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52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52화
#51화
붉게 물든 노을이 서산마루를 스칠 무렵…….
십만대산(十萬大山)의 봉우리에 우뚝 선 사내는 자그마한 무덤가에 줄줄, 술을 흩뿌렸다.
‘7호.’
그 무덤은 시신이 안장되지 않은 허묘(虛墓)에 불과했다.
다만, 누군가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었는지 귀한 옥석 묘비가 우두커니 세워졌는데 묘비에는 ‘대 천마신교 살수회 대장, 7호’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
한 병의 술을 다 흩뿌린 사내의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순백색의 눈발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네가 있었다면…….’
사내의 미간이 번뇌와 고심으로 찌푸려졌다.
그러나 찡그린 인상으로도 그의 관옥 같은 용모는 가려지지 않았다.
‘아쉽구나…….’
마도(魔道)의 정점에 서 있는 자.
현(現) 강호의 최강자.
누구나가 입을 모아 무신(武神)이라 일컫는 자.
사내는 바로, 대(大) 천마신교의 교주.
당대의 천마, 위지혼이었다.
‘네가 내 곁에 있었다면…….’
위지혼.
그는 외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천마의 가문에 태어난 원죄로 지옥에 살았고 충년(10살)이 되기 전, 부친은 주화입마에 빠져 광인이 되었으며 그 광인은 위지혼의 모친을 제 손으로 죽인 채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데도…….
“…….”
그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의지할 수도 없었다.
힘의 논리만이 성립되는 ‘마교’에서 어린 소교주가 살아남을 방법은 한 가지.
‘강해지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
다행히…….
그는 강했다.
그는 마교 역사상 최연소 교주가 되었으며 약관(20세)이 되던 해, 탈마(脫魔)하여 영육의 마기(魔氣)를 지운 희대의 무재이자,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렇게 교주가 된 위지혼의 손엔 하루도 피가 마르지 않았다.
작고한 조부와 광인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친의 충신들, 대권에 도전했던 원로원의 고수는 물론, 흑-백을 막론한 수많은 무림인이 그의 손에 죽임당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는 직접 살인(殺人)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교내에 새로운 살성(殺星).
고금제일살수(古今第一殺手)가 돌연, 등장한 까닭이었다.
위지혼에게, 그 고금제일살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의 발견이자, 하나의 깨달음이었고, 또 한편으로 생애 처음 느끼는 ‘신뢰’로 다가왔다.
‘7호. 너는 유일하게 날 이해하던 자였는데.’
위지혼은 철저한 고독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사내다.
너무 뛰어난 기질을 타고난 탓에, 타인을 이해할 수 없었고, 타인들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는 위지혼을 흡사 ‘괴물’로 취급하며 두려워하기만 했다.
하지만…….
혜성처럼 등장해 살수회의 대장으로, 교내의 막강한 실력자로 급부상한 ‘고금제일살수’는 달랐다.
적어도 위지혼이 본 고금제일살수는 외려 자신보다 무학적 재능이 더 뛰어났고, 무학을 이해하고 성찰하며, 관조하는 시야가 독보적인.
‘7호…… 어쩌면 너는…… 고금제일살수가 아니라 당대의 천하제일인이 돼야 했을 사람이었지.’
숫제, ‘천하제일인’의 재목(材木)이었던 것이다.
‘7호야…….’
그러나.
그런 이유로 하여금.
위지혼은 하늘 아래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던 ‘고금제일살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고금제일살수(古今第一殺手).
진소천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소천이 강해질수록 위지혼은 뿌듯했고, 그의 성장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하나, 그는 마교의 교주였다.
십만대산 아래, 모여든 수많은 마도인(魔道人)의 수장이자 지주였으며 만마(萬魔)의 아비였던 것이다.
「교주님. 7호를 죽여야 합니다! 훗날, 그는 신교를 통째로 집어삼킬 인물이 될 것입니다!!」
「교주시여. 7호는 이미 3000에 달하는 살수회의 우상입니다. 그들은 교주님보다 오히려, 7호를 신뢰하며 이대로 가다간 수많은 교도들이 7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교주님. 지금이야 7호가 고금제일살수로 불리지만…… 10년 뒤엔. 필시, 교주님과 천하제일의 자리를 놓고 자웅을 가리고자 할 것입니다. 부디, 만마(萬魔)의 아비로서,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천마재림 만마앙복(天魔再臨 萬魔仰伏)!」
「천마재림 만마앙복(天魔再臨 萬魔仰伏)!」
「천마재림 만마앙복(天魔再臨 萬魔仰伏)!」
「천마재림 만마앙복(天魔再臨 萬魔仰伏)!」
「천마재림 만마앙복(天魔再臨 萬魔仰伏)!」
‘나는…….’
