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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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1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26화
#26화
“의약전주라… 허!”
내 제안에 이시진 선생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 표정이었다.
왜 안 그렇겠나.
이 선생은 천하 삼대 의원이고 뜻만 세우면 당장 구파일방에서도 막대한 임금을 받고 의약전주가 될 수 있을 테니.
그런 고인을 무근본 문파, 소천문으로 초빙하는 건, 문주인 내가 봐도 양심 불량이었다.
하나 나는 권유를 멈추지 않았다.
왜?
인생은 못 먹어도 달려보는 거고, 안 되면 때려치우면 그만이니까.
“어르신.”
“말하게.”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무림인이냐고 묻던 어르신의 물음에 저는 무림인이 아니라며 부정했었습니다.”
“기억나네. 물론 믿진 않았지만.”
“그러고 하신 말씀도 기억합니까?”
“내가 뭐라 했는가?”
“낭중지추(囊中之錐). 저 같은 인간은 언젠간 반드시 무림인으로 살게 될 거라 하셨죠.”
“음….”
“저는 어르신의 말대로 강호에 발을 디뎠고 본격적인 강호행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
“힘이 되어 주시죠.”
“안 본 사이에 뻔뻔해졌군.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았나? 자네는 고작 백년연실 하나 받는 것도 사양할 만큼 남에게 신세 지는 걸 꺼리던 사람이었네.”
물론이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에게 신세 지는 걸 싫어하고, 내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자립심 강한 사내, 자존심과 자긍심이 하늘 같은 사내, 도움받기보다 도움 주는 쪽이 어울리는 쓸모 있는 인간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이 선생을 초빙하려는 까닭은 바로 내 제안의 수혜자가 정작 이 선생 본인이 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비록 잠시였지만….
소윤과 재회한 이 선생은 내가 산장에 머물던 시절의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선생을 잘 안다.
겉으로 차가운 척하지만, 속은 겨우내 군불처럼 따뜻한 사람이란 걸.
이 선생은 소윤을 손녀처럼 여기니 속으로는 눌러앉고 싶을 거란 게 내 계산이다.
“제가 뻔뻔해진 건, 어르신 책임도 있습니다.”
“뭐라?”
“백년연실을 주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움받을 땐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훗날 보은하면 된다고 하셨죠. 덕분에 제 사고도 유연해진 셈입니다.”
“허!”
“그러니 책임지십쇼.”
일순, 이 선생은 기함한 낯빛으로 멍하니 날 바라봤는데 때마침 소윤이 적절하게 나서 그를 채근했다.
“힝! 할아버지.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지내자~. 응? 소윤이는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요.”
좋고!
역시 천재라 그런가 끼어드는 시기도 예술이고 부리는 애교의 구성도 만점인 게, 아무리 생각해도 소윤이는 장안 제일 천재가 아니라 중원 제일 천재가 맞다.
“소윤아. 정말 할아비랑 같이 있고 싶은 게냐?”
“응. 당연하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야?”
“껄껄껄. 요것이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을꼬?”
“할부지한테 배웠지?”
“허허허. 알겠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에?”
“우선 몇 달 할아비가 머물며 네 아비를 돕고 너도 가르쳐 보마. 하나, 알다시피 나는 내 공부를 하는 사람 아니더냐? 공부가 부족하다 싶을 땐, 언제든 종남산에 다녀오도록 하마. 말인즉슨, 왔다 갔다 하겠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누?”
“헤헤. 소윤이는 알아들었어요. 그럼 그렇게 하자, 할부지.”
이 선생이 소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윽고 그가 내게 송곳 같은 음성으로 물었다.
“묻겠네.”
“말씀하시죠.”
“의약전주를 권했던가? 소천문에 약당으로 쓸 공간은 있는가? 단순히 약재 창고 용도로 사용할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닐세. 노부는 의서를 편찬할 때 예민하니 남향에 볕이 잘 들고 창밖의 경관이 잘 보이는 곳이어야 하며, 마음껏 부릴 수족 같은 시종이 필요하네. 거기에 소천문의 누구도 내게 명령을 내려선 안 되네. 말인즉슨, 나는 문주인 자네와도 상하 관계로 엮일 생각 없다는 걸세.”
“누가 어르신을 아랫사람 대하듯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소림의 의약전주가 되셔도 방장이 존대를 할 텐데.”
“하나 의약전주인 내가 문주인 자네 명령에 따르지 않는 모습은, 문도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음이야. 문파를 꾸려 갈 때 가장 중요한 건 문주의 권위일세.”
