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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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12화
212화
* * *
저만치 뭔가가 땅 위로 솟아 있다.
잘 해야 두 자 정도. 그런데 사람인 듯 보인다.
진용은 신형을 날리다 말고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도 남아 있는 기운의 잔재가 느껴진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기운들이 부딪쳤기에 사람들이 떠난 다음에도 그 여파가 남아 있는 걸까?
“시르…….”
갑자기 세르탄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뭔지 알겠어?”
“그다, 그야. 그가 이곳을 지나갔어.”
세르탄이 그라고 부를 사람은 오직 하나, 혈신뿐이다.
진용은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땅에서 솟은 물체와 가까워지자 그가 확실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이 반쯤 땅속에 묻힌 사람.
‘붉은 도복?’
문득 어떤 알 수 없는 느낌이 뇌리를 꽉 채웠다.
붉은 도복. 혈선인!
‘설마?’
혈선인의 앞에 내려선 진용은 떨리는 손으로 그를 만져 보았다.
숨을 쉬지 않는다.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죽었나?
그런데 그때다.
머리를 만지려던 진용의 손이 우뚝 멈췄다.
“마, 맙소사!”
그의 눈은 혈선인의 머리에 머무른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도관이 반쯤 벗겨진 머리.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세르탄도 그제야 혈선인의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진용이 미처 입을 막을 시간도 없이.
“억! 이 사람은…….”
“하가야! 무슨 일이야?”
정광이 날아오며 그 소리를 들었나 보다.
그는 날아 내리자마자 세르탄에게 물었다.
진용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
“정광 도장님.”
“어? 고 공자까지?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정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용의 뒤로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한 것이 땅속에 묻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달빛에 비친 그것은 사람의 상반신이었다.
“어? 사람이잖아? 뭐 해, 구해주지 않고?”
진용은 이를 지그시 깨물며 옆으로 비켜섰다.
“도장님께서 꺼내주십시오.”
“내가? 그러지 뭐.”
정광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진용을 바라보고는 땅속에 묻힌 혈선인을 붙잡았다.
순간! 정광의 몸이 딱딱하니 굳었다.
마치 석고상처럼 굳은 정광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혈선인의 머리만 바라보았다.
도관이 반쯤 벗겨진 곳의 머리칼, 반은 하얗고 반은 검다.
그런 머리를 가진 사람은 천하에 오직 한 사람뿐이다.
“사, 사부? 사… 부……. 정말… 사부요?”
정광은 부들부들 떨며 혈선인의 머리에서 도관을 벗겼다.
하얗고 검은 머리칼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제야 천천히, 떨리는 손으로 혈선인의 숙여진 머리를 들어 올렸다.
사부다. 정말 사부다!
머리칼만 같지 왜 얼굴까지 같은 거야!
정광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칼을 매만지며 오열했다.
“어헝! 사부… 사부! 어허헝! 사부!”
그러더니 혈선인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으아아! 사부! 눈 떠봐, 사부!”
뒤늦게 도착한 율천기 등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사도굉도 저 호랑말코가 왜 통곡을 하는가 싶으면서도 정광의 울음소리가 어찌나 처량한지 입을 열지 못했다.
진용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저분은… 정광 도장님의 사부님이십니다.”
일시에 벙어리가 된 것처럼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다 의문이 생겼는지 사도굉이 물었다.
“왜, 저 호랑…… 정광의 사부가 이곳에서 돌아가셨단 말인가?”
진용은 무심한 눈으로 사부를 끌어안은 채 오열하는 정광을 바라보았다.
그때 소서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혈선인……. 혈선인이야. 분명해. 저 사람은 혈선인이야.”
모두가 동시에 굳어진 얼굴에서 입이 떡 벌렸다.
“혀, 혈선인?”
진용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마도 이곳에서 혈신과 싸운 것 같습니다.”
“혈선인이 혈신과?!”
“예. 이제야 왜 혈선인이 이십수 년의 은거를 깨고 나왔는지 이해가 갑니다. 저분은… 혈신의 존재를 눈치 채고 그를 제거하려고 나온 것 같습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요.”
주위를 빙 둘러보던 독고무종이 질린 표정으로 억눌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으음, 정말 굉장한 싸움이 있었던 것 같군요.”
혈선인의 주위로 십여 장에 달하는 일대에는 작은 돌조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가루가 되어버렸다는 말이었다.
정광이 울음을 멈추고 혈선인을 땅에서 빼낸 것은 일각이 지나서였다.
정광은 멍하니 사부의 모습을 내려다보더니 진용에게 말했다.
“고 공자.”
“예.”
“이리 와보게. 이것 좀 봐줘.”
진용이 다가가자, 정광이 혈선인의 반쯤 움켜쥐어진 손을 진용을 향해 억지로 펼쳤다.
