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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마교대장 5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0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5화

#5화

 

 

 

 

 

노 의원의 떠나라는 말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하나 한편으로는 그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말마따나, 노 의원은 소윤을 손녀처럼 대했다.

 

짐승도 키우면 정이 드는 법인데,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나.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조차도 그간 노 의원에게 의지했으니 노 의원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터였다.

 

“뜻이 그러하시다면… 날이 밝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명심하게. 소윤이는 총명한 아일세. 무지렁이로 키우지 말고 학문을 가르치게. 알겠는가?”

 

“그럴 생각입니다.”

 

“또 하나.”

 

“…….”

 

“속세가 버거울 땐. 언제든지 다시 오게.”

 

“…….”

 

나는 무어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생에도 느낀 바지만,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노 의원은 지난 다섯 달간 시종일관 퉁명스러웠지만, 사실 우리 부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전생에 한 번도 누군가에게 빚진 적이 없지만, 이번 생은 시작부터 갚을 길 없는 호의를 빚진 셈이다.

 

“보중하십쇼. 자리 잡히는 대로, 기별 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허허! 내가 자네 부친이라도 되나?”

 

“소윤이가 많이 그리워할 겁니다.”

 

“알겠네. 무운을 빌지.”

 

“…그리고.”

 

“말하게.”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용기를 냈다.

 

사실 나와 노(老) 의원 사이엔 불문율이 있는데, 그건 서로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고 또, 묻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나대로, 노인은 노인 대로, 사연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묻지 않은 건 각자 말 못 할 고충이 있음을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작별 앞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호의를 베푼 은인의 이름 석 자를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이시진이라고 하네.”

 

“이시진이라면… 동벽(東璧) 선생이란 말씀입니까?”

 

순간 내 두 눈이 자연스레 화등잔만 해졌다.

 

이시진.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의술을 익힌 자라면 그 이름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내가 꽤 유명한가 보군. 자네도 아는 걸 보니.”

 

“저도 의술을 익혔으니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쓰신 ‘신의’를 모를 리 없지요.”

 

“본초강목은 20년 전에 저술한 의서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의술적 견해가 다르니 그 책으로 나를 대변할 순 없지.”

 

역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그러잖아도 노인의 의술에 경동하던 참이었는데.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은 당대 최고의 신의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고양감에 휩싸였다.

 

“진소천.”

 

“…….”

 

“나 역시 자네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네.”

 

 

 

 

 

* * *

 

 

 

 

 

이튿날.

 

“히잉… 왜에? 왜에 할부지는 소유니랑 가치 안 가?!”

 

떠날 채비를 마친 나는 소윤을 데리고 산장을 나서려 했다.

 

하나, 울고 보채는 소윤이 탓에 한참이나 애를 먹었다.

 

“소윤아.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할 일이 있으시다. 아빠랑 둘이 가자.”

 

“시러. 소유니는 하라부지랑 가치 갈 거란 말야!”

 

“…….”

 

평소 소윤이는 지나치게 활발하고 다소 말괄량이 기질이 있지만 타고난 성정은 유순해서 말을 잘 듣는다.

 

하나 그간 이시진 선생과 정이 깊게 들었는지 도통 발걸음을 떼지 못했는데….

 

때마침, 이시진 선생이 소윤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소윤아. 일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언가에 매진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응. 소유니는 기억해요.”

 

“착하구나. 해서 할아비는 이곳에서 남은 공부를 할 생각이다. 그러니, 너도 네 공부를 하렴.”

 

“공부요오?”

 

“오냐. 너는 아직 어리니 성도로 나가 학문을 익히고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배워야 한단다. 알겠니?”

 

“하라부지… 그럼 하라부지가 보고 싶을 땐 어떠케?”

 

“허허. 그땐 아빠한테 말해서 할아비를 보러 오렴.”

 

소윤이가 내게로 물끄러미 시선을 옮겼다.

 

나는 웃는 낯으로 고갤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이시진 선생이 다가와 품속에서 양피지로 둘둘 말린 무언갈 꺼내더니 건넸다.

 

“이거 받게.”

 

“이게 뭡니까?”

 

“백년연실(白年蓮實)일세.”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동시에 양피지를 펴니, 오색(五色) 빛을 머금은 채, 광휘를 발하는 상질(上質)의 연꽃 열매가 눈을 사로잡았다.

 

“이걸… 왜?”

 

“성도로 나가 자리를 잡으려면 먹고 자며 생활할 집이 필요할 테지. 백년연실이 비록 최상급 영약이라 할 순 없으나, 이걸 판다면 섬서 지방 어디서든 자그마한 집 한 채 마련하기엔 부족하지 않을 걸세.”

