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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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25화
제9장 2차 전직 (2)
분명 이계에서도 경험치가 깎이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것은 운이 좋았는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고, 다시 접속해도 마을로 이동되지 않았다.
“혹시…….”
선반 위의 붉은 수정을 주시하던 나는 이내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현재 사망 페널티로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23시간 58분 후에 다시 접속해 주십시오.]
“역시…….”
접속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난 이번에는 선반 위의 붉은 수정을 소지한 채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운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헐…….”
혹시 이계에서는 24시간 페널티도 적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 접속될 줄 몰랐던 나는 지금 위치한 곳이 어디라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이 불러온 참사는 끔찍했다.
“우워어어어~!”
“헉?”
콰직!
[HP가 부족해 전사하였습니다. 사망에 의한 페널티로 인벤토리에 소지하고 있는 아이템이 30% 확률로 떨어지며, 경험치가 20% 하락합니다. 이후 24시간 동안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10초 뒤 자동 로그아웃 됩니다. 10, 9, 8, 7…….]
푸슝~!
“크헉~!”
자동적으로 캡슐에서 나와진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전에 느꼈던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허억… 헉… 제, 젠장. 실수다.”
이계에서는 다시는 죽지 않겠다는 결심이 이렇게 황당하게 깨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후우~ 일단 주변에 오우거 한 마리 있다는 건 확실하군.”
접속할 때부터 초긴장 모드로 돌입했어야 했다. 다만, 진짜 접속될 줄 몰랐기 때문에 순간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던 것일 뿐.
“후우…….”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라앉힌 나는 다시 캡슐에 누우며 접속을 시도하였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우워어어~!”
접속하자마자 날 발견한 오우거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며 거리를 벌렸다.
“어디 광렙 한 번 해볼까?”
거리를 벌린 뒤 얼추 자세를 가다듬은 나는 주변에 더 이상 몬스터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눈앞의 오우거를 향해 돌진하였다.
팟!
“우어어!”
쾅~!
단순무식한 오우거의 몽둥이가 날아왔지만, 가볍게 피한 나는 그대로 드러난 오우거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밀어 넣었다.
푹~!
“우어어어어어!”
이제는 굳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했기에 가볍게 검을 찔러 넣은 나는 그대로 오우거의 등 뒤로 돌아갔다.
인벤토리의 장점이라면 무기 교체가 원활하다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음으로 오우거의 움직임을 둔탁하게 만들고, 순식간에 장착한 단검으로 목을 꿰뚫어버리면 아무리 맷집 좋은 오우거라도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엥? 단검 어디 갔어?”
인벤토리 창에는 판월에서 먹은 몇 가지 잡다한 것들과 전에 사두었던 가죽만 있을 뿐. 가끔 사용하려고 가지고 있었던 단검이 보이질 않았다. 트윈 헤드 오우거에게 죽을 때 떨어뜨린 것이다.
“우어~!”
“큭! 제길~!”
어느새 옆구리의 검을 뽑은 오우거가 뒤를 돌며 몽둥이를 휘둘렀고, 부리나케 뒤로 빠진 나는 땅에 떨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이런, 무기가 없는데…….”
몬스터들로부터 얻었던 장비는 전부 경매장에 등록시켰고, 가지고 있던 검은 오우거의 등 뒤에 떨어져 있는 상황.
“자리를 바꿔야겠군.”
어차피 단순무식한 오우거의 공격을 허용할 나도 아니었기에, 방금 전처럼 등 뒤를 선점한 뒤 거리를 벌리면 자연스레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도망치려는 듯 몸을 돌려 등을 보여주었다.
“우워어!”
쿵! 쿵! 쿵!
예상대로 오우거는 날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들었고, 공격 타이밍에 맞춰 등 뒤로 돌아가려던 나는 난데없이 날아오는 화살에 깜짝 놀라야 했다.
퓻~!
푹!
“헉! 뭐, 뭐야?”
“우어어어~!”
어디에선가 날아온 화살은 그대로 오우거의 등에 틀어박혔고, 그와 동시에 광분한 오우거는 양팔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퍽!
“큭!”
무기가 없는 관계로 다급하게 팔로 오우거의 공격을 방어한 나는 팔목에서 느껴지는 고통도 무시한 채 서둘러 거리를 벌렸다. 더 이상 공격을 허용했다가는 또다시 죽음을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발이 아니었다.
파파파파팟~!
푸푸푸푸푹~!
“우어어어~!”
수십 발의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었고, 단 한 발의 미스도 없이 오우거의 몸에 적중하였다.
쿵!
결국 심장을 관통한 화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오우거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누구… 윽!”
오우거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긴박할 때는 몰랐지만, 양쪽 팔목이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큭! 젠장… 후욱~! 후욱~!”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던 나는 이내 팔목을 타고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척!