[장(章)]
손바닥에는 글자가 한 자 쓰여 있었다. 결코 먹으로 쓴 글자가 아니었다. 그 글자는 손바닥 내부의 피를 내력으로 뭉쳐서 쓴 글자였다.
“왜 손바닥에다 이런 글자를 썼을까?”
정광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내력으로 피를 뭉쳐 쓴 장(章) 자.
혈선인의 손바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진용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죽음 직전에 글자를 남겼다면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혈선인께서…… 허무하게 당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진용을 바라보았다.
진용이 물었다.
“장(章) 자가 들어가는 혈도가 인체에 몇 개나 있죠?”
사도굉이 제일 먼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장문혈?”
진용이 무저의 심해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혈신을 만나면 알 수 있겠지요. 제 생각이 맞는지, 틀렸는지. 맞다면…… 승산이 조금 더 높아질 수도…….”
8
한 마리의 비둘기가 만월을 가르며 풍옥산으로 날아들었다.
비둘기에는 작은 전통이 매달려 있었다.
전통을 인수한 밀은전의 야간 담당 조장은 전서를 펼쳐 보자마자 정신없이 제갈운문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전주! 무강으로 나가 있던 조에게서 급보가 왔습니다!”
탕마단을 보내고 나서도 잠들지 못하고 있던 제갈운문이었다. 그는 수하가 내민 전서를 받아보고는 황급히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이각, 요료의 명이 떨어졌다.
“모든 탕마단의 무사들은 신속히 연무장으로 집결하시오! 집결하는 대로 출발할 것이외다!”
이미 우양자가 탕마단을 이끌고 나간 것을 알고 있는 원로들은 맹주전으로 몰려가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맹주, 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급하게 서두르시는 거요? 날이 새고 출발해도 충분하지 않겠소?”
“그럴 시간이 없소이다! 신혈교의 놈들이 어젯밤에 이미 주마점을 떠났다 하오!”
“그래서 우양자 부맹주가 나간 것이 아니오?”
“그러니 걱정이외다. 부맹주만으로는 그들을 막기도 힘들거니와 설령 막는다 해도 큰 피해가 날 것이 아니겠소?”
화산의 허운자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맹주의 말씀이 맞소. 일단 탕마단을 모두 소집하고 봅시다.”
원로들은 마지못해 사문의 제자들에게 명을 내렸다.
“가서 제자들을 소집하도록 해라.”
답답한 일이었다. 요료는 새삼 원로들의 굼뜬 행동에 화가 났다.
얼마 전만 해도 당장 쳐들어가야 한다며 난리를 피웠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천제성이 신혈교에 일패도지했다고 하자 슬슬 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저러니 남궁창훈이 맹주 직을 내놓고 물러나지!’
요료는 새삼 남궁창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소림을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만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호지세였다.
“제갈 전주!”
“예, 맹주!”
“내가 직접 탕마단을 이끌 것이오! 그대가 나를 보좌해 주시오!”
제갈운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결연한 의지가 떠올랐다.
“그리하겠습니다, 맹주!”
“상운곡에 머물고 있는 백리 시주에게도 함께 싸울 거면 지금 즉시 합류하라 알리시오!”
“알겠사옵니다!”
9
그들의 공격은 갑작스러웠다.
처음에는 누가 달려오나 했다.
그러다 가까워오면서 거대한 마기가 느껴지자, 그제야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양자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소리쳤다.
“신혈교도요! 모두 적을 맞을 준비를 하시오!”
그때 그들이 덮쳐 왔다.
붉은 구름이 거대한 날개를 펴고!
악마의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그들을 본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놈들! 마도의 무리답게 예의를 모르는구나!”
예의? 웃기는 소리다.
비무하기 전의 인사? 목이 달아나고 난 뒤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틈을 타 덮치고, 마주하면 죽인다.
그게 싸움이다. 전쟁 말이다!
우양자는 정신이 없었다.
산을 내려온 지 이제 겨우 한 시진이다.
길게 늘어진 대열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었다.
자신들의 숫자는 육백, 적은 이백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곳은 광활한 십리평(十里坪)이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이런 싸움에서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혈신! 나와라! 나 화산의 우양자가 그대를 처단하리라!”
“와하하하! 어리석은 놈! 그대는 나 야율립이 상대해 주마!”
우양자는 혈신의 꼬리도 보지 못한 채 야율립을 맞이했다.
야율립은 십천존 중의 한 사람.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우양자의 침중한 검세가 야율립을 향해 펼쳐졌다. 그러기를 십여 초, 막상막하의 대결로 십 장 반경이 초토화되었다.
그때 등우광이 달려들었다.
“시간이 없소! 함께합시다!”
우양자의 안색이 참담히 일그러졌다.
“비겁한 놈들!”
“비겁하다고? 살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해라!”
우양자의 능력으로 두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박에 없었다.
