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175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175화
#175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다.
대체 나는 왜 이리도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이 되었을까?
물론…….
내가 ‘두려움’이란 감정을 잃어버린 것은 오래된 일이다.
이미 전생부터 나는 어떤 육신의 고통도 능히 감당하는 불굴의 정신력을 배양했고, 인간의 오욕칠정을 제거한 채 평생 살았으니…….
어쩌면 겁을 상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몰랐다.
하나…….
내가 두려움을 완전히 초월한 계기는 단연 죽음이다.
죽음을 경험해 본 적 있는가?
단언컨대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나만 빼고.
‘…….’
나는 실로 죽고 사는 문제를 초월했다.
그 때문에 어떤 일에도 겁을 내는 법이 없었고.
하나 그런 나로서도 때로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무력해질 때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 경험이 교주를 만났을 때고, 두 번째가 주 영감님을 만났을 때요, 세 번째가 검황을 만났을 때다.
그 세 사람은…….
내게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들이다.
뭐랄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기연을 수도 없이 얻고, 미친 듯이 수련에 빠져도…….
평생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장벽이랄까?
아무튼 그들을 만났을 당시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고, 실제 세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로 손꼽혔다.
‘주 영감님이…….’
그러나…….
이제 그중 한 사람이 사라졌다.
내 인생 최고의 목표인 위지혼의 손에 주 영감님은 죽음을 맞이했다.
‘교주…….’
새삼 친구였던 3호의 모가지도 직접 따버렸던 냉혈한인 내가…….
마교 살수회 대장이던 진소천이…… 대체 왜 이럴까?
그깟 노망난 노인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처럼 심란하단 말인가?
주 영감님의 부고 소식에, 나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마음의 벽을 거세게 두들기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래…….
어쩌면 나는 오랜 시간 잊고 있었을지 모른다.
전생 후 나의 삶은…….
너무도 평화롭고 따스한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소윤이, 동벽 선생, 동동이 형제, 연우, 백산이, 당씨 남매, 지부 대인과 예린이, 글 선생.
그리고 소천문의 문도들까지…….
그들은 내게 마땅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날 동생처럼 대했던 노망난 노친네 주 영감은.
내 인생에 봄바람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좋은 친구가 되었다.
‘주 영감님…….’
하나 확실한 것은…….
‘주 영감님…….’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손에 내 소중한 것들을…… 내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교주…….’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의 숙적.
교주를 막아야 한다.
‘이제 당신을 만날 때가 되었어…….’
과연 지금의 나는…….
교주를 만날 준비가 되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아직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위지혼과 독고황의 대결은 자그마치 사흘이나 치러졌다.
그 사흘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은 팽팽한 접전을 선보였고, 당대 강호 최고수들다운 전설적인 대결로 중인들을 경악시켰다.
‘조부님……!’
‘교주님……!’
독고황의 주특기는 별호대로 단연 검(劍)이었다.
그의 검은…….
위지혼이 살면서 겪어 본 어떤 검격보다 빠르고 날카로우며 정밀했는데, 그 때문에 그는 외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
그것은 세간에 알려진 검황의 검과 실제로 경험한 그의 검이 너무도 판이한 까닭이었다.
당대 무림은…….
검황의 검을 고고하고, 정순한 활검(活劍)의 극치라 평가해왔다.
가령 화산파의 매화검법이 빠르고 화려하며, 상대를 살상할 목적으로 최적화된 검이라면…….
독고세가의 검은 지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중검(中劍)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지혼이 바라본 검황의 검은 세상의 평가와 반대의 성격을 담고 있었다.
마치……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죽이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하게 짜인 거대한 진법처럼, 검황의 검은 시종일관 위지혼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수고자 했다.
반면 위지혼의 무공은 외려 거대한 철벽같이 검황의 검을 연신 튕겨내는 ‘방어’에 초점을 두고 펼쳐졌다.
위지혼과 주영천의 대결에서 위지혼이 창이요, 주영천이 방패였다면.
검황과의 대결에선 외려 위지혼이 방패, 검황이 창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창과 방패의 대결이 장장 3일간 지속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 서로를 응시하던 중 검황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교주……. 우리가 얼마나 싸웠던가?”
그러자 위지혼이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한 사흘 정도 되었을 거요.”
“오래도 싸웠군……. 자네야 아직 팔팔한 청춘이라 괜찮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겐 너무 긴 시간이지.”
“하면 잠시 멈추고 곡차나 한잔하시겠소?”
“듣던 중 반가운 소릴세.”
이윽고 위지혼의 명령에 연무장에 술상이 차려졌고, 중인들은 3일이나 생사결을 치르던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황당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하나 두 사람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밝은 표정으로 서로의 잔에 술을 채워나갔다.
“독고 선배…….”
그러던 중 위지혼이 진지한 표정으로 검황을 불렀다.
“말하게 교주.”
“정말 인상 깊은 검이었소……. 세상 사람들이 이르길, 독고 선배의 검은 천하에서 가장 무겁고 느리다던데. 알고 보니 이보다 더 빠르고 날카로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화려한 게 아니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모양이오.”
그러자 검황은 미소 지으며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자네 생각이 틀렸네.”
“어인 말이오?”
“나는 세상의 평가대로 본래 중검을 쓰는 사람일세……. 다만 자네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본래 내 검과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뿐이지.”
