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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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42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2권 - 17화
에리카는 피에나를 바라봤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에리카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피에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위드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따스했고, 얼굴엔 희미하지만 웃음이 걸려 있었다.
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며 아팠다.
분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든 남자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자신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그 동안 학생들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위드를 따라다녔던 자신의 행동, 자신을 무관심하게 대했던 그의 행동. 여름방학 동안 몇 번이나 위드를 떠올렸던 것들. 모든 것들이 너무 분하게만 느껴졌다.
***
똑똑.
피에나와 이야기를 하던 위드는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두드리자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다름 아닌 203호 드워프, 후바가 서 있었다.
“후바?”
후바는 약간 거만하면서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옥상으로 올라와라.”
“옥상이라니?”
위드가 의문을 표하자 후바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에 네게 진 빚을 갚을 테니 당장 옥상으로 올라와라. 그리고 타이먼 족 여성분도 함께 모시고 오도록!”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후바는 몸을 돌려 옥상으로 올라가버렸다.
“예전의 진 빚?”
위드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피에나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끼익.
문을 열고 옥상으로 오르자 밝게 떠오른 트윈문 아래 모여 있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놀라운 점은 그 중의 한 존재는 결코 이곳에 올 수 없는 존재였다.
“위드!”
레인이 밝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위드를 반겼다.
“왔군.”
후바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얼굴을 약간 치켜들어 자신의 곁에 주르륵 늘어져 있는 그의 몸통만큼 커다란 통나무 통에 손을 턱! 올려놓고 서 있었다.
위드는 피에나와 함께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203호 엘프, 샤프가 그와 비슷하게 생긴 마법학부의 여성 엘프와 함께 피에나의 앞으로 다가와 정중하면서도 기품 있게 고개를 숙였다.
“에류니크다느 필리야느소드타 말리누디라카오 알리타르만가샤 밀니디르카다냐.”
위드와 레인으로서는 도저히 알아먹지 못할 해괴한 말이 샤프와 그의 여동생이라 알려진 이로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피에나 역시도 그들을 향해서 제법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비슷한 언어로 말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놀라기는.”
후바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 답지 않게 피에나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역시도 알아먹지 못할 말을 해댔다.
위드와 레인만이 알아먹지 못할 언어로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이로라가 위드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이로라 에스텔리 세레카베르 노로라무엔 드르라고 합니다. 위드 카일러 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리카와 함께 마법학부의 시들지 않는 두 송이의 꽃 중의 한 송이로 불리는 이로라다. 트윈문 아래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이로라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꼭 여신 같군.’
이리아의 모습에서 위드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상상 속 여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위드 카일러입니다.”
위드가 단순하게 자신의 이름만을 소개했다.
“피에나 님의 사랑을 받고 계시다니 위드 카일러 님은 평범하지 않으신 분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단지…….”
“저 인간, 위드는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지. 하긴, 그러니까 내가 직접 이렇게 마련한 술을 나눠주려고 하지. 크하하하하하하!!”
위드는 자신의 말을 끊어버린 후바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제야 그가 말했던 ‘예전의 빚’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크게 웃던 후바가 갑자기 샤프를 돌아봤다.
“말라깽이! 네놈은 은혜도 모르는 거냐?”
후바의 말에 샤프는 차갑게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흙쟁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뭐, 뭐야?!”
또 다시 싸우려는 후바와 샤프의 모습에 위드와 레인은 여전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만들 하세요.”
이로라의 말에 잡아먹을 것만 같던 후바와 차가운 눈으로 깔보던 샤프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모습에 위드와 레인은 의외라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크하하하하하!!”
자신의 몸통만한 통나무 통을 통째로 들고 술을 벌컥! 벌컥! 마시며 커다랗게 소리를 내며 웃는 후바의 모습에 레인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도 제법 커다란 접시에 술이 잔뜩 담겨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레인 녀석 술이 꽤 강하군.”
위드 역시도 스스로 술에 있어서는 약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후바는 물론이고, 레인에게 있어서도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두 사람처럼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마시는 건 아니었지만 벌써 꽤나 마셨음에도 취기 하나 돌지 않는 샤프 역시도 위드의 상대는 아니었다.
위드는 한쪽에서 이로라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피에나의 모습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피에나가 자신을 제외하고 누군가와 저렇게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하는 거야?”
커다란 통나무 술통을 가볍게 들고 옆으로 다가온 후바가 호통이라도 치듯 말했다. 위드가 그를 바라보자 그가 눈을 부라렸다.
“자자, 어서 마셔!!”
후바는 위드의 손에 들린 술잔에 술을 넘치도록 따라주며 말했다. 위드는 살짝 취기가 돌았지만 사양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크하하하하하! 역시 화끈하단 말이야!”
후바는 기분 좋게 웃으며 술을 마셨다. 그가 술을 마실 적마다 입 주변에 무성하게 난 갈색의 수염들이 술에 흠뻑 젖었다.
“크아! 좋다!!”
팔뚝으로 입가를 스윽 닦은 후바. 그는 이어서 위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녀석은 인간치고 정말로 운이 좋은 거다.”
“그게 무슨 말이지?”
