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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48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44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48화

048 별을 쫓는 사람들(3)

 

 

 

 

 

며칠이 지난 뒤 미라크네의 왕궁 근처에서도 말을 달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기사들이 빠른 속도로 미라쉘든의 중앙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같은 시간, 화창한 날씨에 가슴이 설레어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 아이네스 공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련을 위해 수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별궁 앞으로 나오니 9별궁을 지키는 경비기사들이 지정된 자리에서 굳건한 모습으로 서 있다.

 

“모두들 좋은 날씨예요. 고마워요.”

 

점점 높아지는 기온에 맞춘 얇고 화사한 옷과 얇은 흰색의 로브를 걸친 아이네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투구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기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생긴다.

 

“최근 공주님이 많이 변했지?”

 

“저런 화사한 미소는 다른 공주님이나 귀족 숙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듯하군.”

 

귀족 가문에서는 아이네스의 소문의 여파가 줄지 않았지만 9별궁의 경비기사들과 왕실 기사들이 아이네스 공주를 보는 눈길은 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왕궁 탈출 사건 이후로 느껴지던 공주와의 거리감이 급속히 사라졌다. 아이네스가 그들을 대하는 모습과 목소리에서는 그들에게 감사해하는 진심이 전달되어 왔다. 기사들의 눈에서는 그녀가 빛나고 있었다.

 

예전의 인형 같은 미소는 사라졌으나 부드럽고 환한 미소는 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해주었고 그녀의 모습은 한층 발랄해진 것을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 9별궁의 기사들은 아이네스 공주가 9별궁에 머무르는 시간에 근무가 배정되기를 원한다.

 

아이네스의 변한 모습에 3경비조 조장 폴레노는 오늘도 수련장으로 걸어가는 공주를 보며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네스 공주님.”

 

아이네스는 왕궁의 길을 걸으며 기사들에게 신경을 써서 인사를 했다. 목숨으로 이 왕궁의 사람들을 지키는 사람들. 죽음이 자욱한 격전을 지켜본 아이네스는 기사들이 이겨내는 공포와 그들의 현실을 깨달은 후 이제까지 생각지 못한 그들의 모습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던 것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길을 걷는 아이네스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 소리는 왕궁의 정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빨리 전하에게 아뢰어야 한다.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냐?”

 

라에뮤 3세를 찾는 목소리에 궁금해진 공주가 발걸음을 돌려 성문 쪽으로 다가가자 2명의 기사가 성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갑옷이 먼지에 더럽혀져 있네?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일까?”

 

희뿌연 먼지에 뒤덮여 갑옷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나 그들은 쉴 생각도 하지 않고 아이네스 쪽으로 급히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네스가 다가갔을 때 먼지투성이 갑옷의 왼쪽 가슴에 새겨져 있는 문장이 보였다. 눈의 문장이 나선으로 배열된 문장은 아이네스도 알고 있는 문장이었다.

 

‘저 문장이 전선에서 파견된 눈보라 기사단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은 아이네스를 발견하고 군례를 올린 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고, 더 이상의 것을 알아낼 수 없었던 공주는 수련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위한 수련장에서 마법 수련을 마치고 오후에 9별궁으로 돌아오는데 여기저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 산만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돌아온 9별궁도 분위기가 어수선하자 아이네스는 앨리를 불러 이유를 물어보았다.

 

“앨리,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네, 공주마마. 모레스 성이 위험하다고 하옵니다. 네스템 성에서 달려온 기사들이 전하의 집무실이 있는 내전으로 들어가자 곧 모든 중신들과 귀족들의 소집이 되었다고 하옵니다.”

 

“모레스 성이……?”

 

모레스 성이라고 하면 미라크네 왕국이 책임지고 있는 전선의 두 개의 성 중 하나이며 왕의 매부이자 아이네스 공주의 고모부인 케이브 후작이 지휘하고 있는 최전방의 성이었다.

 

“모레스 성이 최전선에 있지만 다른 성에 비해 뒤로 물러나 있기에 몇 년 동안이나 공격받은 적이 없는 곳이잖아?”

 

“하오나 그곳에 지금 적의 대군이 몰려와서 성을 위협하는 중이라 하옵니다.”

 

“그곳엔 뉴파냐 고모님도 있는데…….”

 

다른 왕국과 마찬가지로 국가 수호의 일차 책임자인 왕실에서 두 성에 각각 한 명씩 왕족을 보냈다. 모레스 성에는 5클래스의 마법사이자 케이브 후작부인인 뉴파냐 공주가 있었고 네스템 성은 3왕자인 고망디아 왕자가 지휘하고 있다.

