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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서생 195화

무료소설 마법서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법서생 195화

 

195화

 

 

 

 

 

 

 

호숫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

 

그녀는 남보다 멀리 보고,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운무만상대진의 안개조차 그녀의 눈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그녀는 신안 초연향이었으니까.

 

‘오셨어, 그분이 오셨어!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떡하지? 만나야 하나? 아냐, 아직은 아냐.’

 

“언니, 아는 분이야?”

 

소연이가 묻는다. 초연향은 아무 생각 없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응.”

 

“그럼 만날 거야?” 

 

“아니. 아직은 아니야.”

 

“왜?”

 

목소리가 이상하잖아. 얼굴의 상처도…….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소연이 앞에서 그 말은 절대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할 일이 있거든.”

 

기껏 한다는 변명이 ‘할 일’이 있단다.

 

초연향은 서글픈 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일 끝나면 만날 거야. 다 끝나고 나면…….”

 

“만나고 싶다면 지금 만나도 된다.”

 

뒤에서 중후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밀궁의 궁주, 이제는 자신의 의모가 된 상유화의 목소리였다.

 

“아니에요, 어머니.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입술을 깨물지 않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심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여자야. 여자라구…….’

 

그녀는 돌아섰다.

 

“그만 가요, 어머니. 갈 길이 멀잖아요.”

 

상유화는 초연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갈 길이 멀었다.

 

백 년도 넘게 기다렸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환밀궁의 염원, 밀천궁의 잠든 전설을 깨우기 위해선 이천 리 길을 가야 했다.

 

백 년 만에 신안을 지닌 여인을 찾았는데, 시간을 지체하기에 초연향의 개인적은 사랑은 너무 사소한 사안일 뿐이었다.

 

‘네가 모든 것을 이룬다면 네 뜻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너에게 바라는 숙명이기도 하지. 부디 성공해서 우리를 진정한 여인으로 만들어주기 바란다.’

 

 

 

운무를 뚫고 들어간 지 한 시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결국 그렇게 지난 길이 십 리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운무가 깔린 걸까?

 

“더는 소용없습니다, 가주.”

 

제갈민이 결국 손을 들었다.

 

“우리가 들어온 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알 거라 생각하오?”

 

“아마 알 겁니다.”

 

그럴 거다. 알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 자신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만 봐도.

 

‘연향일까? 그녀가 보는 것일까?’

 

진용이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주!”

 

“고 공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제갈민도 포기한 진세를 어떻게 들어가겠단 말인가?

 

진용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 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을 감고서. 전신의 모든 감각을 개방한 채.

 

모험이라 할 수도 있었다. 대기의 비틀린 기운이 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자신도 시도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기의 흐름이 느껴져. 비틀렸다면 틈이 있을 거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결국 같은 것. 정(正)이 있으면 반(反)도 있는 법. 세상에 다시없는 진세라도 길이 없지는 않을 터, 한 번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기이한 기운이 흐르는 사이로 틈이 보인 것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길은 결코 눈으로 보고서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대기의 미미한 흐름조차 느끼지 못하면 찾을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됐어! 갈 수 있어!’

 

한 걸음, 두 걸음.

 

이제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 소리, 물소리, 대자연의 속삭임만이 들릴 뿐이다.

 

―그리 가면 안 돼.

 

―그래, 거기서 돌아가는 거야.

 

―멈춰! 옳지, 이제 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마치 비밀의 문을 열고 영원의 대지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선계에 들어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몸 안에 흩어져 있던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고, 다시 들어오고, 쌓여 있던 탁한 기운이 모조리 씻겨 나가 정화되는 것만 같다.

 

내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듯한 그런 기분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대기의 비틀림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진세가 끝나가고 있다는 말이었다.

 

대기가 평온을 되찾았다 싶은 순간, 진용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에서 아쉬움이 머물다 곧 사라졌다.

 

‘무극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쓴웃음을 지은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작은 호수가 보인다.

 

호수의 가운데에서 물기둥이 용솟음친다.

