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35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35화
#35화
‘좋구나.’
정말 좋구나…….
새삼 느끼지만, 무인의 근본은 확실히 ‘기동성’에 있다.
전생 후 나는 공력의 부재로, 살수 시절의 기동성을 잃었다.
뭐, 싸움이야 당장 무공을 완벽히 회복 못 한다 해도 고금제일의 실전 경험이 영혼에 깔려 있으니 어찌 어찌했다지만….
하늘을 나는 새처럼 허공을 활보하고, 날아가는 화살처럼 지평선을 질주하던 내가 고작 반 시진 달리고 지칠 땐, 그 비참함을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역’ 속성에 ‘뢰’ 속성까지 개문(開門)하고 나니, 웬만큼 쾌경보를 펼쳐도 몸은 깃털처럼 가벼운 상태요, 호흡 또한 평온하게 유지되었다.
‘1년이다. 앞으로 1년만 수련하면 쾌경보 만큼은 전생 수준에 다다를 수 있겠다.’
내 쾌경보는 경신-보법을 통합하는 이동 기술쯤 된다고 볼 수 있다.
곤륜파의 운룡대팔식이 물리적 제약 없이 허공을 답보하는 일종의 ‘비행술’ 같은 성격을 지녔다면 쾌경보는 그 장점을 흡수하고도 내력의 소모는 반의 반절밖에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등가교환이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쾌경보를 전력으로 펼쳐, 두 시진도 되지 않아 전(前)연화각-현(現) 소천문의 본문에 당도해 이동과 삼동을 찾았다.
한데, 이동과 삼동은 출타 중이고 때마침, 연우가 찾아온 상황이었다.
“형님. 어떻게 된 겁니까?”
나는 물어오는 연우의 눈에서 의미심장함을 느꼈다.
대체 얘는 또 왜 이럴까?
“뭐가?”
“아니…… 일단, 그보다. 몸은 좀 괜찮아요? 동벽 선생께서 봐주셨으니 큰 걱정은 안 했다만, 중독 상태라 들었습니다.”
“아…… 괜찮다. 내가 강골이기도 하거니와 어르신이 시침(침을 놓는 행위)하면 썩은 송장 빼고 다 살아나는 게 의술계의 중론이다.”
“……그런 중론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요.”
“됐고. 어떻게 됐냐는 말은 무슨 말이야?”
“아. 온종일 찾았는데 안 보여서 말입니다. 강이동, 강삼동 소협도 지금 형님 찾아다니고 있어요. 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겁니까? 불과 어제까지 병상에 몸져누워 있던 분이.”
“정리하고 왔다.”
“네?”
“흑사회 흥평 분타.”
“뭐요?”
“뭐?”
“아니, 그러니까 지금 뭐라고 한 거냐고요.”
“정리했다니까? 흑사회 흥평 분타.”
“미, 미X!”
“뭐?”
“그게 사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연우가 왜 이럴까.
혹시 내 당랑 꿀밤이 그립다면 얼마든지 먹여줄 자신이 있는데.
* * *
“형님.”
“그래.”
지금까지 연우랑 이런저런 일을 겪어왔지만…….
돌연, 연우가 이처럼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한 적은 처음이다.
연우는 대뜸, 나와 긴히 할 말이 있다며 3층 구석에 마련한 서고로 끌고 갔는데 우리 둘만 남게 되자 본론을 끄집어냈다.
“다 떠나서. 솔직히 말해주십쇼. 형님 진신 정체가 뭡니까? 그래요. 형님 무공이 강하다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긴 한데. 그래도 납득이 안 돼서 그럽니다. 서안 분타에서 혈도마인 곽성호와 살마존 백귀호, 150인의 흑사회 인물을 단신으로 제압한 것까지는… 어떻게 이해해보겠는데. 불과 어제만 해도 침상에 누워 있었던 양반이 하루 만에 흥평까지 찾아가서 놈들을 정리했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멀쩡히 돌아왔고요?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거기다 형님은 중독당한 상태였다고요.”
음…….
연우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내 행보는 기상천외할 정도니까.
하나 세상엔 별일이 있고, 상식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지금도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연우야.”
“네.”
“너도 그렇고, 석가장의 인물들이나 지금 나와 소천문의 이야기로 입방아 찧어대는 호사가들도 그렇고. 솔직히 니들 보기에 내 행보가 이해 안 되긴 할 거다.”