 

 

 

 

 

“도대체 모레스 성이 위협받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오?”

 

라에뮤 3세의 음성이 왕의 집무실에서 크게 울리고 있었다.

 

“미라크네 왕국의 최고의 작전관들인 경들이 이유를 모른다면 나는 그 이유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거요?”

 

라에뮤 3세의 호령을 들은 미라크네 작전관들의 우두머리인 루오켈 후작은 침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이것은 유독 미라크네 왕국의 문제만은 아니옵니다.”

 

“계속 말해 보시오.”

 

“현재 빛의 연합군의 가장 큰 문제는 어둠의 동맹국의 주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정체불명의 희미한 검은 안개 때문에 고급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몹시 힘든 상황이옵니다. 그래서 지금 전선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사옵니다.”

 

그의 말에 라에뮤 3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전에 다녀온 빛의 연합국 왕들의 회의인 ‘빛의 추종자들’에서도 검은 안개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었으나 아직 그 안개의 정체도, 해결 방법도 찾지 못했다.

 

빛의 신을 믿는 자가 검은 안개를 만나게 되면 전신에서 빛이 나고 동맹군의 병사들에게 즉시 쫓기게 된다. 이미 그 안개는 어둠의 동맹국의 대도시를 채웠고 점점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빛의 연합군의 정보대는 활동에 제약이 많은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 들어가는 족족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루오켈 후작은 라에뮤 3세의 머릿속이 정리되기를 기다렸고 잠시 후 말을 계속 이었다.

 

“우선은 모레스 성으로 구원병을 보내는 것을 서둘러야 할 듯하옵니다. 모레스 성의 양쪽에 있는 콜파 성과 크네트 성을 맡고 있는 아폴라이아 왕국과 리누오스 왕국에서 병력을 보태어 준다고 약조를 하였사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뭐라 하였소?”

 

“양동작전일지 모르니 각자 맡고 있는 성의 경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하였사옵니다.”

 

“갑작스럽게 만들어낸 병사도 아닐 터인데 지금 모레스 성을 공격 중인 적들이 어디서 차출해 온 마법사와 병사들인지 확인할 수 없겠소?”

 

“시간이 지나면 파악이 되겠으나…….”

 

루오켈 후작의 말은 듣지 않아도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파악될 것이다. 그리고 파악하기 전에 적들이 돌아간다면 어디서 차출된 자들인지 모를 수도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레스 성이 공격받을 곳이 아닌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

 

“하오나 적들은 대규모의 군사들로 모레스 성을 포위하고 있사옵니다. 이대로 시간이 간다면 케이브 후작과 케이브 후작부인이신 뉴파냐 공주님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사옵니다.”

 

“으음.”

 

전선을 이루는 47개의 빛의 성 중 두 개의 성을 책임지고 있는 미라크네 왕국으로서는 모레스 성의 위험을 결코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지원군을 준비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소?”

 

“예, 군사는 문제가 없사옵니다. 현재 3군단과 5군단이 대기 중에 있사오니 마법사들만 모아서 출발하면 되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출발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하시오.”

 

“예, 그런데…….”

 

루오켈 후작이 뒷말을 흐리며 말을 하지 못하자 라에뮤 3세는 후작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소?”

 

“그들의 6클래스의 마법사 수가 문제이옵니다. 두 왕국에서 군사 지원을 받는다 하여도 그중에는 6클래스의 마법사가 없사옵니다. 즉 적들에 비해서 6클래스의 마법사의 수가 적사옵니다.”

 

“흐음.”

 

성을 둘러싸고 있는 자들과 부딪치기 위해서는 야전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모든 것에서 밀리지 않아야 뚫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루오켈 후작이 라에뮤 3세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네스 공주님도 참전을 하심이…….”

 

“뭐라고? 그게 말이 되오?”

 

“하오나 아이네스 공주님께서 지니고 계신 6클래스의 마법은 크나큰 전력이옵니다.”

 

“공주는 마나가 부족하오. 그런 공주를…….”

 

라에뮤 3세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아이네스 공주의 이름에 놀라서 소리쳤다.

 

25세의 성인이라고 하나 성안에서 고이 자란 아이네스를 지옥 같은 전쟁터에 보낸다는 것은 라에뮤 3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네스 공주님이 모레스 성에 마련된 마나석과 마법진을 이용한다면 6클래스의 마법을 시전하실 수 있으니 이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현재 6클래스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는 공주님을 포함해서 왕국에 5명밖에 되지 않사옵니다.”

