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56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56화
#55화
“할부지…….”
“오냐, 소윤아.”
“힝…… 아빠는 몇 밤만 자고 온댔는데 언제 와? 왜 자꾸 안 와?”
진작 이런 물음이 나왔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아빠가 집을 비운 지 칠주야가 넘어도 소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켜보는 동벽 선생은 더 안쓰러웠는데 이렇게 대놓고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소윤의 모습에 외려 안도감을 느끼는 그였다.
“소윤아. 네 아빠가 이번엔 사고를 쳐도…… 아니, 일을 벌여도 단단히 벌일 모양이구나.”
“헤- 그럼 울 아빠 부자 되는 거야?”
“껄껄껄! 그게 무슨 소리냐?”
“아빠가 맨날 집에 안 들어오고 일하러 갈 땐 돈 많이 벌어 온다고 했거든요.”
“하하. 네 아비도 참 못 말리겠다. 그래, 그래. 소윤아. 지금 네 아비는 너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돈을 벌러 간 것이다. 늦어지는 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어 온다는 뜻이니 할아비랑 며칠 더 놀면서 기다리자꾸나.”
“좋아요, 할부지!”
이제 곧 해가 바뀌면 소윤이도 다섯 살이 된다.
세 살 때 처음 본 소윤이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나가는 걸 보니 새삼, 동벽 선생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소윤아. 오늘도 ‘소윤단’ 먹어야지.”
동벽 선생이 자그마한 목갑을 열어젖히자, 향긋하고 기분 좋은 약향(藥香)이 방안 가득 퍼져나갔다.
“웅, 할부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처음의 ‘소윤단’ 역시 그러했다.
하나 며칠간, 쓴맛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윤을 보며 동벽 선생은 심혈을 기울여 당귀, 감초, 박하 등 생약을 추가해 쓴맛을 제거하고 은은한 단향을 극대화했다.
꿀꺽-.
소윤이 소윤단을 집어삼키자, 동벽 선생의 안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소윤아. 영단이란 게 먹기 귀찮고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할 때가 있을 게다. 하나 빼먹지 않고 복용해야 하느니라. 보약은 하루아침에 효험을 볼 수 없다. 꾸준한 장복이 이루어져야 양생에 도움이 되고 원기회복을 돋우어, 성장에 촉진을 줄 것이다. 알겠지?”
“네, 할아부지. 알겠어요!”
“허허. 그리고…… 만약 훗날 네가 무공에 뜻을 둔다면. 지금 복용하는 소윤단이 큰 도움을 줄 게야.”
“히히. 할부지. 나도 무공을 배울 거예요.”
“응?”
“아빠가 그랬어요. 소윤이를 검후로 키울 거라고.”
“끙…… 네 아비가 끔찍한 소릴 했구나. 검후가 되겠단 건, 당대에 가장 뛰어난 여검객이 되겠단 소린데. 그런 고통의 가시밭길을 왜 걷는단 말이냐? 클클. 소윤아.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할아비도 도와주마.”
“히히히. 그럼 나 무공도 알려줄 거야?”
“그래. 이제 다섯 살이 되니까. 그때가 되면 네 아비도 할아비도…… 무공을 가르쳐주마.”
동벽 선생이 소윤의 머릴 쓰다듬었다.
‘팔대세가의 자제들이 보통 다섯 살이 되면 수련을 시작하고들 하지.’
그랬다.
남궁-당가-모용 등의 소위 팔대세가라 불리는 무가의 자제들은 소윤이만 할 때부터 수련을 시작한다.
그 때문에 소윤이라 해서 당장 무공을 익히지 못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소윤이는 천재지. 물론, 무공은 머리 타고난 것과 크게 관련 없겠으나…… 제 아비처럼 이해력이 탁월하면 무학의 본질을 깨닫는 속도도 상당할 게야.’
하물며, 동벽 선생이 본 소윤은 또래보다 곱절은 영특했다.
진소천 역시 타고난 무재라서 무공이 대단하기보다, 특유의 이해력과 분석, 응용력, 무학을 관통하는 식견이 더 돋보이는바.
장차, 소윤이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러나…….
