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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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20화
제7장 또 다른 현실 (2)
그런 거라면 나야 좋았다. 더욱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원래 거래하기로 한 지브 상단은 어찌되는 것일까? 그런 내 의문을 느꼈는지 데리오의 입에서 추가설명이 흘러나왔다.
“저희와의 거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단주님이 만족할 만큼 좋은 조건을 제시받았으니까요.”
“아, 네…….”
데리오에게 모든 얘기를 들은 나는 더 이상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뭐, 기사단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급한 건 상대방이니까…….’
나와의 거래를 원하는 이상 아까의 일로 귀찮게 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집무실 앞에 도착한 내 얼굴에는 한껏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너는……?”
“이런, 그렇게 말했건만…….”
집무실 앞에는 두 명의 기사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아까 봤던 기사 무리들 중 하나였고, 또 한 명은 날 여자로 오인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충고를 늘어놓았던 기사였다.
“아는 사이십니까?”
“하하… 그게 좀.”
데리오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며 얼버무린 나는 사색이 된 채 날 바라보는 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이,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짐작했을 텐데?”
“그, 그럼. 설마 아가씨가 백작님께서 말한 그 사냥꾼이란 말이야?”
“아가씨 아니라니까.”
마지막 내 말은 들리지 않은 건지 상대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버렸다.
아까의 일을 생각하자면 자신까지 단장님께 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대상이 라스터 백작님이 거래하려던 자였으니 오히려 무사히 보내준 것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된 것이다.
또한 라스터 백작님의 태도로 보아, 반드시 상대와의 거래를 원하고 있었다. 절대 아까의 일로 해코지를 할 리 없었다.
“좋아! 들어가 봐.”
모든 상황을 정리한 기사는 마치 여기가 자신의 집인 양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켜주었고, 그의 허락과 동시에 데리오 총관이 앞으로 나서 작게 노크하였다.
‘도대체 뭐 하는 짓들인지…….’
귀족과 기사들이 가지는 신분의 위치를 자세히 몰랐던 나는 이런 행동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딱 봐도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녀석이 40대 중반의 상대에게 반말하는 것부터가 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똑똑!
“단주님, 카르미스님을 모셔왔습니다.”
“오오! 어서 들라 하게!”
총관과 마찬가지로 지브의 목소리도 꽤 다급해 보였다.
“들어가시지요.”
곧바로 문을 연 총관은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듯 나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저벅저벅!
인상을 찌푸린 채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내 예상대로 여러 명의 기사들이 테이블 주변에 서서 라스터 백작으로 보이는 한 중년인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지브 상단주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반가운 얼굴로 날 맞이하였다.
“오오! 어서 오십시오, 카르미스님.”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는 호랑…….”
“이, 일단 인사부터 하시지요. 수도 카일리에 머무시는 라스터 백작님이십니다.”
아무래도 정체가 불확실한 나보다는 거만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라스터 백작이라는 자가 더 긴장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작은 목소리로 먼저 인사할 것을 권한 지브 단주는 곧바로 뒤로 빠지며 고개를 숙였다.
나 또한 귀족으로 오인하고 있었으니, 알아서 대처할 거라 믿은 것이다.
‘뭐, 믿음에 보답해 줘야겠지?’
기사 단장은 처음 들어서는 날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주군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주변을 한번 쭉 둘러본 나는 마지막으로 천장을 한 번 본 뒤, 여전히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는 라스터 백작을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즉, 상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런 행동이었다.
챙~!
“무엄하다! 감히 누구 앞에서…….”
역시나 상대를 내리까는 듯한 내 행동에 반응한 것은 기사 단장이었다. 하지만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척!
‘호오~?’
검을 뽑아들고 당장이라도 내 목을 날리려 하던 기사 단장은 라스터 백작의 손짓 한 번에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 검을 집어넣고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다른 이가 보았다면 상당히 잘 훈련된 기사라고 감탄하겠지만, 내가 머리에는 그저 말 잘 듣는 강아지 한 마리와 그 주인이 떠올랐다.
피식!
살짝 웃음을 흘린 나는 라스터 백작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카르미스라 합니다.”
“…….”
내 소개는 아주 간단명료했다. 그나마 상대방의 나이가 지브 단주와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예의를 차린 것이지. 만약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 인사하는데도 저런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다면 주먹부터 날아갔을 것이다.
한동안 대답이 없던 라스터 백작은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되물었다.
