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절대무적 49화
무료소설 처음부터 절대무적: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처음부터 절대무적 49화
49화. 이 양반들 뒤끝이 살아있네.
이 동네는 맥주잔이 없어 사발을 써야했다. 국그릇만한 큰 사발을 주욱 늘어놓자 일정스님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이런! 이 큰 사발은 어디에 쓰려고?”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거다. 계속 입맛을 다시고 있으니까. 사발에 음식이 아니라 술이 담길 것이라고 주당은 감으로 안다.
일정스님에게 씩 웃어주며 대답했다.
“하하! 무공의 제 위력을 보기위해선 초식에 어울리는 무기로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한 장주의 주도는 이미 화경에 이른 듯하오! 내 감탄했소. 아미타불.”
눈치 챘겠지만 아까부터 아미타불이 간헐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술과 흥미 앞에 한 꺼풀 가식을 벗어놓은 거다. 얘들한테 사리를 기대하기는 영원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콸콸콸콸.
커다란 사발들을 세 가지의 이름 모를 술들로 채웠다.
‘쩝! 탄산이 있어야 제대로 나오는데.’
안타까운 일은 탄산이 없어 회오리를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다.
어쨌든 명장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 최대한 영롱한 색으로 배합했다. 화려한 버섯에 독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 사람 앞에 석 잔씩, 전부 열다섯 잔을 만들어 놓았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 일거수일동작을 지켜보는 십팔나한의 진지한 모습이 우습지만 태연한 얼굴로 첫 잔을 들었다.
“일 배!”
내 선창에 십팔나한도 서둘러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고 복창했다.
“일 배!” “일 배!” “일 배!” “일 배!”
꿀꺽꿀꺽.
잔이 커서 한 입에 다 털어 넣지는 못했다. 그래도 모두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마신 뒤, 잔을 머리위로 가져갔다.
탈탈탈.
“이 배!”
“삼 배!”
연거푸 석 잔을 마시자 배도 부르고 슬슬 기별이 왔다. 빈속의 독주는 혈관에 알코올을 주사하는 것과 마찬가지. 취기도 빨리 돈다.
“자자, 음식을 준비한 숙주의 성의도 있으니 소채도 맛 좀 보시지요.”
“아미타불!”
첫 술에 배부를까. 불호를 외우며 상위의 소채로 손을 옮기는 네 명의 사형제들. 아직은 멀쩡한 정신이라 밑에 깔린 고기까지 젓가락이 가진 않았다.
이제 시작이라 실망하지 않았다. 밤은 길고 술은 많았다.
‘주법도 아직 많이 남았고. 흐흐흐!’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탁자 위엔 빈 병이 쌓여갔고 위장에는 알코올이 쌓여갔다. 이미 이십여 잔의 폭탄주가 돌았다. 웬만한 주당도 뻗을 만한 주량이었다.
‘이제 슬슬 혀가 꼬부라질 때가 됐는데?’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네 명 모두 너무 멀쩡해 보였다.
‘몰래 내공으로 중화시키는 것 아냐?’
원래 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법이다. 내가 그러니까 얘들도 의심하게 되는 거다.
‘이 상황에서 기녀들을 부를 수는 없는데.......조금 더 지켜보자.’
나쁜 마음먹고 일부러 소림의 사형들을 파계시킬 생각은 절대 아니다. 오늘 처음 봤는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럴까.
그리고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약간 푼수 끼가 있어서 그렇지 솔직담백하고 순진했다. 권위의식에 절어 있지도 않았고.
단지 내가 뒤끝이 있어서 장난 좀 치는 거다. 처음에 시위하고 겁박했으니까 말이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이들에게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이야기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살피고 있을 때, 스님들은 소림의 어린 시절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일정사제는 기억나나 주 사매가 처음으로 소림오권을 수련할 때 기억나나?”
“하하하! 사형, 소제가 그때를 어찌 잊겠습니까? 그 조막만한 주먹으로........”
“일선지一禪指를 수련할 땐 어떻고. 앙증맞은 손가락을 곧추 세우고........”
