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34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34화
034 무술대회(1)
몇 달 후,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네스와 함께 합격술을 연습하던 무혼은 그녀가 돌아가자 다시 검을 들고 자신의 검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한 시진 후면 해가 질 무렵, 무혼은 발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무공 수련은 잘 되어 가느냐?”
“예.”
검을 들고 찾아온 귀룡일검 장대암을 향해 포권을 한 무혼은 자신의 검을 들고 장대암 앞에 섰다.
“흐음. 자세가 훨씬 좋아졌구나. 그 자세만으로도 네가 얼마나 정진을 했는지 알 수 있겠구나.”
무혼이 보여주는 자세에 장대암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귀접연무관에 들어서 수련을 게을리하는 자들이 가끔 눈에 뜨이기에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마천태풍도 고명우와 무혼을 유심히 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비무 상대로 삼고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었다. 무혼을 맞이할 사람으로 고명우를 선택한 그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다.
“아닙니다. 검을 휘두르다 그냥 문득 깨달아진 것이 있었을 뿐입니다.”
“오호, 그 깨달음을 내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
“그러겠습니다.”
무혼은 장대암으로부터 5장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다시 한번 포권지례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장대암도 형식적으로 가볍게 포권을 해주며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무혼은 장대암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불과 4년 반 전에는 끝이 보이지 않던 태산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이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보아주며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이 무혼이 태산의 끝을 볼 수 있게 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그의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무혼은 자신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두 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천천히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무혼은 숨을 가다듬었다. 그의 눈에는 이제까지 수도 없이 그려온 검로가 자신과 장대암 사이에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쓰윽.
무혼이 단지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었지만 귀룡일검은 밀려드는 압력에 몸을 움찔거렸다.
‘서, 설마… 아니겠지?’
불과 4년 반 전에는 노력과 열정을 빼고는 천마연무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무혼이었다.
가르침을 주기 위해 지도 비무를 하며 무혼의 실력을 가늠해 본 반년 전에도 귀접연무관에서 몇 년 더 단련되어야 할 것이라 판단한 귀룡일검이었다.
그런데 고작 반년 만에 자신이 이런 압력을 느낄 정도로 무공 실력이 늘어났다는 것을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혼이 계속 익혀온 자신의 검로를 따라 검을 날리자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귀룡일검은 혼비백산하며 급히 검을 들었다.
챙.
‘허어, 이것이 혈랑검법의 참모습인가? 살기가 없음에도 온몸을 죄어오다니 이 아이는 대체 무엇을 깨달았을까?’
장대암은 내심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력에는 크게 변화가 없는 듯하나 내력의 운용이 더욱 안정되었고 검로도 큰 차이가 없는 듯했으나 그 속에 무궁무진한 변화가 깃들어 있다.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고 무혼의 다음 초식을 기다리는 귀룡일검의 손에는 어느새 살짝 땀이 배어 있고 몸에 내력을 충분히 끌어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조금 전과는 다르게 무혼의 검이 일으키는 변화를 똑똑히 보았다. 부드러운 원을 그리는 듯하다 어느 순간 쇄도해 오는 검은 아름답게도 느껴진다.
휘~익.
챙.
이번 검도 간신히 막아낸 귀룡일검은 무혼과 거리를 떨어뜨리고는 입을 열었다.
“마지막 한 수다.”
언제나 검을 지도할 때 3초식을 양보하던 관례대로 3번째 초식을 기다리는 귀룡일검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어서 마지막 초식을 받아내고 무혼과 빨리 검을 나누어보고 싶은 그의 호승심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휘익~
챙!
“조심하여라. 내 전력을 다할 터이니 너 역시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무혼이 다시 방위를 잡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내력을 모으자 이제까지 느낄 수 없었던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귀룡일검은 살짝 침을 삼켰다.
‘이길 수야 있겠지만, 결코 쉽지는 않겠구나.’
귀룡일검은 서서히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무혼도 조심히 발을 내디뎠다.
‘이제까지와 다르시다.’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무혼의 검을 보아주며 대련을 해주던 귀룡일검이 평소와는 다르게 호승심을 태우고 기세를 뿜어내자 무혼은 전신에 강한 압박이 밀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관장님의 진정한 실력……?’
