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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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88화
188화
산허리를 돌아 계곡 아래쪽, 천혈교의 총단이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지?
세 갈래로 나뉜 채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긴장한 얼굴로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실피나가 날아왔다.
―주인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 있어.
당연히 천혈교의 사람들일 것이다. 아마 자신들이 동굴의 본류를 통해 나올 거라 짐작하고 기다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용이 굳은 얼굴로 남궁창훈을 돌아다보았다.
“빨리 빠져나가야 합니다. 저들이 모였다는 것은 동굴의 입구를 열고 총공격을 하겠다는 것일 겁니다.”
“흥! 그래 봐야 헛짓이 아닌가?”
백리성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니 문제지요. 우리가 없는 것을 알면 곧 추적을 할 테니까요.”
“까짓것 올 테면 오라지!”
아직도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백리성이었다. 싸우자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진용이 말했다.
“우리는 갈 테니 그럼 성주께서 그들을 막아주시지요. 정 싸우시고 싶다면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백리성이 눈을 부라리며 진용을 직시했다.
진용도 물러서지 않고 백리성을 마주 쏘아봤다.
그때다.
<고 공자, 거기에 있었군. 천만다행이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발만 굴렀는데 말이야!>
어디선가 전음이 들려왔다. 멀리서 울리는 소리, 천리전음이다.
순간 진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서노인의 목소리였다.
잠시 머뭇거리자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우리는 건너편 산에 있네. 놈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네. 심상치 않아. 유 노사께서 빨리 물러서라 하시네.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음 기회를 노리라 하시는구만.>
자신을 봤다면 자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진용은 재빨리 건너편 산을 둘러보았다. 언뜻 바위틈 사이에서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었다. 소서노인과 돈화파파, 그리고 그들 뒤에는 비류명과 서문조양과 두충이 유태청과 함께 서 있었다.
진용이 대경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유 어르신이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원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네. 그리고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유 노사는 겉보기보다 강하신 분이니까.>
하긴 탓한다고 해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빨리 물러가세요. 저희도 떠날 테니까요.>
<알겠네. 그럼 동백현 북쪽의 오성으로 오게.>
전음을 주고받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문을 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남궁창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고 공자?”
하는 수 없이 진용은 사실대로 말했다.
“유 어르신께서 건너편 산에 계십니다. 놈들의 행동이 수상하시다며 빨리 물러서라 하십니다.”
“뭐야? 십절검존께서 오셨다고?”
남궁창훈이 놀라 소리치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건너편 산을 향했다.
그 바람에 누구도 북소리가 바뀌고 있음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제일 먼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실피나였다.
―주인아…… 그 무서운 인간이 나왔어…….
왠지 모르게 두려움이 깔린 목소리다.
이어서 그동안 잠자코 있던 세르탄이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시르, 이상해. 진마(眞魔)의 기운이 느껴져. 이럴 수는 없는데…….’
‘진마?’
‘마계의 기운 말이야. 어떻게 이곳에서 마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지? 아까부터 이상하더라니…….’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세르탄이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그건…….’
어쨌든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실피나가 무서워할 정도의 고수가 나타났다.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십천존을 일 대 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만일 공야무릉과 야율립과 등우광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누가 감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진용이 남궁창훈을 향해 소리쳤다.
“가시죠!”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정광과 율천기와 포은상이 당연하다는 듯 뒤를 따르고, 독고무종과 백유현 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궁창훈도 머뭇거리고 있는 탕마단의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보고 몸을 돌렸다. 그 뒤를 백여 명이 따랐다.
백리성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흥! 도망갈 놈은 도망가라! 나는 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보겠다!”
그때 천혈교의 총단이 있는 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더니 동백산이 뒤흔들렸다.
“신혈의 세상을 위해!”
“혈신께서 나오셨도다!”
“혈! 신! 재! 림!”
와와와와와!
빠르게 나아가던 진용이 우뚝 멈춰 섰다.
