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24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24화
024 블랙 블러디(1)
날이 밝자 엘라드가 길드 마스터에게 동쪽의 지도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줄 것을 요구했고 길드 마스터는 기쁘게 응했다.
“오늘 밤까지는 모두 준비가 될 것입니다.”
엘라드는 갑자기 동쪽으로 가겠다는 무혼이 이상했지만, 도둑 길드에 머물게 되면서 그가 궁금해하는 무혼의 비밀을 알기 어려웠기에 기쁘게 동의했다.
‘여행을 다니게 된다면 알게 될지도. 그런데 네스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 것이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엘라드와 무혼의 기분에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 어두운 밤이 찾아왔고 잘 준비를 하던 엘라드의 감각에 이상한 느낌이 잡혔다.
‘이 위화감은 뭘까? 이곳에 있으면 안 될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은데?’
엘라드는 느낌이 이상하자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엘라드는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어. 이건…….’
“클레어보얀스(Clairvoyance : 선택한 장소에서 거리 내의 모든 것을 마음으로 보게 해주는 마법)!”
그러자 건물 안에 가득 찬 검은 안개가 엘라드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흑마법의 다크 참 미스트(Dark charm mist : 타락한 매혹적 환상을 만들어주는 안개). 대체 누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건 것이지? 그것도 빛의 왕국 수도에서 이런 대단위 흑마법을 펼치다니?’
눈 앞에 펼쳐진 안개는 엘라드가 도둑 길드에 들어올 때 사용했던 마법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다크 참 미스트였다. 일정 공간을 매혹시키는 이 안개 마법은 약한 마법사도 펼칠 수 있지만, 영향을 미치는 공간이 작다는 것과 강한 충격에 깨지기는 쉬워 잘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로 넓은 공간에 펼쳐진 것이라면 최소한 엘라드와 맞먹는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눈매가 매서워진 엘라드는 얼굴을 굳히며 품에 손을 넣어 하프를 꺼내 쥐고 서서히 걸음을 옮기며 하프를 뜯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개가 하프의 옅은 소리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고 어느 순간 격렬하게 연주하자 하프에서 나오는 소리에 거세게 부딪힌 안개의 흑마법은 큰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콰콰콰쾅!
그리고 눈앞에 흑의를 입은 사내들이 보였다.
“마법이 깨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폭발이 일어난 것이지?”
“네놈들은 누구… 컥!”
도둑 길드에 있던 길드원들은 폭발 소리와 함께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을 보고 놀라서 물었으나 그들이 휘두른 검에 몇 명의 목이 벌써 바닥에 뒹굴었다.
“적이다!”
곧 길드원들은 숏소드를 뽑고서 길드 건물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하여 습격하기 시작했다.
“큭.”
검은 사내 중 한 명이 짧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자신의 다리를 숏소드가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다리를 부상시킨 길드원의 목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그 목을 노려보던 사내는 몸을 돌렸지만, 자신의 목에 박혀 드는 차가운 금속을 느낄 수 있었다.
“끄르르륵.”
공기가 빠지는 소리를 확인한 길드원은 다시 소파 뒤쪽으로 몸을 날렸고 그를 쫓아온 다른 검은 사내가 소파를 찼으나 그 아래에는 작은 통로가 하나 보였다.
“무엇을 하는 것이냐? 빨리 이놈들을 처리하고 그 여자를 찾지 못하겠나?”
‘흑마법의 도움을 받는 저자들은 누구지?’
2층의 구석에 몸을 숨긴 채 1층의 싸움을 지켜보던 엘라드는 하프의 현 위로 왼손을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으악!”
“마나탄이다.”
“마법사가 있어! 빨리 찾아내서 없애라.”
엘라드의 마나탄이 날아들자 흑의의 침입자들은 즉시 뛰어올랐고 뒤를 따라오던 침입자들은 마법을 날렸다.
‘숫자가 너무 많다. 평소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놈들을 다 처치하겠지만, 저들이 소문의 귀족영애 납치범들이라면 노리는 대상은 아이네스 공주…….’
엘라드는 품속에서 흰 돌들을 꺼내어 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쫓던 침입자들이 흰 돌 옆을 지나갈 때 흰 돌은 붉게 물들더니 마나를 뿜으며 폭발을 했다.
콰콰쾅!
‘응? 뭐야?’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무혼이 폭발 소리에 몸을 일으켰을 때 방문을 부수면서 엘라드와 길드 마스터가 뛰어들었다.
무혼은 머리에 놓인 우산을 잡으면서 몸을 일으켰고 엘라드는 다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어떤 놈들이 도둑 길드를 습격했어요. 빨리 몸을 피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무혼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사급의 실력자들과 마법사들이 여러 명이 몰려왔어요. 은밀히 침투하려고 했었던 모양인데 저에게 들키면서 시끄러워졌죠.”
‘왕실의 추격대인가?’
그것을 보고 있던 길드 마스터는 무혼과 엘라드에게 배낭을 두 개 주었다.
“동쪽의 지도와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입니다.”
“장난질해두진 않았겠지요?”
엘라드가 뾰족한 음성으로 이야기하자 길드 마스터는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다시 맞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메레디스는 무혼과 엘라드를 보며 속으로 생각을 했다.
‘좀 잡혀가지 않으려나? 하지만 그러다가 놓치거나 지금 내 마음을 안다면 다시 채찍을 휘두르겠지? 이번에는 날 죽이려고 할 게 틀림없어.’
“안전한 통로가 있으니 그쪽으로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서재에서 책 3권을 뒤집어 꽂으니 책장이 살짝 밀렸다.
‘전형적인 비밀통로군…….’
“이쪽으로!”
