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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미스 19화

무료소설 카르미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카르미스 19화

 제7장 또 다른 현실 (1)

 

후아~암……!

“에이스, 어제 뭐 했기에 아침부터 하품이야?”

이른 아침.

늦지 않고 회사에 출근한 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나이 많은 동료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마요. 잠 한숨도 못 잤다고요.”

“한숨도 못 잔 것치고는 피부가 너무 좋은데? 도대체 어디서 관리 받는 거야? 나도 좀 소개시켜 주라.”

“윽… 그런 거 없다니까요.”

역시나 피부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렇다고 딱히 대답할 만한 변명도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린 나는 그대로 내 앞에 놓인 서류를 들어올렸다. 더 이상 말 시키지 말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이에 옆에 앉아 있던 형님도 피식거리며 고개를 돌렸고, 자신에게 부담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에이스라는 것은 내가 회사에서 불리는 별명이었다.

유일하게 전무에게 반말을 사용하면서도 상대방은 존대를 사용하였고, 내가 따내는 계약건만 해도 가히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기에 자연스레 붙은 것이다.

뭐, 최근에는 판월에 빠지다 보니 실적이 부진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계약했던 고객들의 소개로 전화해오는 사람들만 해도 하루 2~3명은 되었기에 느긋하게 앉아 있어도 문제 될 것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만 때우다가 아는 사람 소개로 전화했다고 하면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사무실로 초청하여 계약서를 작성하면 그걸로 하루 일과 끝이었다.

그럼 내가 없어도 되지 않겠냐고?

그건 또 아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던 날. 지인의 소개로 계약하고 싶다는 고객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전화하자마자 했던 말이 전부 똑같았다.

바로 날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없다고 하면 다음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끊는 것이다.

아~ 이게 바로 능력 아니겠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가식적으로 보여 적응 못 했는데, 지금은 에이스로 급부상한 케이스였으니, 정말 재능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영상업체에서는 고객관리를 구분해서 한다.

광고나 홍보영상 같은 경우, 잘 찍어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찍을 수 있기 때문에 기념일이나 명절날에 맞춰 선물을 보낸다거나, 전화로 안부 인사를 하며 꾸준히 관리를 하지만, 웨딩 영상이나 프러포즈 영상은 한번 찍으면 그 뒤로 또 찍을 일이 뭐 있겠는가?

결국 그런 고객들은 간단하게 전화나 이메일로 안부만 전할 뿐, 다른 고객들처럼 선물을 보내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웨딩 영상이나 프러포즈 영상을 찍은 젊은 부부들을 대상으로 꾸준한 고객관리를 하였다.

아니, 고객관리라기보다는 가끔 만나서 술 한 잔 하며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친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그것이 1년 넘게 이어지자 차츰 친구의 소개로 찾아오는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중 씨!”

어저께 계약한 고객들의 명단을 보고 있던 나는 가녀리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뭐지?”

날 부른 인물은 바로 일주일 전까지 날 괴롭히다가 상황이 역전된 여상사 수정이었다.

“저, 전화 왔어요. 흥!”

“풉!”

자기 딴에는 자존심을 굽히기 싫었는지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기에 마치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 뭐죠? 그 웃음은?”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지금 절 비웃었잖아요!”

“풉!”

이제는 목까지 빨개진 채 고함을 지르는 수정의 모습에 결국 참지 못한 나는 그대로 고개를 젖히며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푸하하하~!”

“이현중 씨!”

“킥킥! 저, 정말 아니라니까. 푸하하!”

“이익!”

비웃은 것이 아니라, 귀여워서 웃은 거였지만 누가 봐도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오죽했으면 옆에 앉아 있던 형님도 내 옆구리를 찌르며 적당히 놀리라고 속삭이겠는가?

“하아… 미안. 귀여워서 웃은 거야.”

“네, 네?”

“귀여워서 그랬다고.”

“…….”

내 솔직한(?) 대답에 다시 얼굴을 붉힌 수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냥 사과하고 끝내면 되었지만, 굳이 사실대로 얘기한 이유가 있었으니…….

맞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놀리는 중이었다.

약간의 소란 때문인지 모든 회사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고개마저 푹 숙이고 있던 수정은 이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였다.

“고, 고마워요.”

“엥?”

후다닥!

자기 할 말을 마치고 사무실을 뛰쳐나가는 수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이, 수단 좋은데?”

“에? 그, 그게 무슨…….”

“직장 여상사와의 로맨스라… 캬~! 언제 작업했던 거야?”

