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마교대장 2화
무료소설 아빠는 마교대장: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0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아빠는 마교대장 2화
#2화
바르르 떨고 있는 아이를 들쳐 안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대체 아이는 이 혹독한 설원에서 얼마나 방치되었던 걸까.
이마는 불덩이 같았고, 입술은 푸르다 못해 시커멓게 질려 당장 동사(凍死)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반드시 살려야 한다!」
한데….
더불어 이 낯설고 얄궂은 감정의 파문은 뭘까.
아이를 보는 순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강렬한 ‘무언가’가 활화산처럼 끓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식욕이나 수면욕 같은 일종의 ‘본능’처럼 다가왔는데, 그 본능의 발호가 어찌나 강한지 나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두개골을 감싸 쥔 채, 골절된 다리를 질질 끌며 필사적으로 눈밭을 헤쳐나갔다.
‘대체….’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니.
정확히 이성적 사고보다 마음이 심란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어찌 되었든.
내겐 지금의 이 황당한 상황을 분석할 겨를이 없었다.
“으… 으잉….”
십리(十里) 정도 달렸을까.
아이의 입에서 짤막한 호흡이 끊겨서 흘러나온다.
생명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방증하는 의미였다.
타타, 탁-!
나는 급한 대로 아이의 혈 자리 몇 군데를 점혈하여 행기통규(行氣通竅)하고 걸치고 있던 장포와 내의를 벗어 아이의 몸을 둘둘 감았다.
이럴 땐, 살수 교육 중 의술 과목이 있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침(針)이 있다면 상태를 더 호전시킬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수중엔 아무것도 없었다.
‘기혈을 다스렸을 뿐…. 근본적으론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해. 아니면, 동사(凍死)를 면치 못할 거야.’
나는.
나는 괜찮다.
어차피 나는 20년간 지옥 같은 고련을 참으며 심신을 갈고 닦은바, 어떤 육신의 고통도 버텨낼 재간이 있다.
하지만 이대로면 아이는 한 식경만 지나도 싸늘한 주검이 될 것이다.
‘여긴 산중(山中). 민가를 찾아야 된다.’
정처 없이 달리던 중, 잠시 발을 멈추고 자세를 낮춰잡았다.
그러고는 온몸에 존재하는 감각의 문(門)을 활짝 열고 청각과 후각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는 내 특기 중 하나인 추적술(追跡術)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젠장…!’
하나 어찌 된 영문인지 감각은 평소의 10분지 1도 활성화되지 않았다.
내 추적술은 신체 감각을 기형적으로 극대화해 육감을 끌어내는 게 핵심.
한데, 현재로선 아주 미약한 소리와 냄새, 흐릿한 심상(心想)만이 아른거리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
느껴진다.
아주 아주 작은 소리가.
아주 아주 옅은 냄새가.
나는 그 소리와 냄새가 그려내는 호선을 따라 자세를 낮춘 채, 설산을 거슬러 나아갔다.
“…….”
어느덧 다시 한번 지독한 두통이 쏟아졌다.
뭐, 고통쯤이야 이 악물고 버텨보겠다마는, 걱정스러운 건 심각한 출혈 상태다.
피를 많이 흘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무공이 강한 사람도, 아무리 철혈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도.
일정 이상의 피를 흘리면 절명하는 게 자연의 섭리잖나.
“…….”
나는 부디 몸뚱이가 민가까지 다다를 수 있길 바라며.
반쯤 혼미해진 정신줄을 부여잡은 채, 쏟아지는 눈더미를 헤집고 달렸다.
* * *
“…….”
처음에는 꿈인가 싶었다.
하나 이내 꿈이 아니란 결론에 다다랐다.
약관이 될 무렵, 특급 살수로 진급한 나는 ‘자각몽’을 인지하는 수련을 했다.
‘자각몽’이란 꿈속에서 스스로 꿈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꿈마저 통제하는 정신 수련의 일환인데 이 훈련을 통해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꾸는 ‘꿈’에 능통하게 되었다.
무릇 꿈이란 일정한 형식과 법칙을 지닌다.
예컨대, 꿈속에서만 느끼는 특유의 ‘몽환’이라든가, 사물의 법칙을 거스르는 뭉개진 세계관이라든가….
