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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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9화
019 엘라드(3)
콰콰쾅!
“우아아악.”
옆을 보니 또 다른 호위가 뒤로 튕겨 나갔다. 검이 휘어지고 얼굴이 폭발로 까맣게 탄 것을 보니 날아온 마나탄을 무리해서 막다가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레버에트의 앞에는 엘라드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당신은 치러야 할 대가가 많은 몸입니다.”
굳은 얼굴로 무혼과 엘라드를 보던 레버에트는 뒤로 물러서더니 고함을 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마녀들이다. 마녀들이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무혼이 혈난보를 펼쳐 레버에트를 따라가 아혈과 마혈을 짚자 레버에트는 힘없이 쓰러지며 입만 벙긋벙긋하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호, 아주 좋은 기술이네요?”
레버에트는 자신의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엘라드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짓더니 그의 오른손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아주 짜릿할 겁니다.”
레버에트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엘라드를 쳐다보며 속으로 절규를 했다.
‘야이, 빌어먹을 마녀년들아!’
그러자 엘라드가 귀를 긁적이며 대답을 했다.
“당신, 우리 욕하고 있죠? 그러면 당신에게 더욱 좋지 않습니다.”
엘라드가 천천히 레버에트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무혼은 하늘로 눈을 돌렸다. 꽤나 긴 하루를 보낸 무혼은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같은 시각. 아침에 일어나 운기를 마친 아이네스는 무혼의 방에서 저녁에 있을 대련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검술 대련?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다’였다. 검술 대련을 하게 된다면 무혼의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 뻔했고 자신에게 좋지 못할 상황이 될 가능성이 컸다.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그리고 꿈에서 본 자신의 몸이 지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네스를 불안하게 했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악한 흑마법에 의해서 영혼이 이 몸으로 밀려난 것일 수도 있다.
“그냥 꿈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내 몸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이 몸의 주인과 영혼이 바뀐 것일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명쾌한 대답을 끌어낼 수가 없었다. 한참을 더 고민하던 아이네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무혼의 아버지가 오기 전에 이 집을 나가는 게 좋겠어.”
결정을 내린 아이네스는 무혼의 짐과 벽장에서 열어보며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물건들을 모았다.
그중에서 아이네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한 개의 수정 목걸이였다. 마법 지팡이 대신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수정의 모습이 아이네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맑고 좋은 수정이라 다행이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마법을 시전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어.”
그리고 은자 몇 닢도 찾아낸 아이네스 공주가 짐을 챙기고 방을 나오자, 마당에서는 무혼의 어머니와 누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혼아야, 어딜 가니?”
중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중원의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네스는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아무리 많이 들어 이해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과는 달랐던 것이다. 잠시 궁리를 하던 아이네스는 간신히 한마디를 했다.
“밖에…….”
“밖에 나가게? 어제도 네 친구들과 같이 마셨잖아? 오늘은 그냥 집에 붙어 있는 것이 어때?”
소영의 말을 듣던 무혼의 어머니는 고개를 흔들며 이야기했다.
“소영아, 저 나이 때는 친구들과 사이를 돈독히 해야 하단다. 혼아야, 조심히 다녀오너라.”
이야기가 수월하게 넘어가자 무혼의 어머니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한 아이네스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은 무혼이 천마연무관으로 가기 위해 자주 걸었던 길이기에 아이네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마을에 도착하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혼…….”
‘누구지?’
아이네스는 기억에 없는 여자가 부르자 잠자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말을 건네는 그 여자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여자는 누구지? 누군데 이렇게 친한 척하는 거야?’
4년 전에 잠시 본 능미류를 아이네스가 기억할 리가 없었다. 그냥 막연히 무혼을 좋아하는 여자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자 온화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능미류는 마을에서 무혼을 보자 반가웠다. 게다가 최근에 그녀가 무혼을 만났을 때 그가 혼자 있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혼을 보며 처음 천무연무관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저 미소, 그때와 똑같아…….’
능미류가 무혼의 미소가 반가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능미류가 들은 소문의 내용이 무혼은 귀접연무관에서 수련에만 몰두하여 여자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하고 있으며 그런 무혼이 지금 능미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무혼의 미소가 그녀가 무혼을 처음 만났을 때 본 그의 미소를 기억나게 해 준 것이다. 그녀는 일반 수련생이라는 무혼을 가소로운 눈빛으로 봤지만, 그는 그녀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언젠가는 천마맹호단 너희들을 다 뛰어넘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띄우는 무혼의 미소가 마음에 들어 계속 유심히 보기 시작한 그의 모습은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능미류에게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천마연무관에서 누구보다 강한 열의로 수련에 임하던 어렸을 때의 무혼의 입가에도, 몇 해 후 내공의 많은 차이에도 검술 실력으로 천마맹호단원을 꺾었을 때의 입가에도 똑같은 미소가 있었다는 것을 능미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일반 수련생은 절대로 맹호단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해 준 무혼에게 언제나 그녀의 시선이 향했고 어느덧 그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어딜 바쁘게 가는 거야?”