그 때문에 그는.
고독한 인생 속에서 유일하게 기대고, 의지했던 친구를 죽였다.
비록 제 손으로 죽일 순 없었기에 교내 최정예인 ‘천마용검대’와 마도최고수에 해당하는 ‘마도사천왕’의 손을 빌렸으나 자신의 뜻으로 진소천이 죽었다는 사실은 불변하는 것이었다.
‘나는…….’
위지혼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묵빛 장검 한 자루를 꺼내, 7호의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그 검은 생전, 진소천의 애병인 묵혼검이었다.
‘이제 너를…… 잊겠다, 7호.’
진소천의 육신이 잿더미가 되고, 그의 넋이 십만대산을 떠난 후에도 위지혼은 그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진소천의 검(劍)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친구였던 7호를 보내주기로 했다.
‘우리는 참으로 고독한 사람들이었구나, 7호야.’
이로써…….
위지혼은 영혼의 심연에 간직하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감정마저 모조리 비워내게 되었다.
“나는 이제 마신(魔神)으로 세상에 군림(君臨)하겠다.”
별안간, 신형을 돌리는 위지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잘 가라, 내 친구야…….’
나의 동생아…….
* * *
“얼마요?”
“은자 열 냥 주시구려.”
“…….”
“뭐 하는 게요? 어서 주시오. 혹시, 깎을 생각이거든 어림도 없수.”
“내가 뭐랬소? 여기 있소.”
은자 열 냥짜리 검(劍)이라…….
사실 전생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검(劍)이란 검수(劍手)의 자존심과 같다.
그 때문에, 나는 전생에 현철로 만든 장검을 사용했는데 값으로 따지면 금원보 30개쯤 될까?
전생에 금원보 30개짜리 현철검을 쓰던 내가 이생에선 은자 열 냥짜리 싸구려 검을?
나는 내 상황이 스스로도 웃겨서 킥킥거리다 이내 대장간에서 산 검을 허리춤에 패용했다.
검을 차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지금까진 굳이 필요 없기도 했거니와, 딱히 장만해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아서지만.
이번엔 달랐다.
어쩌면 나는 이번에 노가살수문 전체를 상대할 수도 있다.
그러고자 한다면 지금의 내 미약한 공력과 아직 개문되지 않은 풍-수-화의 속성을 감안했을 때, 최소한 검 한 자루는 있어야 한단 판단이었다.
“오호! 소형제. 검수였나?”
그때.
결국 나와 동행하기로 합의를 본, 주영천 영감이 물었다.
“검수는 아닌데…… 특기는 검(劍)입니다.”
“엥? 검수가 아닌데 특기는 검이라니. 희한하네?”
“희한할 게 뭐 있습니까? 무당파의 장삼봉 조사도 천하제일의 검수였지만 태극권만으로 강호를 평정하셨는데.”
“뭐? 헤헤헤. 그건 사조님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지. 소형제가 사조님은 아니잖아?”
“못 될 것도 없지요.”
“???”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뜻입니다.”
“크하하하하하!”
이 망할 영감탱이가.
지금 사람 무시하나?
“헤헤. 기대되는걸? 과연 소형제의 진신 무공은 어떠할지.”
“어쩌면 이번에 보실 수 있을 테니 기다려 보십쇼.”
“클클. 알았어. 그럼 가자고!”
“전속력으로 질주할 생각입니다. 제 쾌경보가 제운종보다 탁월한 경신법이니 죽기 살기로 따라오시죠.”
“흐흐흐. 좋지!”
나는 일부러 입방아를 떨어 영감을 자극한 뒤, 역-뢰의 속성을 완전히 열고 쾌경보를 시전했다.
파아아아앙……!
매번 매 순간, 진심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특별히 무리해 경신법을 펼쳤다.