처척!
내가 정신을 잃자마자 나무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바로 세 명의 엘프였다.
“어째서 인간이 이곳에 들어온 것이지?”
“글쎄요. 혹시 우릴 잡으러 온 것이 아닐까요? 인간들은 이종족들을 데려가 노예로 쓴다고 하던데.”
“이런, 베네시아. 그럴 거면 군대를 보내겠지. 겨우 혼자서 들어오겠어?”
“그런가요?”
동료 엘프의 말에 베네시아라 불린 여성 엘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인간 혼자서 이곳까지 들어온 거란 말인가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현재 이곳은 히얀 산맥에서도 가장 많은 몬스터들이 기거하는 중심부였다.
이런 곳을 인간 혼자서 들어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에 나머지 두 엘프들도 확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일단 이 인간의 일에 관여한 이상 마무리는 지어야겠지? 베네시아.”
“피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었다고요.”
가장 처음 화살을 날린 이가 바로 베네시아였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오우거의 몽둥이에 죽을 것 같았기에 지켜보라는 동료의 말도 무시하며 나선 것이다.
하지만 리더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의 엘프가 고개를 저으며 그 말을 부정하였다.
“아니.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았을 거다.”
“네? 정말인가요?”
엘프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또한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럼에도 물어보는 이유는 그만큼 동료 엘프의 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저 인간은 오우거의 공격에 맞춰 등 뒤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미 오른발을 내민 상황에서 갑자기 화살이 날아오자 광분한 오우거에게 미처 도망가지 못했던 것이지.”
“어, 어째서…….”
“아무래도 저 검을 회수하기 위해서였겠지.”
동료 엘프가 가리킨 곳에는 낡은 검 한 자루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베네시아는 기다란 귀를 축 늘어뜨리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인지하였다.
“그렇군요. 오히려 저 때문에 상처를 입었군요.”
“그렇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인간의 일에 관여한 이상 네가 책임을 지고 무사히 돌려보내도록.”
“네…….”
이것은 엘프들의 관습이었다.
자신들 외의 타종족의 일에 관여할 경우,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고개를 끄덕인 베네시아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부러진 양팔을 잡고 강제로 뼈를 맞추었다.
뚜둑!
뚜두둑~!
정신을 잃은 것이 다행이랄까?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장면을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해낸 베네시아는 이윽고 무언가 중얼거리며 마법을 사용하였다.
“힐(Heal).”
파아앗~!
베네시아의 회복마법에 의해 부러진 뼈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일단 마을로 데려가죠.”
회복마법을 유지하느라 힘겨워하는 베네시아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엘프가 한 말이지만, 날카로운 눈매의 엘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부하였다.
“안 된다. 인간에게 우리의 거처를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정신을 잃은 상태잖아요. 나갈 때도 눈을 가린 채 내보내면 상관없지 않나요?”
“음…….”
동료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리더 엘프는 힘겨움에 땀을 흘리면서도 열심히 회복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베네시아를 한 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단, 마을 밖의 오두막집까지다.”
“네!”
비록 마을 밖이지만, 그래도 이곳보다는 치료하기 훨씬 수월했기에 기쁜 얼굴로 대답한 엘프는 서둘러 베네시아에게 다가갔다.
“베네시아, 일단 마을로 이동하자.”
“리프머스? 하, 하지만. 마을이 알려지면…….”
“어차피 정신을 잃었으니까 상관없어. 그리고 여기는 치료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커.”
리프머스라 불린 동료 엘프의 말에 베네시아도 이곳이 몬스터 천지인 히얀 산맥의 중심부라는 것을 느꼈는지 곧바로 회복마법을 중단하며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이용해 내 양팔에 고정시켰다.
“회복마법을 사용하느라 힘들 테니 그 인간은 내가 업을게.”
“아니에요. 제가 끝까지 마무리 지어야죠.”
“어차피 두 번째는 우리도 같이 화살을 날렸으니 상관없어. 그렇죠, 마류스님?”
“아아.”
리프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표시를 한 마류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근처에 트롤 무리가 접근하고 있다. 서둘러라.”
“아, 알겠습니다. 베네시아. 서두르자!”
“네.”
팟!
서둘러 날 업은 리프머스는 누군가를 업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높이 점프하더니, 그대로 굵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섰다.
베네시아 역시 리프머스를 따라 주변 나무 위로 올라섰고, 이내 나뭇가지만을 이용해 마을로 예상되는 방향을 향해 이동하였다.
그렇게 세 명의 엘프와 내가 모습을 감춘 뒤.
“크르르!”
“크아아~!”
뒤늦게 나타난 세 마리의 트롤들은 죽어 있는 오우거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우드득! 우득!
우적우적!
그렇게 숲의 지배자 오우거는 세 마리의 트롤들로 인해 뼈다귀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춰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