‘에잉! 그래도!! 그 인간이 워낙 독해야 말이지. 어디 제 딸이라고 봐줄 인간인가? 고통 없는 수련은 사기라고 생각하는 작자니 소윤이도 쥐 잡듯이 잡으려 들 텐데.’
문제는 바로 진소천의 무식한 수련법에 있었다.
동벽 선생도 진소천이 추구하는 수련의 방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 그의 성정을 비춰보건대, 소윤이 역시 지독히도 괴롭힐 게 뻔해 걱정되었던 것이다.
‘음…… 그나저나 이 인간. 정말 괜찮은 게 맞으려나?’
그러다 문득, 늦는단 기별만 한 채, 감감무소식인 진소천의 행보가 궁금했다.
물론, 동벽 선생은 진소천을 신뢰했기에 그가 곤궁할지언정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거라 믿었지만 그런데도 모든 근심을 털어낼 순 없었다.
‘뭐…… 믿는 수밖에.’
이리 영특하고 예쁜 딸내미 놔두고 무모한 짓을 벌이진 않겠지.
“소윤아. 할아비랑 산책이나 가자.”
“웅, 할부지!”
아무래도 진소천이 돌아오면 야단 좀 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동벽 선생은 소윤의 손을 붙잡고 호숫가로 나섰다.
* * *
“진…… 진 문주. 그만하는 게 어떠하오?”
“이미 폐인이 되었을 것이오.”
“아무리 생사결이라지만…… 이것은 결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잖소? 차라리 그럴 바에, 단칼에 죽이는 게…….”
딱 100대 됐을까?
저항할 의지마저 잃어버린 노정주를 이리저리 후려 까던 나를 향해 중인들이 걱정 어린 음성을 뱉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한 번 슥- 훑었다.
그야말로 푸르뎅뎅하단 표현이 적절할 만큼 경악으로 덮인 표정이었는데 이만하면 모두가 소천문의 살벌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정주야. 원래는 이 자리에서 널 고통스럽게 패 죽이는 게 맞다. 하지만, 강호 동도들이 저리 권유하니 참는다. 앞으로 살수란 이름은 지운 채 살아라.”
꾸욱-.
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떡이 된 노정주의 목울대를 다시 한번 꾹, 밟았다.
“크르륵!”
그러자 놈의 입가에서 신음과 함께 핏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동도 여러분. 보시다시피, 오늘 대결은 제 승리로 끝났습니다. 아무쪼록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기왕 오신 거 술이라도 한잔하시지요. 자! 다들 내려갑시다.”
일단.
대결에서 이긴 데다, 내가 초빙한 손님들이니 나는 그들에게 술 한잔 대접할 생각이었다.
한데…….
“하…… 하핫……. 진 문주. 술은 다음 기회에.”
“그, 그게 말입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다음에 뵙지요, 진 문주!”
손님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는지, 한사코 거절하며 도망치듯 걸음을 서두르는 게 아닌가?
사실…….
그럴 줄 알았다.
애당초 저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흑-백의 구분 없이 모두 이곳 산양에 자리 잡은 무인들이다.
한 마디로 이 동네 터줏대감이란 뜻이다.
한데, 오늘 대결이 나의 승리로 끝난 데다, 딱 봐도 노정주가 폐인이 될 게 자명하니 그들은 속히 돌아가 향후 산양의 세력 구도와 변화하는 지역 정세를 가늠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질 생각이겠지.
또 하나.
그들은 내 잔인함에 혀를 내두르는 눈치였다.
만약 내가 노정주를 단칼에 베었다면 누구도 내 손속을 탓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저항도 못 하는 노정주를 복날 개 패듯 패버렸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소천문의 지독함을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지만 내 속을 알 리 없는 중인들은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독종으로 각인하지 않을까?
‘잘 됐지.’
최소한.
앞으로 산양 쪽 무림인은 누구도 나와 소천문에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 * *
노정주는 초주검이 되어 병사로 옮겨져 치료를 받는 중이고…….
“너희 문주, 안 죽을 거니 걱정 마라. 사혈은 모두 걸러서 때렸기 때문에 목숨엔 지장 없다. 다만, 단전이 폐해졌으므로, 니들 문주는 앞으로 무공을 못 쓰게 될 거다. 물론 너희 단전도 모두 폐할 생각이니 이제부터 강호에 노가살수문이란 이름은 없다.”
