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16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16화
#16화
“……!”
“……!!”
“……!!!”
도대체 왜?
사람들 반응이 이 모양이야.
내가 중인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감수하고도 100명의 강도들을 목줄 채워 관청에 끌고 온 건, 현상금을 받기 위해서다.
더욱이 나는 이미 그 목적을 숨김없이 드러내지 않았나.
한데 돈 달라는 말에 왜 다들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볼까?
“뭐… 문제라도?”
“아, 아니외다. 문제 될 게 뭐 있겠소. 하나… 진 대협.”
“대협은 아니지만 말씀하시죠.”
“마적단을 추포한 대협의 공은 적지 않으나 당장 현상금을 지급하는 건 어려울 듯싶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부대인.”
“그게….”
“……???”
“이 자들에겐 걸려 있는 현상금이 없소.”
* *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듣기로, 철혈방은 민간인을 납치해 흑도에 팔아넘기는 건 예사고, 입에 담지도 못 할 짓을 밥 먹듯 하는 쓰레기들이라 했는데….
그런 자들에게 현상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당최, 백성들이 낸 세금은 어디다 쓴다는 소린가?
하나 다행히 내 당혹감과 의문은,
“진 대협. 둘이서만 긴히 대화를 나누고 싶소만….”
지부대인이 요청한 독대로 해소될 수 있었다.
“대인. 어찌?”
“진 대협. 현재 섬서성은 폭풍전야요. 최근 흑사회라 불리는 조직과 그 배후 세력이 준동한 탓에, 치안이 불안정해진 건 물론,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도 조정으로선 알 길이 없소. 지금까지야 백도 무림이 흑도를 견제해 준 덕에 관리할 필요가 없었지만, 근자에 무림이 어수선하여 백도 문파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실정이오. 나도 그 때문에 특명을 받고 이곳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고. 본래 중원엔 관무불가침이라는 불문율이 존재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심각하니 예외를 둘 생각이오.”
“…그건 알겠는데, 제가 듣고 싶은 건 현상금에 관한…”
“물론 있소.”
“네?”
“현상금 말이오. 당장은 금액과 지원 폭이 정량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없다고 말했지만, 그 부분은 내 권한으로 책정할 수 있소.”
“…하면?”
“진 대협. 앞으로 섬서 지역의 불한당들을 순차적으로 추포할 거라 들었소. 그 다짐… 믿어도 되겠소?”
“일단 그럴 작정입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
“장안의 임시 포두가 되어주시오.”
“……???”
“물론, 포두가 높은 관직은 아니오. 해서, 달갑진 않을 테지만 약속하건대, 진 대협은 일반 포두와 다른 특별한 지위를 누릴 것이오. 예컨대, 녹봉도 성과를 내는 대로, 차등 지급할 것이며, 필요에 따라 포쾌와 포졸, 정용(일꾼)을 부릴 수 있도록 조치하리다.”
“지부대인….”
“또한 순검과 추관들의 지휘도 받지 않는 별동조의 권한을 부여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소.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파격적인 인사 단행이자, 행정 조치요.”
사람이 너무 당혹스러우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던데.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포두라….
나는 살면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같은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한데 그런 내가 나랏일을?
어림도 없지.
게다가 포두라니?
내가 비록 저잣거리 고아 출신에, 마교에 납치되어 평생 사람 모가지 따며 살았지만, 글공부도 모자람 없이 한 데다, 무공으로 치면 군부의 장군이라 해도 한순간에 머리통을 박살 낼 텐데 순검도 아니고 고작 포두?
같잖아서, 콧방귀가 나올 지경이었다.
“대인.”
“말하시오, 진 대협.”
“저는 관직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진 대협. 포두란 직책은 그리 특별할 게 없소. 관직이라 불릴 만큼 대단치도 않거니와….”
“그래서입니다.”
“……???”
“말 그대로 포두는 뭐, 없지 않습니까.”
“아… 그렇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이오. 다시 한번 재고할 수 없겠소?”
젊은 나이에 지부대인까지 된 양반이 말귀가 좀 어둡네.
굳이 내 입으로 ‘호랑이가 어떻게 개 밑에 있겠소?’라고 물어야 되겠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후…. 그리 완고하니 어쩔 수 없구려. 하면 앞으로 민간 영역에서 불한당들을 처단하겠단 약조만은 꼭 지켜주시길 부탁하오.”
그때.
한숨을 푹 내쉰 지부대인은 대뜸 날 향해 포권지례했다.