“당연하죠. 형님이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살고자 하는 전직 구파일방의 꽤 잘나가는…… 그러니까 예컨대, 백도구봉(白道九鳳)쯤 되는 인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어요.”
“백도구봉이라…… 그놈들은 본 적도 없으니 모르겠고. 이렇게 생각해봐.”
“어떻게요?”
“강호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냐?”
“그야…… 대충 독고세가의 검황 선배님과 마교 교주 정도가 아닐까요?”
“맞다. 예를 들어 내가 27살짜리 검황 독고황이라고 생각해보자.”
“…….”
“듣기로 그 양반은 이립(30세)이 되기 전에 삼화취정(三花聚顶)을 경험하고 환골탈태했다던데. 너도 알지?”
“네. 그 일화야 유명하죠.”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뭐겠냐? 바로 검황 영감은 내 나이 때부터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는 거다. 비단, 타고난 자질만 뛰어나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속 성장을 통해 불과 불혹도 안 돼서 백도무림을 씹어 먹은 거라고.”
“그렇긴 한데…….”
“물론, 내가 검황 영감이랑 동급이란 건 아니고. 그 양반만큼 성장 속도가 빠른 전도유망한 무인이라고 치면 내 행보를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내 물음에 연우는 찰나 간, 입을 다문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마 얼떨떨하겠지.
하필이면 예를 들어도 백도에서 제일 싸움 잘하는 검황을 예로 드니 연우 입장에선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검황처럼 되지 말란 법은 또 없으니 머릿속이 복잡할 터다.
“너. 혹시 나 같은 미천한 놈이 검황을 운운하니까 기가 막혀서 아무 말 못 하는 거냐?”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형님이 검황 선배 같은 강호 정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요.”
“근데 왜 그런 표정으로 멀뚱거려?”
“다만, 검황 선배님을 떠올리기엔…… 너무 아득하신 분인데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한 겁니다.”
“그래. 정리된 생각을 말해라.”
“음……. 솔직히 지금도 납득은 잘 안 가요. 그래도 그러려니 해야겠죠. 형님 말대로 세상엔 별일이 다 있고, 형님은 그냥 특별히 강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그리고 나 진신 정체 같은 거 진짜 없다. 나는 그냥 소윤 애비 진소천일 뿐이고, 이젠 소천문의 문주, 진소천이니까.”
그러자, 연우가 대뜸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왜 웃는데?”
“하하. 생각해보니 형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세상에 형님 같은 괴짜가 신분을 숨긴 전직 명문정파 인물일 리 없잖아요.”
“맞지. 나랑 그런 곳은 결 자체가 안 맞지.”
“맞아요. 형님 같은 순 제멋대로에, 두서도 없이 막사는 사람이 명문정파 제자일 리가 없죠.”
“그래.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모양이네.”
“맞습니다. 이제 완전히 파악했어요. 솔직히 형님같이 과격하고,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이 명문정파 제자라니?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꽝-.
“켁!”
나는 결국 오늘도…….
연우 머리통에 당랑 꿀밤을 먹여버렸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
* * *
“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본가의 인물들과 흥평 분타로 가서 뒷일을 수습할게요.”
나는 연우에게 흥평 분타의 상황과 놈들의 투항 의사, 더불어 일동의 고군분투까지 일러주었다.
연우 또한, 내게 취합된 흑사회 정보를 간략히 설명했는데, 일단 흑사회는 사도맹의 지원을 받은 곳이 맞다는 결론이었다.
다행히 대놓고 사도맹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무림맹이 마교와 푸닥거리하는 동안, 사도맹이 뒤에서 세력을 넓히려 했던 건가.’
‘사도맹’은 ‘흑도’와 ‘사파’를 지향하는 무인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무림맹과 ‘백도’ 같은 관계는 또 아니라 모든 흑도, 사파가 사도맹 소속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교를 제외한 전 강호의 ‘사마외도’ 중 사도맹을 척진 단체는 없었다.
“그래, 연우야. 나도 문도들 쪼개서 지원할 테니 너도 뒷수습에 만전을 기해라.”
“네. 그나저나 형님. 이번 흑사회 토벌 건으로 가주님이 형님과 긴히 담화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석가장의 가주라면, 네 아버지를 말하는 거냐?”
“네.”
