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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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89화
189화
백리성이 불길이 이는 눈으로 진용을 바라보았다. 이미 얼마 전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혈편복이 이끄는 광혼단의 괴물 넷을 상대하며 마음조차 상처를 입은 것이다.
“가…지.”
그는 이 사이로 한마디를 내뱉고는 앞을 가로막는 광혼단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답답한 속이 풀리겠다는 듯.
그 뒤를 살아남은 자들이 따랐다.
부상자들이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구할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때!
“신.혈.의. 세.상.을. 열.리.라!”
천지를 떨어 울리는 일갈이 동백산을 뒤흔들었다.
거대한 힘이 실린 일갈이었다.
단 한 번의 일갈에 내부의 기운이 뒤흔들릴 정도다.
진용은 입술을 깨물며 으스러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기운! 그다, 그가 왔다! 혈신이!’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나마 십여 명만이 안간힘으로 버티고 서서 허공을 바라볼 뿐이다.
이게 어찌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진용은 일그러진 얼굴로 일갈이 들려온 곳을 직시했다.
피보다 붉은 선홍빛 혈포를 걸친 금면수라탈의 괴인이 보였다.
야율립과 적유가 그자의 양쪽에 서서 날아오고 있었다.
‘저자가 천혈교주? 아니, 신혈교주, 혈신?’
바라보는 사이 그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동시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손끝이 향하는 곳에서 붉은 기운이 하늘을 덮으며 밀려오는 것이다.
세르탄이 경악에 차 외쳤다.
‘말도 안 돼! 저건… 악마의 피 구름! 마계의 절대 능력이 어떻게……!’
진용은 세르탄의 말에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몰려오는 붉은 구름에서 전해지는 가공할 압력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악! 주인아!
거기다 실피나마저 비명을 지르며 진용에게 날아온다.
<뭐 해? 들어가, 실피나!>
실피나가 진용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진용은 짐작만 했던 혈신의 엄청난 능력에 난생처음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젠장! 내가 이렇게 약해 빠졌었나!’
진용은 세맥 깊숙이 잠자고 있던 모든 능력을 끌어올렸다.
그중에는 건곤흡정진혼결로 끌어들였던 마령의 기운마저 속해 있었다.
세르탄이 아까워 내놓지 않으려는 것을 윽박질러 뽑아냈다.
‘죽은 뒤엔 아무 소용없잖아!’
‘그냥 도망가, 시르!’
‘이미 늦었어!’
붉은 기운은 이미 머리 위에 도달해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진용은 황급히 제나의 지팡이를 빼 들었다. 그러고는 사자가 포효하듯 기합성을 내지르고, 끌어올린 기운을 두 손에 응집한 채 머리 위로 쳐들었다.
“타아아앗!”
번쩌저저적!!
제나의 지팡이에서 뇌전이 그물처럼 퍼지더니 허공을 찢어발겼다.
붉은 기운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찰나의 틈이었다. 진용이 소리쳤다.
“모두 빠져나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채, 가공할 압력에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정신없이 신형을 날렸다.
“우리가 돕겠네!”
율천기와 포은상, 독고무종이 진용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자신들의 모든 공력을 끌어냈다.
고오오오!!
하늘에선 거대한 기운이 짓누르고, 땅에선 웅혼하기 그지없는 기둥이 떠받쳤다.
두 기운이 부딪치며 옆으로 퍼져 나가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물러섰다.
미처 물러서지 못한 자는 피 모래처럼 부서지며 사라졌다.
지독한 공포가 동백산의 계곡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진용을 비롯한 네 사람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너무도 엄청난 기운이었다.
인세에 이런 기운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혈신!
이게 혈신의 힘인가!
“가아아아알!”
그때 어디선가 천지를 떨어 울리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붉은 기운이 일시지간 흔들렸다.
진용 등은 그 여세를 틈타 전력으로 붉은 기운을 몰아쳤다.
붉은 기운이 주춤하더니 조금씩 밀려간다.
“빠져나가요! 그래야 저도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진용이 외치자 그렇지 않아도 기회만 보고 있던 세 사람이 재빨리 몸을 빼냈다.
세 사람이 찰나간에 십 장을 물러서자 진용도 튕기듯이 뒤로 몸을 날렸다.
순간, 무엇을 봤는지 진용이 놀라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어르신!”
혈신에게 마주쳐 가고 있는 유태청이 보인 것이다.
이미 떠난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다시 무공을 쓸 경우 삼 년의 생마저 사라질 거라 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혈신에게 마주쳐 가는 유태청의 표정은 너무도 편안해 보인다.
유태청의 뜻을 짐작한 진용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안 돼요! 무공을 쓰시면 안 돼요!”
<가거라,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을 빠져나가거라. 아영이와 인화를 부탁하마.>
유태청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든다. 심어(心語)였다.
진용은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소리쳤다.
“안 됩니다, 어르신!”
<삶과 죽음은 안과 밖의 차이일 뿐. 너무 애석해 마라.>
목소리가 스러진다.
허공에 떠 있던 혈신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순간 유태청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진다.
그 자신조차 무엇인지 몰랐던 무상력(無常力). 바로 그 힘이다!
혈신이 유태청을 향해 두 손을 쫙 펼치더니 광오하게 소리쳤다.
“좋구나! 하찮은 인간이 그러한 능력을 지녔다니! 하나 거기까지다! 가라! 죽음의 문이 그대 앞에 열렸도다!”
붉은빛이 완연한 핏빛으로 짙어졌다.