“후훗……. 그런 것치고는 훌륭했소.”
“정말인가?”
“정말이오.”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일순 검황의 눈에 총기가 번뜩였다.
그 모습을 본 위지혼은 기억을 복기하려는 듯 허공을 응시하더니 서서히 무거운 입을 뗐다.
“독고 선배와 싸운 지 첫째 날……. 나는 선배의 모든 역량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소. 그 때문에 방어에 치중하며 선배가 가진 모든 걸 끌어내고자 애썼던 것이오.”
“해서 어떻게 되었나?”
“나는 실로 내 목적을 완수하였소. 선배는 이미 대결 첫날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으니 말이오.”
“허허……. 자네 말대로면 나는 첫날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나?”
그러자 위지혼은 다시금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이오. 하나 놀랍게도 선배는 싸움이 시작된 지 둘째 날부터 일종의 각성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소.”
“허허허! 각성이라?”
“그렇소. 그것은 또 다른 경지의 벽을 허문 결과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오. 아무튼 나는 그때야 알았소.”
“무엇을 말인가?”
“필승을 확신했던 대결에서…… 어쩌면 내가 질 수도 있겠다는 걸.”
“허…….”
“그런 탈력감은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참으로 이질적인 감정이었소.”
“……그랬군.”
“그렇소. 하나 대결이 3일째 접어들던 때. 나는 그 생각을 다시 바꿀 수 있었소.”
“어찌하여 말인가?”
“그때 나는…… 선배처럼 싸우는 도중에 내 스스로의 경지를 부수고, 새로운 무학의 세계에 발을 담갔기 때문이오.”
“역시…… 자네도 그랬던 거군.”
“그렇소……. 말인즉슨 우리는 둘 다 싸우는 도중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오.”
“재밌는 경험이었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우리는 한평생 맞수였는데…… 결국 마지막 순간에도 맞수다운 싸움을 한 셈이오.”
두 사람의 대화에…….
교도들과 독고세가의 가솔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싸우는 도중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니! 실로 믿을 수가 없구나!!’
그랬다.
두 사람의 대결이 장장 3일이나 이어진 것은, 두 사람 모두 대결 도중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깨달음에서 기인한 새로운 경지를…… 서로에게 온전히 쏟아부은 후에야 싸움을 멈출 수 있었다.
“독고 선배. 고맙소.”
“무엇이 말인가?”
“나는 오랜 시간 심마(心魔)에 빠진 상태였소. 그 때문에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되었고, 최근에는 나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던 참이었소. 하나 선배와의 대결을 통해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심연에 잠들어 있던 심마를 모조리 태울 수 있게 되었소. 그 덕에 이젠 탈마(脫魔)를 넘어서는 무언가에 닿을 수 있게 되었구려.”
말하는 위지혼의 음성에는 어떠한 적대감이나 경계심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런 위지혼의 일신을 심유한 눈으로 살피던 독고황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서 말했다.
“분명 나는 자네를 죽이러 원종산을 올랐건만……. 결국 자네는 나와의 대결을 통해 더 높은 깨달음을 얻었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
“그 심정 이해하오.”
“또한……. 나는 자네가 참으로 무섭군. 자네는 자네의 조부였던 위지록을 능가하는 천재 중의 천재일세. 살면서 자네 같은 무서운 천재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일세.”
“그 또한 부정하지 않겠소.”
“…지금도 마도천하의 꿈을 품고 있는가?”
검황의 물음에 위지혼이 고갤 끄덕였다.
“그렇소……. 천하를 내 발아래 두는 것. 그것은 평생의 염원이며, 숨 쉬는 마지막 날까지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오.”
“자네는……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순간,
털썩-!
검황의 신형이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고, 손자 독고준이 대경실색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조부님!!!”
하나 독고황은 짐짓 고갤 흔들며 손사래 치더니, 손자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위지혼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위지 교주…….”
“말씀하시오.”
“자네는 날 통해 무신(武神)이 되었네. 하면 내가 자네를 각성시킨 은인 아니겠는가?”
“인정하오. 선배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안의 심마를 온전히 태울 수 없었을 거요.”
“하면 부탁 한 가지 함세.”
“무엇이든 말씀하시오.”
“더 이상…… 강호에 자네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걸세. 말인즉슨 자네는 오늘 이후 진정한 천하제일인이 되었단 뜻일세.”
“그렇소…….”
“하면 무자비한 학살을 지양하고도, 자네는 마도천하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나? 하니 부디 인간성을 버리지 않길 바라네.”
“…….”
“강호에는 청운을 품은 젊은이들이 많네. 그들 모두를 죽인다면 당대에 무림의 명맥이 모두 끊어질 걸세. 그런 방법이 아니고도 자네는 이미 천하제일인이니 무의미한 학살만큼은 멈추어주게나.”
검황의 말에 위지혼이 대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릴 숙여 인사를 건넴과 동시에 공손히 포권지례하며 말문을 열었다.
“후배 위지 모가 검황 선배에게 약속하오. 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언제나 후대(後代)를 생각하겠소. 비록 불가피한 싸움이 이어지겠지만…… 의미 없는 살육은 지양하겠소.”
그제야 검황은 편안한 얼굴을 하고서 손자의 품에 몸을 누였다.
“준아……. 아무래도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듯하구나.”
“조 조부님!!!”
“내 유언을…… 무림맹주에게 전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