“좋다. 나도 놈들이 미약하게나마 사도맹의 지원을 받았단 걸 알게 된 이상, 혼자 이 일을 수습할 재간이 없다. 석가장이라면 화산 속가니 사도맹도 쉽게 시비 걸 순 없겠지. 소천문으로썬 이득이다.”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이번 일에 깊이 개입한 거 아니겠습니까.”
“잘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
“혹시, 형님께서 본가로 함께 가주실 순 없을까요? 아버지께선 당장 태사부님이신 청문도장께 이 일을 알리실 텐데. 아버지는 몰라도, 청문도장께선 한참 어르신이잖습니까. 아무래도 형님이 먼저 찾아뵙는 게…… 모양새도 좋고…….”
“동감. 그럼 잔당들 수습하는 즉시, 너하고 석가장에 들르마.”
“……진짜요?”
“그래.”
“뭐가 이리 쉬워요? 전 형님한테 욕 들을까 싶어 엄청 조심스레 말을 꺼냈는데.”
“내가 욕을 왜 해?”
“형님 자존심이 워낙 세니까요. ‘할 말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해라!’ 뭐 이렇게 말할 줄 알았거든요.”
“연우야. 내가 장유유서도 모르는 일자무식은 아니다. 석가장 가주는 네 부친이고 너는 내 동생인데 그분 찾아뵙는 데 뭔 자존심이야.”
“와! 의외네요. 형님도 융통성이란 게 있는 걸 보니까.”
이 새끼, 이거 진짜…….
대체 날 뭐로 본 거야?
어이가 없네.
* * *
“할 말은 많지만, 나중에 하세.”
“네.”
집에 들어가니 동벽 선생이 대뜸 눈을 부라리다가, 이내 고갤 저으며 서재로 들어갔다.
아마 깨어난 지 하루 만에 기별도 없이 밖으로 나돈 날 탓할 모양인데, 흥평에 가서 잔당들을 ‘정리’하고 온 사실까지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아빠야!”
그러거나 말거나.
욕은 나중에 듣는 걸로 하고, 나는 품으로 폴싹- 안기는 소윤이를 번쩍 들어 올린 후 녀석의 볼을 슬쩍 꼬집었다.
‘하루가 다르게 크네.’
보통 사람은 4살짜리 어린아이의 성장 속도를 체감하지 못할 테지만…….
나는 관찰력의 대가, 정밀하고 미세한 감각의 소유자, 눈썰미로 ‘생사경’을 관통한 탐구자, 자면서도 ‘자연결’의 호흡 태세를 유지하는 자기 절제의 대가이자 인간 ‘진소윤’을 세상에서 가장 잘 파악한 ‘진소윤’ 전문가라 다르다.
“아빠. 일하고 온 거야?”
“그래. 일하고 왔지.”
“돈 많이 벌었어?”
“돈은 못 벌었는데. 그보다 더 좋은 거 얻었다.”
“그게 뭔데?”
“나도 몰라?”
“피이- 아빠 바보구나?”
“맞아. 아빠는 바보야.”
아직 잠을 청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느 때처럼 소윤이 손을 잡고 집 앞 호숫가로 나섰는데, 칠주야 동안 혼절해 있었던 지라 새삼 이 고적한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다.
“소윤아. 아빠가 잠들어 있는 사이 재밌게 지냈어?”
“응. 글 선생님이랑 공부하고…… 예린 언니랑 책도 읽구… 할아버지랑 등산도 하구. 나름 바빴어.”
“섭섭하네. 아빠는 잠만 자는데 걱정도 안 하고?”
“에이! 내가 아빠 걱정 얼마나 많이 했는데. 잠 귀신이 아빠 잡아먹는 건 아닐까 해서 악몽도 꿨는데!”
“악몽이라…… 소윤이는 4살인데 악몽도 알고. 대단하네.”
“아빠 딸이니까. 헤헤-.”
나는 잠시 멍하니 달빛에 비친 소윤이 얼굴을 봤다.
반달을 뒤집어 놓은 듯 둥그스름한 눈에 앙증맞은 코와 앵두 같은 입술이 잘 섞여 세상 이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아빠.”
“응.”
“근데 일동 삼촌은?”
“일동 삼촌 왜?”
“나랑 산책하기로 했는데.”
“아…….”
소윤아.
일동 삼촌은 지금 흥평에서 시체 태우고 있다.
나는 왠지 개고생하고 있을 일동이 아른거려 킥킥거렸다.
근데.
갑자기 귀가 엄청 간지러운 거 보니…….
일동이가 내 욕을 지독스레 하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