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11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4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11화
#11화
책과 구전을 통해 수도 없이 접해봤다.
‘영웅담’이라 불리는 강호의 비사들을.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이해 안 되는 대목이 있었는데 바로 ‘결의형제’에 관한 것이었다.
피 한 방울 안 나눈 사내끼리 싸우다가 하루아침에 의형제가 되는 진부하다 못해, 역한 이야기들 있지 않나.
형제가 뭔가?
나는 형제가 없어 잘 모르지만, 아마 전장에서도 뒤를 맡길 수 있고, 재산도 나눌 수 있는 말 그대로 분신 같은 존재가 아닐까?
어쨌든 의형제 같은 건 내 인생에 없었고 앞으로도 만들 생각이 없다.
한데 동동이 형제는 불과 몇 시진 전, 나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처맞고도 대뜸 찾아와, 모시겠다느니, 거둬달라느니 하는 소릴 지껄였다.
뭐, 이게 대충 결의형제 맺자는 행동 아닌가?
다 떠나서, 이놈들은 자존심도 없나?
나 같으면 이를 갈고 수련해 복수하려 들 텐데.
“너희. 머리를 잘못 맞아서 미친 거냐?”
내 물음에 일동이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분했습니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개뼈다귀가 우릴 이렇게 팬 걸까? 당장 복수하고 싶기도 했고요.”
“근데?”
“하나 생각해보니 우린 죽었다 깨어나도 복수할 수 없을 것 같더군요. 한 대라도 때릴 수 있었다면 모를까 셋이 전력을 다 해도 한 대를 못 때렸으니. 게다가 형님은 힘으로도 저를 눌렀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완력만큼은 장안의 무관 출신 무림인들에게도 밀려본 적 없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건 기회라고.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배운 게 없어서, 돈이 없어서, 부모가 없어서 청방에 들어가 파락호로 두어 해 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녀자 건드리고 아이들 납치해, 흑도로 팔아넘기는 작태에 구역질이 나, 청방을 탈퇴하고 백수건달로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하나 이제 형님께 싸움 기술을 배우고 산적, 마적 같은 악당들을 응징하며 살고 싶습니다.”
대충 일동의 말을 들으니 녀석들의 의중과 심리가 훤히 그려진다.
그러니까 놈들은 ‘청방’이란 건달 조직에 몸담았다 탈퇴했는데 당장 먹고 살길은 없고, 어쩌다 보니 싸움 잘하는 나를 만났다.
뭐 이런 건데….
이젠 나에게 가르침을 받고 이후 산적이나 마적 같은 못된 것들 호주머니 털고 살겠다.
정도로 정리하면 되려나?
근데….
‘근사한데?’
왜 머릿속에 이런 미친 생각이 떠오르는 걸까.
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쁜 선택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당장 소윤이 업은 채로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었는데.
일단 나는 장안의 생리를 알지 못한다.
하나 동동이 형제를 수족처럼 부리면 장안 바닥을 속속들이 알 수 있고, 산적, 마적 놈들 벗겨 먹는 거야 나한텐 ‘천직’ 아니겠나.
그렇지만 고갤 내저었다.
우선 동동이 형제에 대한 불신이 가시질 않았고 놈들의 인간성도 한 번쯤 유심히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일동아.”
“네, 형님.”
“네 말에는 어폐가 있다.”
“네?”
“배운 게 없어서, 돈이 없어서, 부모가 없어서. 그래서 청방이란 파락호 무리에 들어갔다고 했지?”
“네, 형님.”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있나. 그게 과거를 세탁할 핑곗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냐? 섬서 전체에 부모 없고 돈 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 거 같아? 길 가는 사람 열 중 다섯은 배운 게 없어 글을 못 읽고 대기근에 버려진 아이들 또한 수두룩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그랬다고.”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나 역시 일곱 살 때 양친 여의고 마교로 들어가 숱한 살인을 저질렀으니, 결과적으로 동동이 형제보다 내가 100배쯤 악당 아닐까.
하나 최소한 나는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궤변 같지만,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나는 적어도 동동이 형제가 곤궁한 형편을 핑계로 조직에 들어가 못된 짓 하며 살았던 과거를 부끄러워하길 바랐다.
“인정합니다, 형님. 늦었지만 그래서 저희도 청방을 탈퇴한 거고요. 그래도 말입니다! 우리 형제는 대장부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애썼습니다.”