귀룡일검의 검이 날아오며 귀곡성을 내자 극심한 고통 속에서 봤던 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무혼의 눈앞에 혈랑검법의 무수한 검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난히 자신의 마음을 끌어가는 검로를 따라 검을 그어갔다.
찰나의 순간, 생각보다 몸과 마음이 먼저 움직여 간다.
‘헛.’
장대암은 속으로 신음을 삼키며 무혼의 검을 막았다. 장대암의 검이 만들어가던 검로를 막고 그의 허점을 찔러오는 무혼의 모습에 놀랐던 것이다.
‘내 검로를 보고 있다.’
귀룡일검은 그의 절기들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무혼도 지지 않도록 자신의 검에 의지를 담아 귀룡일검에게 맞서 갔다.
“귀린마검(鬼燐魔劍)!”
“혈랑벽력!”
귀룡일검의 검끝을 따르는 암울한 검은색의 기운이 무혼에게 작렬할 듯 달려가자 혈랑도에서 뿜어내는 붉은색의 거센 기운이 관통을 한다.
그것을 본 귀룡일검은 몸을 돌리며 아래에서 위로 올렸고 다시 무혼은 몸을 기울이며 오른손을 뻗는다.
챙!
두 개의 검은 강한 충격에 파르르 떨었으나 두 사람은 오히려 가까이 붙으면서 검을 자신의 주위를 돌리고 두 검은 연속적인 비명을 지르고 있다.
채채채챙!
‘허허, 내가 실력이 줄지는 않았을 터인데.’
‘역시 강하시다.’
장대암의 무위를 깨닫자 무혼은 더욱 강한 승부욕을 느꼈다. 마교 357위의 무인과 진검 비무는 흔한 것이 아니다.
‘승패를 떠나서!’
“혈세잔혼보(血世殘魂步).”
무혼의 발이 많은 잔상을 남기며 귀룡일검의 주위를 흩트리기 시작한다.
혈난보의 절기 중 하나인 혈세잔혼보. 피로 흥건한 세상에서 솟아나는 혼들을 밟으며 종횡무진한다는 뜻을 가진 격렬한 싸움을 위한 보법이다.
삽시간에 장대암의 주위가 밟기 힘들 정도로 무혼의 잔상이 차지하고 있지만 무혼의 상체는 미미한 움직임만이 있다.
‘아직 완벽하게 수련이 안 되었지만…….’
무혼은 진심으로 이기고 싶었다. 귀룡일검에게 이겨서 그의 가르침에 보답하고 싶었고 아버지인 공야패에게도 보답하고 싶었다.
‘허허. 이런, 이런.’
무혼의 자세를 보면 미완성인 듯 보이지만 그 위력은 결코 미완성으로 보이지 않는 보법을 보며 귀룡일검은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무혼아. 네가 시도하는 것이 한없는 강함을 추구하는 흑도의 자세이니라.’
몇 배의 삶을 더 산 그를 이기고자 의지를 불태우는 무혼을 보며 한없이 즐거워지는 귀룡일검이다. 겨루면 겨룰수록 계속 자신을 놀라게 하는 대견한 후배가 그와 대등하게 겨룰만한 실력의 무공을 펼친 것이다.
아마 이 보법이 완성되었다면 그도 지금의 승패를 점치지 못했을 듯했다.
‘대단하구나. 그렇다면 나도 질 수는 없겠지?’
그는 평생을 두고 몇 번 펼치지 않은 귀룡유유보(鬼龍柳流步)가 지금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혼의 발의 잔상으로 디딜 곳이 없어 보이던 곳을 귀룡일검의 발이 휘어지며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안정된 상체와 무혼의 발과 겹치는 듯하나 단단하게 대지를 밟고 다가오는 귀룡일검을 보며 무혼은 눈에 이채를 발했다.
지금 무혼이 보고 있는 것은 세상에서 본 자가 몇 없다는 귀룡일검의 독문절기다.
‘귀룡유유보…….’
자신이 아무리 발을 빨리 놀려 그의 발을 제압하고자 하나 그 사이의 빈틈을 밟고 오는 귀룡일검의 모습에 무혼은 속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완벽하지 못하다고 하나 저 사이를 밟고 올 수 있다니…….’
