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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남녀 21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10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이계남녀 21화

021 도둑 길드와 탈혼흑림(2)

 

 

 

 

 

그날 밤 메레디스는 머리 위에 그의 전용 무기인 채찍을 올려두고 누워 있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길드의 영역을 침범한 두 여자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방문이 살짝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밀통로 외에는 유일한 출입구인 방문을 길드원들이 길드 마스터의 허락도 없이 열릴 리가 없다. 오른손을 올려 채찍의 손잡이를 잡은 메레디스는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더욱 들어오기가 쉽죠?”

 

끄덕.

 

무혼은 솔직히 감탄을 했다. 마법사들의 이상한 마법만 조심한다면 상대하기는 쉬울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엘라드를 보고 있으면 자신의 생각에 의심이 갔다.

 

자신이 보기에는 엘라드가 약간 희미한 안개를 길드 본부에 채웠을 뿐인데 두 사람이 통과하고 있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다른 건물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끄덕.

 

물론 알고서 고개를 끄덕인 것이 아니라 그냥 엘라드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무혼이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자 시선이 느껴졌다.

 

“흐흐흐. 네년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는 거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온 이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눈앞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자가 일어서며 채찍을 휘둘러왔다.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아주 정교한 채찍의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실력으로 안 되지…….’

 

그가 휘두르는 채찍을 보자 귀혼사편(鬼魂蛇鞭) 여검형 교두가 생각났다. 그의 사편은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뱀과 같았다. 무혼은 검술의 변화를 배우고자 그에게서 채찍을 다루는 방법을 일정 수준까지 배웠었다.

 

‘잘 다루긴 하지만 나보다도 못한 솜씨군.’

 

자신을 향해 휘어져 오는 채찍의 끝을 우산으로 쳐내고 몸을 숙여 연속 공격을 피했다.

 

휘리릭.

 

다시 가슴으로 들어오는 채찍을 쳐내고 방위를 밟으며 그의 몸쪽으로 파고들자 채찍의 머리와 중간 부분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채찍의 머리를 쳐내면서 그 머리를 따라가니 채찍이 자신을 벗어났다. 더욱 바짝 붙은 무혼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채찍의 중간 부분을 한 번 더 튕겨낸 후 길드 마스터의 배를 힘껏 후려쳤다.

 

“크악!”

 

그것을 본 엘라드가 입을 열었다.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수법과 몸에서 힘이 빠지게 하는 수법을 걸어두시면 좋을 듯합니다.”

 

무혼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길드 마스터의 아혈과 마혈을 짚었다.

 

“이게…….”

 

메레디스는 그의 목소리가 막히고 힘이 빠지자 눈을 크게 뜨며 무혼과 엘라드를 번갈아 보았고 그의 머리에서는 부하들의 보고보다 더욱 위험한 자들이라는 위험신호가 울렸다. 그렇게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그에게 엘라드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며칠을 머물까 합니다. 그래서 길드 마스터가 우리의 편의를 봐주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들은 메레디스는 코웃음을 쳤다. 비록 싸움에서 졌다고는 하지만 죽으면 죽었지 그런 요구에 응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메레디스의 얼굴을 살피던 엘라드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하프를 꺼냈다.

 

“의지가 꽤 강하군요.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무혼의 눈에는 메레디스의 채찍이 보였다. 그는 엘라드의 옷깃을 잠시 잡은 뒤 채찍을 주워들었고 채찍에 내기를 넣자 무혼의 몸과 채찍에 희미한 붉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긍지가 강한 자는 먼저 그자의 주무기로 의지를 꺾어야 다루기가 편해진다. 자기가 다루는 무기의 위력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검을 겨루며 가르침을 주고 있는 귀룡일검 장대암이 종종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들고 있는 채찍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메레디스에게 슬쩍 웃음 지어 보이고는 자신이 배운 채찍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기가 실린 채찍은 전 주인이었던 메레디스의 온몸에 강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엄청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위주로 계속 휘둘러가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채찍을 휘두르던 무혼은 잠시 멈추고서 몸을 돌리자 메레디스는 비몽사몽 한 눈빛으로 무혼을 보았다. 그의 눈에 탁자 위에 있는 물컵의 물을 마시고 있는 무혼이 보였다.

 

메레디스는 줄어드는 물의 양만큼 그의 간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물을 다 마시면 다시 채찍질이 시작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무혼은 물을 다 마시고 길드 마스터를 내려다보니 순종적이고 애원에 찬 눈빛이다. 무혼은 엘라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메레디스는 그 말을 듣자 필사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자 했고 엘라드는 다시 무혼을 바라보았다.

 

무혼이 아혈과 마혈을 풀어주자 메레디스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엘라드는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메레디스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대단한 요구도 아니고 도둑 길드에 은신처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정도라면 굳이 무시무시한 채찍질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엘라드가 길드 마스터를 붙잡고 이런저런 말을 시작하자 무혼은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앉아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 시간, 무혼의 가족들은 무혼이 사라져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혼아가 돌아오지 않았다니 말이 되오?”

 

공야패는 답답했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무혼이 그대로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혼의 친구들을 찾아 물어보았지만, 어제 만났다는 친구는 없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그때 무혼의 가장 친한 친우들인 천월강과 마진풍은 마을 여러 곳을 뛰어다니며 무혼을 찾고 있었다.

 

“이봐. 그곳에도 없는가?”

 

“그런 듯하네. 대체 무혼 이 친구 어디로 간 거야?”

