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4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4화
014 당신의 몸과 나의 영혼(2)
고통이 끝나자 눈을 뜬 무혼은 자신의 눈앞에 가끔 보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사이에 잠이 들었나?’
천장에 세밀히 새겨져 있는 여러 가지 조각들이 화려한 색깔로 칠해져 있는 것이 무척 화려했다. 무혼이 알고 있는 아이네스의 방은 자신의 집보다 더욱 크다. 침대만 해도 자신의 방의 반을 차지할 정도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 누워서 뭐… 헙.”
무혼은 놀라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손을 천천히 들어보니 가느다란 여자의 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무혼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켜보았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감촉도 느껴지고 있는 이 몸은 계속 봐왔던 아이네스의 몸이 맞다. 그는 얼굴과 팔을 만져본 후 부들부들 떨며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자신의 몸에 있어서는 안 될 몽클한 것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몸에 있다면 감히 만지지 못할 부분의 감촉이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자 무혼은 몸서리가 쳐졌다.
“어, 어떻게 된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러보아도 공주가 습격을 당한 흔적은 없다. 그렇다면 기절한 것인가?
‘공주의 영혼을 깨워야 내 몸으로 돌아갈 수 있나?’
무혼은 주먹을 쥐어보니 작은 주먹이었다. 눈을 감고 자신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다.
둘째 누나의 주먹 수준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고통이 몰려왔고 무혼은 아픔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나 공주는 다시 깨어날 줄을 몰랐다.
‘후. 이 방법이 안 되면… 무혼아, 너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야 이성적으로 머리를 써서 생각해 봐. 머리를, 머리를… 투두술(投頭術:머리를 날려 공격하는 방법, 박치기)을 써야 하나?’
비단으로 벽을 발랐다고 하지만 대리석의 단단한 벽이라 감히 투두술을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의 육체도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술을 마신 후의 저녁이니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놔두겠지만, 영혼이 여기 있으니 내일 아침이면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 사람들에게 말해서…….’
그러나 그 생각에 문제가 있음을 곧 깨달았다. 여기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혼은 계속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공주가 깨어나지 않고 있음을 말하면 보나 마나 자주 보는 그 이상한 세 노인에게 끌고 갈 것이다.
요상한 주술이 많은 이 세계이니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영혼을 소멸시키고 공주를 깨우고자 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무혼의 머릿속에선 지팡이를 들고 요상한 춤을 추는 대신관 라이노혼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내 영혼이 이 여자의 몸속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노인들에게 내 영혼이 소멸될 수도 있다. 조용히 하루를 보내자 그러다 보면 다시 내 몸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조용히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러다가 다시 내 몸으로 돌아갈지도 몰라.’
다시 침대로 올라간 무혼은 눈을 감고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자 침대 위에서 결가부좌를 취하고서 운기를 시작했다.
‘커헉! 이 여자 극한지기였지?’
예전에 잠시 공주의 몸으로 무공을 펼쳤을 때를 떠올리며 냉혈공으로 운기를 하자 비어 있던 단전에 내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운기를 하고 있으니 문을 살짝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아이네스의 시녀장인 앨리는 문을 두들겨도 반응이 없자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왔다.
‘어머? 또 저런 자세로 명상을?’
가끔 공주가 명상을 즐기는 것을 본 앨리는 한쪽에 있는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무혼은 자신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는 기척이 느껴지자 안심을 하고 계속 운기를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리고 방에 있는 여자를 보자 그 여자는 자신을 보고 싱긋 웃어주었다.
“생일 축하드리옵니다, 공주님. 명상은 끝나셨사옵니까?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숙녀분이 취하실 자세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리옵니까?”
무혼은 변명을 하려고 하였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자신이 필요한 말을 이곳의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떠오르지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사옵니까? 방에서 드시겠사옵니까?”
무혼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예를 취하고 방에서 물러났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냥 고개만 까딱해도 다 해결이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앨리가 작은 상을 들고 왔다. 공주의 자세를 편안하게 잡아주고 침대 위에 상을 올린 후 케이크와 우유를 얹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게 아침 식사인가?’