 

이곳이다. 이곳이 계곡의 물이 빠져나오는 곳이다.

 

“연향, 어디 있는 거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진용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단숨에 호수를 건넜다. 사람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길이 보였다. 건너편 산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실피나,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이 있나 찾아봐!”

 

―알았어!

 

실피나가 계곡 안으로 날아가자 진용은 길을 따라 건너편의 산으로 올라갔다.

 

중턱에 이르자 작은 집이 한 채 보였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노파가 방 앞에 앉아 있었다.

 

진용이 다가가자 노파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놀랍군. 인위적으로 진세를 뚫고 들어오다니……. 한데 누구를 찾아오셨는가?”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놀란 듯하지만 겉모습일 뿐이다. 자신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돌려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혹시 얼마 전에 저 호수에 떠오른 한 여인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노파가 언제 놀랐냐는 듯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봤네. 내가 구했지.”

 

진용의 가슴이 쿵덕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내가 뭐랬어! 살아 있을 거라고 했잖아!

 

“지금 어디 있죠? 이곳에 있습니까?”

 

노파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조금 늦게 왔구먼. 몸이 낫고 얼마 안 있어 떠났네.”

 

일순간 진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떻게 찾아왔는데, 뭐라고? 떠났다고?

 

믿을 수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진용은 마안을 발현해 노파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실이다. 노파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제기랄! 말도 안돼!!

 

입이 잘 벌어지지도 않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안의 능력이 풀렸는데도 다시 펼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진용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벌려 노파에게 물었다.

 

“언제…… 떠났습니까?”

 

“조금 되었지.”

 

“몸은 괜찮습니까?”

 

“목이 다쳐 목소리가 변했네. 그리고 얼굴도 다쳐서 흉터가 많이 남았어. 예쁜 아이였는데…….”

 

목이 다쳤다고?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고?

 

상관없어. 내가 연향을 좋아하는 것은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니까.

 

“많이 슬퍼했겠군요.”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이어 가로저었다.

 

“처음에는 그랬지. 그러다 나중에는 받아들이기로 했는지 웃더군. 강한 아이였어.”

 

“예. 강한 여인이죠, 연향은.”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데, 진용은 그것이 슬펐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목소리 때문인지 말을 많이 아꼈다네.”

 

말을 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렸다.

 

노파가 말을 이었다.

 

“혹시 누가 찾아오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더군. 언제고 다시 돌아갈 거라고 말이야.”

 

진용은 안개 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한참이 지나서야 노파에게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그녀를 구해주셔서…….”

 

“아니네. 나야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한데 어른께선 여기에 오래 사셨습니까?”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삼십 년 살았네.”

 

“그럼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들어보셨겠군요.”

 

“물론이네. 가끔가다 만나기도 한다네.”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안정을 되찾은 진용의 질문에 노파가 답했다.

 

“혹시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먼. 그녀들은 환밀궁의 여인들이라네.”

 

진용의 눈이 커졌다.

 

“환밀궁요?”

 

“그녀들은 원래 외인을 들이지 않는데, 마침 나에게 작은 재주가 있음을 알고 이곳에 살도록 허락해 주었지.”

 

“그녀들이 지금도 안에 있습니까?”

 

노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지금은 몇 명 없을 거야. 강호가 시끄러워졌다고 밖으로 나갔으니까. 왜, 만나보려고? 반기지 않을 텐데?”

 

“그녀들이 연향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보긴 했으니까 안다고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만큼 자세히는 모를 거네.”

 

때마침 실피나가 돌아왔다.

 

―주인아! 안에 여자들이 있어!

 

“몇 명이나 되지?”

 

―한 열 명?

 

노파의 말대로다.

 

진용은 잠시 망설이다가 노파를 향해 다시 허리를 숙였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을 듯했다.

 

그렇다고 강제로 알아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노파는 연향을 구한 은인이 아닌가 말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시라도 그녀가 찾아오면, 고진용이라는 사람이 꼭 보고자 한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러지. 그 아이가 온다면 내 꼭 전해주겠네.”