‘꼬리 보인다, 이 기지배야. 혹시 이 기지배가 무혼의 애인인가?’
그 생각에 미치자 아이네스는 왠지 심술이 났다. 꿈을 통해서만 봤지만, 은근히 마음에 들던 무혼이 다른 여자를 애인으로 두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유 모를 배신감이 들고 있었다.
게다가 잘난 미모(?)의 자신도 아직 애인이 없는데 자신보다 조금 못생겼다고 주장하고 싶은 이 여자가 먼저 애인이 생겼다는 것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말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네스는 그냥 손으로 앞쪽을 가리킬 수밖에 없었다.
무혼의 손길을 따라 눈을 돌린 능미류는 그 방향에 무혼이 가끔 가는 곳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천마화산에서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끄덕.
“그럼 안 되겠네. 다음에 또 봐.”
‘뭐가 안 되고 뭘 또 보니?’
속으로만 중얼거린 아이네스가 다시 발걸음을 돌리자 뒤쪽에서 그를 계속 보던 능미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드디어 말을 건넸어. 그리고 내 말에 웃어주었어. 음~ 귀접연무관으로 들어가는 날이 빨리 오지 않으려나.”
무혼이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를 대하자 능미류는 즐거운 마음으로 흑야오화가 모이기로 한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능미류와 헤어진 후 계속 걷고 있는 아이네스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또 있었다.
“훗. 대단하신 분이 가시는군?”
‘왜 이렇게 말을 거는 인간들이 많지?’
아이네스는 속으로 불평을 하며 옆을 보니 얍삽하게 생긴 화도환이 비웃음을 날리며 보고 있었고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이 은근히 불편해졌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함부로 대할 수는 없어 담담한 얼굴로 보고 있으니 화도환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무혼, 나 화도환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그때 네가 무슨 술수로 우리를 이겼는지는 몰라도 조금만 기다려라. 네 뻔뻔한 얼굴도 내가 귀접연무관에 가는 날 무너질 것이다.”
‘이놈은 뭐지? 생기기는 어디 족제비 사촌같이 생긴 놈이…….’
그렇지 않아도 즐겁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는 아이네스는 옆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 화도환을 보며 열이 뻗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가려고 했지만 화도환은 말을 그만두지 않았다
“응? 그러고 보니 검이 없군. 네놈이 어쩐 일로 검을 두고 다니는 것이냐?”
더 이상 화도환에게 흥미를 잃은 공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무혼, 겁먹은 계집애처럼 도망가냐?”
순간 아이네스는 화가 났다. 잘나 보이지도 않는 야비한 미소의 남자가 여자를 비하하는 말을 하자 그 말을 몹시도 싫어하는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하지만 싸우자니 마나가 거의 없는 마법사인 자신이 무사를 상대로 싸울 방법이 없었다.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거냐? 하찮은 일반 수련생 주제에…….”
화도환은 다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서늘한 느낌을 주는 아이네스의 눈길이 노려보자 기묘한 분위기가 그를 옭매여 왔고 그는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흥-.”
콧방귀를 뀌며 걸어가는 그녀를 막연히 바라보던 화도환은 몸을 떨며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중얼거린다.
“저… 저 눈빛은 뭐지? 꼭 여자가 노려보는 것 같았어. 으으… 그런 눈빛을 보내다니. 저 자식의 정체가 뭐냐? 그리고 내가 왜 무혼을 보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뛴 것이지?”
무혼에게서 알 수 없는 여성의 느낌을 받은 화도환은 몸을 떨며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서, 설마 내가 무혼을… 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화도환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남자를 반려자로 할 순 없어. 난 여자가 좋아.”
큰 소리도 내지 못하는 그의 목소리는 처량하게 울렸다.
작은 마을이라 이곳의 객잔에서 머물면 곧 잡힐 것 같아서 아이네스는 계속 길을 걸었다. 마을을 뒤로하고 한동안 걸어가던 아이네스는 이 길도 자신의 눈에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마화산으로 가는 길이구나!”
무혼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 오르던 산이었다. 특히 한 번 본 천마화산의 화구호(火口湖) 주위의 풍경은 자신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었다.
“그곳을 다시 보고 싶어,”
아이네스는 걸음을 재촉해 천마화산에 도착했다. 화구호에 가까이 다가가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기억 속의 풍경과 같이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디텍트 마나를 시전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좋아라. 화사한 꽃들과 은은한 분위기. 그리고 아름다운 마나들까지. 게다가 산 내음과 꽃향기도 가득하고…….”
이곳에서 노숙하기로 결심하고 마른 나무를 모으기 시작했다. 마법 수업을 받으면서 몇 번의 노숙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시중을 드는 사람이 없어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하지만 주위의 풍경은 그 수고가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