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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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210화
210화
정녕 가공할 기운이었다.
붉은 기운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적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 붉은 안개로 화한 채 사라져 버렸다.
눈을 부릅뜬 백리자천은 혈신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십성에 달한 천무신공이 그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평생을 두고 완성시킨 광천백혼기(光天白魂氣)였다.
고오오오! 쩌저저저적!
연속 일곱 번에 걸쳐 펼쳐진 광천백혼기에 붉은 기운이 쫙 벌어졌다.
혈신의 얼굴이 살짝 이지러졌다. 예상외의 강한 반격에 놀란 듯했다.
하지만 약간의 경악. 그게 전부였다.
혈신이 약간의 분노와 조소를 지으며 양손을 휘돌리자 붉은 안개가 회오리치며 휘돌았다.
그리고 곧 거대한 쐐기가 되어서 백리자천의 광천백혼기를 그대로 부숴 버렸다.
콰과과광! 후우우웅!
일순간, 혈신과 백리자천의 기운이 폭발하며 진기의 폭풍이 일대를 휩쓸었다.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신혈교의 교도를 상대하고 있던 백리군학이 해쓱하니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피, 피해!”
천제성 무사들은 적을 앞에 두고도 분분히 물러섰다.
도검에 입는 부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진기의 폭풍에 휘말리면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지 몰랐다.
“크으윽!”
생전 처음 느껴본 거대한 힘에 백리자천도 답답한 신음을 토하며 정신없이 물러섰다.
진정 믿을 수가 없는 힘이다.
결코 인간의 힘이 아니다.
혼돈에 빠진 백리자천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흐트러진 머리가 눈을 가렸다.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핏빛구름에 감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체구의 장한이 보인다.
저놈이 혈신이다!
“이노오오옴!”
백리자천은 혼신을 다해서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다.
언뜻 혈신의 입가에 웃음이 떠오른다 느껴졌다.
악마의 웃음, 아수라의 웃음이다.
백리자천은 자신도 모르게 엄습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일갈을 내질렀다.
“죽어라, 이놈!”
그러고는 십 장 허공에 떠 있는 혈신을 향해 두 손을 떨쳤다.
그와 동시, 백리군학을 호위하던 천강오호법 중 셋이 혈신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전력을 다한 공격을 쏟아냈다.
광풍폭우와 같은 공세가 혈신을 뒤덮었다.
천하의 누가 그들의 합공에 일초인들 제대로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 이후에 펼쳐진 광경은 혈신이 인간임을 의심케 했다.
“크하하하! 모두 죽여주마!”
천지를 뒤흔드는 광소!
혈신에게서 퍼져 나오던 붉은 기운이 회오리처럼 휘돌더니 백리자천과 천강호법 셋을 휘감았다.
콰아아아아아!
그 직후, 백리자천에 앞서 혈신에게 접근한 천령호법의 몸뚱이가 피안개를 이루며 하나 둘 사라져갔다.
그 광경은 천제성 무사들에게 극한의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족했다.
백리자천조차 부릅뜬 눈을 거세게 떨며 아연한 표정이었다.
“이, 인간이 어찌 저처럼 가공할 능력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경악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천강호법들은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죽어가는 그 자리에 찰나의 틈이 생겼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는 없는 일!
백리자천은 극성의 천무신공으로 몸을 보호한 채 혈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패배가 기정사실이라면 함께 죽으리라!
“내가 바로 백리자천이다, 이노오오옴!”
2
진용이 천제성과 신혈교의 전면전 소식을 들은 것은 각산에서 제갈민을 만난 이후였다.
“천제성이 신혈교와의 싸움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했습니다. 그 와중에 백리자천이 천강호법과 함께 혈신을 공격했습니다만, 백리자천은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도주했고, 천강오호법은 혈신의 손에 죽었습니다.”
방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혈신의 가공할 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백리자천과 천강호법 셋이 합공하고도 어찌하지 못하다니.
진용은 허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천하에 군림하기 위해서 친구인 유태청마저 죽음으로 내몬 백리자천이 아니던가.
죽으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무엇을 얻기 위해 그토록 발버둥 쳤단 말인가?
“백리성은?”
“그 역시 죽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 같소?”
