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15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2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15화
#15화
나는 철혈방 출신 강도들의 손목을 포승줄로 단단히 포박한 다음, 목에도 한 겹 더 줄을 감았다.
개중 미약하게나마 내력을 지닌 놈은 단전을 없애버렸고, 워낙 흠씬 두들겨 패서 지옥 구경을 시켜준 터라, 놈들은 반항 따위 꿈도 꾸지 못한 채, 나와 동동이 형제를 따라나섰다.
이로써, 우리는 ‘진소천과 100인의 도둑’을 구성했다.
진소천과 100인의 도둑은 길쭉한 행렬을 지어 성도를 걸었는데 100명의 거한이 목줄 차고 똥개처럼 걸어 다니는 모습에 중인들이 동그래진 눈으로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 허!
- 저게 다 뭐래?
- 딱 봐도 죄인들 같은데…. 저 많은 인원을 고작 셋이서 호송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귓가를 스치자, 강도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동동이 형제도 낯부끄러워하는 눈치다.
하나 개의치 않았다.
부끄러운 거야 제 놈들 사정이고, 나야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그렇다.
전생에 살수로 살다 보니 내겐 남의 평가가 중요치 않았다.
그저 하달된 임무만 수행하면 인정받았고, 그 임무란 게 대부분 아무도 모르게 표적의 모가지를 비트는 살인이었으므로 사실 세인들의 이목 따위 신경 쓸 일도 없었던 것이다.
“…나리. 대체 이 행렬은 무엇입니까?”
그러던 중,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나이 지긋해 보이는 영감이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딱 봐도 범죄자임이 틀림없어 뵈는 놈들을 호송 중이니, 내가 관청의 포두로 보였나? 존댓말에 굽실거리기까지 한다.
“이놈들은 산적질 하던 마적단이오. 왈패들이 마적단을 꾸려 산적질까지 했으니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하고 살아온 흉악한 놈들이죠.”
“아…. 그렇군요, 나리.”
“나리, 나리 하지 마십쇼. 저 벼슬아치 아닙니다.”
“관청 사람이 아닌데 이런 불한당들을…. 혹시 무림인이십니까?”
“무림인도 아니요.”
“네? 아니, 관청 사람도 아니고 무림인도 아닌데… 어찌?!”
어이가 없네.
관청 사람도 아니고 무림인 아니면 강도 잡으면 안 되냐?
되묻고 싶었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자중했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금 난감하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전생자가 된 전직 마교의 특급 살수 진소천인가?
아니면 사냥꾼 출신, 소윤이 아빠 진소천인가?
그때.
나는 이내 가정부 예린에게 했던 대답을 떠올렸다.
“노인장.”
“네?”
“…악의(惡意)를 가진 선인(善人) 정도로 해둡시다.”
물론, 내 말뜻을 알아들을 리 없는 노인은 고갤 갸우뚱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냥 내 갈 길을 갔다.
아무래도 빨리 ‘나’에 대한 정체성을 완전히 옹립해 닭살 돋는 대사로부터 벗어나야겠다.
* * *
“아, 아니 이게 대체!”
“뭐, 문제 있습니까?”
“아, 아니외다. 다만 너무 황당해서.”
“요지는 간단합니다. 강도들을 관청에 넘기고 현상금을 받고자 하니, 돈부터 주십쇼.”
“……???”
관청에 당도한 나는 대뜸 목적부터 밝혔다.
그러자, 포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동동이 형제, 그리고 100명의 강도들을 바라보더니 떨리는 어투로 말했다.
“…이보시오. 이런 일은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없으니 기다리시오. 얼른 순검 나리께 보고를 올릴 테니.”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마시오. 바쁜 사람이니까.”
“허…. 알겠소.”
대화를 마친 포두는 부리나케 관청을 빠져나갔고 나는 포쾌들에게 강도들을 인계한 뒤, 동동이 형제와 접객실에 앉아 차를 홀짝였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날 바라보는 일동, 이동, 삼동의 눈빛이 심상찮았다.
“왜? 뭐 때문에 그렇게 쳐다보는데?”
“혀, 형님.”
“큰형님…. 형님은 볼수록 혀를 내두르게 하는 분이십니다.”