솔직히 의외였다.
내가 벼슬아치의 조직도를 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로 봐선 지부대인이 가장 높은 양반 같은데.
그런 양반이 잘나가는 무림인도 아닌 날 향해 정중한 자세로 일관하는 걸 보면 이 양반 천성이 소탈하거나, 또는 현재 섬서의 분위기가 그만큼 좋지 않단 뜻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나 그 전에 확언받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말입니다.”
“말씀하시오.”
“불한당들을 추포하여 넘기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런 부분은 묵인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컨대 어떤?”
“불한당들이 어떤 놈들입니까? 아주 흉악한 놈들이지요?”
“그렇소만.”
“그런 놈들 잡다 보면 불가피하게 몇 놈은 대가리 깨고, 몇 놈은 다리를 분질러서 앉은뱅이 만들고, 또 어떤 놈은 혓바닥을 뽑거나 머리털을 몽땅 태워야 할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그런 거 묵인 좀 해주십쇼.”
* * *
“소, 소천 형님? 그게 정말입니까?”
“와! 큰형님 그렇게 안 봤는데, 협상의 달인이셨네.”
“대단합니다, 형님. 크흐흐.”
동동이 형제는 마치 날 대단한 사람인 양, 띄웠지만 사실 나는 별로 한 게 없다.
그저 앞으로 내가 할 일을 대략 밝혔고, 내가 원하는 부분과 관청이 원하는 부분을 조율했을 뿐.
하나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철혈방 출신 마적들을 넘긴 대가는 적지 않았으니.
물론, 당초 생각보다 현상금은 크지 않았다.
하나 섬서성의 대장격인 지부대인과의 독대로 나는 암묵적인 ‘치안 관리 권한’을 부여받았고 그 과정에서 발생 되는 수익, 불가피한 폭력, 살인 등에 관한 일을 단 방에 해결한 셈이니 손 안 대고 코 푼 격 아닐까.
“일동, 이동, 삼동아. 대단한 거 없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들뜨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진정들 해라.”
“네, 형님.”
“네, 큰형님.”
“네, 소천 형님.”
“일단 우리는 금호 산장에서 찾은 재화에 더불어 현상금도 챙겼으니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하나 만족하지 마라. 듣자 하니, 최근 섬서에 나쁜 놈들이 개판을 치는 모양이더라. 우리는 그런 놈들 벗겨 먹으면서 무공도 익히고 각자 삶도 살아야 하니 앞으로 무척 바쁠 거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술이라도 한 잔씩들 해라. 내일부터 첫 수련을 시작할 테니 마음의 준비도 하고.”
“처, 첫 수련 말입니까?”
“드디어 저희도 무공을 배우는 겁니까?”
“하! 소천 형님께 무공을 배우면 저도 싸움 귀신이 될 수 있겠죠? 흐흐!”
수련이란 말에 일동, 이동, 삼동은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애당초 녀석들이 날 찾아왔던 목적은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였으니 그럴 만도 할 터였다.
“강하다는 건 상대적인 거다. 그래서 너희가 얼마나 강해질지는 나도 모른다. 예컨대 상대가 보잘것없는 강도면 너희는 그들에 비해 강해질 수 있다. 하나 상대가 나라면? 너흰 죽었다 깨어나도 강해질 수 없다. 왜냐? 너희는 영원히 날 이길 수 없거든. 대신, 내 밑에서 피 나고 알배고 이 갈릴 때까지 수련하면 어디 가서 쉽게 맞고 다닐 일은 없다. 사실 무공의 본질은 거기에 있다. 때리는 놈이 될 것이냐, 맞는 놈이 될 것이냐. 웬만하면 때리는 놈이 돼라. 말인즉슨 살다가 너희보다 강한 놈을 만나면 도망가란 소리다. 안 맞고 때리면서 사는 게 장땡인 게 강호 바닥이다.”
“네, 큰형님.”
“알겠습니다,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소천 형님.”
그렇게 동동이 형제와 헤어진 나는 곧장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당장 집에 가서 소윤이를 보고 싶었지만, 명색이 ‘아빠’인데 첫 ‘노동’으로 돈을 벌고 빈손으로 들어가기는 싫었다.
- 장신구 팝니다! 천축국(天竺國)에서 들여온 장신구 팝니다! 구경들 하시구려!
때마침, 귀한 장신구를 파는 보부상단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좌판에 진열된 물건을 유심히 살폈는데 초록빛을 선연히 머금은 목걸이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목걸이… 진짜 천축에서 들여온 거요?”