“혈신이라고?”
남궁창훈도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진용은 더할 수 없이 커진 눈으로 함성이 울려 퍼지는 곳을 쳐다보았다.
“혈신……? 여기서 왜 혈신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거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천혈교에서 왜 혈신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건가?”
뒤따라오던 남궁창훈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진용은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곧이어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들려온 것이다.
“신혈의 세상이 열렸도다! 천혈교의 교도들도 모두 신혈을 받들어 혈신을 모실지어다!”
“신혈교 만세!”
“혈신이여! 영원한 세상의 주인이여!”
이어지는 광란의 함성.
순간 한 가지 가정이 진용의 머릿속을 뇌전처럼 두드렸다.
이무령, 적유와 괴인들…….
공야무릉이 건재하고 야율립과 등우광이 있는 곳에 혈신이 등장했다.
그런데 모두가 신혈을 외치고 있다.
답은 하나다.
―천혈교가 신혈교로 바뀌었다!
만일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두려운 일이었다.
그토록 자신들을 애먹이고 일천이 넘는 고수들을 죽음으로 이끈 천혈교의 주인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바뀐 것이다.
그들이 다음에 할 일은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뻔했다.
그때 북소리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두둥! 두두둥! 두두두둥!
빠르고 급한 북소리. 심장을 절로 뛰게 만드는 북소리다.
공격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린다.
진용이 홱 고개를 돌리고는 질린 안색으로 소리쳤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빠져나가야 합니다! 천혈교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뭐라고?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가면서 말씀드리지요!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쯤은 자신도 안다. 그러나 상황이 사실임을 말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진용은 천혈교의 총단과 반대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그렇게 달린지 열을 세기도 전이었다.
엄청난 기운이 산 전체를 뒤덮으며 휩쓸어왔다.
태풍이 밀려오는 것 같은 느낌. 마운이 밀려오고 마풍이 불어올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어느 순간, 격전의 충돌음이 산을 뒤흔들고, 곧이어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천제성과 탕마단 무사들의 비명이었다.
분명 그럴 거라 생각했다. 적들은 광기에 물든 자들. 결코 저런 비명을 지르지 않을 테니까.
진용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리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홱 돌아섰다.
“젠장! 끝까지 말썽이군!”
자신을 따라왔다면 희생을 최소화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고집을 피우고 남아 있더니 끝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다.
문제는 자신이 뒤에서 들리는 비명을 듣고도 나 몰라라 달려갈 정도의 냉혈한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빠져나가세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진용이 멈추자 다른 사람들도 걸음을 멈춘 상태였다.
남궁창훈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 말을 듣고도 우리가 그냥 갈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고 공자?”
“훗, 그냥 가기도 서운했는데 잘됐군.”
율천기가 피식 웃었다. 그러자 포은상이 이어 말했다.
“친구가 가면 나도 가야지.”
독고무종이 도병을 잡더니 무심한 눈으로 계곡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놈들,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봐야겠군.”
“가자고.”
정광은 아예 당연하다는 듯 쇠신발을 벗어 들었다.
몇 사람이 나서자 다른 사람들도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진용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가요! 안에는 몇 사람만 들어가도록 할 테니까요!”
“우리도 싸우겠소!”
누군가가 소리쳤다.
진용이 그를 향해 매몰차게 말했다.
“여러분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도움이 되든지 아니면 방해가 되든지 둘 중 하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방해가 되지 않을 분만 따라오세요! 백 대협, 대협이 남아서 남은 사람을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오성(吳城)으로 돌아가서 기다려 주세요.”
자신이 제대로 봤다면 백유현이 현명하게 저들을 이끌 것이다.
진용은 말을 마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신형을 날렸다. 그 뒤를 이십여 명이 따라갔다.
나머지는 입술을 깨물고 뒤돌아섰다.
그들을 향해 백유현이 말했다.
