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남녀 11화
무료소설 이계남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이계남녀 11화
011 귀접연무관(鬼蝶演武館)(3)
“여자 몸매란 그 정도는 되어야지.”
꿀꺽.
누군가의 목울대가 울리는 소리가 나고, 일순간 모두 조용해지며 무혼의 손끝을 눈동자들이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참다못한 천월강이 소리쳤다.
“야, 속 태우지 말고 말해 봐. 누구를 말하는 건데? 실제로 본 거야? 어디서 몇 시에 본 거야? 야~ 그런 건 친구들끼리 같이 좀 알자~.”
무혼은 손 위에 턱을 얹은 채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천장 쪽으로 눈을 돌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곧 나가라는 듯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애들은 가라. 어른의 세계를 너희들이 어떻게 알겠니? 애들이 알 게 아니란다.”
천장을 바라보며 꿈속에 빠진 듯 나른하게 이야기하는 무혼의 말을 들은 친구들은 잠시 황당한 듯 서로를 바라보더니 옆에 있는 베개를 잡고서 무혼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죽어라-.”
“친구라면 그런 걸 보러 갈 때는 같이 보러 가야지.”
“야이 엉큼한 짐승아, 니가 친구냐? 같이 봤어야 친구지!”
친구들에게 베개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무혼은 나른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애들은 모른다. 그 환상적인 세계를…….”
무혼이 귀룡일검 장대암과 함께 오자 무혼이 살고 있는 마을은 술렁이고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혼천귀수(混天鬼手) 전상오도 1,000위 안에 들지 못한 것을 보면 서열 357위는 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높은 위치였다.
서열이 높다는 것은 언제나 윗자리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며 강력한 인맥이 된다. 때문에 공야패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많이 찾아왔다. 귀룡일검 장대암이 방문했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평소 무혼의 집과 친하지 않은 자들도 장대암과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집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오늘은 안 되겠다. 관장님도 무혼의 집에 오셨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
흑야나찰 옥난미는 능미류를 보며 이야기했다. 살짝 무혼의 집 앞을 지나는 척하면서 생일잔치에 끼려고 한 계획이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게 되었다.
평소 능미류의 마음은 알지만 천마맹호단의 자존심으로 못마땅해하던 다른 삼화(三花)가 객잔의 혈투에서 본 무혼의 무술 실력을 보고 감탄했다. 그녀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여기까지 온 것인데, 예상하지 못했던 방해를 받자 능미류는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미워졌다.
“다른 날도 많으니 천천히 시간을 두고 기회를 봐도 되지 않겠니? 이제 네가 무혼과 친해져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테니까.”
무혼이 천마맹호단의 일원이었다면 능미류가 만나기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천마맹호단의 사람들은 일반 수련생과 만나는 것을 비난하기 때문에 무혼에게 말 한 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천마맹호단의 8명과 싸워서 이기고 교두 두 명과 팽팽히 맞선 무혼의 실력을 이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드디어 능미류가 말을 걸어볼 만하게 되었는데 쉽게 되질 않는 것이었다. 평소 흑야오화의 막내인 능미류의 마음을 안쓰럽게 보던 옥난미가 달래듯 이야기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돌아가자. 응?”
끄덕끄덕.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자기가 봐도 들어가기에 어색했다. 그리고 여자 자존심에 누가 봐도 빤히 보이는 행동을 하기도 망설여졌다. 특히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렇게 무혼의 생일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린 것이 없어 송구스럽습니다.”
공야패는 장대암의 방문에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자신의 서열이 비록 1,000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하나 1,000위와 500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자신이 평생을 두고 500위 안에 들까 의문스러운데 357위의 장대암이 찾아주었으니 절로 허리가 굽혀졌던 것이다.
“허허, 아니네. 내가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된 것 같으이. 어? 한 교두, 자네도 와 있었군.”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대접을 못 해 드릴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전 혼아의 생일에는 매년 오고 있습니다. 헌데 관장님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이신지요?”
“허허, 혈야적랑 자네에게 할 말이 있는데 마침 무혼이의 생일이라고 해서 겸사겸사 왔지.”
“저에게요? 아,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안으로 들어간 장대암은 차를 한잔 마시며 마당에서 친구들과 웃고 있는 무혼을 찬찬히 보았다. 그러더니 공야패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 무혼이가 천마연무관에서 수련을 마치면 어딜 보낼 생각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공야패는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천마연무관을 마치면 외당의 5대 연무관 중 하나에 보내주고 싶지만, 그곳은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사실 지금 있는 천마연무관도 내공이 약해 간신히 들어간 무혼이었다.