“물론이죠, 손님. 이런 상질의 비취옥으로 만든 목걸이는 중원에 없습니다요. 게다가 목걸이 알 중 하나는 야명주로 만들어진 것이니, 엄청 진귀한 장신굽니다!”
나는 대번에 보부상이 구라를 친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뭐?
상질의 비취옥이 중원에 없다?
누굴 장강의 모래알로 보나….
내가 비록 전생에 살수였지만 외려 직업의 특성 탓에, 천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힌 사람이다.
중경 남부만 가도 품질 좋은 비취옥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천축국에만 있다니.
게다가 더 황당한 건, 목걸이 알 중 하나가 야명주라는 주장이었다.
야명주는 같은 무게의 순금보다 10배 이상 비싼 보석인데 제깟 놈이 길거리 좌판에서 태평하게 팔 수 있겠나.
참고로 나는 진짜배기 야명주를 가려내는 안목을 가졌다.
뭐, 내가 보석 전문가라서 그런 건 아니고 초보 살수 시절 천리안이 개방되지 않아 어두컴컴한 밤엔 살인하기가 까다로웠는데 그럴 때마다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발광력 뛰어난 야명주를 소지하고 다닌 까닭이다.
“상인 양반. 너무 대놓고 사기 치는 거 아니요?”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사기 같은 거 모르는 사람인데요?”
나는 어이가 없어 보부상에게 전음성을 흘려보냈다.
[상인 양반. 내 취미가 비취옥 사들이는 거, 야명주 모으는 거, 그렇게 모은 비취옥과 야명주로 목걸이 만드는 거요. 하필 댁은 그런 나한테 구라를 친 거고. 만약 여기서 나랑 댁이 고성 지르며 논쟁이라도 벌이면 오늘 장사 끝일 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을까?]
내 전음을 들은 보부상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슬그머니 귓속말을 걸어왔다.
“소, 손님…. 왜 이러십니까? 저도 먹고살아야 하니 한 번만 봐주시죠.”
“물론. 내가 정의의 사도거나 투명한 상거래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 또는 시장 경제의 선봉자도 아닌데 뭐 때문에 쓸데없이 일개 보부상의 생업을 가로막겠소?”
“하, 하면…?”
“목걸이만 공짜로 주쇼.”
“……???”
“조용히 사라져 드릴게.”
* * *
“아빠야! 진짜 예쁘다아! 너무너무 예쁘다!”
“그렇게 좋아?”
“웅! 소유니는 지금 너무 행보케.”
소윤이는 좋겠다.
별거 아닌 목걸이에 행복할 수 있어서.
하나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언젠간 나도 별거 아닌 일상에 행복해지는 날이 올 거니까.
“예린아. 이건 네 선물이다.”
집에 도착한 나는 소윤에게 공짜로 받은 목걸이를 건네는 한편, 입주 가정부 예린에겐 철전 한 꾸러미를 건넸다.
사실 돈을 선물로 주는 건, 없어 보이고 투박하고, 상스럽고, 못 배워먹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도 고상한 척 위선 떠는 인간들의 선입견이요, 개소리일 뿐이다.
선물도 상대적인 거 아닌가?
소윤에겐 장신구가 적절하니 목걸이를 선물한 거고, 예린이는 우리 집에 들어온 목적 자체가 돈이니 현금만 한 선물이 없을 거라는 게 내 지론이었다.
“나리. 이런 큰돈을….”
“별로 안 크다. 앞으로 종종 더 큰돈을 선물 받을 수 있을 테니 일희일비하지 마라. 대신 그만큼 소윤이 잘 챙기면 된다.”
“네, 나리. 감사합니다.”
이후 나는 모처럼 소윤의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걸으며 산책의 시간을 가졌다.
불그스레 타들어 가는 저녁노을이 출렁이는 호수 표면을 물들이자 새삼, 봐줄 만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많이 바뀌었다.
전직 살인 전문가가 저녁노을 감상이라니….
“아빠야.”
“응?”
“소유니 목말 태워줘! 목말!!”
“아.”
물론….
“타라, 소윤아.”
그런 감상에 깊이 젖기에, ‘아빠’란 너무 바쁜 존재지만.
“헤헤헤. 야호!!!”
뭐, 사실 예쁜 경치 보는 것보다 소윤이 웃는 거 보는 게 더 좋아서 별 상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