핏빛 하늘, 혈천이 펼쳐졌다.
유태청의 몸에서 일던 맑은 빛도 더욱 환해졌다.
맑은 빛이 스미어 가자 핏빛 하늘이 흐려졌다.
그리고 한순간!
유태청의 몸이 허공에서 서서히 사라져 간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먼지처럼 흩어져 가는가 싶더니, 결국 텅 빈 하늘이 되어버렸다.
“으음…….”
혈신도 답답한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밀려났다.
허상을 본 것인가?
아니다. 그가 죽었다!
십절검존 유태청이 죽었다!
“안 돼! 으아아!”
진용은 미친 듯이 양손을 휘두르며 혈신을 향해 날아갔다.
전력으로 끌어올린 건곤천단공에 신왕의 무공이 펼쳐졌다.
건곤뇌전폭! 건곤파천벽!
가라! 모든 것을 부숴 버려라!
그때 야율립과 적유가 동시에 진용을 맞이해 갔다.
단숨에 진용을 죽여 버리겠다는 듯!
쩌저저적!
시퍼런 뇌전이 번쩍이며 허공이 갈가리 찢겨졌다.
콰과과광!
대기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진용과 야율립과 적유가 동시에 뒤로 튕겨졌다.
경악에 찬 야율립과 적유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자신들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낼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더구나 밀린 것은 자신들이 아닌가.
말로만 들었던 진용의 무위에 두 사람은 더 이상 덤비지 않고 수하들을 다그쳤다.
“저놈들을 죽여 혈신께 바쳐라!”
“죽여라! 피의 제전을 열리라!”
튕겨진 진용 쪽을 향해 혈의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걸 본 소서노인이 진용을 향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고 공자! 유 어르신의 희생을 헛되이 할 생각이신가!”
진용이라 해서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너무 슬펐다.
자신의 잘못으로 유태청이 죽은 것만 같았다.
돌아오지 않고 그냥 갔으면 이리되지 않았을 것이거늘!
백리성! 네 고집 때문에 끝내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홱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백리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용은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이곳에서 몇 사람 더 죽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 혈신이 있는 이상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자신으로선 혈신을 죽일 힘이 없다.
안타깝고 비통하지만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다. 혈신이 다시 오기 전에.
젠장! 제기랄!
‘아버지는 찾아보지도 못하고 할아버지 같던 유 어르신만 돌아가셨어! 대체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이야!’
찰나의 순간이었다. 진용의 눈이 암흑처럼 깊어졌다.
‘이대로 갈 수는 없어!’
그러나 일단은 사람들을 산 아래로 내려 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모두 빠져나가세요!!”
진용이 소리 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일제히 뒤로 신형을 날렸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진용은 산사태처럼 밀려 내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혈의인들의 추적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추적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 걸까? 언제든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어쨌든 추적이 멈췄다면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진용은 백 장 높이의 바위 꼭대기로 몸을 날렸다.
몇 번의 도약 만에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가자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보였다.
일행들과 탕마단과 천제성의 잔여 세력들은 이미 산밑으로 거의 다 내려간 상태였다.
생각대로 신혈교의 추적대는 보이지 않았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을씨년스러운 고요가 동백산에 내려앉았다. 수많은 죽음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진용의 무심한 눈이 바람조차 잠든 동백산 정상으로 향했다. 하늘이 진용을 위로하려 비를 뿌리려는지, 계곡 안에는 뿌연 안개가 짙어지고 정상에는 구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구름과 안개라……. 유 어르신의 혼령이 나를 도와주시려는 건가?”
아직도 죽기 전에 보았던 유태청의 환한 얼굴이 하늘에 떠 있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이 그대로 가슴속에 박혀 버렸다.
“유 어르신. 진짜 할아버지처럼 모시고 싶었는데…….”
진용의 고개가 하늘로 쳐들렸다.
굵은 눈물이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렸다.
“편히 쉬세요.”
목소리의 여운이 채 바람에 실려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진용의 모습이 바위 꼭대기에서 사라졌다.
점점 짙은 안개로 뒤덮이고 있는 동백산을 향해.
* * *
“뭐야? 고 공자가 안 보이잖아?”
정광이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운무에 가려진 동백산을 쳐다보았다.
“젠장할! 다시 들어간 건가?”
상황을 눈치 챈 포은상이 정광에게 다가왔다.
“어찌 된 건가?”
정광은 고갯짓으로 동백산을 가리켰다. 포은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혼자서……?”
“아버지를 찾겠다고 했잖수. 아마 그 때문에 다시 들어간 것 같소.”
다가온 율천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그럼 우리도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나?”
정광이 허무한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까 한 말 못 들었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면 아예 따라오지도 말라던 말 말이오. 우리 중 누가 고 공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소? 방해나 안 되면 다행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잖나? 혼자서 그들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동백산을 쳐다보며 정광이 코웃음 쳤다.
“흥! 고 공자가 빠져나오려 마음만 먹으면 놈들이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할 거유. 우리는 그저 기다리면서 힘이나 모아보는 수밖에. 방정 떨지 말고 일단 오성으로 갑시다.”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주억거리던 포은상과 율천기는 마지막 말을 듣더니 정광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방정이 뭐가 어째? 하는 눈빛이다.
“그건 그렇고…… 에휴, 유태청 노도우께서 그렇게 가시다니……. 무량수불, 원시천존…….”
하지만 이어지는 탄식과 도호에 차마 뭐라 하지는 못하고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파란 하늘이 뿌연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그들의 눈도.
비록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가슴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