“저는 살면서 형님 같은 상남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난데없는 녀석들의 호들갑에 얼떨떨했지만, 그 연유를 알 것 같아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혀를 내두를 정도의 상남자라고 느낀 건데?”
그러자, 일동이 고갤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몰라서 물으십니까? 100명이나 되는 놈들을 목줄 채워 끌고 다니질 않나, 관청 포두에게 대뜸 현상금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게다가 바쁜 사람이니 기다리게 하지 말라고 선언까지 박아 버리시니. 이거야, 원…. 흐흐. 멋있어서 웃음이 나오는군요.”
그때, 이동과 삼동도 느끼는 바가 있는지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그뿐입니까? 제일 놀라운 건, 바로 소천 형님의 무공이지요. 싸움에 있어서는 귀재 중의 귀재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일로 소천 형님을 정말 다시 보게 됐습니다. 무림의 일류 고수와 비교해도 손색없으실 겁니다.”
“이동 형님. 소천 큰형님 정도면 일류 고수가 아니라 절정 고수와 비교해도 안 빠지시죠!”
그렇게 동동이 형제는 북 치고 장구 치고 저들끼리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또한 우스워서 나는 다시 한번 킥킥거리며 물었다.
“너희. 절정 고수를 본 적이 있긴 하냐?”
“아. 딱히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청방에 있을 때, 꽤 명성 있는 흑도 고수들을 접해보긴 했지요.”
“무림 고수들 사실 별거 있습니까? 형님 실력이면 분명히 다 쓸어버릴 게 틀림없습니다!”
역시….
동동이 형제는 절정 고수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물론 절정 고수란 개념은 주관적 영역이라 특정해서 구분할 수 없다.
대충 통념상 검기(劍氣)를 방출하면 절정 고수로 보는데 이 또한 명확한 기준은 될 수 없고, 또 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화경이니, 현경이니 하는 것도 구분 짓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만든 환영이요, 허상이자 관념에 지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전생에 숱한 살인을 저지르며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생사를 넘나드는 승부에 있어 ‘경지’란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
실제로 싸움은 무공의 고하로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높은 경지에 오른 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유리하지만 사실 승부란 그날그날의 몸 상태, 서로 간 익힌 무공 사이의 상성, 더불어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필승(必勝)의 의지가 더욱 중요한 법이다.
적절한 예로 전생의 나는 나보다 경지가 높은 화산파의 장문인을 암살했고, 마교 최정예 부대인 ‘천마용검대’의 120인을 몰살하였으며 마도(魔道) 사천왕이라 불리는 호법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면서도 청마왕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굳건한 각오 덕분이다.
나는 전생에 죽을 고비만 일백 번을 넘겼다.
내 삶 자체가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이었고, 언제나 ‘죽음’이란 단어를 상정한 채로 살았기에 애당초 ‘승부’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새삼 전생의 나도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혼자 천마용검대 120인을 죽인 걸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전생의 나, 칭찬해.
“일동, 이동, 삼동아. 절정 고수는 뉘 집 개 이름 같은 게 아니다. 최소한 구파일방의 일대제자 정도는 돼야 절정 고수라 하지. 나를 절정 고수와 비교하는 건, 어디 가서 또라이 취급받기 딱 좋은 짓이니 자중해라.”
“하지만 형님! 저는 형님이 누군가에게 진다는 게 상상이 안 갑니다. 정말 절정 고수란 게 그렇게 대단합니까? 형님도 못 이길 만큼요?”
“아. 그야 물론 아니지.”
“네?”
“절정 고수든 나발이든 싸우면 내가 어떻게든 이기긴 이길 거다.”
“뭔 소리예요? 방금은 절정 고수가 더 대단하다면서요?”
“아무튼 그런 줄 알아라. 아직 너희한테 설명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니 말하기 귀찮다. 너희도 내 밑에서 개처럼 구르면, 이해하는 날이 올 거다. 싸움이란 게 무공만 높다고 다 이기는 게 아니거든.”
내 말이 아리송한지 일동, 이동, 삼동은 의문스러운 듯했지만 더 이상 눈치 없이 질문을 던져오진 않았다.