“하지만 혼아가 천마연무관을 마치기 위해서는 아직 몇 년이 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네. 무혼이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네. 이제 다음 수련관을 생각해야 할 것이야. 그래서 말인데, 귀접연무관으로 부를까 생각 중인데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공야패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교는 힘을 기르고 있는 중이라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린 뒤 자신의 서열을 가질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웅크리고 있다고는 하나 처리해야 할 일은 생기기 마련. 때문에 은밀한 임무를 띠고 중원으로 나가서 활약하는 외당의 흑, 마, 청, 적, 자의 5개단에 소속된 무사들은 간혹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다.
“제가 알기로는 귀접연무관이라면 외당의 청천귀접단에 속한…….”
“그렇지. 그곳을 나오면 청천귀접단에 바로 배속이 된다네. 무혼이가 귀접연무관에 오게 된다면 내가 책임지고 있으니 무혼이를 좀더 잘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고. 어떤가?”
싫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공야패와 무혼이 원하는 것에 부탁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현재 외당의 5개단은 마교의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소속되기를 원하는 곳이었다.
더구나 눈앞의 귀룡일검은 서열이 어디까지 오를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한 사람이 무혼을 이끌어준다면 무혼의 앞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단지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 이야기를 꺼내니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었다.
“자네 혹시, 다른 곳을 알아봐 두었나?”
장대암은 살짝 조바심이 났다. 천마연무관은 지역마다 하나씩 있는 기초수련관이었다. 마교의 전사가 될 아이들을 모아 무공 수련을 도와주는 것이 목적인 만큼 수련생들은 자신의 제자가 아니다.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간다 해도 막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 상위의 연무관들은 달랐다. 특히 외당 5대 연무관은 천무연무관과는 달리 수련하고 나온 자들을 자신의 단으로 직접 영입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실력과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소속 연무관에 넣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정된 인재를 서로 많이 데려가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순수 무골인 장대암은 손을 써볼 시간도 없이 내심 마음에 두었던 수련생들을 빼앗기게 되었고 지금 귀접연무관에 인재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리고 귀접연무관의 인재 부족은 청천귀접단의 인재 부족으로 바로 이어졌다. 청천귀접단의 단주로 있는 의형으로부터 아쉬운 소리와 함께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듣고 있었다.
오늘 무혼이 벌인 결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연무관의 능구렁이들도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무혼을 다른 곳에 빼앗긴다면 의형의 얼굴을 볼 낯도 없고 자신도 두고두고 후회할 듯하자 이렇게 직접 찾아와 무혼을 섭외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무혼이의 연배에 그만한 실력을 갖춘 아이도 드물지…….’
공야패가 무엇 때문인지 망설이는 듯하자 속이 탄 장대암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것을 본 한기제는 장대암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관장님께서는 혼아가 놓치기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을 하시나 보군.’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살아온 한기제는 공야패의 아이들이 자신의 자식인 듯 귀엽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귀접연무관에 무혼이 들어올 수 있다면 자기로서도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자네, 귀룡일검께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시는데 혼아를 맡기는 게 어떻겠나? 나도 그곳에 몸을 담고 있으니 돌봐주기엔 어렵지 않을 걸세.”
자신의 생각이 길었다는 것을 깨달은 공야패는 장대암에게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제가 어리석어 대답이 늦었습니다. 부디 제 자식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장대암은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풀리자 절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허허, 여부가 있겠나? 자네가 섭섭하지 않게 무혼이를 잘 돌봐주겠네.”
생일잔치가 끝나고 공야패로부터 귀접연무관의 입관 소식을 전해들은 공야무혼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대로 마교의 삼류무사로 남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하루 만에 마교의 젊은이들이 꿈꾸는 5개 연무관 중 하나에 입관한다는 말을 듣자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매직이라는 것도 익혀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던 무혼은 문득 꿈에 나오는 색목인들이 사용하는 술법인 매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무공에만 사용하기에도 아쉬운 내공을 술법에 사용할 생각도 없었고,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기도 귀찮았으며 심장에 기를 둘러야 한다는데 그 방법을 알 수도 없었다.
그는 눈을 돌려 하늘에 있는 혈랑성을 보았다. 대대로 공야세가의 사람들이 마음에 담고 사는 공야세가의 별. 그 별을 보고 있자니 꿈속의 여자와 그녀의 시녀들이 생각이 났다.
“얼굴도 예쁘고, 특히 몸매 하나는 빵빵하던데…….”
그는 가끔 거울을 통해서 본 아이네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