“…….”

이건 놀리려다가 괜히 나만 독박 쓴 경우였다.

“그게 아니라…….”

서둘러 변명하려던 나는 사무실 밖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중 씨! 전화 안 받고 뭐 해욧!”

“아! 여,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결국 수정과 나에 대한 오해도 풀지 못한 채 서둘러 계약하러 나갈 수밖에 없었다.

* * *

 

“끄응~ 하필 외근하게 될 줄이야…….”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선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투덜거렸다.

보통 때라면 고객이 사무실로 방문하여 계약서를 작성하지만, 가끔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 내가 직접 찾아가야 했기에 그런 날은 외근으로 처리되어 계약 후 조기 퇴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일찍 끝나겠다고 좋아했겠지만, 수정과의 오해를 풀지 못하고 나왔기에 자연스레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지랄 맞은 성격만 아니라면 봐줄 만한데.”

봐줄 만한 정도가 아니라 수정의 외모는 같은 20대 여자들 중에서도 돋보일 정도였다.

전무라는 위치가 아니었다면 벌써 고백했을 사원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상당히 미인이라 봐야 했다.

하지만 나는 수정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예쁘다는 감정은커녕 일단 짜증과 화부터 솟구쳤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이 당했으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내가 당한 게 많나보군.”

이제 와서 깨달았다 하더라도, 이미 수정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각인된 이상 금방 변화시키기 힘들었다.

“뭐, 지금처럼만 지내면 괜찮아지겠지.”

4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내 자신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스스로 괜찮아질 거라 위로하며 걱정을 털어버렸다.

“가죽이나 팔자.”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샤워를 한 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이내 붉은 수정을 소지한 채 캡슐로 들어섰다.

 

[판타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르미스님.]

 

이계로 접속한 나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아. 안전하군.’

현재 위치한 곳은 오크 부락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숲 속.

마을 안이 아닌 이상, 몬스터들이 언제 어디로 돌아다닐지 알 길이 없었기에 매번 접속할 때마다 주위를 살펴줘야 했다.

“후우~!”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약속을 어겼으니…….”

여기서 말한 약속이란, 상인 지브와의 거래를 말함이었다.

어제 늑대 가죽을 가져다주기로 했는데 사망 페널티와 오우거와의 전투로 인해 결국 하루가 늦어버린 것이다.

“뭐, 호랑이 가죽 한 장 팔면 되겠지.”

자기 전 호랑이 가죽을 다섯 장 사두었기에 늑대 가죽과 함께 넘길 생각이었다.

급한 것은 상대방이었고, 내가 가져다준 가죽도 분명 두 배 이상의 이문을 남길 거라 예상했기에 비싼 호랑이 가죽을 가져다주면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던 중.

다그닥! 다그닥!

“잉?”

숲에서 나와 마을로 향하는 길가에 내려선 나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말소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였다.

“마차?”

마차라면 상인이나 귀족들의 전형적인 이동수단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상인들의 마차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어색했다.

아직 멀리 있었지만 호화롭게 치장된 마차 외부의 모습과 잘 관리된 두 마리의 백마,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차 주변을 호위하듯 따라오는 여러 명의 기사들로 상대방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귀족이 이런 작은 마을에 뭐 하러 오지?”

물론 귀족이라는 사실은 내게 중요치 않았다. 다만, 상인들도 잘 찾아오지 않는 이런 시골마을을 무슨 이유로 찾아온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뭐,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차가 점점 가까워지자 살짝 길가로 비켜 지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정지!”

“응?”

날 지나쳐갈 거라 생각한 마차는 한 기사의 외침과 함께 내 바로 옆에 정차한 것이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그대는 누군데 무릎을 꿇지 않는가?”

“…….”

저런 말을 들으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는 걸까?

내가 군인이고, 저 사람이 직속상관이라면 큰 소리로 경례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것도 경례가 아닌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황당함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던 나는 또 다른 기사가 나서서 하는 말을 들었다.

“단장님, 여긴 제게 맡기고 먼저 출발하십시오. 이런 일로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음. 그렇군. 확실히 처리하도록.”

단장이라 불린 기사는 후임의 말에 두려운 듯 마차 쪽으로 시선을 주더니 이내 서둘러 바로하며 명령을 내렸다.

“다시 출발한다!”

“핫!”

우렁찬 대답과 함께 출발한 마차는 이내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봐, 아가씨. 보아하니 용병 같은데, 귀족의 마차도 구분하지 못하냐?”

“음?”

