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미스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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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카르미스 14화
제5장 누워서 돈 벌기 (2)
“전 마법사가 아닙니다.”
“네? 하, 하지만 방금 전에…….”
“후우… 그건 마법주머니 때문입니다.”
“마, 마법주머니!”
“헉!”
“그 귀한 걸…….”
주위의 반응에 놀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마법주머니가 비싸게 팔릴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저렇게 놀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절망 퀘스트로 인해 마법주머니를 얻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마법주머니를 팔러 왔다고 했으면 무언가 사단이 벌어졌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쪽으로 오시지요.”
내가 마법사가 아닌 것을 확인했음에도 총관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그만큼 마법주머니가 가진 의미가 컸던 것이다.
사실 이 세계에서 마법주머니를 가진 존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이었다.
8클래스 대현자만이 만들 수 있다지만, 현재에는 그 제작방법조차 실존되어 그 누구도 마법주머니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마법주머니들이 수많은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서 거래되어 왔고, 지금에 와서는 경매에 내놓으면 천문학적인 액수가 책정될 정도였으니, 마법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함부로 대할 신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나로서는 나이 지긋한 총관의 태도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고, 서둘러 늑대 가죽을 팔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였다.
“여,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상단주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아, 네.”
날 접객실로 보이는 곳으로 안내한 총관은 그대로 상단주 지브를 모시러 나갔고, 옆에서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던 페이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누나, 마법주머니가 뭐예요?”
“음?”
방금 나 부른 거 맞지? 설마 지금까지 내가 여자인 줄 알고 있었다는?
“형이라고 불러라.”
“네?”
사실 내가 봐도 지금 내 모습은 여자로 오해하기 딱 좋았다. 때문에 뭐라 나무랄 수가 없는 것이고. 아무래도 조만간 헤어스타일을 바꿔야 할 듯싶다.
아무튼 이 문제는 일단 넘어가고, 그러고 보니 페이는 내가 허공에서 늑대 가죽을 꺼낼 때도, 마법주머니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별달리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결국 무지에서 오는 당당함이었지만, 오히려 난 그런 페이의 태도가 더욱 반가웠다.
“마법주머니란, 이런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야. 크기는 어른 주먹만 한데, 이만~큼 커다란 물건도 거기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우와~! 정말이에요?”
“으, 응.”
솔직히 나도 마법주머니를 써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대충 10골드짜리가 인벤토리 20칸 정도의 효과를 본다고 하였다.
크기에 상관없이 칸수가 중요한 것이었지만, 물약이나 재료 항목의 경우는 천 개까지 중복이 가능했으니 활용도에 따라 넣을 수 있는 양도 달라지는 것이다.
“저 좀 보여주시면 안 돼요?”
“응? 그, 그게…….”
사실 마법주머니가 아니라 인벤토리였지만, 그걸 그대로 설명하기도 난감했다.
이들이 인벤토리에 대해 알 리도 만무했지만, 그렇다고 마법주머니가 아니라고 말하면 또다시 마법사로 오인할지도 몰랐던 것이다.
“미안. 함부로 보여줄 수 없는 것이라.”
“네…….”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페이였지만, 아이답게 떼를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다시 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나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세를 바로하며 들어서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딸칵!
처음 들어선 인물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 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따라 들어오는 총관의 모습을 보아 처음 들어선 인물이 상단주 지브임을 알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곳 상단의 대표 지브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주인이 왔음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서둘러 일어선 나는 지브가 내민 손을 마주잡으며 이름을 밝혔다.
“카르미스라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현중이지만, 어차피 지금 모습은 판월에서 만든 내 아바타 카르미스였다. 때문에 이곳에서도 카르미스라 당당히 말한 것이다.
내 대답에 약간 당황한 듯 총관과 눈을 마주치던 지브는 이내 신색을 바로하며 다시 물어왔다.
“외람된 질문이오나, 혹시 성이…….”
“성이요?”
“아, 말씀하기 곤란하시면 안 하셔도…….”
“아뇨. 여기서는 성이 없습니다.”
“네? 아, 그, 그러시군요.”
내 말이 조금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브였다.
사실 판월에서는 이름만 존재할 뿐. 따로 성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기사로 전직한다거나, 귀족 NPC와 연관이 되어 성을 하사받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처음에는 전부 평민인 것이다.
물론 나는 기사가 될 생각이 없었기에 판월이나 이곳 이계에서는 성이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타국의 고위귀족이거나, 그 영애일 확률이 큽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여기서는 성이 없다는 말을 국가가 다르므로 이곳에서는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나저나 지브와 총관 역시 날 여자로 오해하고 있었지만, 서로 귓속말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내가 그 내용을 알 리 없었다.
“저… 늑대 가죽을 파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여기 있습니다.”
아까 총관에게 보여주었었지만, 그때는 허공에서 꺼내는 모습에 질겁했기에 자세히 볼 겨를이 없었다.
또다시 그런 오해를 사기 싫었던 나는 품속에 손을 가져간 채로 인벤토리 창을 열었고, 그대로 손을 꺼내며 늑대 가죽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오! 역시 마법주머니…….”
“아까도 봤지만 정말 신기하군요.”
“끄응…….”
늑대 가죽을 사려는 사람들이 가죽에는 관심조차 없고 내 품안의(?) 마법주머니에 온통 관심을 빼앗겼으니, 거래가 제대로 이뤄질지가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은 기우였다. 시선을 테이블 위로 돌린 지브의 탄성 때문이었다.