혈랑검은 쉬지 않고 장대암의 검과 부딪쳐갔으나 두 사람의 발은 전혀 부딪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무혼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고 그만큼 장대암은 앞으로 걸어간다.
다음 순간 무혼이 갑자기 몸을 돌리며 장대암의 다리를 노려갔으나 바닥만 찔렀을 뿐이다.
혈랑검에서 한 손바닥 정도의 거리가 떨어진 곳에 멈추어 있는 귀룡일검의 왼발이 보였고 무혼은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챙!
다리를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은 교차한 검을 보고 다시 서로의 얼굴을 본다.
“계속해야지?”
“예!”
동시에 뒤로 떨어지며 몸을 돌린 그들은 착지와 동시에 상대를 노리며 달려갔다.
그렇게 백여 초를 나누는 동안 결판이 나지 않자 귀룡일검은 그의 미간에 쏘아오는 검을 후려치고 검을 크게 휘둘러 무혼을 뒤로 물러서게 한 후 귀룡일검 역시 뒤로 몸을 물렸다.
“대단하구나. 짧은 시간에 그 정도로 실력이 늘었더냐?”
“부끄럽습니다.”
“아니다. 허허허, 내 너를 오랫동안 봐왔지만 제대로 보질 못한 듯하구나. 어떠냐? 오는 봄에 열리는 무술대회에 참가해 보지 않겠느냐?”
귀룡일검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가득 담은 채 입을 열었다. 저 실력이라면 무술대회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듯했다.
“봄에 열리는 무술대회라 하심은 외당 5개단에 올라갈 사람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외당 무술대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외당에 올라갈 인재들의 실력을 마지막으로 검증하는 장소이지.”
“하오나, 저는 아직 이곳에 온 지도 4년밖에 되지 않사온데…….”
“여기 머문 햇수가 무슨 상관이더냐. 충분히 실력이 된다면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순리인 것을.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이 좁은 연무관이 아니라 넓은 세상 속에서 가질 수 있는 안목과 경험일 듯하구나.”
“감사합니다.”
“이건 너의 끊임없는 노력이 너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고 자만하지 않도록 하여라.”
“명심하겠습니다.”
무혼은 검을 검집에 넣고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보통 귀접연무관에서 수련하는 시간은 보통 10년 정도로 관장인 귀룡일검이 인정하지 않으면 외당으로 갈 수 없다.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연무관에서 끊임없이 수련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귀룡일검이 자신에게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무혼은 춘계 외당 무술대회를 곰곰이 머리에 떠올려보았다. 외당의 5개단으로 소속될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열리는 경연장이다.
이곳에 출전하는 자들은 연무관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각 단에서 정한 기간 내에 외당으로 가게 된다.
그렇기에 그 대회는 외당의 5개단이 천마연무관의 수련생들에게 소속단의 연무관을 홍보하는 중요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귀접연무관은 몇 해 동안이나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무술대회를 마치고 나면 중원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인가?”
중원을 나가게 되면 아버지 공야패의 고향이자 공야세가가 있었던 호북에도 가볼 기회가 생길 것이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수련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침상에 누운 무혼의 마음은 이미 중원을 달리고 있었다.
아직도 무술대회에 대한 흥분이 가시지 않은 무혼은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신이 수련하는 장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좌선을 한 뒤 자신의 눈앞에 계속 떠오르는 혈랑검법을 머릿속에 되새기고 있을 때 아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혼 경?
- 어서 오십시오, 아이네스 소저.
- 목소리가 밝은 것이 좋은 일이 있나 보네요?
- 그렇습니다.
- 흐음, 애인이 생겼나 보죠?
- 아닙니다. 무술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혼의 대답에 아이네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혼이 살고 있는 곳은 가이오스트와는 다르게 늦게 결혼한다고 알고 있다.
아이네스는 무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이 결혼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때까지만이라도 그가 결혼을 늦춰주었으면 했다.
‘아니면 내가 심심해지잖아! 그리고 배가 아플 것이 틀림없어!’
- 아이네스 소저?
- 네? 아, 무혼 경. 마법은 진척이 있나요?
- 그게 말이오. 난 아무리 해도 되지 않습니다.