십초를 지나기도 전에 안색이 창백해진 우양자는 물러서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때, 그가 나타났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모두 앞으로 전진하라!”
일성(一聲)에 내공이 약한 자들은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다.
어지간히 강한 자들도 손발이 주춤거렸다.
그에 비해 신혈교의 교도들은 고르고 고른 정예 고수들.
더구나 마공을 익힌 사람이 대다수인 그들은 오히려 힘이 솟아 탕마단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일시에 전세가 기울어 버렸다.
그런데도 우양자는 다른 사람을 구원할 정신이 없었다. 붉은 기운이 자신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콰우우웅!
우양자는 화산의 절기 자하검공을 전력으로 펼쳐서 방어에 치중했다.
두 번까지는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그의 앞에는 다섯 치 깊이로 깊은 고랑이 파여 있었다. 한 번 방어할 때마다 단단한 땅에 박힌 두 발이 일 장이나 뒤로 밀려난 것이다.
콰아앙!
마침내 세 번째 충돌!
더 버티지 못한 우양자가 뒤로 훌훌 날아갔다.
무려 삼 장이나 날려간 우양자는 겨우 중심을 잡고 땅에 내려섰다.
“웩!”
가슴에서 끓어오른 핏물을 뱉어낸 그의 눈이 거세게 떨렸다.
‘인간이 어찌 이토록 거대한 힘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어이가 없다.
전날 제갈운문은 반각을 이야기 했다. 자신은 그 말에 내심 코웃음 치지 않았던가.
‘어리석은 우양아! 알량한 재주를 믿고 남을 비웃더니, 꼴좋구나!’
그는 처연한 눈을 들었다.
혈신이 하늘에 떠 있었다. 붉은 구름에 가려진 채.
땅에는 수백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탕마단의 무사들이었다.
계속 울리는 비명. 쓰러져 가는 탕마단의 무사들.
전멸은 시간문제일 뿐.
우양자가 쥐어짜듯이 소리쳤다.
“모두 후퇴해라!”
도주도 쉽지 않았다. 느긋이 쫓아오며 꼬리가 잡히면 철저히 짤라낸다.
입술을 깨문 우양자는 무당의 영명 진인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영명 도우! 그대가 제자들을 이끌고 가시오!”
“부맹주!”
“빈도가 저들을 지연시켜 보겠소!”
말릴 틈도 없었다.
우양자는 뒤돌아서서 달려오는 신혈교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영명 진인은 비통한 표정으로 제자들을 독려했다.
“부맹주께서 시간을 벌 동안 모두 전력으로 후퇴해라!”
공포에 사로잡힌 자들 중에도 의기가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망설임없이 돌아서며 검을 치켜들었다.
“우리도 남겠소이다! 진인께선 남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십시오!”
누구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말릴 정신도 없었고.
남는 자는 남고, 갈 자는 갔다.
어느 순간, 남은 자들을 향해 붉은 구름이 덮쳤다.
요료가 탕마 오단을 이끌고 풍옥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멀리서 비명과 격전의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놈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말이었다.
그제야 심각성을 느낀 원로들과 탕마단 무사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사형제가, 제자들이 놈들에게 쫓겨오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불! 갑시다! 놈들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줍시다!”
“모두 가자! 놈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가서 사형제들을 구하자!”
* * *
선혈과 뭉개진 육신이 즐비했다. 적어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듯했다.
밤공기를 뚫고 아련히 들려오는 격전음. 그리고 비명!
“먼저 가겠습니다!”
진용이 신형을 날렸다. 그 옆을 세르탄이 따라갔다. 율천기와 포은상과 독고무종을 비롯한 천탁의 무인들과 천탁을 따르는 무사들 일백오십이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십 리쯤 갔을까, 달려가던 진용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의 주위에는 반경 오 장에 달하는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그만큼 강맹한 격돌이 있었다는 뜻.
구덩이 속에 죽어 있는 자는 역시 도인이었다.
진용은 그가 누군지 궁금했지만 그대로 지나쳤다.
그때 뒤따르던 사도굉이 놀라서 소리쳤다.
“어헛! 우양자 아닌가?”
우양자. 십천존에 버금간다는, 어쩌면 삼태천에 비할 수 있다는 절대의 고수.
결국 강호의 절대고수 한 사람이 또 혈신의 손에 죽었다.
진용은 이를 악다물었다.
대체 혈신의 능력은 끝이 어디란 말인가?
과연 자신과 세르탄이 그를 상대할 수 있을까?
옆을 바라보았다. 세르탄의 표정도 창백해진 채 굳어 있었다.
‘젠장, 실피나라도 움직이면 조금 나을 텐데.’
실피나는 무서워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어차피 움직이지 않는 실피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진용은 실피나를 불러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앞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이제 적도 코앞이고, 풍옥산도 코앞이었다. 격돌음으로 봐서는 급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실피나!”
진용이 강하게 부르자 실피나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