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33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33화
033 내 안의 그대(3)
공주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기사 중 한 명인 에드리 경이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공주마마, 억울하옵니다. 공주마마를 위협하는 자가 아무리 무시무시한 존재이고 그 길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검을 뽑고 달려들 자신은 있사옵니다.’
물론 기사도 사람인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왕실 기사들은 기사의 명예와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이 있다.
언제라도 피가 흩날리는 전장 속으로 명령에 따라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으며 강적을 만난다면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여 기사의 명예를 지킬 각오도 있었다.
그렇지만 발작한 공주에게 맞아 죽는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다. 영광스러운 왕실 기사가 검을 휘두르며 싸워보지도 못하고 여자의 손에 맞아 죽는다? 그건 명예고 뭐고 없다. 기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개죽음일 뿐이었다.
특히 공주의 주무기는 몽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두 기사의 시선이 공주의 옆에 세워져 있는 마법 지팡이와 공주의 손을 오고 가며 여전히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정원의 한쪽. 사람들의 시선이 가지 않는 곳에서 아이네스를 지켜보는 눈의 주인이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리고 있다.
“뭐 대단한 것이 있다고 이렇게 경비가 삼엄한 거야? 관찰하기가 어렵잖아! 게다가 이 덩굴! 머리 망가지잖아!”
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며 입을 여는 엘라드였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붙은 마른 덩굴 조각을 떼어내더니 다시 아이네스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상한 공주님, 미안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결혼하게 된다면 제가 원하는 대답을 영영 찾지 못할 듯해서요. 저의 궁금증이 풀리는 날 그 소문을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가능하다면요.”
아이네스가 들었다면 비명을 지르며 그녀가 시전할 수 있는 최대의 마법을 날릴 소리를 하며 엘라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런데 부축을 받았다지만 걸어간 자가 있다고? 소문이 약한가? 흐음. 또 무엇을 더 붙여서 소문을 만들어야 하나?’
그날 이후 엘라드가 직접 본 것부터 시작해서 그의 능력을 이용해 알아낸 아이네스의 종적에 그동안 여행을 하며 보고 들은 많은 것을 섞어서 소문을 만든 엘라드는 한 달 동안 열심히 퍼뜨리고 다녔다.
‘저 공주님이 시집갈 만한 곳 중에 아직 소문이 흘러가지 않은 곳이 있나?’
한참을 생각하던 엘라드는 발견했다는 듯이 방긋 웃더니 아이네스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며 다시 서서히 몸이 사라져갔다.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본 아이네스는 유심히 살펴도 특별히 이상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 아이네스에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 6클래스의 마법서는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 운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6클래스의 마법을 마음껏 사용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보통의 마법사들은 계속 마법을 시전해 보며 그 속에서 마법 수식을 이해한다. 자신이 1클래스와 2클래스였을 때 그랬고 스토레무 경의 설명도 똑같았다.
그래서 다음 클래스에 대해 이해되기 전에 충분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먼저 생기는데 지금 아이네스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마법 수식을 풀기도 전에 먼저 떠오르는 풀이와 해답은 6클래스의 마법을 이해해주도록 도와주었다. 이미 이론으로는 6클래스의 마스터가 된 아이네스는 중얼거렸다.
“호흡법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어느 때인가는 6클래스의 마스터 급의 마나를 모을 수 있을 거야.”
5클래스의 마스터들은 보통 6번째 마나 고리가 반쯤 완성되어 있는 상태라 하였다. 그렇기에 6클래스의 마법에 도전이 가능하다.
아이네스가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을 맴돌고 있는 마나를 확인해 보니 6번째의 마나 고리가 가느다랗게 느껴졌다.
다시 눈을 뜬 아이네스는 6클래스의 마법서의 가장 뒤에 있는 7클래스의 마법을 살펴보았다.
왕궁의 수석마법사인 스토레무 경도 아직 시도해 보지도 못한 7클래스의 마법들이 몇 개 실려 있었다. 아이네스로서는 도전해 보고 싶은 내용이었고 만일 시전을 해본다면 구현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마나로 이것을 시도하면 마나 고갈로 실행조차 못 해보고 쓰러질 것이다. 마나석이나 마법진으로 해결될 만한 마나량이 아니었다.
그리고 낮은 클래스의 마나 고갈은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 치료도 가능하지만 7클래스의 마나 고갈은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갈지도 몰랐다.
만일 살아난다고 해도 다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마나가 충분히 늘어난다면 좋을 텐데.”
아이네스의 목소리는 잔잔하고 조용히 정원에 흘러갔다.
연무관으로 돌아온 무혼은 혈랑검법의 검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습하고 있었다.
- 무혼 경, 잘 지냈나요?
- 아이네스 소저, 안녕하십니까?
- 어제도 깨끗하게 씻었죠?
- 무, 물론입니다. 검에 걸고 한 맹세인데 결코 어기지 않습니다.
‘씻지만 않아봐라. 내가 받는 설움을 다 떠들 테니까!’
아이네스가 속으로 생각하자 무혼은 알 수 없는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네스 소저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같이 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혼자 생각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저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원하면 되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두 사람의 대화는 한결 원활해졌다.
- 당신의 심장에도 마나가 있으니 이제 마법을 배워보는 것이 어때요?