후바가 피에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타이먼 족은 결코 아무나 사랑하지 않아. 타이먼 족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쉽게 사랑을 하지 않지. 그래서 타이먼 족의 일부는 평생을 홀로 살아가다 쓸쓸히 죽지.”
후바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의 그런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은 위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주 오래전만 하더라도 타이먼 족은 정말로 많았지. 그들이 타고난 전투 종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살육을 즐긴다거나, 피를 원하는 종족은 아니야.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강함을 더욱 단련하고, 상대와의 정당한 대결을 즐길 뿐이지. 예의를 알았고, 약자를 돌볼 줄 알았으며, 강자를 공경했지. 욕심도 없으며, 함부로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도 않았기에 거의 모든 종족들이 타이먼 족 만큼은 진정으로 좋아했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간들이 그런 타이먼 족들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서서히 대륙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후바의 음성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건 친구를 잃은 분노였다.
벌컥! 벌컥!
술을 들이 킨 후바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인간들의 배신에 상처를 입은 타이먼 족은 하나, 둘 사라져갔지. 하지만, 그들은 인간들을 증오하진 않았다. 미워하긴 했지만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듯 그들은 그렇게 인간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모습을 감췄지. 그 후로 우리 드워프들도 그들을 쉽게 만날 수가 없게 됐다.”
후바의 이야기는 어느새 레인과 샤프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홀로 다니길 좋아하는 타이먼 족은 이후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나도 솔직히 타이먼 족을 만나게 된 건 거의 70년 만이니. 이것이 다 탐욕스럽고, 추악한 인간들 탓이다!”
후바는 위드와 레인을 바라보며 화를 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두 사람이 인간이기에 그들을 바라볼 뿐.
“어차피 타이먼 족은 그 특성상 언젠가 사라질 종족이지.”
샤프의 무감정한 말에 후바가 그에게로 분노의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타이먼 족의 멸족을 인간들이 빠르게 앞당긴 것만큼은 사실이다!!”
샤프는 후바의 흥분한 음성에 대꾸하지 않았다. 굳이 잔뜩 흥분한 그와 상대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샤프에게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후바는 다시 위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녀석만큼은 절대로 타이먼 족에게 상처를 줘선 안 된다! 만약, 그런다면…… 그런다면…… 내가 직접 네 녀석에게 그 벌을 내릴 테니까!”
위드는 솔직히 후바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피에나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피에나는…… 내 생명의 은인이자 이제는…… 이제는…….”
어느 순간부터 피에나와 이로라 역시 위드와 후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드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피에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피에나가 없는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거든.”
위드의 말에 피에나는 한달음에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얼굴을 비비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후바와 이로라, 레인은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했다. 샤프 역시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감정을 드러냈다.
피에나를 품에 안은 위드는 그녀를 살며시 안았다.
피에나가 내일 당장이라도 사라진다면?
위드는 그 허전함을 쉽게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Chapter 8 위드의 검(Sword)
철컹! 철컹! 철컹!
쾅쾅쾅쾅!!
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악!!
철장에 갇힌 몬스터들의 발악에 가까운 움직임과 울음소리가 실험실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었지만 각자 실험에 집중을 하고 있는 연금술사들은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았다.
한 연금술사는 손에 들린 날카로운 단검으로 자신의 앞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오우거의 뱃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갈라버렸다.
배가 갈리자 몸이 꿈틀 거렸지만 오우거는 여전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갈라진 뱃속에서 뜨거운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바닥을 물들였다. 동시에 뱃속에서 오우거의 내장과 기타 장기들이 비집고 흘러 나왔다.
연금술사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손을 뻗어 오우거의 뱃속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피가 더욱더 흘렀고, 뱃속의 장기들이 앞을 다투듯 비집고 흘러 나왔다.
연금술사는 이윽고, 한 손에 꽉 차는 붉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움찔! 움찔!
붉은 무언가는 오우거의 심장이었고, 그 심장은 아직도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연금술사는 손에 들린 오우거의 심장의 위에 어떠한 액체를 떨어 트렸다.
놀랍게도 미세하게 뛰던 오우거의 심장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오우거가 격렬한 움직임을 하는 것만 같았다.
연금술사는 또 다시 어떤 액체를 심장에 떨어 트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까는 붉은 액체를 떨어트린 반면, 지금은 노란 액체를 떨어트린다는 것이었다.
노란 액체가 오우거의 심장으로 스며들자 격렬하게 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음…….”
연금술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버린 오우거의 심장을 그대로 뱃속에 던지든 넣어버렸다. 그리고는 곁에 놓은 책자에 뭔가를 적어 넣었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의 연금술사들은 몬스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람에게까지도 못할 짓을 저지르며 각자 자신의 책자에 실험에 관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끼이익.
실험실의 육중한 강철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고 그 문을 통해 몇몇 사람들이 들어오자 실험에 몰두하고 있던 연금술사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허리를 숙였다.
“허허허! 괜한 인사는 필요 없다고 해도, 그것 참!”
실험실로 들어온 사람들 중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흐뭇하게 웃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가 멈춘 곳은 실험실의 가장 끝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