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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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47화
047 별을 쫓는 사람들(2)
“이게 무슨 일이냐?”
“적의 군단이 공격을 해왔습니다.”
보고를 받고 모레스 성의 중앙에 있는 높은 건물의 베란다로 나온 케이브 후작은 성을 공격하고 있는 적들을 내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후작의 눈앞에 보이는 외성의 성벽은 이미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성을 지키는 방어마법의 방어능력을 넘는 강렬한 마법들이 작렬한 곳에는 그을음과 연기가 자욱했고 그중에는 윗부분이 무너진 곳도 있었다.
그리고 외성의 성벽에는 많은 동맹군의 병사들이 사다리에 매달려 성벽으로 오르고 있었다.
“우아아아!”
“밀어라!”
은빛의 갑옷을 입은 기사의 호령에 두 명의 병사가 긴 막대기로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를 밀었다.
“으아아아아!”
사다리에 매달렸던 병사들은 사다리가 기울어지자 땅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중 해자에 떨어진 병사들은 허우적거리며 그들의 갑옷 이음쇠를 풀고자 하였으나 대부분 풀지 못하고 무거운 갑옷과 함께 해자의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땅에 떨어진 병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거운 갑옷의 충격으로 몸이 부러진 자들이 대부분이다.
필사적으로 기어 본진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모레스 성의 수비대와 싸우는 동료들의 발에 밟혀 죽는 자들이 생기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미처 밀어내지 못한 사다리를 통해 성안에 들어온 동맹군의 병사와 기사들을 상대로 모레스 성의 기사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커헉!
한 동맹군 병사가 연합군 기사의 검을 가슴에 맞고 뒤로 쓰러지자 그 옆을 동맹군의 기사가 돌진해 왔다.
챙! 채앵!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는 미라크네의 기사와 마주 보며 검을 미끄러뜨린 후 허리를 숙여 적의 검을 피하고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푸욱!
검이 적의 옆구리를 파고든 것을 확인하고 다시 뽑고자 하였으나 뽑히지가 않는다.
“응?”
얼굴을 돌려 보니 미라크네의 기사가 그의 검을 잡고 있다. 그리고 다른 미라크네의 기사가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훼리스…….”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로 쓰러지는 검은 기사의 의식은 사라졌다. 그의 모습을 보던 미라크네의 기사는 몸을 돌려 다른 상대를 찾아 검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제대로 된 공격을 받지 않은 성이라고 하나 훈련도 게을리한 적이 없고 다른 전투에도 참가했던 병사들이 아닌가? 왜 이렇게 밀리는 것인가?”
“지금 적에게서 6클래스의 마법들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성에 새겨진 신성 마법 방어진이 어느 정도 피해를 막아주고 있으나 6클래스의 마법으로 인한 피해가 큽니다.”
“6클래스의 마법? 우리도 로누스 백작이 있지 않은가?”
“로누스 백작님이 적에게 3명의 6클래스 마법사가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케이브 후작은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의 부관을 보았다.
6클래스의 마법사가 3명이라니? 이제까지 어떠한 전투에서도 2명밖에 동원된 적이 없는 6클래스의 마법사다. 후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3명이라고? 적들이 어디서 그 많은 6클래스의 마법사들을 모았단 말이냐? 그럼 적의 성들 중에서 6클래스의 마법사가 없는 성이 있다는 소리지 않는가?”
“하오나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흐음, 지원요청은?”
“마법 통신이 봉쇄되었습니다. 다행히 세 명의 기사가 빠져나가는 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후작은 입을 열었다.
“빠져나간 기사들도 적의 6클래스 마법사 숫자를 알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본국에서 지원군이 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6클래스의 마법사의 숫자를 들으면 그만큼 강력한 부대를 편성해야 하니 1달에서 2달은 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2달이라…….”
케이브 후작은 평지의 끝에 도열한 적들을 보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공격하는 자들은 적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으음, 지금 대기 중인 전대는 몇 개인가?”
“6개 전대가 투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첨탑과 성문 위 5첨탑에 두 부대씩 투입하고 나머지 부대는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시켜라!”
“알겠습니다.”
대답한 부관은 뒤에 있던 하급 장교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하급 장교는 급히 달려갔다.
멀리 보이는 적의 본진을 보던 케이브 후작은 신음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점령해도 소용없을 이 성을 공격하는 이유가 뭐냐? 우리를 모두 몰살시키고 성을 불태우려는 거냐?”