허리에 검을 차고 있으니 날 용병으로 오해할 만했다. 하지만 그 전에 했던 말은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단장님이 나서면 상대가 여자든 아이든 무조건 이거야. 나한테 고마운 줄 알라고, 아가씨.”

말을 하며 손으로 목을 긋는 행동을 하던 기사는 이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즉, 나에게 윙크를 날린 것이다.

그 모습에 주먹이 떨려왔지만, 나조차도 내 모습이 여자 같다는 것을 알았기에 서둘러 오해를 풀어주었다.

“나 여자 아니거든?”

“뭐?”

내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을까?

아까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로 날 바라보던 기사는 이내 피식거리며 진실을 부정했다.

“훗! 기사를 상대로 농을 걸 줄이야. 꽤 대담한 성격인데?”

“어이…….”

“하지만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아. 대부분의 기사들이 고지식한 성격이라 귀족이 아닌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테니.”

“그러니까 난 여자가…….”

“어허! 충고해 줘도 그러네. 앞으로 기사나 귀족들이 뭐라고 해도 무조건 고개만 숙여. 상대가 묻지 않는 한 그 어떤 말도 꺼내선 안 돼. 반말도 삼가고! 알겠지?”

“끄응…….”

보아하니 날 여자로 오해하고 도와준 듯한데, 나로서는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아니, 아까부터 계속 한쪽 눈을 찡그리는 모습 때문에 오히려 속이 메스꺼울 정도였다.

“알았으니까 그만 가라. 우욱…….”

급기야 입을 틀어막으며 인상을 찌푸린 나는 그만 가보라는 손짓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또 그러네. 그런 행동은 오히려 화만 산다니까…….”

내 행동을 정정해 주려던 기사는 이내 자신이 너무 뒤쳐졌음을 느꼈는지 아쉬운 표정으로 말에 올라서야 했다.

“아무튼, 마을에 들어서면 집이든 여관이든 한두 시간 정도 나오지 말고 있어라. 네가 무사하다는 걸 단장님이 알게 되면 나도 더 이상 막아 줄 방법이 없으니까.”

끝까지 내 걱정만 하던 기사는 이내 말을 몰아 마을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후우…….”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일단 심호흡부터 내쉬었다.

아주 잠깐 동안의 마주침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경우를 연속해서 맞이하다 보니 급 짜증이 몰려온 것이다.

“젠장. 가죽 팔고 나서 후딱 몬스터나 잡으러 가야지.”

몬스터 사냥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다짐한 나는 이내 기사의 충고도 잊은 채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웅성웅성.

마을 안은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소란을 떨고 있었다. 귀족이 찾아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도 별 신경 쓰지 않은 나는 곧바로 지브의 저택을 찾아갔다. 서둘러 가죽을 판매하고 사냥하러 가고 싶었던 것이다.

“응?”

상인 지브의 저택 앞에 도착한 나는 순간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저택 앞 공터. 그곳에 아까 봤던 마차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이따 올까?”

굳이 날 걱정해 준 기사의 충고 때문이 아니었다. 상대가 귀족이라 하더라도 겁먹을 내가 아닌 것이다.

다만, 이대로 들어갈 경우 상황이 상당히 귀찮아질 우려가 있었기에 망설여졌다.

그렇게 고민에 빠진 채 멀뚱멀뚱 서 있을 때였다.

“앗! 카르미스님!”

언제 나타났는지 총관 데리오가 날 발견하고는 다급한 신색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헉헉…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내 앞에 도착한 데리오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내가 늦은 이유를 물어왔고, 예상했던 질문이었기에 나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고수하며 입을 열었다.

“음. 죄송합니다. 사실은 호랑…….”

“아차!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일단 들어가시지요.”

호랑이를 잡느라 늦었다고 말하려던 때 말은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데리오로 인해 이어질 수 없었다.

“어? 어어?”

분명 저택 안에는 아까 봤던 마차의 주인과 그 재수 없는 기사단장이라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내 입에서 거부의 말이 나오려 했지만, 그보다 데리오의 입이 먼저 열렸다.

“어저께 파신 가죽 때문에 지금 난리입니다. 그 가죽을 본 라스터 백작님께서 급히 찾고 계시니 서둘러 주십시오.”

“네? 그게 왜…….”

“아무래도 라스터 백작님께서 카르미스님이 손질한 가죽이 상당히 마음에 드신 듯합니다.”

“제 가죽이요?”

“네. 이틀 만에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카르미스님을 직접 만나 거래하실 생각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고가로요.”

“그,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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