성에게…….”
“무림맹에서는 어찌하겠다고 하더냐?”
“그들이 신강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다못해 혈랑성의 주인이라도 꼭 잡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제갈단경도 혀를 찼다. 모든 반대를 무릅쓰면서 정사대전을 일으킨 사람들은 이미 무림맹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유명을 달리했거나 은거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스른 천기를 이제 후대가 수습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슨 방법이 있을까…….”
이미 정파의 천하가 된 지 너무 오래 흘렀다. 중원 대부분의 지역에서 정파의 문파들이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흑도의 문파들과 기득권을 나누려 해도 나눌 리가 없다.
설령 흑도의 문파들에 옛날의 기득권을 돌려주었다 해도 그건 문파의 땅만 돌려준 것일 뿐 그 지역에서 생기는 이득도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결국, 한 지역을 차지한 정사 간의 분쟁은 막을 수 없다.
그게 한두 곳도 아니고 중원 전역에서 일어난다면 정사대전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또 정사대전에 많은 친인척을 잃고 은닉을 하거나 마교의 총단으로 몸을 피한 흑도의 문파들이 정파의 문파를 놔두고 조용히 들어올 리도 없었다.
“결국, 방법이 없는 것일까?”
거대한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질 수많은 문파와 목숨들이 안타까워 제갈단경은 눈을 감고 침울하게 서 있었다.
제갈세가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있을 때 중손세가의 사람들도 하늘을 보고 있었다.
“허허허, 결국 풍광성도 하늘을 거스르지는 못했나 보구나.”
중손면인은 하늘을 보며 웃고 있었다. 며칠 동안이나 근심스럽게 보던 하늘에서 풍광성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입니다.”
옆에서 예소소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혈랑성과 풍광성의 인연이 진해져 가자 매일 불안한 심정으로 밤을 새워 하늘을 보던 그녀였다. 그리고 오늘 하늘을 보니 풍광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남다른 소협이로구나.”
뒤에서 들리는 낯익은 소리에 예소소가 고개를 돌려보니 중손수연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오, 돌아왔느냐?”
중손면인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그의 딸을 보았다.
“중손세가의 여식 수연과 수란이 가주님을 뵙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도 아닌데 꼭 이 애비의 가슴을 아프게 해야겠더냐. 그래 사돈은 어떠시더냐?”
“중손세가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겠다고 하셨습니다.”
“흐음. 네 신랑이 빨리 나아야 할 터인데. 몸이 불편하여 세가 밖을 나가는 것이 힘드니 사돈께서 섭섭해하셨겠구나. 이번에 고생이 많았지? 너희 둘만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시옵소서.”
“그런데 소협이라니요?”
예소소가 물어보자 중손세가의 여러 사람들도 모두 수연을 보았고 수연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된 듯합니다. 무뢰배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도와준 사람들이 있는데 대산에서 온 무사들이었습니다. 그중에 공야세가의 후계자가 있었습니다.”
“후계자가 틀림없더냐?”
“그렇습니다. 공야세가의 후계자가 지니는 자색의 혈랑검을 가지고 있어 혹시나 하였는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공야세가 소가주의 자제였던 공야패 대협의 자제였습니다.”
“오호, 그거 다행이구나. 공야세가도 대가 끊이지 않았구나.”
중손면인은 기쁨에 수염을 쓰다듬었다. 천기가 흑도를 위해 모든 것을 안배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저희 중손세가를 방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대산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더냐?”
“예, 게다가 무술의 실력도 출중한지 대산의 무술대회에서 우승도 하였다고 하더이다.”
“오오.”
주위에 있던 중손세가의 사람들은 놀랐다. 한 지방에서 우승을 하기도 어려운데 흑도의 영도자인 마교에서, 그것도 정사대전 이후 한층 강대해진 마교의 무술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둘러 정비를 마치는 대로 사람을 보내 대산을 방문하도록 해야겠구나. 그렇다면 공야 소협이 이곳을 방문하기도 더욱 쉬울 터.”
“알겠습니다.”
“그래 소협이라고 하면 올해 몇 살이라고 하더냐?”
“곧 25번째 생일을 맞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허허허, 어린 나이에 도제와 싸워 이기다니 놀랍도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예소소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그동안 혈랑성의 주인은 노년에 가까운 사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연의 말에 따르면 그녀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젊은이였던 것이다.
‘그 나이로 어떻게 도제를…….’
어느 때보다 혈랑성의 주인에 대해 궁금증이 더욱 강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