아마 지금 녀석들의 심정은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잘 모르니까 그냥 X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정도로 혼란스럽겠지만, 언젠간 얘들도 내 철학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이, 이보시요들!”
그때.
관청을 뛰쳐나갔던 포두가 접객실로 들어와 다급하게 말했다.
“왜 그리 호들갑이오? 무슨 일 있소?”
“후…. 성도부의 지부대인(知府大人)께서 오셨소. 얼른 나와서들 대인께 인사 올리시구려.”
지부대인이라….
높은 사람인 모양인데.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잘 모르니까 그냥 X나 가만히… 아니, 시키는 대로 해야지.
* * *
“정말 무림인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다시 묻겠소. 구파일방이니, 팔대세가니 하는 대형 문파의 일원인지를 묻는 게 아니오. 정말 어떤 무관에도 속해 있지 않은 순수 일반인이란 말이오? 정녕 그대들이?”
“그렇습니다.”
“허! 나도 무공을 익혀서 알고 있소.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저런 불한당 100명을 단숨에 추포할 수는 없소. 한데, 정말 일반인인 당신들이 저자들을 잡았다는 게 사실이오? 고작, 현상금을 받기 위해서?”
지부대인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악습관을 지닌 자였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이는 게 소년 급제를 한 건지, 용케도 고관이 된 것 같다만.
세상사 경험이 없어서인지 자기 상식 밖의 일은 믿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놈이라고 할까?
하나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했다.
타향서 섬서에 흘러들어왔고, 전직 왈패 출신의 동동이 형제를 거느리게 됐으며 딸내미를 하나 키우는데 먹고 살길이 요원해 산적, 마적, 해적, 각종 강도나, 못된 짓 하는 놈들 벗겨 먹을 생각으로 금호 산장에 올랐던 사실을 말이다.
그 와중에 동동이 형제는 안면이 거의 새파랗게 질려 버렸고 지부대인 옆에 시립해 있던 통관, 추관, 순검, 포두, 포쾌들의 눈에도 경악이 서리긴 했는데 내 기준엔 별 놀랄 일도 아니거니와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평범하게 상황을 설명해나갔다.
“음…. 정말 놀랍소. 사실 나는 철혈방 출신의 마적 100명이 추포되었다길래, 화산파나 종남파의 고인들께서 지역 치안을 위해 힘써주셨을 거라 예상하고 온 터요.”
아.
그러니까 지부대인은 나와 동동이 형제가 혹시 화산이나 종남 같은 구파일방의 잘나가는 무림인일지 모르니 눈도장 찍으러 온 거다?
근데 아니라서 실망이라도 한 거야, 뭐야?
“아니라서 실망하셨습니까?”
“실망이라니. 당치 않소. 그러잖아도 의문스럽던 참이오. 화산이든, 종남이든. 그 속가 무관이나 무가(武家)든. 무림맹의 일로 바쁘다고 들은 터라. 한데 역시나 다른 분들이셨군.”
“나쁜 놈 잡는 데 꼭 유명한 문파의 무림인일 필요는 없지요. 앞으로 종종 찾아뵐 겁니다. 이곳 장안을 넘어 섬서성 전체의 나쁜 놈들을 수시로 추포해 관에 넘길 생각이니까.”
“허! 나야 고맙지만 정말 그럴 자신이 있소?”
“뭐, 안 되면 마는 거지요.”
“……???”
“아무튼 지부대인. 지금 이 시간부로 저는 철혈방 출신의 마적들을 모두 관에 인계하겠습니다.”
“지역 치안이 나날이 무너지는 와중, 이런 큰일을 해주시어 감사할 따름이오. 진 대협 휘하 세 분의 협의(俠義)에 경의를 표하오.”
“그런 거 아닙니다.”
“하하. 그리 겸손할 필요 없소. 진 대협은 정말 큰 일을…”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
나는 왠지 희한하게 흐르는 장내 분위기와 지부대인의 공치사를 대번에 잘랐다.
혹여라도 저런 번지르르한 잡소리가 길어져 목적이 흐려질까 우려한 까닭이다.
“지부대인. 제가 저런 흉악한 놈들을 추포하여 끌고 온 이유는 협객행을 걷기 위함도, 대의를 내세우기 위함도 아닙니다.”
“하면….”
“빨리 현상금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