 

“끄응…….”

 

어느덧 왕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돌았고 후작의 말이 옳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다. 50세의 중반인 라에뮤 3세도 아직 5클래스의 유저급 실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미라크네 왕국에 아이네스를 제외하고 4명의 6클래스 마법사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2개의 성에 각각 1명의 6클래스 마법사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왕실 수석마법사인 스토레무 경을 왕궁 밖으로 보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결국, 6클래스의 마법사는 왕실 차석 마법사인 스테월 백작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라에뮤 3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5클래스의 마법사들은 많지 않은가?”

 

“하오나, 5클래스의 마법사는 20명을 데려간다 해도 6클래스의 마법에는 언젠가 무너지게 되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라에뮤 3세가 후작을 보며 침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어, 아이네스 공주가 5클래스 유저였다면 어찌하려고 그러시오?”

 

“공주님께서 5클래스 유저셨다면 귀족 가문에 있는 마법사들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며 아이네스 공주님이 참전하시지 않아도 될 것이옵니다. 하오나 이미 공주님이 6클래스의 유저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한다면…….”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미라크네 왕국의 수호에 대해서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왕실로서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25세의 공주는 누가 봐도 어엿한 성인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거부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갇힌 성에는 비록 어머니가 다르다 하나 친하게 지내는 그의 누이동생도 있었다. 여동생도 전선으로 보내었는데 딸을 보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낮게 신음성을 내며 라에뮤 3세는 머리를 짚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성에 1명의 6클래스 마법사가 있다고 하지만 3명의 6클래스 마법사가 있는 곳에 6클래스의 마법사를 1명만 추가로 보낸다는 것이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성에 있는 마법진들이 마법사들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6클래스의 마법사가 3명이면 2명의 6클래스의 마법들을 모두 봉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력에 따라 성에서 쓸 수 있는 5클래스의 마법까지 모두 봉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성은 방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장거리 공격은 화살과 투석기만 남는다.

 

하지만 6클래스의 마법사가 동수라면 성을 차지하고 있는 쪽이 유리해진다. 야전에서 급조된 마법진과 불안정한 마나를 이용한 마법보다 성에서 고정된 마법진과 주위에 마나를 공급하는 마법진들을 이용한 마법이 더욱 강력하다.

 

결국, 성을 차지하고 있는 쪽은 마법사의 수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의 유리한 조건도 소용없게 된다.

 

‘그놈들은 대체 어디서 6클래스의 마법사를 3명이나 뽑아온 것이지?’

 

국경의 다른 성에서 빼내온 마법사임이 틀림없다. 즉 어느 성인가에서 마법사가 부족하거나 없을 것이다. 그 성을 안다면 연합 본부에 알려 압박을 가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성에서 차출되어온 6클래스 마법사가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겠지만, 어느 성인지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정보전에서 밀리고 있는 것이 큰 문제야.’

 

라에뮤 3세는 슬며시 입을 열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다.

 

“다른 나라에 요청하면 안 될까?”

 

“보내줄 리가 없사옵니다. 그러다 다른 성이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들 역시 여력이 없어지게 되옵니다. 저희도 요청이 온다고 해도 난감할 뿐이지 않겠사옵니까?”

 

“그렇겠지…….”

 

나라에 여력으로 있는 6클래스의 마법사를 타국에 보내준다면 맡고 있는 성이 공격을 받게 될 때 보내줄 마법사가 없어진다. 어둠의 동맹군은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아…….”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왜 많은 성 중에서 하필이면 미라크네 왕국이 맡고 있는 성에 총공세가 온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모레스 성은 지역상 총공세의 대상으로 잡을 리가 없다는 것이 모든 작전가들의 의견이었다.

 

“경들은 내가 가녀린 공주를 전쟁터로 보내기를 바라시는 거요?”

 

왕의 자조적인 말에 작전관들은 머리를 숙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너무 강한 힘을 지녔기에 위험한 곳으로 가야만 하는 어린 공주를 생각하면 그러한 의견을 내어놓은 그들이 너무 한심해지는 것이다.

 

“죄송하옵니다, 전하.”

 

아이네스가 6클래스의 마법사가 되었을 때 성에서 다른 마법사들을 지도하는 임무만 맡길 생각을 했지 결코 전선으로 보낼 생각이 없던 라에뮤 3세였다. 그는 한숨을 내쉰다.

 

“공주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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