“알겠소.”
“알겠소? 반말?”
“알았습니다.”
노가살수문으로 돌아온 나는 현 노가문의 부문주이자 노정주의 사촌 동생인 노웅에게 말했다.
처음엔 대놓고 날 적대하던 가솔들이지만 주영천 영감의 무위를 체감하고 나서부턴 한껏 고분고분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정의 진짜 ‘기연’이자 ‘선물’은 바로 주영천 영감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나는 이놈들 전체와 목숨 걸고 싸우거나, 그게 아니면 유격 전법을 쓰며 한 놈씩 모가지 딸 궁리를 해야 했을 테니까.
“진 문주.”
그때, 부문주 노웅이 말했다.
“왜?”
“우린 약속대로 봉문하겠소. 문주께서 깨어나시면 하루속히, 산양을 떠날 생각이외다.”
“근데?”
“그러나…… 호영이는 돌려줄 수 없겠소? 그는 지금의 진 문주에겐 쓸모가 없지 않소?”
“닥쳐라. 노정주가 내게 진 순간부터, 호영이는 본문의 영원한 ‘자산’이 되었다.”
“자산이라니요. 우리는 약조한 대로, 가문의 전 재산을 소천문에 양도할 거요. 한데, 호영이가 어찌 당신의 자산이 될 수 있단 말이오. 더 뜯어낼 것도 없지 않소.”
“지금 호영이는 소천문의 ‘살아있는 목각인형.’ 말인즉슨 수련용 목인장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호영이가 그래도 제법 살수 기초는 잘 닦여 있어 맷집도 상당하다. 그런 무제한 인간 목인장을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이냐.”
“…….”
“아무튼 문주가 깨어나는 대로, 기별해라. 요 앞 네거리 객잔에서 머물고 있을 테니.”
“알았소.”
그렇게 노웅과 대화를 마친 나는 미리 잡아놓은 객잔으로 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음…….’
이번 싸움은…….
사실 싸움 자체만 놓고 봤을 땐, 살마존 백귀호를 죽일 때처럼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하는 큰 성장은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비무를 준비하는 칠주야간 나는 그저 내 신체의 기초 체력에 해당하는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의 극대화를 위해 꾸준히 명상했고, 그 기본을 바탕으로 노정주의 허점을 간파했을 뿐이다.
하나 이 기초에 기인한 수련과 전투 방식으로 나는 백귀호나 노호영보다 더 강한 노정주를 어렵지 않게 꺾었다.
물론, 노정주 본연의 무공 수위가 나보다 못한 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그는 나를 훨씬 상회하는 공력을 보유한 자였고, 그 공력의 방출을 견뎌내는 강인한 육체도 소유했다.
그러나.
싸움은 결코, 무공의 고하(高下)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전생의 나는 일황삼존오왕 중, 오왕에 해당하는 화산파 장문인 청진도장을 화산파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연화봉’에서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흐흐흐. 소형제!”
그때.
조용히 묵상(默想)에 잠겨 있던 날 향해 주 영감이 말했다.
“네, 영감님.”
“사실 나…… 이번에 개안했지 뭐야.”
“네?”
“소형제 자네 말이야. 무공의 경지를 놓고 보면 또래 대비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내가 또래 대비 평범한 수준이라…….
하긴 저 영감님은 ‘백도구봉’ 같은 당대 최고의 후기지수들을 밥 먹듯이 볼 테니 나 정도면 평범해 보이겠지.
“뭔가 무공을 이해하는 능력이 상당한 것 같단 말이야. 크크크. 뭐랄까? 자네는 싸우는 와중에 작전을 짜는 것 같달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상대랑 손을 섞은 후 상대의 방식에 따라 작전을 짜야죠.”
“헤헤. 말이 쉽지, 누가 그런 걸 할 수 있겠어? 나도 못 하는데.”
“영감님이야 뭐……. 그런 거 필요 없으시니까요.”
“흐흐.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뭐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소형제랑 똑 닮은 사람이 있거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소형제도 향후 그놈처럼 될 것 같단 말이지.”
“그놈이 누군데요?”
“검황 독고황.”
“아…….”
검황 독고황이라.
그 양반이면…… 현(現) 백도의 제일인인데.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또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