“남자인가?”
“그렇습니다.”
“…….”
이번 대답에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움찔했다. 전부 날 여자로 봤다는 뜻이다. 젠장!
“성은?”
“없습니다.”
내 대답에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행동들로 인해 같은 귀족이거나 고위귀족의 자제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성도 없는 평민이라고 말하니 놀랄 수밖에.
“귀족이 아닌 건가?”
다시 한 번 들려온 라스터 백작의 물음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계속 저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내 태도 또한 시큰둥해질 수밖에.
“하멜.”
“핫! 각하!”
라스터 백작의 부름에 대답한 하멜 기사 단장은 곧바로 그의 앞으로 나서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명령을 내려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라스터 백작의 입에서 경악할 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한쪽 다리를 베도록.”
“충!”
아무리 내가 이 세계의 신분제도에 대해 잘 모른다지만, 그래도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거만하게 나갔던 이유는 설마 거래를 원하는 상대에게 해를 줄 거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인데,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오자 당황하여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단이 일어났다.
서걱!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하멜 기사 단장이 그대로 내 왼쪽 발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털썩
“으아악~!”
그 끔찍한 고통에 베어진 다리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구르던 나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라스터 백작의 말을 들으며 정신을 잃어야 했다.
“두 손만 멀쩡하면 손질하는데 불편하지 않겠지. 앞으로 또다시 그런 태도를 보일 때마다 한 군데씩…….”
뒷말은 들을 수 없었지만 충분히 유추 가능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난 한 기사에게 업혀 마차로 실려 갔다. 대부분의 귀족이 그렇듯이 만일을 대비하여 몇 병의 포션을 가지고 다녔기에 마차에서 날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 * *
대략 한 시간 후.
“으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아까의 끔찍했던 고통이 상당히 줄어들자 내 왼쪽 발목을 바라보았다.
“꿈이 아니었군.”
비싼 포션을 이용한 치료로 인해 고통은 거의 없었지만, 무릎 아래가 허전했다.
“여기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차피 판월에 갔다 오면 말짱해질 다리였다. 때문에 주변을 둘러본 나는 마차 안이라는 것을 알고 몸을 일으켰다.
“윽!”
오른발로 중심을 잡으며 힘을 주자 잘려나간 왼쪽 발목이 욱신거렸지만, 지금까지 당한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버틸 만했다.
몸을 일으킨 나는 마차 창문을 통해 밖을 살펴보았고, 라스터 백작은 지브 단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주변에는 두 명의 기사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단 로그아웃을 해야겠군.’
판월에 가서 회복하고 오면 분명 놀랄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여기서 내가 갈 방향을 정해야 했다.
‘그 전에 여길 벗어나야 하는데…….’
로그아웃한다 하더라도 다음에 접속하면 마차 안일 것이다. 그때 가서 지키는 이가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이런 고급스런 마차는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되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몸부터 회복해야겠어.’
괜히 다음을 기약했다가 라스터 백작이라는 자의 저택 안에서 접속하면 더욱 벗어나기 힘들었다. 때문에 마차 주변의 기사들만 처리하기로 결정한 나는 그대로 로그아웃하였다.
[10초 뒤 로그아웃 합니다. 취소를 원하시면 ‘취소’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10, 9, 8… 삑! 로그아웃합니다. 판타지 월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푸슝~!
“후아~!”
캡슐을 나온 나는 더 이상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다리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두고 보자!”
아까 얼핏 보았던 기사 단장의 검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회피는 불가능했지만, 어느 정도 방어는 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실제 판월에서도 캐릭터의 레벨이 오를수록 동체시력이나 움직임 등이 빨라졌기에 49레벨이라는 헬렙에 달성한 나로서는 기사 단장은 아니더라도 그 외의 기사 정도라면 기습을 병행하여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해보는 거야!”
혼자 멋들어지게 외치며 수정을 선반 위에 올려둔 나는 다시 판월로 접속하였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음. 역시 괜찮군.”
판월에 접속한 나는 혹시 또다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잘린 다리를 바라보았다.
고통에 대한 감도수치를 최소로 정해두었기에 한쪽 발이 잘렸음에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장소도 적당하고. 좋아!”
내가 있는 곳이 초보마을 시장임을 확인한 나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유저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누가 힐 좀 주세요!”
이것이 바로 게임만의 특권이었다.