무혼과 엘라드는 길드 마스터를 따라 달렸다. 지하 통로는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안은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져 있었다. 메레디스를 따라가니 길드 본부가 저 멀리 보이는 집으로 빠져나왔다.
“제가 안내해 드릴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큰 폭발음으로 수도경비대가 몰려들 테니 저도 이만 몸을 피해야 할 듯합니다.”
메레디스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생각했다.
‘제발 가서 다시는 오지 마라.’
무혼과 엘라드도 도둑 길드에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무혼은 혈난보를 펼쳐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를 엘라드가 지지 않는 속도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메레디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체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지? 기사들이 달리는 속도와는 아예 상대가 안 되잖아?”
“제길, 어떻게 된 거야? 최대한 조용히 공주를 잡으랬잖아?”
검은색으로 칠해진 가죽 갑옷을 입은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다른 검은 로브를 입은 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게 도둑들은 은밀히 처리가 가능했는데 갑자기 어떤 놈이 나타나 공격을 하는 바람에…….”
제물 납치를 위해 파견된 암흑의 마법사 자나르는 자신이 겪은 일을 믿을 수 없었다.
3명의 마법사가 펼친 다크 참 미스트로 도둑들을 현혹하여 조용히 들어왔는데 난데없이 백마나의 파장이 마법을 깨트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깨트린 자를 찾아낸 듯했으나 그는 마나탄을 날리고 곧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공주가 머물고 있는 것을 파악된 방에 갔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혹시 목표물인 공주가 깨트린 것 아냐?”
“아닙니다. 공주는 빙계 계열의 마법사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주라 하더라도 저희 세 명이 마법진을 이용해 펼친 다크 참 미스트를 깨트리긴 어렵습니다.”
“4년 전에도 네 말이 틀렸었잖아. 그래서 콘웰의 목이 날아갔었다는 거 기억 안 나?”
“그게… 그 이후로도 공주는 검을 잡아본 적이 없다는 정보대의 이야기였습니다.“
“뭐야? 그럼 내가 잘못 봤다는 이야기야? 응?”
“아, 아닙니다.”
자나르는 정보대에서 받은 정보를 떠올려보았다. 기사 콘웰의 목이 날아간 뒤로 정보대를 뒤엎기 위해 찾아간 그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이네스 공주가 설화의 가루를 받게 되었고 그 때문에 신성력이 아이네스 공주의 몸에 가득하다는 정보였다. 하지만 공주는 검을 잡아본 적이 없었고 빙계 마법만 다루고 있다는 정보에 고개만 갸웃거렸고 그 이후로도 정보대가 끊임없이 자료를 모았지만 아이네스 공주는 검을 잡는다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었다.
신성물을 몸에 받아들인 처녀의 몸이기에 다른 제물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그녀가 가출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다시 공주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오늘 도둑 길드를 찾아냈다. 그런데 다른 훼방꾼 때문에 또 놓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꼭 잡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든 움직임을 봉쇄시켜 볼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으란 말이다. 이번에 공주를 놓치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불명예를 안게 돼.”
“알겠습니다.”
그때 다른 검은 옷의 사내가 그들에게 다가섰다.
“베르노 님, 정보대에서 공주의 행방을 찾았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래? 빨리 가자.”
베르노와 2명의 고급 기사는 안내하는 자를 따라 재빨리 뛰기 시작했다.
달리고 있는 무혼의 앞에 갑자기 어떤 자들이 나타났다. 기사급의 실력을 지닌 그자는 공주를 향해 달려오며 힘껏 검을 내지르고 있었다.
‘한 놈이 아니다.’
무혼은 몸을 틀며 자신의 우산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자는 즉시 피하며 무혼에게서 떨어졌고 다른 자들이 무혼을 에워싸면서 무혼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움직임이 기민하고 합격술이 대단한 자들인데?’
정체를 알 수 없어 우산만으로 상대하던 무혼의 앞에 다른 자가 막아섰다.
“마법사치고는 검이 아주 능숙하군그래?”
무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이 몸의 주인이 누군지 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주저하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면 최소한 아이네스에게 호의적인 놈들은 아니다.
“누구냐?”
“훗. 네년에게 빚이 있는 사람들이지. 4년 전에 동료의 목을 날렸지?”
그러자 무혼은 4년 전에 습격을 해왔던 자들이 떠올랐다. 공주의 다리를 베려고 했던 그자들은 무혼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놓쳤던 자들이기도 하다. 그때를 생각하니 무혼은 가슴에서 분노가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죽여주마!”
“웃기지 마라. 네년이 마법사인 것을 안다. 그리고 그때의 검 실력이 대단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검을 수련했…….”
그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무혼이 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무혼을 중심으로 붉은 기운이 감싸며 눈이 붉게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와 똑같아… 네년 마인이냐?”
“아니.”
‘지금은 내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 이 여자는 어떻게든 나와 연결이 되어 있어. 다 끝장을 내주마. 군랑만소!’
무혼이 검을 뽑으며 구결을 운용하자 무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기류가 얇은 칼날의 안개가 되어 주위에 몰아쳤다.
“무슨 이런 검술이 있어?”
베르노는 당황했다. 그도 검기나 검강은 안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검기와 검강은 검을 휘감으며 뿌려지는 한 개의 칼날이다. 기사인 그는 이제껏 대륙의 검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여러 줄기의 검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으악!”
“헉!”
그의 주위에서 같이 무혼을 압박하던 부하들이 검기를 막아내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무혼의 주위에 휘몰아치던 기류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부하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마법을 날려!”
무혼의 검을 간신히 막은 베르노는 소리를 질렀다.
“파이어 볼!”
“체인 라이트닝!”
“윈드 커트!”
무혼을 노리며 마법들이 날아오자 무혼의 혈랑검법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엘라드의 입이 열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보호할지니, 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