“그럼 이렇게 하시죠.”
“어인 말인가?”
“의약전주 말고, 태상장로가 되시는 겁니다.”
“…….”
“혹시, 문도 열댓 명에 배경도 없는 데다, 문주도 명성이 전무한 소형 문파에 태상장로 직위가 존재하는 게 어이없으신 겁니까?”
“…자네 혹시 관심법 쓰나?”
“관심법은 모르겠고.”
“…….”
“좀 잘 때려 맞추는 편이긴 합니다.”
* * *
해시(亥時) 말 무렵.
이 선생과 연우에게 넘치도록 애교를 부린 소윤은 그제야 체력을 소진하고 예린과 안방으로 건너가 잠을 청했다.
이후 나, 이시진 선생, 연우는 평상으로 나가 곡차 한 잔 더 기울인 뒤 상을 물렸는데, 이 선생은 노곤했는지 금세 처소로 들어갔고 나와 연우만이 마당 한쪽에서 보름달을 슬그머니 바라봤다.
“여러모로 복잡한 하루셨죠, 형님?”
“그렇지. 너도 봐서 알겠지만 개파 흉내만 냈을 뿐, 아직 제대로 된 문파도 아니니 할 일이 태산이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입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딸내미 데리고 길에서 약초나 팔았잖아요. 이제 일문의 문주가 됐으니 이런 사례는 중원 전체를 뒤져도 못 찾을 겁니다.”
하긴.
나도 아직 얼떨떨하니, 몇 달 전 내게 약초를 사준 연우야 오죽할까?
“연우야. 강호엔 별일이 다 있다. 소윤 애비가 하루아침에 왈패들 후려 패고 그들을 거둔 뒤, 지부대인까지 만나 술잔도 기울이고 종내에는 문파까지 만들었다. 너도 명심해라. 강호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언제 칼침 맞고 뒤질지 모르지만, 뭐… 그것도 칼 밥 먹는 강호인들 팔자니 그러려니 하고.”
내 말을 듣자, 연우는 씩- 미소 지으며 지그시 날 바라봤는데….
놈이 아무리 잘생겼지만 나는 남색에 관심이 없으므로, 그 눈빛이 역겨워 나도 모르게 꿀밤을 먹여버리고 말았다.
쾅-.
“악! 형님! 무슨 짓입니까?”
“그런 느끼한 눈빛은 삼가도록.”
“와… 어이가 없네, 정말.”
“꼬우면 덤비던가.”
“됐습니다. 형님한테 덤볐다가 맞아 죽을 일 있습니까?”
“주제 파악 좋고. 그런 건 장점이니 앞으로도 갈고 닦아라.”
“됐고요. 형님. 그나저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뭔데?”
순간, 연우는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답답해서 한 번 더 머리통을 쥐어박으려다 그러면 진짜 삐질 거 같아 자중하고 물었다.
“뭔데 그래?”
“그게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헷갈려서요.”
“글쎄, 그러니까 뭐?”
“이시진 어르신요. 무슨 곡절이 있는진 모르지만, 형님 같은 사람이 숙이는 걸 봐선 대단한 사람 같은데…. 게다가 의약당주로 모시려 한 점도 그렇고 그분의 존함이 이시진인 것도 그렇고….”
“그래서?”
“혹시… 그분 ‘본초강목’을 편찬하신 동벽(東璧) 이시진 선생은 아니죠?”
“맞는데?”
“네?”
“맞다고.”
“그러니까… 오늘 저와 술잔을 기울인… 그러니까 이제 소천문의 태상장로가 되신 저 영감이 중원 제일 의성, 동벽 이시진 선생이 맞다고요?!”
“중원 제일 의성은 뭐냐. 이름 한번 거창하네. 그런 건 모르고. 그냥 이 선생이 천하에서 삼대 의원 중 하나로 불린다는 건 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도 내가 본 이 선생의 의술은 대단했다.”
“세상에나! 그걸 왜 지금 말합니까!”
“……???”
“아! 그런 줄 알았으면 제가 억만금을 제시해서라도 석가장의 석좌 의원으로 초빙했을 텐데.”
“아서라. 저 영감은 돈으로 흥정 안 된다. 성형술에 미용술 같은 신기도 부리는 양반인데, 굳이 돈 벌고 싶으면 대도시에 약방 차려 시술만 해도 1년이면 석가장을 통으로 사고도 남을걸.”
“쳇. 부럽군요, 형님.”
“그럼 네가 졌네.”
“뭔 말이에요?”