파아앗~!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성직자로 예상되는 유저들에게서 힐이 날아왔고, 이내 단 1초 만에 잘려 있던 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꽤 여러 명이 힐을 주었기에 사방을 향해 인사한 나는 곧바로 로그아웃을 하였다.
[10초 뒤 로그아웃 합니다. 취소를 원하시면 ‘취소’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10, 9, 8… 삑! 로그아웃합니다. 판타지 월드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푸슝~!
“에고~! 이 짓도 상당히 귀찮네.”
현실로 돌아온 나는 캡슐에서 나와 선반 위에 올려둔 붉은 수정을 주머니에 넣었고, 그대로 다시 이계로 접속하였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이계에 도착했음을 느낀 나는 여전히 마차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두 명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둘이 붙어 있으면 비전술로 어떻게 해보겠는데… 응? 그러고 보니…….’
두 명의 기사들 중 한 명이 상당히 눈에 익었다. 바로 내게 걱정스런 얼굴로 충고를 해주었던 그 기사였다.
‘그럼 한 명만 어떻게 제압하면 되겠군. 굳이 죽일 필요도 없고…….’
순간 마차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난 그대로 멈칫했다.
‘죽일 필요가 없어? 이럴 수가! 내가 사람을 죽이려 했잖아?’
이곳은 가상현실게임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런데 판월에서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죽이는데 있어 아무런 거부감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정신 차려라, 이현중! 여기는 현실이다!’
게임의 일부 시스템이 작용하고 있었고, 존재하는 내 모습 역시 아바타였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나는 스스로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자책하였다.
‘앞으로 사람들을 상대할 땐 죽이지 않고 제압이 가능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쪽에서 목을 내주는 게 좋겠군.’
그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 하는 것은 싫었지만, 그렇다고 남을 죽일 수 없었기에 차라리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는 내가 죽어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도망갈 수 있을 때는 도망갈 것이고, 오늘처럼 불필요한 일도 벌어지지 않게 행동에도 더욱 조심을 가할 생각이었다.
귀족이라는 신분제도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나가서 또다시 끔찍한 고통과 함께 사망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후우…….”
모든 생각을 정리한 나는 서서히 심호흡을 하며 허리에 찬 검을 들어올렸다.
“최대한 스킬은 자제하고… 가볍게 기절시키는 것을 목표로…….”
스킬을 사용할 경우, 내 의지가 아닌 시스템에 등록된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상대의 목숨을 뺏어갈 수도 있었다. 때문에 렙빨(?)로 제압하기로 결정한 나는 곧바로 마차 문을 박차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뭐, 뭐야?”
“헉! 너, 너. 어떻게……?”
문을 박차고 나온 내 모습에 놀란 기사들은 이내 멀쩡해진 다리를 보고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태도는 나에게 절호의 찬스나 마찬가지였다.
“흡!”
파앗!
땅을 박차며 한 기사를 향해 달려든 나는 그가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검 손잡이를 이용해 머리를 가격하였다.
퍽!
“컥!~”
설마 이런 시골마을에서 기사에게 덤빌 녀석이 있겠는가 하며 투구를 벗어두었던 것이 불행이었을까?
털썩!
찍을 수 있는 최대치까지 힘을 투자한 내 일격을 허용한 기사는 쓰러진 채 더 이상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절한 것이다.
“너, 너…….”
남아 있던 기사는 계속해서 날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만큼 믿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미안하군. 넌 그나마 날 걱정해 줬으니 공격하지 않겠다. 그러니 이대로 보내다오.”
“그…….”
아직 놀란 가슴도 정리하지 못한 기사는 내 말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
어차피 대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기에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어진 나는 뒤를 돌아 마을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뒤에서는 계속해서 무언가 말하려는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마을 밖으로 나오자마자 오크 부락이 있었던 숲으로 방향을 돌렸다.
“계속 가로지르면 언젠가는 마을이 나오겠지.”
굳이 길을 따라 걷지 않은 이유는 레벨 업을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레벨을 올린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유가 바뀌어 버렸다.
기사 단장 하멜의 검을 본 이후, 내가 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살인자가 될 지도 몰랐다.
이 세상은 내가 아무리 행동에 조심한다 하더라도 어떤 위험이 다가올지 모르는 곳.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 누가 핍박하더라도 최소한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져야 했다.
“돈 버는 것은 나중이다. 일단 강해지자!”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 나는 이내 오크 부락을 지나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더욱 빠른 레벨 업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