무혼이 케이크에 손을 대자 앨리가 입을 열었다.
“공주님, 케이크에 손을 대시다니요. 그건 교양 없는 행동이옵니다. 숙녀는 포크와 나이프로 드셔야 하옵니다.”
앨리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무혼에게 다가와 케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앨리의 시중을 받으면서 겨우 아침 식사를 마친 무혼은 푹신한 침대에 좀 더 누우려고 했지만 곧이어 우르르 들어온 시녀들을 보고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들 왜 들어온 거지?’
그러고 보니 오전의 생활은 꿈을 통해서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무혼이 아이네스의 눈을 통해서 본 시간은 항상 오후였고 그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부분이었다.
앨리가 무혼의 팔을 당겨 방 가운데에 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무혼은 앨리가 이끄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시녀들이 무혼을 둘러싸고 잠옷을 벗기더니 물을 떠 와서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싼 여성들의 향수와 그녀들의 손길이 온몸에 느껴지자 무혼은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여기가 극락인 거야.’
무혼이 정신을 차릴 때쯤에 옷 입기가 끝났다. 그런데 이 옷이라는 것이 온몸을 꽉 조이면서 폭넓은 치마 때문에 걷기에도 불편했다.
‘이… 이런 것을 입고 어떻게 살 수가 있지?’
그리고 머리에는 작은 관이 놓여졌고, 귀에는 작은 귀고리가 붙여졌고, 목에는 가느다란 세공의 목걸이가 걸렸다. 마지막으로 앨리가 주는 새하얀 막대기를 들고서 거울을 보았다.
‘음. 예쁘긴 예쁘군.’
옷과 아이네스의 모습이 잘 어울렸다. 한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던 무혼은 재빨리 눈을 돌렸다.
“공주님, 모습이 마음에 드시옵니까?”
무혼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앨리와 시녀들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고 앨리가 다시 말을 했다.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공주님, 빨리 가시옵소서.”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가자 앞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2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그들은 무혼을 보자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인사를 했다.
“공주님의 생일을 축하드리옵니다. 공주님의 마법 시연을 보기 위해 지금 전하와 왕비마마 그리고 세 어르신이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마법 시연?’
무혼은 소리를 지르면서 묻고 싶었다. 오늘 하루 조용하고 편안하게 보낼 생각이었는데, 마법 시연이라니? 그런데 뒤에서 앨리가 나직이 이야기를 했다.
“공주님, 저도 기대가 되옵니다. 공주님께서 생일 때마다 보여주시는 마법은 언제나 감탄스러웠사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이 여자의 생일이다. 그런데 생일마다 마법 시연을 했나? 오전에 이 아이네스의 눈을 통해 이곳을 본 적이 없는 무혼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 가는 곳에는 이곳의 왕과 세 명의 노인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마법을 구사하지 못하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은 자신을 의심할 것이 틀림없다. 잠시 꾀병을 부려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터였다.
조금 전에 떠올렸던 대신관 라이노혼이 자신의 영혼을 없애기 위해 출 춤에 대한 상상이 머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노인이 자신의 팔다리를 붙잡고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이상한 문자를 몸에 새기는 상상까지 떠오르기 시작한다.
‘왕의 앞으로 간다면, 살기 힘들 텐데…….’
무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흘깃 보니 별궁 입구에는 자신을 호위하기 위한 기사들과 마차가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무혼의 눈에는 그들이 자신을 죽음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자들로 보였다.
‘성벽.’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저 성벽을 나가면 거리가 나올 것이다. 그 거리에서 숨어 있다 보면 자신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 세 노인들 앞으로 가면 몸으로 돌아갈 기회 없이 영혼이 소멸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별궁의 입구까지 가면 지금의 내력으로 공주를 기다리고 있는 저 기사들을 다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 도망가야 한다.’
무혼은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걷고 있었다. 이제 이 복도 끝으로 가서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면 자신은 도망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무혼은 앞을 걷고 있는 기사의 뒤통수와 그의 롱소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검이 필요해. 탈출하기 위해서도, 며칠간 숨어 있기 위해서도.’