모레스 성이 공격을 당한 몇 시간 뒤, 무림맹이 있는 항주에서 말을 타고 10여 일을 달리면 안휘의 마을인 육안(六安)에 도착할 수 있다. 그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에 감숙 지방을 향해 질주하는 말들을 볼 수 있었다.
급하게 말을 달리고 있는 네 사람은 숨소리를 거칠게 내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갈 아우, 그들을 잡을 수 있을까?”
“그놈들이 가는 길 근처의 많은 문파들을 향해 전서구가 날아갔습니다. 그들은 무림맹의 천라지망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문사풍의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있는 제갈두휘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출귀몰하다는 마교의 외당 무사들이야. 벌써 빠져나가지 않았을까?”
“남궁 형님, 그들도 이번엔 빠져나가기 힘들 것입니다. 이번에 무림맹의 고수들도 대거 참여해 그들을 쫓기 시작했으니 마교의 무사들이라고 하나 뿌리치고 도망가진 못할 겁니다. 그리고 이자들은 꼭 잡아야만 합니다.”
“어째서 마교는 평온한 세상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지?”
“따분한 데다 자기들의 세상이 아닌 것이 싫기 때문이겠지.”
등에 거대한 도를 매고 있는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덩치가 큰 팽조덕이 대답하자 옆에서 도사의 옷을 입고 등에 검을 멘 청년도사 교해가 입을 연다.
“글쎄, 무량수불…….”
“이대로 달린다면 우리가 먼저 도착할 것 같군. 이제야 흑도의 최강이라는 마교와 겨루어 볼 수 있겠어.”
깨끗하고 균형 잡힌 얼굴을 가지고 있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궁장천이 말을 했다.
“제갈 아우, 자네의 계산이 틀리지 않았겠지?”
“남궁 형님, 틀릴 리가 없습니다. 척살대가 그들을 잡기 전에 합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림맹이 자랑하는 후기지수들인 7룡 6봉 중 세 명의 젊은 용들과 무림맹의 두뇌가 될 청년은 박차를 가하며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그들의 계산으로는 앞으로 10여 일 정도면 지금 쫓기고 있는 마교의 무사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남 땅에 들어섰을 때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도안 형님!”
“하하, 오래간만이군.”
“어찌 된 것인가? 산문을 나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응? 나는 분명히 산문 안에 있다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도안이라는 법호를 가진 승려를 닮은 무명이라는 땡추라네. 하하하!”
“술을 마셨군. 무량수불…….”
“하늘 아래에 못 먹을 음식이 어디 있겠나? 자신을 위해 죽임을 당한 생명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릇 불도를 닦는 몸이 음식을 가려서는 안 된다네.”
넝마 같은 승복을 입은 그를 보며 네 사람은 잠시 말을 세웠다.
“남궁장천, 팽조덕, 제갈두휘. 게다가 교해… 마교의 무사들을 쫓아가는 길인가? 교해 자네도? 아미타불…….”
“무량수불… 같이 있었으니 같이 온 것이네.”
제갈두휘는 반색하며 도안에게 물었다.
“도안 형님도 마교도들을 잡으러 오신 겁니까? 혜아의 몸이 좋지 못해 추적이 지금 어렵습니다만 형님이 도와주신다면 그들은 잡힌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마교도들을 잡을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네. 두휘, 자네는 그의 길을 막을 생각인가?”
기뻐하던 제갈두휘의 얼굴이 도안의 대답에 굳어지며 입을 굳게 다물었고 남궁장천과 팽조덕은 서로 얼굴을 보더니 장천이 입을 열었다.
“도안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흑도에서도 가장 사악한 마교의 무사들입니다. 막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잡아야지요. 게다가…….”
“그런 뜻이 아니네. 내 말뜻을 두휘나 교해는 알 터인데.”
도안이 남궁장천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자 제갈두휘는 냉담하게 말을 꺼낸다.
“그렇다면 도안 형님은 그냥 손을 놓고 보고만 있으실 겁니까? 이건 정파 무림에 중대한 문제입니다.”
“흐음. 교해,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무량수불, 난 그저 보고 싶은 것이네.”
그가 원하는 대답을 못 들은 남궁장천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이야기한다.
“형님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두휘, 자네 우리에게 말 안 한 것이 있나? 그게 아니면 나를 무시할 생각인가?”
“아니네. 이건 자네에게 어울리지 않는 문제라 그랬다네. 화가 났으면 미안하네.”