 

“어르신, 받을 수 없습니다. 하산하는 길에 호랑이 두어 마리 사냥해 호피를 벗기면 당분간 묵을 곳 구할 돈은 마련할 수 있으니…”

 

“쯧쯧. 자네 좋으라고 주는 줄 아나?”

 

이시진 선생이 가차 없이 내 말을 끊었다.

 

“소윤이를 위해 주는 걸세. 자네가 뻔뻔하지 못한 건 알지만, 기왕 은혜 입은 거 끝까지 신세 지게. 본래, 받는 사람보다 베푸는 사람이 두 발 뻗고 자는 법이니 날 위한 일이기도 하네.”

 

“어르신….”

 

황송한 마음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인간 된 도리로서, 한사코 거절하는 게 맞지만 이시진 선생의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며, 그 와중에도 소윤을 끌어안고 허허롭게 웃는 그를 보니 거절하기도 난감했다.

 

“소천.”

 

“네.”

 

“개의치 말고 받게. 훗날 성공해서 갚으면 될 일 아닌가.”

 

그렇다.

 

어쩌면 이시진 선생은 나, 그리고 소윤이와의 인연을 계속 잇고 싶은 마음에 백년연실을 내준 것일지 모른다.

 

나는 공손히 포권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꼭 기별 드리겠습니다.”

 

“가보게.”

 

나는 다시 한번 허리 숙여 묵례하고 신형을 돌렸다.

 

작별은 간단할수록 좋은 법이다.

 

어차피 만날 사람은 만나는 법이고, 아직 나와 이시진 선생의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음을 알기에.

 

“소윤아. 건강하거라.”

 

열두 걸음쯤 내디뎠을까?

 

등 뒤로, 이시진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소윤이도 몸을 돌려 생긋 웃음 지었다.

 

“하라부지! 안녕.”

 

 

 

 

 

* * *

 

 

 

 

 

“아빠! 소유니… 다리 아푼데?”

 

“업어줄까?”

 

“웅.”

 

그럴 줄 알았다.

 

소윤이가 활동량 넘치는 천방지축이지만 비탈진 산길을 반 시진 넘게 걸어가는 건 무리였다.

 

나는 흔쾌히 소윤이를 업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윤아. 지금부터 좀 빨리 달릴 생각인데 괜찮아?”

 

“아빠? 빤니?”

 

“그래. 정오가 되면 배고플 테니까.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장안에서 식당을 찾으려면 서둘러야 돼.”

 

“응! 아빠 빤니!”

 

소윤이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경신법을 시전했다.

 

아직 몸이 경공을 온전히 체득한 건 아니지만, 전생의 기억과 정신적 깨달음은 영혼에 아로새겨진 상태다.

 

파파팟-!

 

쾌경보(快鯨步).

 

이름 대로 쾌속하게 비상하는 고래처럼 내 경공은 날렵하고 빠르지만 웅혼한 기상을 품었다.

 

전생부터 나는 쾌경보를 천하제일의 경신법으로 꼽았다.

 

대개 세인들은 최고의 경신법으로 천마비행술(天魔飛行術)이나 곤륜의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을 꼽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천마비행술이나 운룡대팔식은 궁신탄영(弓身彈影)의 묘리가 바탕인 만큼, 순간 쾌속함과 패도적인 면에선 제일이나 방대한 내력을 소모해야 하는 단점이 존재했다.

 

하나 쾌경보는 자연결의 묘리를 깨달아야 하는 진입장벽이 있을 뿐, 한 번 익히면 적은 내력으로 수천 리를 돌파하니 효율면에선 압도적이었다.

 

“와아! 아빠야. 아빠 지금 새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거 맞징? 그렇지?”

 

아….

 

모처럼 쾌경보를 시전한 탓에, 소윤을 생각지 못하고 속력을 너무 높였다.

 

나도 모르게 내 발은 허공을 답보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소윤은 우리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천천히 갈까?”

 

“응? 아니이? 더 빤니! 아빠야, 더 빤니!”

 

“……?”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대체 소윤이는 4살짜리 아이가 맞긴 한 걸까?

 

이 속력이면 어른이라도 풍압에 눈을 질끈 감을 텐데, 소윤은 외려, 속력을 높이라고 아우성이었다.

 

“안 무섭겠어?”

 

“응? 소유니는 무서운 거 없져.”

 

아무래도 진소윤은.

 

강심장을 타고난 듯하다.

 

파파팡-!

 

나는 소윤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바짝 감싼 채, 더욱 쾌경보에 가속력을 더했다.