- 마법…….
확실히 아이네스의 말대로 무혼은 자신의 심장에 있는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네스가 오기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 지식을 이용해 마법을 구현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무혼의 의지에는 심장 옆의 마나가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 저는 마법이 안 되는 듯하였습니다.
- 그럴 리가요? 저는 그 몸으로 마법을 구사했었는데요?
-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마법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네스는 마법에 관해서 설명을 다시 했고 무혼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주문을 외우며 시동어를 나직이 말했다.
“라이트!”
하지만 손끝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 그게 아니에요! 마나를 끌어와야죠.
-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아무래도…….
- 아이참? 이렇게!
아이네스는 순식간에 아이스 볼의 주문을 외며 시동어를 외쳤다.
“아이스 볼!”
그 순간 무혼의 손끝에서 작은 흰색의 파이어 볼이 생겨났다.
- 또 파이어 볼이네. 그리고 왜 이렇게 작지? 맞아. 수정 목걸이를 어떻게 했죠?
- 수정 목걸이?
- 맑고 깨끗한 수정이 있다면 더욱 쉽고 강력하게 마법을 펼칠 수가 있어요.
- 아아, 다음부터는 꼭 가지고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문득 든 생각에 아이네스는 작은 경악성을 내었다.
- 어머, 그러고 보니까…….
- 왜 그러십니까?
- 손에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이네스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마나를 끌어오는 순간 무혼의 감각이 자신에게 전달되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 영혼이 바뀌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해요. 무혼 경, 지금 검술이 가능한가요?
- 해보겠습니다.
무혼은 검술을 펼치고 있는데 또다시 자신의 왼쪽 손이 살짝 들리며 입이 스스로 열리고 있음을 알았다.
“블링크!”
그동안 몇 번 경험했던 일이 다시 일어났다. 무혼은 자신의 몸이 약간의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 이게…….
- 아직은 어색하지만, 검술과 마법을 함께 구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네요.
무혼은 아이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네스는 자신의 수련장에 둔 롱소드를 곰곰이 살펴보고 있었다. 길이 약 75cm에 무게는 약 2kg의 쇳덩어리였다.
“이것을 자유자재로 휘두른다고?”
아이네스가 직접 휘둘러보았다. 하지만 2kg이나 되는 무게의 쇠막대의 끝을 잡고 휘두른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휘둘러지는 롱소드가 손에 전달해 주는 무게감은 아이네스의 몸을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휴, 내 몸으로 돌아오고서는 힘이 많이 늘어난 줄 알았는데…….”
몸이 바뀌었다 다시 돌아온 후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그건 건강해졌다는 점이다.
중원의 호흡법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네스는 잔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몸 자체가 훨씬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몸매가 변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더위와 추위에 둔감해졌고 그 이유가 자신의 배 아래에 느껴지는 기운 덕분인 것을 알고 있다.
아이네스는 다시 검을 들어보았다. 롱소드는 여전히 무거웠지만 무혼은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도 아주 가볍게 다루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배 아래에 느껴지는 기운이 가능하게 해주는 힘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기운이 아이네스의 의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온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오우거의 몸매가 되도록 검을 연습해 볼 수도 없고…….”
- 그냥 살짝 기를 몰아넣으며 들어 올리면 됩니다.
“꺅!”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 아이네스는 곧 머릿속으로 불평을 쏟아냈다.
- 갑자기 그렇게 말을 꺼내면 어떡해요? 놀랬잖아요.
- 미안합니다, 아이네스 소저.
- 이틀 만이네요.
- 예,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다는 게 불편하군요.
- 어느 때인가는 가능해지겠죠. 이제 연습해 봐요.
무혼은 자신에게 느껴지는 아이네스의 내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무혼이 내력을 끌어올리자 아이네스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이지 않는 기운이 일정한 경로를 통해 온몸을 따라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 저의 마나는 움직일 수 있나요?
- 심장에 있는 내력은 아무리 해도 움직일 수가 없군요.
아이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혼의 몸에서 내력을 움직이고자 시도했을 때도 무혼의 내력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무혼은 검술을 펼치며 자신에게 전해져오는 감각에 놀라고 있다. 조금 전까지 그저 보고 듣기만 할 수 있었는데 내력을 끌어올리는 순간부터 손에 잡히는 감각과 서 있는 느낌이 모두 생생히 전달되어 왔다.
4년 전 처음 빙의했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마치 내가 아이네스 소저와 영혼이 바뀌었을 때 움직이는 것 같은데……?’
무혼이 검술을 펼치기 시작하자 아이네스는 마법 지팡이를 쥐고 있는 왼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마나에 자신의 의지를 넣자 내력과는 달리 마나는 아이네스의 의지가 원하는 대로 손쉽게 움직여주고 있었다.
“아이스 볼!”
그러자 마법 지팡이 앞에 서늘한 한기로 뭉친 구가 하나 생겨났고 아이네스가 마법 지팡이를 살짝 흔들자 얼음의 구는 방어 마법진이 새겨진 바위를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퍼엉!
- 아무래도 우리는 많은 것을 연습해야 할 듯하네요.
- 그렇군요.
아이네스와 같은 것을 보고 있던 무혼도 그녀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