도안이 사과하자 그제야 얼굴을 푼 남궁장천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남궁장천의 말에 제갈두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대답을 했다.
“남궁 형님, 실은 우리가 가는 곳에 정파 무림에 큰 위협이 될 자가 있습니다.”
“정파 무림에 큰 위협이 될 자? 왜 그것을 말하지 않았지?”
“천기에 대한 것은 언제나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무량수불…….”
교해 도사는 대답을 하고서 슬며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교해를 잠시 보던 제갈두휘는 도안에게 눈길을 돌리며 입을 연다.
“하늘에 거스르는 일이라 해도 저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의 모습을 보던 도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부를지도 모른다 해도?”
“예, 막으실 겁니까?”
제갈두휘의 말에 도안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것조차도 하늘이 정한 길이겠지. 그걸 내가 왜 막겠나? 아미타불…….”
“천기에 역행하여 제가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할 것입니다. 저는 제갈세가를 이어받을 몸입니다. 세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비장하게 외치는 제갈두휘를 보며 남궁장천과 팽조덕은 서로 마주 보았으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막지 않으신다면 지나가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도안 형님!”
제갈두휘가 고개를 숙인 후 말을 타고 달려가자 도안은 합장을 하며 말했다.
“가는 길이 잘 되길 바라겠네. 아미타불!”
교해 도사가 도안에게 다가오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하늘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네. 어떠한 의도로 움직이는 것일까?”
“하늘이 아닌 이상에야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 내가 어찌 알겠나?”
“도안, 자네의 길도 평탄치는 않을 듯하군. 길을 잘 걷기 바라네.”
“고맙네. 자네는 정말 그냥 보기만 할 것인가?”
“나는 그냥 도호를 외울 줄이나 아는 도사에 지나지 않네. 아직 자네만큼 세상을 볼 줄 모르지.”
“나도 그저 법문이나 몇 줄 아는 승려일 뿐일세. 잘 가게. 아미타불…….”
“무량수불.”
도안은 걸음을 옮겨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던 교해 도사는 다시 말을 달려 제갈두휘를 쫓아갔다. 그 뒤를 남궁장천과 팽조덕도 말없이 말을 달렸다.
한참을 달린 후 천천히 가던 제갈두휘와 만나자 말을 천천히 걷게 했다. 그리고 제갈두휘가 입을 열었다.
“형님들, 그들을 꼭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파를 위협하는 자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파를 위협하는 자?”
“남궁 형님과 검으로 맞대결을 할 정도의 실력자일 것입니다. 물론 저는 남궁 형님이 이길 것으로 믿습니다.”
“당연하지. 남궁 형님의 검이 어떤 검인데? 정파 후기지수 중에서 최고의 검이 아닌가?”
“그자 역시 흑도의 후기지수 중 최고의 검일 겁니다.”
“그래?”
팽조덕의 질문에 대답한 제갈두휘의 말을 들으며 남궁장천은 입가에 슬며시 웃음을 띠었다.
“내 검에 한 자루의 검으로 맞설 수 있는 호적수라… 기대가 되는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높은 산을 넘은 그들은 그늘에서 쉬면서 말을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안 형님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굳어 있는 제갈두휘를 본 장천은 교해 도사를 향해 물었다.
“나는 그저 별들을 조금 엿보았을 뿐이라네.”
“별을?”
제갈두휘가 말을 받아 설명을 해주었다.
“멀지 않아 흑도의 무리와 2차 정사대전이 있을 겁니다.”
“뭣이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자들 중 정사대전에 큰 영향을 끼칠 자가 있습니다.”
그 말에 남궁장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도 몇 되지 않는 흑도의 세력이 무림을 어지럽히는데…….”
그러자 교해가 입을 연다.
“자네들이 모르는 것이 있네. 나도 잘 모르지만 말일세.”
“모르는 것?”
“제갈 아우, 자네는 알고 있겠지? 정사대전에 대해서 말일세.”
그 말을 들은 제갈두휘는 다시 얼굴이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설마 자네. 남궁 아우나 팽 아우를 장기의 말로 취급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은 아주 중요하며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도 많은 말입니다.”
남궁장천과 팽조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두휘를 주시했고 제갈두휘는 입을 열었다.
“가는 동안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제가 왜 세 분 형님께 이들을 쫓아가자고 했는지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말에 박차를 가하며 빠른 속도로 감숙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