 

사실, 쾌경보의 진신 속력을 발휘하면 소윤이 아니라 웬만한 무림인도 경악하겠지만, 아직 내 내공 수위가 부족한 탓에 최선을 다 해봤자 미적지근한 수준이었다.

 

“우와아아! 아빠야, 소유니 마음이 덜컹덜컹해!”

 

마음이 덜컹거린다?

 

고공을 빠르게 도약하다 보니 아마 심장이 철컥 내려앉는 걸, 저리 표현하는 모양인데.

 

어쨌든 이제 나도 아빠가 됐으니 4살짜리 꼬맹이의 어휘와 표현을 해석할 능력이 필요하다.

 

 

 

 

 

* * *

 

 

 

 

 

섬서성 장안.

 

쉴 새 없이 쾌경보를 시전한 터라 힘들었지만, 그 덕에 우리 부녀는 정오가 되기 전 장안에 당도했다.

 

장안을 방문하는 건 두 번째다.

 

전생에 화산파 장문인을 암살하기 위해 이곳을 경유했으니 이번 생에선 처음이겠고.

 

“어서 오슈.”

 

나는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장안 저잣거리에서 꽤 규모가 크다는 한 씨 약방(藥房)을 찾았다.

 

“약재를 팔고 싶소.”

 

“어떤 약재 말이유?”

 

“정확히는 약재가 아니라 영약이오.”

 

“…영약?”

 

영약이란 말에 약방 주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큰 규모의 약방이니 비싼 약재 거래도 흔하겠지만 ‘영약’을 취급할 기회는 희귀할 터였다.

 

“어떤 영약을 말하는 거요?”

 

주인의 물음에 칭칭 감긴 양피지를 풀어헤치고 백년연실(白年蓮實)을 드러냈다.

 

“이것은?!”

 

“백년연실입니다.”

 

“허…!!!”

 

한눈에 봐도, 상질의 연꽃 열매다.

 

전생에 영약을 밥 먹듯 섭취했던 내 눈에도 괜찮아 보이니 범인의 눈엔 오죽하겠나.

 

“험험! 확실히 백년연실이 틀림없군. 잘 왔수. 이런 영약은 처분이 힘들지. 다행히 우리 약방은 거래처가 많으니 취급이 가능하오.”

 

그럴 터였다.

 

영세한 약방에선 값을 지불할 여력조차 없을 테니까.

 

그 때문에 큰 규모의 약방을 찾은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하나 요즘 영약의 수요가 워낙 없어… 사실, 처치 곤란이란 말이지.”

 

약방 주인의 입에서 되지도 않는 말이 흘러나왔다.

 

본래 상인이란 족속이 협잡과 감언이설로 상술을 부리는 건 당연하지만, 어린 딸내미 대동하고 대뜸 영약 팔러 온 내가 꽤 어리숙해 보인 모양이다.

 

“이따금 무림인들이 연실을 찾는다만… 대개 천년산 연실을 찾지, 백년연실은 잘 안 찾더라고.”

 

“관심 없으면 다른 곳에 가겠소.”

 

전생(前生)엔 돈이 많아 흥정 따윈 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입씨름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그냥 발길을 돌리려 했는데.

 

덥석-.

 

약방 주인이 대뜸 내 팔을 붙잡더니,

 

“어이! 이 사람 성격 한번 급하군. 좋아! 인심 써서 은자 100냥 쳐 줄 테니 물건은 놓고 가게.”

 

개소리를 시전하는 게 아닌가?

 

백년연실을 은자 100냥으로 사겠단 건 상술을 넘어 명백한 사기였다.

 

게다가, 날 언제 봤다고 팔을 붙잡는 것도 모자라 하대까지 하는지.

 

“주인장.”

 

나는 일순, 전생의 ‘살인 전문가’로서.

 

이 무례한 인간에게 ‘예의’를 주입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작가의 말>

 

 

 

 

 

존경하는 독자님들께.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구땡입니다.

 

이번 회차에 등장한 산장 노인 ‘동벽 이시진’ 선생은 명나라 때 활동했던 실존 인물로 당대 제일의 의원이었다고 합니다.

 

역사 소설이 아닌, 가상 세계의 판타지 무협 소설이니만큼 ‘아빠는 마교대장’에서 다루어질 ‘동벽 이시진’ 선생은 고증과 전혀 무관한 말 그대로의 ‘허구적 캐릭’으로 연출될 예정입니다.

 

이 점 감안하셔서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아빠는 마교대장’이 독자님들께 하루 5분의 재미가 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하며…….

 

 

 

 

 

작가, 구땡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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