“하하하! 맞습니다. 고된 수련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았지요. 아마 저희 사형제의 성취가 역대 최고였던 것도 전부 주 사매 덕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일연사형?”
“하하! 일원사제의 말이 맞네. 주 사매가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거야.”
아미타불이 빠진 것은 틀림없이 기쁜 일이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소림을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알 수 있었던 거다.
막말로 기저귀 갈아 채우고 똥 걸레 빨아 댄 것 같았다. 유년의 소림에겐 자상한 아버지였고, 듬직한 오빠들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들이 처음 내게 보인 행동은 차라리 귀여운 편이었다. 만일 소림이 내 여동생이라면 난 주먹부터 나갔을 테니까.
‘이것 참!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건가?’
가슴이 찔리는 것을 보니 내가 잘 모르는 죄책감이라는 것이 생겨난 듯했다.
‘쩝! 고기는 빼자.’
색계色戒야 처음부터 끝까지 가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분 냄새를 맡게 해, 미혹迷惑에 빠뜨려 난처하게 하려했을 뿐.
‘살계는 다르지.’
이들이 원효대사가 아닌데 아무리 해골바가지를 역설해봐야 소용없을 듯했다. 장난이 장난으로 끝나지 않으면 나중에 소림에게 바가지 긁힐 것도 같았고.
슬며시 야채 밑에 깔린 고기를 걷어, 내 앞으로 옮겼다. 금세 수북하게 쌓였다.
‘쯧! 많이도 넣었네.’
척.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일연스님이었다.
일연스님이 그윽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말게.”
고기를 빼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그동안의 내 행동을 꾸짖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해 눈으로 물었다.
‘왜?’
일연스님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장주, 그렇게 치우느라 애쓸 필요 없네.”
“죄송합니다.”
얼굴이 화끈거려 바로 고개를 숙였다. 이미 뽀록난 마당에 우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우기는 것도 다 때가 있고 상대가 있는 법이다.
일연스님이 다시 그윽한 눈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눈에 안 보인다고.....딸국! 있는 것이.....딸꾹! ......없는 딸꾹........”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려는 것 같은데 갑자기 혀가 꼬이며 딸꾹질을 시작했다.
‘어라?’
자세히 살펴봤더니 그윽한 눈길이 아니라 술이 취해 눈이 풀린 거였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저은 것도 술이 올라 흔들린 것이었고.
그나마 마지막 정신 줄을 붙잡고 노력한 모양인데 결국 임계점에 달한 듯했다. 역시 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급기야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기어코 주안상을 들이박고 쓰러지고 말았다.
쿵!
와장창!
“스님! 일연스님!”
급히 부축하며 다른 스님들의 동태를 살펴봤다. 역시 술이 올랐는지 세 명이 동시에 상에 머리를 박았다.
쿵! 쿵! 쿵!
와장창!
“허! 나 참! 누가 사형제들 아니랄까봐.......”
이렇게 예고도 없이 동시에 가버릴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걸 다 어쩐다?”
할 수 없이 이제나저제나 부르기만 기다리던 기녀들 불러 난장판이 된 자리를 정리하게 했다. 황당한 표정의 기녀들에게 잠자리까지 보게 한 뒤 돌려보냈다.
이 귀여운 사형제들에게 색계의 부담까지 지워줄 순 없었던 거다. 나란히 잠든 사형제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내게 기죽기 싫어 얼마나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했을까?’
짠한 마음과 한 편으로는 이런 사람들에게 소림은 사랑을 받고 컸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다.
‘쩝! 그래도 이걸 사진으로 찍어뒀어야 두고두고 놀릴 수 있을 텐데.......’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사람까지 변하는 건 아니다. 감동은 어디까지나 감동일 뿐, 안 하던 짓 하면 벌 받는다. 그렇게 나도 앵앵루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 일찍 쓰러져서인지, 몸에 베인 습관인지 사형제들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험! 험! 아미타불!”
민망한 얼굴로 연신 불호만 외우며 나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는 사형제들이었다. 그냥 두고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했지만 나도 한 짓이 있어 아량을 베풀었다.