“고 공자의 말이 서운할지는 몰라도 결코 잘못된 말은 아니오. 혹시라도 서운한 마음이 있거든, 저 지옥 속에서 누구 덕분에 살아 나왔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라겠소.”
진용이 달려간 곳에는 또 하나의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반의 반 각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남았던 이백여 명 중 살아 있는 자는 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뒤쪽은 절벽이기에 앞쪽만 상대하는데도 그랬다.
심지어 백리성조차 광혼단의 괴인 넷에 둘러싸인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분노한 백리성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광혼단의 괴물 넷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죽어갈 뿐이었다.
시뻘건 혈의를 걸친 천혈교, 아니, 이제는 신혈교의 교도들이 개미 떼처럼 둘러서서 그들이 죽어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진용은 나무 꼭대기에 신형을 세우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진용을 따라왔던 사람들이 질린 안색으로 걸음을 멈췄다.
정광조차 창백하게 굳은 안색으로 진용 바로 아래서 나무를 붙잡고 눈을 부릅떴다.
진용은 정광의 옆에 서 있는 실피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실피나, 최대한 능력을 끌어올려서 저들의 포위망을 흐트러뜨려!>
―무서운 인간이 오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내가 맡을 테니까, 실피나는 포위망만 흐트러지면 바로 피해.>
―알…았어.
그렇게 싸우는 걸 좋아하는 실피나가 망설인다. 대체 얼마나 강한 사람이기에 그러는 걸까.
다급한 상황인데도 진용은 은근히 호기심이 일었다.
휘이잉!
그때 갑자기 바람이 일었다.
실피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실피나가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자 진용의 기운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젠장! 대체 뭘 펼치려고 그러는 거야?’
‘윈드스톰 같은데?’
세르탄의 말대로였다.
실피나는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올려 폭풍을 일으켰다.
―바람아! 가라! 윈드스토오오옴!
콰과과과과과!
갑자기 생성된 폭풍의 위력은 주위의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서 날려 버릴 정도였다.
언제 겁먹었냐는 듯 실피나가 신이 나 외쳤다.
―오호호호! 이 언니가 다 날려 버리겠어!
탕마단과 천제성의 무사들을 둘러싸고 있던 혈의인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며 날아오는 나무들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순식간이었다. 포위망에 구멍이 뻥 뚫렸다.
<실피나! 이제 한쪽으로 물러서!>
진용은 재빨리 실피나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신형을 날렸다.
진용의 두 손에서 뇌전이 줄기줄기 뻗쳤다.
쩌저저적!
마른하늘이 갈라지며 시퍼런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끄으으…….”
“케엑!”
단 두 번의 공격에 십여 명의 혈의인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튕겨졌다.
정광이 그 뒤를 따르며 쇠신발을 던졌다.
“뭐 하는 거요! 구경하러 왔소?”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멍하니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이자 혈의인들이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율천기의 검에서 다섯 자에 달하는 검강이 뻗치고, 포은상의 곤이 묵빛 곤강을 뿜어냈다.
게다가 독고무종의 완만하게 휘어진 칼날에선 은은하면서도 영롱한 도강이 흘렀다.
푸른 눈빛을 일렁이며 그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악귀처럼 날뛰던 혈의인들이 힘없이 쓰러진다.
생각지도 못했던 가공할 무위!
그걸 본 율천기와 포은상도 뒤질세라 전력을 끌어올렸다.
일순간 세 줄기 폭풍에 붉은 바다가 뒤집어졌다.
그 뒤를 남궁창훈과 석장진이 나머지 고수들을 이끌고 정리했다.
찰나간에 구멍이 넓어지더니 길이 뚫렸다.
진용은 전장의 정중앙에 뛰어들자마자 뇌전을 난사해 이십여 명의 혈의인을 더 거꾸러뜨렸다.
그러고는 백리성을 공격하는 광혼단원들 중 하나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소리쳤다.
“계속 있을 겁니까? 시간이 없어요! 놈들의 수뇌들이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