자신의 손에 있는 마법 지팡이를 꽉 잡으면서 이를 살짝 물었다.
‘속전속결(速戰速決)!’
9별궁의 경비기사 노먼은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왕실 최고의 미녀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활달한 성품과 주위 사람에 대한 섬세한 자상함으로 기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받고 있는 아이네스 공주를 방에서 마차까지 모시는 임무를 맡았다.
그가 공주님의 생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영광을 부여받자 동료 기사들에게 부러움과 질시의 눈초리도 받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온 공주님의 자태는 그가 상상하던 모습 이상이었다. 곧 고개를 숙이고 앞에 나서서 공주를 에스코트하는 노먼은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쩐지 걸음이 어색한 것 같아. 팔과 몸은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2층의 복도가 보이자 그는 아쉬움이 생기고 있었다. 저 복도의 끝까지 가서 계단을 내려가면 이 특권은 사라지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먼에게 들릴 리가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뻑!
생각지도 못한 둔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멘델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노먼은 황급히 롱소드를 뽑아 휘둘러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물체를 튕겨냈다.
그것은 하얀색의 마법 지팡이였다. 그리고 노먼의 눈에는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며 자신을 다시 공격하는 공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먼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마법 지팡이를 튕겨내고서 공주에게 반격을 하고자 검을 들어…….
‘가만, 검을 들어 어떻게 해야 하지?’
노먼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별궁을 지키기 위한 경비기사였고 이 9별궁에서 그가 지켜야 할 사람은 동관의 아이네스 공주와 서관의 제버런 왕자였다.
눈앞에 있는 공주는 노먼이 검을 들이댈 상대가 아니라 그의 검으로 지켜야 할 사람인 것이다.
노먼은 즉시 검을 뒤로 거두며 다시 한번 그의 목 뒤를 노리고 날아오는 마법 지팡이를 막았다.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오호라, 이 몸이 공주였지?’
무혼은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기사가 검을 들어 반격을 하려다 멈추고 방어만 하자 의아해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은 이 나라에서 고귀한 공주의 몸. 당연히 기사들은 다칠까 마음대로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공주님! 저는 9별궁의 경비기사인 노먼이옵니다.”
노먼은 애가 타서 말했으나 무혼은 말없이 계속 마법 지팡이를 휘둘러 갔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검술을 보면서 노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보다 검술 실력이 위다.’
자신의 실력으로 공주를 상처 없이 잡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노먼은 방어가 없이 공격만 펼치는 공주의 마법 지팡이를 막으면서 계속 생각을 했다.
‘이… 이렇게 막다가 공주님께 상처라도 생기면 전하와 왕국 어르신들의 분노와 많은 기사들의 경멸이 쏟아지고 나는 대장님에게 얻어맞은 후에 평생을 죄수 탄광에서 보내게 되겠지? 만약에 아이네스 공주님에게 맞고 쓰러진다면 직무 태만으로 잔소리를 좀 들은 후에 벌을 받으러 가겠지만 얼마 후 복귀가 가능하겠지……. 결론은… 맞고 쓰러져야 하는군…….’
마음속으로 결정을 한 노먼이 갑자기 검을 거꾸로 잡으면서 눈을 질끈 감자 무혼이 휘두르는 마법 지팡이가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다.
퍽!
‘으윽, 살살 좀 때리시지…….’
노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무너져갔다.
무혼은 곧 멘델의 허리에 있는 롱소드를 잡아챈 후 옆을 보았다. 그곳에는 앨리가 놀라서 입만 뻐금뻐금하고 있었다.
“미안!”
그 한마디를 던지고 무혼은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퍽.
“끄윽, 제길… 몸길이가 나보다 짧아.”
자신의 몸길이와 다른 아이네스의 몸은 무혼에게 착지하는 순간을 실패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무혼은 땅바닥을 뒹굴 수밖에 없었다.
무혼이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뒤 앞을 보니 두 명의 왕실 경비기사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