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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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29화
029 오기조원(五氣朝元)(2)
우지끈.
쿠쿠쿠쿠쿵.
엘프들의 뒤에 있던 나무는 양강의 칼날을 집중적으로 맞고 줄기의 가운데가 조각이 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날아다니는 양강의 칼날은 여러 나무에 깊숙이 박히면서 불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방어 마법을 펼쳤으나 엘프의 숲의 기운까지 흡수하며 거대하게 펼쳐지는 초식 앞에서 몸을 날리며 피하는 엘프들을 보고 무혼은 호탕하게 한번 웃어주었다.
“오호호호…….”
‘우, 웃음이… 내가 왜 여자 웃음으로 웃는 거냐!’
무의식중에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웃던 무혼은 멍해졌다.
‘이러다 진짜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 나중에 남자와 결혼을 하고 그 남자의 품에 안겨? 으아아악!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황당한 생각이 든 무혼은 불길을 벗어나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휘유, 대단해. 누가 저걸 검술이라고 믿겠어? 그나저나 만년목이 이런 상황에서도 가만있다니… 조금 전에 무혼이 주위의 기운을 끌어올 때도 제지하지 않았다. 만년목.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이미 희미하게 보이는 무혼을 보던 엘라드는 서서히 몸이 옅어지고 있었다.
한동안 동쪽으로 달리던 무혼은 엘라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라드의 실력이면 혼자서도 엘프의 숲을 뚫고 올 수 있을 테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스 씨, 같이 가죠. 여기까지 같이 고생을 하면서 왔는데 버리고 가시다니 섭섭합니다.”
무혼이 고개를 돌려서 보니 어느새 왔는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바짝 따라오고 있는 엘라드가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앞을 보니 유난히 커 보이는 나무가 어렴풋이 보였다.
“아벨, 마인이 마을 쪽으로 향했습니다. 빨리 추격을 해야 합니다.”
아벨은 눈을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엘프의 숲이 불타다니, 그것도 숲의 가장자리가 아닌 숲의 안쪽에서 이런 일이…….”
“아벨, 마인이 도망친 방향에는 마을 아이들과 드워프의 아이들이 있어.”
베레스카의 말에 아벨은 눈을 크게 뜨며 돌아보았고, 베레스카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벨이 급히 주위를 보자 폭발음에 몇몇 엘프들이 달려온 것이 보였다.
“베레스카를 뺀 나머지 정령사들은 불을 끄고 나무들을 보살피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엘프들은 모두 마인을 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벨, 이게 무슨 일인가?”
뒤를 보니 한 엘프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머레이 장로님, 엘프의 숲에 마인이 들어왔습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 엘프의 숲에 마인이라니? 만일 마인이라면 숲이 그자를 거부하고 우리에게 마인이 왔음을 알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붉은 사이한 기운을 내뿜고 화염의 바람검을 가진 마인이었습니다.”
“그보다 빨리 추격을, 아니 먼저 아이들에게 피하라고 알려야 해요. 실프!”
베레스카는 다시 정령 둘을 불러내었다.
“내 친구들아, 저 앞쪽에서 놀고 있을 아이들을 찾아서 그 아이들에게 마을로 돌아가라고 전해주렴.”
베레스카의 의지를 품은 두 실프는 힘껏 날갯짓을 시작했다. 인간계라 불리는 중간계로 소환된 이상 그들도 이곳의 법칙에 따라 직접 날아가야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던 베레스카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빨리 가요.”
아벨이 고개를 끄덕인 후 머레이 장로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다른 엘프들도 몇 명의 엘프들만 남기고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이미 싸운 곳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달리던 무혼은 엘라드가 다시 매직 미사일을 소환하는 것을 보았다.
“실프?”
엘라드가 무혼을 살짝 곁눈질로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예, 우리에게 점점 바짝 따라붙기에. 정령계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앞에도 엘프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더니 엘라드가 앞에 보이는 공터에 내려섰다. 무혼이 뒤따라와서 보니 엘프들과 삼국지의 장비와 비슷한 수염을 가진 난쟁이들이 보였다.
“아이들?”
“키가 작은 종족은 드워프 족입니다. 아직 어린 드워프들이군요.”
엘라드는 담담히 그들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무혼의 눈치를 살폈다. 무혼은 엘라드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아이들을 살펴보니 엘프의 아이들은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마법을 준비하는 듯했고 드워프의 아이들은 작은 손도끼를 들고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자신을 위협할 만한 실력으로 보이지 않자 살짝 웃어 보이고는 엘라드에게 보고 이야기를 했다.
“가죠?”
무혼의 모습에 빙긋이 웃은 엘라드는 그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다시 무혼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마인이 아닌가?”
“붉은 기류를 뿜어내는 자는 중급 이상의 마인의 증표랬는데?”
아이들이 중얼거리며 멍하게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고 있는 동안 아벨과 다른 엘프들이 도착을 했다.
“얘들아, 무사했구나?
베레스카는 다가와 엘프의 아이들을 안아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붉은 마기를 뿜는 마인이 아이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그녀에게는 빛의 신들의 도움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요?”
한 엘프의 아이가 묻자 베레스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숲에 악랄한 마인이 붉은 기를 뿌리며 자신의 동료와 함께 다니고 있단다. 그자가 이 근처를 지났는데 너희들이 그자들과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자 아이들은 서로 멀뚱히 보더니 손으로 무혼이 사라진 방향으로 가리켰다.
“붉고 사이한 기운을 흩날리는 자라면 조금 전에 봤어요. 그는 우리에게 한 번 웃어주더니 그냥 저쪽으로 계속 가던데요?”
그 말에 얼굴을 찌푸린 아벨이 다시 물어보았다.
“붉은 기운이 몸에 흐르는 여자와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남자가 맞니?”