“…….”
“형님! 무공을 가르쳐주십쇼. 싸움을 가르쳐주십쇼. 결코, 약자를 괴롭히지 않고, 못된 것들만 작살 내며 살겠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가 있다 보니, 장안 어디서도 우리를 일꾼으로 써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매일 술이나 퍼마시며 동네 사람들을 겁박하고 살았습니다. 하나 이제 그리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음….’
일동은 참 놀라운 구석이 많은 놈이다.
처음 봤을 때, 타고난 덩치에 놀랐고 두 번째로 투지와 완력에 놀랐는데, 이번엔 왈패답지 않은 비장한 결심으로 날 놀라게 했다.
“너희… 밥은 먹었냐?”
“네?”
“들어와. 국수 말아 놨으니까 한 그릇씩들 해라.”
나는 동동이 형제를 집 안으로 데려와 국수 한 그릇씩 퍼줬다.
놈들은 앙증맞은 젓가락질로 국수를 먹고 있는 소윤을 보더니 귀엽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소윤은 거한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헤헤 웃으며 애교를 떨더니 급기야 일동의 수염을 힘껏 잡아챘다.
“아얏!”
“헤헤헷!”
결국, 애꿎은 일동의 수염 몇 가닥이 뽑히고 말았다.
“소윤아. 삼촌 아프잖아. 흐흐! 그러면 못 써욧!”
“히힛? 삼초나. 삼초는 수염이 왜 이렇게 마나?”
“클클. 삼촌은 원래 이렇게 태어나서 그래.”
‘……???’
이건 또 무슨 조합인가.
소윤에게 사람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건지, 아니면 만나는 사람마다 애들을 좋아하는 건지.
이시진 선생도, 석연우도.
소윤일 그리 예뻐했는데, 동동이들은 외려 더한 모습을 보였다.
“크으!”
“이거 정말 형님이 만드신 거 맞습니까?”
“대형. 완전 맛있습니다. 아예 국숫집을 열어도 되겠는데요?”
어쨌든 삽시간에 국수 한 그릇을 들고 마시듯 흡입한 동동이들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 요리 실력을 찬양했다.
우습게도 보람이 느껴졌다.
더 웃긴 건, 국숫집을 열어도 되겠다는 삼동이의 말에 일순 혹했다는 것이다.
이제야 알게 된 건데, 나는 은근 귀가 얇은 모양이다.
산적, 마적 털어먹자는 일동의 제안도 근사하게 느껴지더니, 하다 하다 국숫집 열어보라는 삼동의 제안에도 넘어갈 뻔했으니.
“됐고. 동동이 형제.”
“네?”
“니들 돈 있냐?”
“그게… 무슨?”
“국수는 한 그릇당 은자 한 냥 되겠다. 참고로 무전취식은 사절이다.”
* * *
소윤이는 천재다.
4살짜리 아이치고 소윤이만큼 말 잘하고, 상황 판단 빠르며 논리적인 꼬맹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아마 천하를 이 잡듯이 뒤져도 못 찾을 거다.
고로 나도 천재다.
내가 소윤의 아비니 자연스레 천재 되는 거 아니겠나.
나는 천재답게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렸다.
우선 동동이 형제를 수족으로 감으려면 필요한 것이 ‘신뢰’일 것이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단 방에 때려죽일 수 있는 녀석들인데 그깟 ‘신뢰’가 뭐 중요하겠냐마는, 세상일이 또 모르는 법이다.
전생에도 교주를 믿었다가 통수 맞고 뒤진 게 나다.
그래서 고안해 낸, 안전장치는,
“좋다. 이제 내가 너희를 거둔다. 하나 조건이 있다. 형님 동생의 사이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해. 고로, 너희는 내게 믿음을 줄 필요가 있지.”
“그 조건이 뭡니까 형님? 불구덩이에 들어가라 명하셔도 들어가겠습니다!”
“그딴 건 필요 없고.”
“……?”
“너희가 가진 재산을 바쳐라.”
바로 동동이들의 돈을 내가 갖는 것이다.
전생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지만 속세는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만약 동동이들이 내게 재산을 바칠 수 있다면 녀석들을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바, 바치겠습니다. 형님!”
“비록 얼마 안 되지만… 형님의 대계에 쓰일 수 있다면, 응당 그리해야지요!”
“당장 돈을 들고 오겠습니다!”