또한 어딘지 모르게 뿌연 잿빛 기류가 항상 일정히 흐르며, 꿈 안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언행 역시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 일그러져 있는 게 대부분이다.
하나 천신만고 끝에 민가를 발견하고 혼절한 나는, ‘꿈’ 대신 ‘기억’의 바닷속 심연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려야 했다.
그제야.
그제야 나는 내가 전생자(前生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진소천.
공교롭게도 내 영혼이 빙의된 육신의 주인은 진소천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
내 전생의 이름 역시, 진소천이니 놀라울 따름이지만, 그 감정도 이윽고 당혹스러운 ‘빙의’ 앞에 사그라들었다.
하나 대체 어떻게.
죽은 내가 어찌 이 몸에 빙의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오직 세상을 주관하는 신의 영역이기에 금세, 그에 관한 의문을 깡그리 지웠다.
대신,
“소윤아….”
눈을 뜰 힘도 없이, 무의식 속에서 기억의 편린을 확인하는 중에도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수없이 되뇌었다.
진소윤.
반드시 살리고자 했던 아이의 이름.
내 영혼이 빙의된 몸뚱이의 유일한 혈육.
진소천의 딸이었다.
“소윤아….”
진소천은 병으로 세상을 등진 아내를 뒤로한 채, 혼자 딸을 키우던 사냥꾼이었다.
친지도 없는 데다, 보모 구할 형편도 되지 않아 딸을 업고 사냥하던 중, 늑대를 만나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이후 내 영혼이 주인을 잃은 몸에 들어가게 되었고….
“소윤아….”
우스웠다.
분명 사냥꾼 진소천의 육신은 내 영혼이 차지한 상태건만.
어째서인지 나는 연신 진소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딸을 향한 아빠의 부정(父情)이 영혼에까지 영향을 주는 걸까?
* * *
“허어어어억!”
얼마나 혼절했던 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불을 흥건하게 적신 식은땀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은은한 호롱불과 코를 찌르는 뜸 향, 생약의 냄새, 갖가지 의술 도구와 벽면 곳곳에 걸린 산짐승 가죽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잠시 후, 초로의 노인 하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정말 신기한 인간이군. 무공을 익힌 몸은 아닌데…. 어찌 피를 그리 흘리고도 살아났나? 자네 혹시, 대라신선이라도 만난 게야?”
대충 알만하다.
노인의 말대로 나는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물론, 내가 보통의 인간이라면 말이다.
나는 전생에 마교에서 자연결이란 내가공법을 터득했다.
자연결은 일반 심법과 궤를 달리하는데 쉽게 말해, 체계적이며 정밀한 ‘호흡’ 방식을 연속으로 ‘토납’하여 신체에 풍(風)-뢰(雷)-수(水)-화(火)-역(力)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속성을 축적하는 ‘신공절학’이다.
물론 체득하기 까다로워 마교에서도 교주를 비롯한 사천왕과 원로원 고수들만이 조금 익힌 수준이지만 나는 자연결의 오의를 나름 잘 해석했기에 내 나이에선 결코 가질 수 없는 방대한 내력을 획득했었다.
말인즉슨.
전생의 호흡 습관이 이번 생에서도 발동되어 자연결의 ‘힘’이 소량이나마 쌓였을 거란 추론이다.
“…….”
하나 나는 자연결을 언급할 수 없었다.
자연결은 마교 내에서도 극비에 해당하는 신공이기에.
적어도 지금은 함구해야 할 때였다.
“왜 말이 없나? 혹시 벙어린가?”
노인이 다소 퉁명스레 물었다.
하나 기분이 나쁘진 않다.
나는 그에게 목숨을 빚졌으니.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네. 다만, 내 집 앞에 피칠을 한 채 쓰러진 인간을 모른 척할 수 없었을 뿐이네. 게다가 핏덩이 같은 아이까지 데리고 왔는데 어찌 내치겠나.”
“아이는…!”
“살았네.”
“아.”
“사실 자네보다 아이가 살아난 게 천운일세.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오장육부에 한기(寒氣)가 침범했으니. 한데, 인위적으로 행기통규(行氣通竅)하여 기혈을 다스린 흔적이 보이더군 혹시, 자네가 취한 조치인가?”
“맞습니다.”
“의술을 배웠군.”
“어릴 적 곁눈질로 배운 적 있습니다.”