“이대로라면 탕마단이 천제성의 잔여 세력과 손잡고 신혈교를 공격할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백리군학이 천제성의 잔여 세력을 이끌고, 탕마단이 머물러 있는 정천무맹의 풍옥산 지부로 갔기 때문입니다.”
“예상되는 공격 시기는?”
“이합집산 한 세력을 정비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니,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려면 열흘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들이 공격할 때까지 신혈교가 기다려줄 거라 보시오?”
“신혈교도 천제성과의 싸움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장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라면, 닷새 안이 고비가 될 거요.”
갑자기 진용이 단언하듯 말했다.
제갈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단언하시는지요?”
“혈신은 강함을 떠나서, 일반적인 인간의 심성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자요. 신혈교의 피해크기는 혈신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겁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침묵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진용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설령 신혈교의 교도가 모두 죽어도 혈신은 걸음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은 그 자신이 백리자천과의 싸움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잠시 멈춰있는 것뿐이죠.”
“어떻게 그럴 수가? 혼자서 전 강호를 상대로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가 미쳤다면 몰라도…….”
포은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누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하지만 혈신의 행동과 말을 직접 보고 들은 진용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그겁니다. 그를 제정신인 자와 똑같이 취급하면 절대 안 됩니다. 미친 자는 정상적인 인간이 절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일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합니다. 그 역시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진용의 말에 모두가 입을 반쯤 벌렸다.
결국, 혈신이 미쳤다는 말이 아닌가?
“문제는, 그에게 혼자서 천하를 뒤집어 놓을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정광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 나 참! 고 공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뭔 말들이 그리들 많으슈? 사도 선배, 아직도 고 공자를 모르는 거유?”
뜨끔한 표정으로 사도굉이 말했다.
“모르는 게 아니고, 잘못하면 웃음거리가 될지 모르니까 그런 거지.”
그러나 진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민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풍옥산에 사람을 보내세요. 아마 믿지는 않을 테지만,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겁니다. 그 정도만 해도 놈들이 정말 움직일 경우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진용을 따르기로 한 이상 제갈민에게 진용의 명령은 절대였다. 설령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해도.
“알겠습니다. 발 빠른 사람을 시켜 지급으로 서신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갈민이 대답함과 동시 진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되기 전까지 쉬세요. 밤이 되면 우리도 움직입니다. 그때까지 놈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피십시오.”
3
“놈들이 모여 있는 곳과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삼백오십 리 정도 되옵니다, 혈신이시여!”
“밤이 되면 놈들을 치러 갈 것이니라! 준비를 하도록 해라!”
갑작스런 혈신의 명령에 야율립의 표정이 회칠을 한 것처럼 창백해졌다.
“오늘 밤에… 말이옵니까?”
“그렇다. 놈들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움직인다. 너희들이 가지 않으면 나 혼자라도 간다.”
광오한 말이었다. 미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혼자서 정천무맹을 상대하겠다니.
그런데도 어쩐지 불가능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야율립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머뭇거림이 한순간 사라졌다.
그래, 우리에게는 혈신이 있다.
누가 감히 혈신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적들은 설마 신혈교가 움직일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을 게 자명하다.
그때 숙야명이 입을 열었다.
“하오면 최강의 정예들만 추려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두워질 때까지 준비하도록!”
“알겠사옵니다!”
야율립은 두 손을 불끈 움켜쥐었다.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어차피 혈신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 없이 한 번에 결정을 보는 거다.
이기면 천하를 거머쥐는 거고, 지면 멋지게 죽는 거다.
공야무릉을 부추겨서 여기까지 온 것이 다 오늘을 위해서인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이번 싸움에서 혈신이 죽는다면?
‘내가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거다!’
4
노도인은 산등성이에 서서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틀간 쫓아온 자들이 거기에 있었다.
혈신을 따르는 자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며 혈신을 외치는 자들이.
전날 보았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신에 못지않은 고수였던 백리자천이 쓰러졌다. 수하 호법들은 피안개로 스러지고.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그토록 강하고, 그토록 악마적인 기운을 지닌 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늘에까지 뻗친 붉은 기운을 느끼고도 짐작을 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손쓸 기회를 잃고 쳐다만 봐야 했다.
차라리 백리자천과 함께 손을 썼다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을지 모르거늘.
‘하늘이 피를 원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봐라! 노을이 지는 저 서쪽의 밝은 광휘를!