“삼동이가 그러더라. 요즘 젊은것들은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형님은 뭐 늙었습니까? 가끔 뇌를 비우고 말씀하시는 거 같네.”
“한 대 더 맞을래?”
“아니요.”
쾅-.
나는 안 맞겠다는 연우의 머리통에 기어코 꿀밤 한 방을 더 선사했다.
내력을 싣지 않아 부상은 면하겠지만 중지를 빼꼼 내민 당랑권의 묘리로 쥐어박아, 혹은 덤이요, 아프기도 아플 터였다.
“아악! 아, 진짜! 형님 미쳤어요? 왜 자꾸 때리는데요? 안 맞는다고 했잖아요.”
“생각해보니 빡쳐서.”
“뭐가요?”
“동벽 선생은 이제 소천문의 일원이 됐는데 뭐가 어째?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석가장의 의원으로 모셔가?”
“아…. 그건 그냥 너무 놀라서 한 말이죠.”
“나도 그 말 듣고 너무 놀라서 때린 건데?”
후….
나는 내 말에 스스로 웃겨 잠시 킥킥거렸다.
그러자, 연우는 똥 덩어리를 보는 듯한 눈으로 한동안 말없이 쏘아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어휴! 됐습니다. 안 본 사이에 더 엉뚱해지셨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자꾸 돌발행동이 튀어나오는 게, 아무래도 약간 돈 게 아닌가 싶고….”
“아무튼! 아! 진짜 진짜 긴히 할 말 있었는데 자꾸 딴죽 걸고, 때리고 짜증 나게 해서 꼬였잖아요!”
“또 뭔데?”
“형님….”
뭐지?
이번엔 연우의 음성과 눈빛이 자못 진지하게 변했다.
당랑권 식 꿀밤을 두 방이나 맞고도 이처럼 태연스레 태세 전환하는 걸 보면 놈도 참 속없고, 단순한 거 같은데….
어쨌든 연우의 진지함에 궁금증이 일어, 나도 진지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무게 잡는데? 정말 무슨 일이냐.”
“놀라지 마십쇼.”
“…….”
“형님. 제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섬서의 치안을 살피고 준동하는 세력을 조사한 거 아시죠?”
“아니?”
“아니, 그것도 몰랐습니까? 전에 말해줬잖아요.”
“난 머릿속에 쓸데없는 정보를 지우는 능력의 소유자다. 네가 뭔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닌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지.”
“와! 말하는 것 좀 보게. 진짜 너무하시네.”
“본론만 말하자. 자꾸 이러면 널 또 때리는 수밖….”
“형님을 노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날 노리는 세력이라고?”
“네. 일전에 형님이 손봐주었던 흑사회 있잖습니까. 놈들이 형님을 노리는 거 같아요.”
순간 당혹스러웠다.
하나, 내가 저지른 일이 있기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갔는데.
“내가 흑사회 놈들을 두들겨 팼을 때, 놈들은 내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한데, 어떻게?”
“에이! 형님이 지난 몇 달간 장안 전체를 휘젓고 다녔잖아요. 동천 바닥까지 ‘현상금 사냥꾼’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는데요, 뭐. 흑사회의 정보력은 대단합니다. 이미 형님의 정체를 파악했을 거예요.”
내 정체라….
얘는 내 정체가 뭔 줄 알고 이런 소릴 하는지 모르지만, 대충 상황을 유추해보니 가슴이 섬뜩했다.
“그럼 내가 소윤이를 키우는 홀아비란 사실도 알고 있단 거냐?”
“정확히는 모릅니다. 형님이 그날 흑사회를 손봐준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확실친 않고요. 다만, 놈들은 흑도와 악당들을 중심으로 사냥 행진을 벌이는 형님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형님의 이모저모를 파악하는 것도 시간문제겠죠. 아마 지금쯤 소천문을 관찰하고 있을 테고요.”
“아….”
나는 평생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겁이 났다.
왜냐?
흑사회는 양아치 집단이라 대의도, 명분도 신경 쓰지 않는 쓰레기일 게 자명하고 그런 놈들이 날 노린다면 나야 괜찮지만 소윤이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 걱정하지 마십쇼, 형님. 저희 석가장에서 많은 인원을 장안 곳곳에 심었습니다. 놈들의 동태를 살피고 적절한 때를 봐서 한 번에 소탕할 테니 형님은 때가 되면 소천문의 힘을 좀 빌려주십….”
“연우야.”
“네?”
“안 되겠다.”
“네?”
“흑사회. 당장 작살 내야겠다.”
“형님. 일단….”
“됐고.”
“…….”
“그 새끼들 어딨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