근데.
와….
얘들 화끈하네.
아무튼 나는 얼떨결에 일동, 이동, 삼동의 재산을 갈취(?)하는 데 성공했다.
녀석들은 이 돈으로 내가 ‘의적단’ 비슷한 세력을 꾸려 독자적 노선을 걸을 거라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럴만한 큰돈도 아니었고, 왈패 놈들 더 모아 봤자 왈패 우두머리란 소리밖에 더 듣겠나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몸을 굴릴 ‘시간’이었다.
나는 홑몸이 아니다.
밥 먹을 때도 소윤이와, 잠을 잘 때도 소윤이와, 심지어 일할 때도 소윤이와 붙어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이 돈을 소윤이를 돌보는 데 쓰기로 했다.
해서 나는 소윤이를 데리고 장안 저잣거리를 죄다 돌아다녔다.
우선 입주 보모를 고용하려 했는데, 때마침 반점에서 일하던 17세의 소녀가 눈에 띄었다.
“소저. 여기서 일하면 한 달에 얼마 받소?”
“철전 100문씩 받는걸요?”
“온종일 손님들 주문받고 손 바쁠 땐, 설거지며 요리며 다 해야 할 텐데 철전 100문은 선 넘었네.”
“네?”
“한 달에 철전 700문. 입주 가정부 되는 일인데 해 볼 생각 있소? 4살 꼬맹이 하나만 챙겨주면 되오.”
“워, 월봉이 철전 700문이라고요?”
“그렇소. 매년 춘절에 은자 석 냥씩 추가 지급할 거고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월봉을 올려 주지. 더불어, 글 선생도 고용할 테니 원하면 글도 배울 수도 있소.”
“하, 할게요! 할게요, 나으리!”
내 제안에 소녀는 뛸 듯이 기뻐했다.
다행인 건, 소녀가 소윤이를 상당히 예뻐했다는 것이다.
물론, 소윤이도 낯가림 없이 잘 따랐기에 나는 어렵지 않게 입주 가정부를 고용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글 선생을 구해야 했는데 알음알음 수소문 끝에 소윤이처럼 학당에 다니기는 아직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천자문 가르치는 글 선생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님. 4살짜리 아이가 글을 배우는 건 시기상조입니다. 아마 수업을 따르기 힘들 텐데….”
글 선생은 처음에 소윤이 나이를 듣고선 부정적이었다.
최소 대여섯 살은 돼야 가르치기 적합하다고 했는데, 제깟 놈이 뭘 알겠나.
“선생니임? 소유니 글 배우고 시퍼요! 하라부지가 사람은 태어나서 주글 때까지 공부하는 거래써요! 소유니는 열심히 공부해서 하라부지한테 칭찬바들 거예요!”
또박또박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소윤이를 보더니 글 선생의 눈알은 팽팽 돌아가고 말았다.
“너 정말 4살 맞니?”
“맞눈데요? 헤헤. 왜영? 소유니 천재라서 놀랐쪄?”
“뭐? 하하하. 그래. 소윤아. 선생님이 네게 글을 가르쳐주마.”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는 하루 만에 입주 가정부와 글 선생을 모두 고용할 수 있었다.
또한 두 사람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두 달 치 월봉을 당겨 지급했는데 그 바람에 동동이 형제의 재산 중 반절이 사라졌다.
“형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런 식으로 돈을 써버리시면 저희는 뭐 먹고 삽니까?”
아니나 다를까, 흥청망청 돈 써재끼는 날 보며 일동이가 물었다.
“동동이들. 잘 들어라. 너희는 분명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같이 나쁜 놈들 털어먹으면서 돈 벌어보자고 했지?”
“네.”
“그랬지요, 형님.”
“네.”
“그러기 위해선 소윤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일단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시간을 벌어야 할 거 아니냐. 가정부도 구했고 글 선생이 소윤이를 가르칠 동안 나는 너희 무공도 봐주고, 나쁜 놈들 몽땅 벗겨 큰돈 벌 생각이다.”
동동이 형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공도 봐주고’, ‘큰돈 벌 생각이다.’라는 대목에서 기함한 듯했는데 왜 안 그렇겠나?
나한테 처맞아봤으니, 내가 얼마나 센지 쟤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내일 아침, 산에 올라간다.”
“사, 산에 말씀이십니까 형님?”
“이 동네에서 가장 흉악한 산적들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