“헉!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가죽이…….”
“네? 헙! 저, 정말이군요.”
총관 역시 아까는 제대로 못 봤다는 것을 증명하듯 지브와 함께 두 눈을 크게 뜨며 늑대 가죽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이토록 윤기가…….”
“무엇보다 상처 하나 없습니다, 상단주님.”
“대단하군. 가죽의 질도 대단하지만 털도 빠진 곳 없이 촘촘해!”
늑대 가죽을 보며 연신 감탄을 연발하던 지브와 총관은 이내 자신들의 추태를 인지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험험! 상단주님, 이건 최고급 중에서도 특급으로 분류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 그렇군. 저기… 카르미스 님, 이 늑대 가죽은 제가 꼭 사고 싶습니다만, 혹시 생각해 두신 가격이 있으신지……?”
내게 묻는 지브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가득했다. 그 정도로 눈앞의 늑대 가죽을 원하고 있었다.
‘음… 장당 2론에 샀으니까 3론에 팔아도 이득이긴 한데…….’
문제는 내가 이곳에서의 시세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으로 보아 적어도 10론 이상은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왕창 불렀다가 비싸다고 안 사면 나만 손해인 것이다.
“생각해둔 가격은 없습니다만… 장당 얼마까지 쳐주실 수 있죠?”
“서, 설마. 늑대 가죽이 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당연히…….”
50장 있다고 말하려던 나는 문득 똑같은 모양의 늑대 가죽이 그것도 여러 장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말을 바꿨다.
“지금은 그것뿐이지만, 그와 비슷한 품질의 가죽으로 또 구할 수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원하신다면 매번 구해다 드릴 수 있는데…….”
내 말에 총관과 심각한 표정으로 몇 마디 나눈 지브는 이내 나에게 물어왔다.
“실례지만… 이 가죽의 출처를 알 수 있는지요?”
“출처요?”
“네. 이 가죽이 다른 상단에서 파는 것이라면, 저희가 사들여도 큰 이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아, 물론 이 한 장은 제가 개인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비싸게 쳐드리겠습니다.”
“따로 거래하는 곳은 없어요.”
“네?”
“이것은 순수하게 제가 늑대를 잡아 얻은 것입니다. 가죽을 파는 곳도 지금 이곳이 처음이고요.”
“저, 정말입니까? 설마 손질도 직접 하신 겁니까?”
“네.”
사실 판월에서 장당 2론에 산 거지만,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50장이나 남은 가죽을 전부 처리하려면 되도록 한곳에서 처분하는 편이 나았고, 내가 직접 잡아다 손질한 것이라 말해야 더욱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그거 손질하는데 꽤 힘들었습니다. 주변에 출몰하는 몬스터들도 문제지만, 상처 하나 없이 늑대를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더군다나 손질하는 것도 저만의 비법이 있기 때문에 아무나 따라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 그렇지요. 저도 이렇게 손질이 잘된 가죽은 처음이니…….”
“사실 늑대 가죽 외에도 원하시는 가죽이 있다면 구해드릴 수 있습니다.”
“헉! 그, 그럼 호랑이 가죽도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그 어떤 상단과도 거래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마 이곳 지브 상단이 처음이겠죠.”
“다, 당장 거래합시다! 아니, 일단 가격을 정해야겠군요.”
“그쪽에서 우선 제시해 주시죠.”
“그게…….”
역시 선제라는 것은 어려운 법이었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거부당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동안 작은 목소리로 총관과 대화를 나눈 지브는 이내 결심했는지 자세를 바로하며 자신들이 생각한 가격을 말하였다.
“일단, 늑대 가죽은 장당 2골드에 사겠습니다. 호랑이 가죽은 상태를 봐야 알겠지만, 지금과 같이 완벽하게 손질된 거라면 장당 10골드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네?”
순간 잘못 들었음이 분명한 가격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어야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판단했음인가? 다시 들려오는 지브의 말은 가격이 좀 더 상향조정되어 흘러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늑대 가죽은 장당 3골드. 호랑이 가죽은 최소 10골드에 사겠습니다.”
“…….”
“저기… 상단주님도 많이 생각하신 겁니다. 최상급 늑대 가죽이 1골드인 거에 비하면 저희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 책정한 가격임을 알아주시길…….”
말이 없는 내 모습에 총관까지 나서서 설명하였지만,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3골드… 1실버가 100론이고, 1골드가 100실버니까… 늑대 가죽 50장이면 150골드라는…….’
속으로 가격을 계산해 본 나는 점점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
“조, 좋습니다. 그 가격으로 하죠.”
“가, 감사합니다! 이보게 총관, 어서 가서 펜과 종이를 가져오게나.”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내 허락과 동시에 방을 나간 총관은 이윽고 두 장의 종이와 새의 깃털로 만들어진 펜을 가져왔다.
종이와 펜을 받아든 지브는 순식간에 계약서를 작성하였고, 이내 서로가 사인을 하는 것으로 무사히 거래를 성립할 수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계약을 마치고 내민 것은 정확하게 세 개의 금화였다. 즉, 3골드라는 말이다.
냉큼 돈을 받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나는 자꾸만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내, 내일이요? 하루 만에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네, 충분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도 늑대 가죽이신지……?”
“아, 당분간은 늑대 가죽을 팔 생각입니다. 호랑이 가죽은 한 달 후에 마련해 드리죠.”
“헙! 그렇게 빨리…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최대한 많이 구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