“예.”
“그런데 너희들을 보고 그냥 갔다고?”
“그냥 간 게 아니라 웃어주고 갔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베레스카는 주위의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어둠의 세력에 속한 마인들이 좋은 인질이 될 아이들을 두고 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인이 맞소? 그가 진실로 마인이라면 아이들을 두고 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오만?”
머레이 장로가 뒤를 돌아보니 지금 엘프의 마을에 방문 중인 드워프의 장로 투돌이었다. 아벨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입을 열었다.
“온몸에서 붉고 사이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뼛속까지 마인이 된 자의 증표죠.”
“훔. 그런데 아이들을 두고 갔다. 좀 그자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듯하지 않소, 머레이 장로?”
“그렇군요. 투돌 장로. 짙은 마인의 기운을 가지고 마인답지 않는 행동을 하는 자라, 나도 의외군요.”
“하지만 마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척살 대상입니다.”
“물론이다. 게다가 엘프의 숲을 어지럽힌 자다. 그자를 가능한 사로잡되 불가능하면 죽여서라도 잡아야 된다.”
머레이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벨의 말에 대답을 하자 주위의 엘프들이 무혼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달려갔다.
“어찌 그러시오? 만일 우연히 마인의 힘을 얻은 자라면 어찌하겠소?”
“어차피 마신에게 영향을 받는 자는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고 해도 결국 마인이 되고 마오. 그러니 우리는 그가 힘을 더 키우기 전에 잡아야지요.”
투돌 장로는 혀를 끌끌 차면서 엘프들의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원래 드래곤들과 엘프들은 신에게서 균형을 잡는 종족으로 선택되었었다.
그러나 드래곤들이 신과 마의 전쟁에서 제일 먼저 마신들에게 희생된 후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은 이제 엘프들에게 넘어왔건만, 드래곤에 비해서 엘프들은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
‘드래곤에 비해 가진 힘이 적으니 그런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엘프들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군.’
투돌 장로가 아쉬워 눈길을 던지는 방향에서는 이미 무혼은 엘프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있었다.
‘제길, 내력만 충분해도 밀리지 않는데.’
빠른 경공을 펼치니 계속 내력이 부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운기를 할 곳을 찾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경공을 펼치지 않고서 계속 공격을 받는 이 넓은 숲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던 무혼은 남아 있는 내력을 잘 분배하여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었다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건 무슨 마법이야?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니.’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한 힘에 무혼은 그 힘을 피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힘을 가늠해 보던 엘라드는 혼잡한 틈을 타 사라졌다.
“무슨 생각이냐, 만년목?”
엘라드는 엘프의 숲에서 가장 거대한 나무 앞에 몸을 드러내었다. 항상 미소를 띠던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으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무를 바라보았다.
우우우웅.
엘라드의 말에 대답을 하듯 가지 하나가 떨리며 진동을 만들어냈다.
“제대로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비록 힘이 약해졌다고 하나 너 하나를 소멸시킬 힘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년목은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바라보던 엘라드는 이를 갈듯이 말을 이었다.
“내가 찾는 해답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존재다. 만일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와 네가 품고 있는 엘프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만년목은 이번엔 두 개의 가지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엘라드는 눈에 이채를 띠며 물어보았다.
“넌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또 무엇을 알고 있느냐?”
그러나 엘라드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만년목에서 나온 부드러운 기운이 그를 멀리 밀었기 때문이다.
“너의 약속을 믿겠다. 하지만 나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나 역시 너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러줄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무혼을 떠올리며 몸이 사라져갔다.
‘이상한 공주님, 이제 여행이 끝날 시간인가 봅니다.’
무혼이 엘프들의 저항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정신없이 몸을 피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마법들과 함께 막아서는 자들이 있었다.
“이자들은 미라크네의 기사들……?”
무혼은 검을 다시 우산에 넣고서 그들을 뿌리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기사들도 단단히 결심을 했는지 큰 방패로 무혼의 앞을 막으며 버티고 있었다.
“네 이놈, 공주님의 몸에서 나와라!”
아이네스가 사는 별궁의 경비조장이라는 작자가 나타나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또 저놈이군…….’
퍼퍽!
갑자기 방패의 한쪽이 무너지면서 엘라드의 모습이 보였다. 무혼은 무너진 곳으로 몸을 날려 빠져나왔다.
“공주님의 몸에서 나와라?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
엘라드가 황당하다는 듯이 보자 무혼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앞을 막는 자들을 향해 우산을 휘둘러가며 뛰어들었다.
‘조금 전의 그 녀석을 보니 왕궁의 추적대가 틀림없군. 어? 저자는 처음에 나에게 그냥 맞아준 자 같은데?’
9별궁 경비기사 노먼은 왕궁에서 쓰러지고 난 후 경비대장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경비대장의 말은 공주에게 맞아 쓰러질 것이 아니라 공주를 제지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제대로 된 충성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 노먼은 추적대에 뽑히면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공주를 제지하리라 굳게 결심을 하고 있었다.
지금 노먼 앞으로 무혼이 달려오고 있었다. 노먼은 검과 방패를 다시 한번 꽉 쥐고 방패를 앞세우며 두 다리에 힘을 주며 굳건히 버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무혼은 우산을 휘둘러 노먼의 얼굴을 노렸다. 노먼은 주저하지 않고 우산을 향해 검을 휘둘렀으나 무혼의 우산은 노먼의 방패를 치고 그 공간 사이로 몸을 슬며시 내밀었다.
‘허억, 공주님이 내 검에 맞는다!’
노먼은 다른 생각을 할 것 없이 바로 검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앞에서 무혼이 몸을 돌리며 노먼의 목을 향해 우산으로 후려쳤다.
‘으윽, 그때와 똑같아. 살살 때리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