- 왜요?
- 아무래도 아이네스 소저가 검술이 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그중에는 말하기 어려웠던 서로의 언어도 있었다.
거의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혼과 아이네스는 서로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을 깨우쳐주고자 노력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그러나 이론적이나마 많은 것을 깨달을수록 그들의 협조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게 자연스러워 갔다.
다만 아이네스가 무혼의 몸을 통해 마법을 시전하면 아이스 볼이 파이어 볼이 되어 날아간다는 것처럼 빙계마법이 화염계마법으로 바뀌기 때문에 아이네스가 화염계 마법책을 보며 그에 맞는 마법 운용을 새롭게 공부를 하고 있다.
- 나 역시 아이네스 소저의 몸으로 검기를 시전하니 열기의 검기가 아닌 냉기의 검기가 나오기에 극한지기를 이용한 검술의 운용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아무래도 마나의 성질에 영향을 받나 봐요.
- 계속 연습해 보시겠습니까?
- 그래요.
무혼과 아이네스는 또다시 한 차례 합격술을 펼쳐 보였다. 몇 가지의 연계기술로 완성한 합격술은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서 유용할 듯했다.
- 당신의 마나가 부족해요. 제가 알려준 방식으로 마나를 모으고 있는 거겠죠?
- 하루에 두 시진씩 꼭 아이네스 소저가 말한 대로 운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네스 소저는요?
- 저 역시 무혼 경이 알려준 대로 호흡법을 하고 있어요.
둘의 차이는 서로의 몸에 지닌 내력과 마나의 차이였다. 본인의 몸보다 적은 두 기운은 그들에게 일종의 제약을 가져오자 서로가 사용할 내력과 마나를 계속 모으는 것이다.
- 무혼 경이 텔레포트를 직접 익힐 수 있다면 좀 더 좋을 텐데요.
- 머나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동술 말입니까?
- 그래요. 그 마법이라면 어디에 갇혀 있어도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당신 몸의 마나로는 저조차도 아직 구사할 수가 없어요.
무혼은 살짝 눈을 감아보았다. 아이네스의 노력으로 형성되었고 지금 자신이 계속 키우고 있는 4개의 고리가 심장에서 느껴졌다.
- 뭐 일단 검로가 훨씬 의미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마법은 천천히 고민해도 될 듯합니다.
- 무혼 경은 아직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언젠가 그걸 느낄 때가 있을 것이에요.
- 그때는 꼭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 배에~ 그땐 내가 가르쳐주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아이네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책을 빌리기 위해 서고로 향하던 무혼의 눈에 처음 보는 여인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공야 소협, 안녕하세요~.”
모르는 여자기에 무혼은 포권을 하며 대답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한데… 소저께서는 누구신지요?”
“호호, 전 복건은가의 여식 소예라 합니다.”
‘화면귀수 은소예? 그런데 나에게는 무슨 볼일이지?’
순간 무혼의 신형이 살짝 떨렸다.
“은 소저셨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산책을 나왔다가 소협의 얼굴을 보고 온 것이랍니다. 고소협이 아무 말을 안 하던가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없습니다만…….”
“이상하다? 나한테는 그렇게 이야기 안 했는데…….”
무혼의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휴가 출발 전날 분명 마천태풍도가 자신에게 와서 화면귀수 은 소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에는 분명히 그 제의를 거절했고 그 뒤 여러 가지 일이 생겨서 자신의 기억에서 사라졌었다.
- 어머나! 무혼 공, 아리따운 숙녀분에게 의외로 인기가 좋네요?
- 아닙니다. 대화를 들어서 알겠지만, 오늘 처음 보는 데다 저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으며 많은 남자들이 무서워하여 피해 다니기로 소문난 소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네스는 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말이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 그 소문 확인해 봤어요? 확인도 해보지 않고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매도하다니요. 분명 소문과 다른 점도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예? 아, 그렇군요. 그 말 명심하겠습니다.
- 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화가 나서 이야기한 것인데 꼭 앞에 있는 여자와 사귀라고 떠민 것 같잖아?’
혼자 생각하다가 더욱 심통이 난 아이네스는 계속 눈앞을 주시했다.
“무혼~.”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능미류와 흑야오화의 여인 4명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