 

그들은 객잔 근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고개를 돌려보니 능미류가 궁금하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능 소저, 그게 무혼이가 어제 집을 나섰다는데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가 않아서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을 들은 능미류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어제 그녀가 만난 무혼이 천마화산으로 간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소협들과 함께 천마화산으로 간 게 아닌가요?”

 

“천마화산?”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으나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능미류에게 마진풍이 다시 물어보았다.

 

“능 소저, 무혼을 만났었소?”

 

“예, 천마화산으로 간다고 했었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즉시 천마화산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걸 보던 능미류도 그들을 따라 천마화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천마화산의 화구호 쪽으로 다가가니 바닥에 주저앉아 운기를 하고 있는 무혼이 보였다.

 

“무…….”

 

“이보게, 잠깐. 지금 운기 중이야. 일단 기다리는 것이 좋겠어.”

 

10여 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자 그들은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혼을 중심으로 흐르는 하얀 기류가 심장 쪽에서 몰려들며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신공을 익히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심장 쪽으로 모여서 소용돌이치는 흰색의 기류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천월강이 마진풍을 보고 말했다.

 

“여기서 무혼을 찾았다고 무혼의 집에 알려주는 것이 좋을 듯하네.”

 

“알겠네.”

 

마진풍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무혼의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천월강은 같은 자리에서 능미류와 함께 무혼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네스는 운기가 끝나자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의 운기에서 겨우 3클래스 유저급의 마나 고리가 생긴 것이다.

 

‘황토인들은 마법을 모르나? 하긴 마법이 아닌 기묘한 술법들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듯했어.’

 

하지만 5클래스 유저였던 본래의 몸을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아이네스였다.

 

‘따가워.’

 

이틀 동안 무혼의 몸이 냄새가 난다고 물속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몸을 문질러댔다. 그 때문인지 지금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따가웠다.

 

‘하지만 냄새 때문인지 씻지 않으면 잘 수가 없는걸.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쩌지? 무작정 나오기는 했지만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러야 할 텐데?’

 

어제 꿈에는 자신의 몸이 나오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몸을 걱정하다 꾸게 된 꿈으로 느껴지자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만 머물 수 없으니 여관을 정해서 지내야겠어.’

 

노숙을 해봤다고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노숙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지 많이 느꼈다. 생각을 마친 아이네스가 일어나서 주위에 있던 마법 트랩들을 캔슬하자 아주 옅은 흰색의 기류를 날리며 사라졌다.

 

“안녕?”

 

‘응? 누구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이네스가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들이었다.

 

“너희 집에서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뭐해?”

 

아이네스는 이제야 기억이 났다. 앞에 있는 여자는 어제 마을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던 여자였고 그 뒤의 남자는 무혼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아…….”

 

그렇다고 특별히 해 줄 말이 없던 아이네스는 그냥 살짝 웃으면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능미류와 함께 아이네스에게 다가간 천월강이 아이네스의 등을 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봐, 친구. 자네 때문에 자네 집과 친구들이 얼마나 마음고생 한 줄 아나? 진풍이 자네 집에 알렸으니 곧 가족들이 올 걸세.”

 

아이네스는 남자가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고 그것을 보고 천월강은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이틀 전 생일 때도 유쾌하게 자신을 대하던 친구가 갑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천월강과 능미류를 가만히 보던 아이네스는 가족들이 온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서쪽에 깊은 계곡이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아이네스는 마음속으로 캐스팅을 시작하며 계곡 쪽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곳이라면 이들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옆에 있던 두 사람은 갑자기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보고 이유를 몰라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천월강이 무혼에게 물었다.

 

“이봐, 친구. 어딜 가는 건가?”

 

하지만 아이네스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 걸었다. 천마화산의 분지 끝에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 끝에 도착하자 아이네스는 시동어를 외쳤다.

 

“플라이!”

 

아이네스를 가만히 보고 있던 두 사람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네스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경공이 아니었다.

 

“어? 어?”

 

그들이 놀라움에 보고 있는 사이에 아이네스는 절벽을 건너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천월강은 경공으로 친구를 잡을까 했지만, 아래는 깊은 절벽이었고 그에게 그 절벽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이 없었다.

 

“어이 무혼, 어디를 가는 건가?”

 

두 사람이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아이네스는 절벽의 반대쪽에 도착을 하자 숲 사이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곳을 망연자실해서 바라만 보던 두 사람은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공야패와 공야소영 그리고 마진풍과 다른 친구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혼아는 어디 있느냐?”

 

천월강은 손을 들어 절벽의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러자 공야패의 두 눈이 좁혀지며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냐? 혼아가 왜 저리로 갔다는 게냐? 게다가 이곳에서 저곳까지의 거리가 얼마인데 어떻게…….”

 

“날아서 갔습니다, 아저씨.”

 

천월강의 황당한 소리에 공야패가 멍하게 보고 있으니 능미류가 확인을 시켜주었다.

 

“천 소협의 말대로예요.”

 

“날아서…….”

 

그가 알고 있는 한 경공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다. 혹시 능공허도(凌空虛渡)라도 익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넘어갈 거리가 아니었다.

 

“혹시 능공허도라도 익힌 것인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몸을 띄우더니 날아서 넘어갔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이 절벽 건너편을 보던 공야패는 천월강에게 이야기를 했다.

 

“무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자네들에게 부탁을 좀 해야겠네. 무혼을 데려와 줄 수 있겠나?”

 

공야패의 얼굴을 보며 천월강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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