“그런 응급 치료는 곁눈질로 배운 사이비(似而非) 의술로 할 수 있는 게 아닐세.”
“아….”
“자식인가?”
“네. 제 자식입니다.”
“아비를 닮지 않아 예쁘더군.”
“…….”
“나는 자네가 깨어날 줄 몰랐네. 아니. 솔직히 말해 살아날 줄 몰랐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군.”
“…….”
“큰 부상을 입었던 자네가 살아난 건 하늘의 뜻이려나?”
“네….”
“사연이 많아 뵈지만, 묻지 않음세. 하나 명심하게. 두 번 다시 저 어린 것을 데리고 사냥에 나서지 말게.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어떤 의원도 아이를 살리지 못했을 게야.”
“사냥 중 봉변당한 건 어떻게….”
“자네 몸에 열두 군데의 교상(咬傷)이 있었네. 형태를 보니 늑대 이빨 자국 같던데.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군요.”
“허! 이렇게 멍청할 수가.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찌. 쯧쯧.”
노인은 나를 보며 연신 짜증을 털어냈다.
또한 몇 번이나 자책했는데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이 노인의 의술은 가히 경천동지할 수준이다.
내가 소윤에게 행기통규한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면 최소한 한 식경 내에 일어난 기혈 변화를 모조리 ‘유추’한단 뜻이니.
그것은 노인이 단순, 침과 뜸에 일가견 있는 정도가 아니라 생리, 해부학에 통달한 명의(名醫)이자, 신의(神醫)임을 방증하는 셈이었다.
하나 그런 노인도 내 자연결의 묘리를 알 리 없으니….
죽을 거라 생각했던 내가 의식을 찾은 것에 의문을 갖는 한편, 자신의 의술적 소견이 온전치 않음을 깨달아 탈력감을 느낀 게 아닐까.
“어르신.”
“뭔가?”
“소윤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이는 물 안에 담가 놓았네.”
“네?”
“체내를 침범한 한기는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네. 잘못하면 자네 딸은 평생 한증에 시달릴 수도 있단 말이네.”
“그런….”
“양의보력탕이라고 있네. 거기서 딸아이를 치료 중이니 걱정 말게. 골수에 미친 한기까지 뿌리 뽑을 테니까.”
“…볼 수 있을까요?”
“그 몸으로 일어날 수나 있겠는가?”
“네.”
나는 다시 한번 명확히 알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 소윤을 보고 싶단 갈망에 휩싸였다.
때문에, 천근보다 무거운 몸을 의지만으로 일으켜 침상에서 내려왔는데.
“허! 정말 통탄할 노릇이로고. 최소 칠주야는 꼼짝없이 누워야 할 사람이 일어나다니! 이거야 원, 내 평생 의술이 부정당하는 기분이군.”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한가. 놀리는 것도 아니고. 따라오게.”
거참….
괜히 노인네 눈치가 보인다.
* * *
노인을 따라간 곳은 마당 뒤편에 위치한 작은 연못이었다.
생각보다 노인의 집은 크기가 상당했다.
병상으로 사용하는 별채만 두 곳이고 따로 약재를 쌓는 창고도 있으니 이런 산중에 이런 큰 규모의 장원이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
나는 연못 한복판에 떠 있는 나무 요람 속의 소윤에게 시선을 던졌다.
소윤은 요람 안에 두껍게 포개진 이불 위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을 자는 건지 혼절한 건지 정확히 파악할 길이 없어 답답했다.
다행히, 묻기도 전에 노인이 소윤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아이는 잘 버티고 있네. 이 연못의 물은 내가 약재로 가득 채웠지. 양의보력탕의 증기가 한기를 몰아내니 자네 딸은 3일 내로 깨어날 걸세.”
“저 어린 것이… 3일이나 굶어도 괜찮습니까?”
“당연히 안 괜찮지.”
“……?”
“하나 합당한 조치를 취했네.”
“어떤?”
“뭘 그리 캐묻나?”
“…….”
“구지신엽초 영단을 복용시켰네. 자네도 의술을 익혔으니, 구지신엽초를 알겠지?”
“압니다.”
“하면 이제 해야 할 일도 알고 있겠군.”
“네?”
“구지신엽초는 뿌리당 최소 은자 10냥은 줘야 살 수 있는 고급 약재네.”
“그렇습니다만….”
“약값 내놓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