혈신을 상대할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오면서 들었던 천뢰서생이라는 자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당금 하늘 아래 갑자기 나타난 고수는 그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모자라다.
광휘가 붉은 기운에 가려 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혈신의 기운은 최고조에 달해 있거늘.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균형을 맞춰주면 된다.
“흘흘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겨우 그 정도뿐이라니…….”
그때다. 산등성이 아래 저 멀리 있는 장원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오는 것이 보인다. 수십, 아니, 수백이다.
붉은 무복을 걸친 자들.
놈들이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설마……?”
노도인은 굳어진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더 이상 장원에서 빠져나오는 자가 없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갈수록 태산이로다. 정파의 아이들은 아직도 꿈에 빠져 있거늘.”
그 말의 여운이 스러지기도 전이었다.
일순간, 산등성이 위에서 노도인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5
무작정 다 데려갈 수는 없었다.
제갈민을 비롯해 두충과 운아영 등은 남겨놓기로 했다. 죽어도 따라가겠다는 운아영을 남겨놓기 위해 진용이 직접 운아영의 검을 꺾는 사단까지 벌여야만 했다.
“나는 유 어르신께 운 낭자를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 길은 누구도 생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길, 결코 운 낭자를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운아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은근슬쩍 어깨를 감싸는 두충의 머리를 한 대 때리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딱!
“얼렁뚱땅하지 마!”
두충은 운아영에게 맞고도 벙긋 웃으며 정광을 찾았다.
“도장님, 잠깐 봅시다요.”
“나?”
“예, 오늘 헤어지면 죽을지 모르니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죠.”
“빌어먹을 놈. 꼭 말을 해도…….”
그러면서도 정광은 두충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인사를 하자는 말이 곧 술 한잔하자는 소리 아니겠어? 그런 기대감을 품고.
마지막 가는 길에 술 한잔도 좋지 뭐.
쟁반처럼 둥근 월광 아래 진용 일행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신혈교가 머물러 있는 주마점의 장원을 살피고 있던 감시조 중 한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전신을 땀으로 목욕한 것처럼 젖어 있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다급히 달려왔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아마 이백 리 길을 쉬지도 않고 전력으로 달려왔음이 분명했다.
그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누가 물을 새도 없이 다급히 말부터 했다.
“놈들이……. 헉, 헉. 놈들이 장원을 떠났습니다.”
그 말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의 몸이 통나무처럼 굳어졌다.
장원을 떠났다? 설마 진용의 말대로 정천무맹을 공격할 생각이란 말인가?
제갈민이 황급히 물었다.
“전부 떠났소?”
“아닙니다. 이백 명 정도만 장원을 나섰습니다.”
“그럼 정예들만 움직였다고 봐야겠군.”
사도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머지 놈들도 곧 움직일 것이네.”
“그들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혈신을 비롯해서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그 이백 명 안에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요.”
“나머지야 죽든 말든 상관없이 움직였다는 말인가?”
“장주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놈은 제정신으로 생각할 놈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저도 조금은 의문이었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자는, 혈신은 결코 정상적으로 상대할 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정광은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끄응,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어쩌긴요. 저희도 바로 출발해야죠.”
“우리가 그들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럼 뭐야? 그냥 구경이나 가자는 거야?”
진용이 밖으로 나서며 정광의 말에 대답했다.
“옆구리 정도는 찌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잘하면 그들이 정신없을 때 뒤통수를 때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옆구리? 뒤통수?
정광의 이마에 주름이 몇 개 더 그어졌다.
사도굉이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쯧쯧쯧, 그 머리로 불가해한 고대 문자를 연구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신기해.”
그러니까 이십 년이 넘도록 연구하고도 아직 다 풀지 못했지, 꼭 그런 뜻 같다.
정광이 막 발작하려 할 때다. 진용이 세르탄과 함께 휭 하니 정광의 옆을 스쳐 가며 말했다.
“그래도 황소같이 끈질긴 정광 도장님이나 되니까 성질 죽이고 그 정도라도 푼 겁니다. 사도 선배 같았으면 남 일에 참견하고 싶어서 한 자도 풀지 못했을 겁니다. 그만 가시죠.”
“어? 어.”
칭찬하는 소리 맞지?
정광은 힐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정광이 성질 죽인 황소같이 끈질기다고? 웃기는 소리! 그런 표정들이다.
정광이 다시 빽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고 공자가 가자고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