“원래 동양의 주도는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은 자리가 끝나면 깨끗이 잊는 것입니다. 전 어제 사형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스님들도 마찬가지시겠죠?”
일연스님을 필두로 사형제들이 환한 기색으로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이건 정말 고맙다는 아미타불이다. 다시 시작된 아미타불이 어제보다는 덜 거슬렸다. 앞으로 소림사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부담을 덜은 일연스님이 안색을 활짝 피고 말을 걸었다.
“한 장주, 아침 수련을 하려 하는데 같이 하시겠는가?”
‘헐! 정말 이 양반들........’
난 일연스님의 배려에 감동받았다. 과연 어젯밤의 술자리가 정답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사람들 또한 친해지고 나니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대다수의 무협지는 말했다. 동문이 아니고선 수련모습을 보는 것조차도 커다란 실례라고. 그런데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같이 수련하잖다.
소림 본산의 무공.
그것도 십팔나한이 펼치는 본산절학을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럴수록 여긴 아니지.’
그런데 장소가 걸렸다. 이곳은 나 말고도 보는 눈이 많았다. 알다시피 난 이 사람들처럼 대범하지 못해 나만 보고 싶었던 거다.
“하하! 저야 감사한 말씀이지만 이런 곳에서 수련하자는 말씀이십니까?”
“허허! 약간의 공간만 있다면 충분한데 장소가 무슨 상관인가. 아미타불!”
그때 난 분명히 보았다. 아미타불과 함께 일연스님의 입 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가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나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 이 양반도 뒤끝이 살아있네.......쩝! 솔직히 일대 일이면 꿀릴 것도 없는데 한 번 들이받아?’
이해는 갔다. 사랑하는 사매를 뺏겼다는 박탈감, 하필이면 그 못된 놈에게 골탕 먹었다는 자괴감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다.
그래서 수련을 빙자해 날 한 번 혼내주고 싶은 거다. 날 죽일 생각은 아닐 테니 이기든 지든 내겐 손해 볼 것 없는 제의였다.
‘그래도 여기선 아니지.’
이왕 할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내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야 했다.
“하하! 풍광이 좋은 소항이라도 식후경이 아니겠습니까? 숙수가 해장에 좋은 음식을 마련했으니 먼저 드시고 저희 장원의 연무장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험! 아미타불!”
알았다는 아미타불이다. 애초에 날 혼내줄 기회만 있다면 장소는 상관없던 거다.
사형제들을 먼저 식당으로 안내하고, 투견을 불러 몇 가지를 지시했다.
“너는 먼저 장원으로 돌아가 상 장로에게 일러서........”
“예, 장주님.”
투견을 보내고 나도 서둘러 해장에 합류했다. 앵앵루에서 해장을 하고 천하제일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
내가 안내한 연무장 주변에는 이미 삼십 여명의 낭인을 비롯해, 하인들까지 전부 나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상 장로의 무심한 모습도 보였다.
연무장으로 들어가던 일연스님이 멈칫하며 물었다.
“이, 이 사람들은 다 뭔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불호마저 잊어버린 일연스님이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싱글벙글하며 대답했다.
“하하!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셔서 감히 부하들을 불렀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들이 언제 또 대 소림의 절기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 그랬나. 아미타불!‘
곤혹스러운 아미타불이다. 그래도 제가 한 말이 있어 안 된다고는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확인사살을 했다.
“그런데 정말 제가 함께 수련해도 괜찮겠습니까? 만일 불편하시면 사람들도 다 물리겠습니다.”
“아, 아닐세. 아미타불!”
괜찮다고 하면서도 재빨리 사제들과 시선을 교환하는 일연스님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동의를 구하는 아미타불?
“........아미타불!”
사제들이 승낙의 아미타불을 외우자 일연스님은 한 결 편해진 얼굴로 말했다.
“한 장주도 올라오시게. 우린 언제나 간단히 박투술로 몸을 풀고 시작한다네. 아미타불!”
넌 이제 죽었어! 의 아미타불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