 

“목소리가 아무리 변해도, 얼굴이 아무리 흉하게 변해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전해주십시오.”

 

노파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공자의 그 마음을 반드시 전해주겠네.”

 

진용은 답답한 한편으로 그녀가 건강하다는데 마음이 놓였다.

 

그녀의 신안이 건재한 이상, 언제고 그녀에 대한 말이 돌 것이다.

 

살아 있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리라!

 

그래, 살아 있으면 된 거야! 살아 있으면!

 

“우우우우!”

 

날아가는 진용의 입에서 창룡후가 터져 나왔다.

 

 

 

사라지는 진용을 바라보며 노파의 입에서 가벼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흘흘흘,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만. 정말 멋진 청년인데 말이야. 에구, 소궁주는 복도 많지.”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진용이 나타나자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어떻게 되었나?”

 

성질 급한 정광이 제일 먼저 물었다.

 

진용이 한숨을 푹 쉬며 답했다.

 

“후우, 떠났다는군요.”

 

“떠나?”

 

그 말뜻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없었다.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말이구만!”

 

진용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축하의 말을 늘어놓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축하하네! 이제 마음이 좀 놓이겠구만!”

 

“하하하. 고 공자, 이제 날만 잡으면 되겠네 그려.”

 

여차하면 아들이냐, 딸이냐 물을 기세였다. 아직 쌀도 씻지 않았는데.

 

그렇게 들뜬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다. 제갈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가주?”

 

진용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묻는다. 결정을 내리라는 말이다.

 

이미 정해진 길. 진용이 입을 열었다.

 

“갑시다.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군요.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혈신을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요.”

 

‘글쎄, 시르, 내 말대로 하면 된다니까!’

 

‘시끄러, 말 안 해도 약속은 지킬 테니까. 세르탄, 너나 잘해!’

 

 

 

 

 

3

 

 

 

 

 

목적을 반은 이루었으니 보다 편안해져야 할 사람들의 표정이 거꾸로 굳어만 갔다.

 

혈신! 그 이름 때문이었다.

 

막상 혈신을 상대하러 간다는 생각을 하자, 얼마 전까지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어지고 긴장감만이 사람들의 가슴에 가득 찬 것이다.

 

그렇게 표정이 굳은 사람들이 석가장을 지나 고읍성을 지날 즈음이었다. 군청우의 졸개 중 다른 곳을 조사하던 조가 일행을 찾아왔다.

 

사람들은 수고했다는 말로 대충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군청우의 졸개들도 굳어 있는 고수들의 기운에 기가 죽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뒤만 따라왔다.

 

그날 밤 군청우가 진용을 찾아왔다.

 

이미 초연향의 일이 해결된 마당이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진용은 차마 군청우를 거절하지 못하고 안으로 들게 했다.

 

자리에 앉은 군청우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고 공자, 낮에 합류했던 아이들이 정보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군 회주 덕에 무사히 일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고마움 잊지 않겠습니다.”

 

“별말씀을!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지요! 허허허!”

 

진용의 옆에 앉아 있던 정광이 너털웃음을 흘리는 군청우를 힐끔 쳐다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온 건가? 시답잖은 이야기면 내일 하고, 가서 잠이나 자게.”

 

뜨끔한 표정으로 군청우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하, 하! 뭐 그럼, 내일…….”

 

그래도 그냥 보내기는 미안한 마음에 진용이 물었다.

 

“일단 이야기나 해보세요.”

 

군청우가 ‘이래도?’ 하는 표정으로 정광을 쓱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예! 고 공자! 험, 다름이 아니라, 진주 쪽으로 갔던 아이들이 부상당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하는데, 그자도 강물에서 구해진 자라고 합니다.”

 

“강물에서요?”

 

“예, 그런데 남자라고 합니다.”

 

“남자요?”

 

“예,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데, 두 팔이 부러지고, 내부가 으스러지고, 지독한 상처 때문에 거의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순간, 진용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이런! 멍청하긴! 하군상을 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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