그것은 바로, ‘천마비행술’, ‘운룡대팔식’과 더불어 무림 최고의 경신법이라 알려진 제운종의 진수를 체험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피이잉-.
주영천 영감의 제운종은 내가 아는 제운종과 결이 달랐다.
현 무당파의 제운종이 압축된 진기를 단번에 폭사하며 펼쳐지는 쾌속함에 맞춰졌다면 주영천 영감의 제운종은 훌훌 이지러지는 ‘연기’ 같달까?
그러나 어쨌든 간에.
제운종은 제운종이었다.
아무리 운용 방법이 달라도 제운종이 담는 무학의 본질은 도가 무학 특유의 ‘신묘함’이 돋보였고 그 신묘함은 이내 내 쾌경보를 미세하게 앞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후……. 역시 속성 하나는 더 개문해야…….’
말인즉슨.
안왕산에서 만나 이곳 종남산에 오르기까지 나와 비슷하게 달렸던 주 영천 영감은…….
‘이 영감…… 힘을 숨기고 있었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낄낄. 소형제! 어서 따라오라고! 거북이가 친구 하자고 할 기세잖아?!”
와…….
저 대사 내가 동동이들한테 맨날 하던 건데.
이렇게 역으로 들으니 왜 동동이들이 나한테 욕까지 했던 건지 알겠다.
일동, 이동, 삼동아.
그간 미안했다.
* * *
산양까지 당도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3일하고 반나절.
장안에서의 거리를 생각하면 누구나 거짓말이라 하겠지만 한술 더 떠, 나는 그사이 명상도 하고 사색도 하고 이따금 반점에서 밥도 먹고.
안왕산에서 산적들과 푸닥거리도 하고 대장간에서 칼도 샀으니 이건 뭐…….
세상이 발칵 놀라 자빠질만한 속도가 아닐까.
“소형제. 나 놀랐다?”
“뭐 때문에요?”
“나는 소형제가 이처럼 체력이 뛰어날 줄 몰랐다고.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건 그냥 미쳤는데?”
산양에 도착한 후, 주 영감은 시종일관 날 ‘괴물’ 쳐다보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영감의 속도에 미치지 못했던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따라잡다 급기야 마지막 구간엔 앞서게 된 것이었다.
“그게 내 경신법의 특징입니다. 육체에 무리를 최소화하며 꾸준한 동력을 구동할 수 있는 게 쾌경보죠.”
“허! 미쳤군, 미쳤어.”
나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응수했다.
이번 경주 시합의 승리는 나였으니까.
“영감님. 체력 좀 기르십쇼.”
“소형제. 내 나이 일백이 다 됐어. 이런 노인한테 체력을 기르라니!”
“체력에 남녀노소가 어딨습니까? 아무래도 영감님…… 수라 나찰 체력 단련 한 번 받으셔야겠군요.”
“수라 나찰 체력 단련? 그게 뭔데?”
“궁금하면 다음에 소천문으로.”
“???”
나는 이내 노가살수문의 현판이 걸린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살수 가문답게 정문 앞에는 살벌하게 생긴 문지기 두 놈이 흉험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문주 있냐?”
“???”
그들에게 다가선 내가 다짜고짜 하대하며 물었다.
사실 내가 초장부터 이렇게 싸가지 없이 구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면 나는 품격과 교양의 소유자, 최소 배운 자, 예의와 범절을 체득한 자, 경우 바른 사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동네 왈패같이 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놈들이 날 죽이려 한 노가살수문이니까.
본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겠나.
적어도 노가살수문에게는 내가 철저한 갑(甲)이다.
“너 돌았냐?”
“이건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
“닥쳐라!”
짜자자자자작-.
일순, 거만한 표정으로 욕을 퍼부으려는 문지기들을 향해.
나는 한순간에 일곱 번의 귀싸대기를 걷어붙였다.
“와! 소형제!! 화끈하네? 낄낄낄.”
그러자, 뒤에서 잠자코 구경하던 주 영감이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고…….
“이…… 이!”
“X자식이!!”
귀싸대기를 처맞은 문지기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일그러졌는데.
퍼어어어억, 퍼어어억!
성에 차지 않은 나는 곧장, 두 문지기의 아랫도리에 일각(一脚)씩을 처박고 말했다.
“문주 있냐고 물었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하도록. 고자 되고 싶지 않으면.”
아…….
이미 됐겠구나.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