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서생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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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법서생 182화
182화
신음하며 절규하는 손짓이 일행의 발길을 붙잡았다.
동료였던 자들, 동료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이라 할 수도 없는 자들. 상대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손을 내민다.
“살려줘! 누가…… 제발!”
“으으으! 내 발이…….”
“날 좀 빼내줘…….”
“크어어…… 대협, 제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바위더미를 치워주기만 해도 상당수가 움직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못하면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사이, 동굴로 달려가던 진용 일행은 조심스럽게 돌덩이를 치우고 십여 명을 구해냈다. 그사이 독 가루는 점점 더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때 진용이 두 손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천천히 가라앉던 붉고 검은 독 가루가 밀려 올라간다. 옆으로 퍼지지도 않고 밀려 올라가는 광경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둘러요!”
진용이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다급히 달려들어서 몇 사람을 더 구해냈다.
하지만 진용의 내력이 미치지 않는 오 장 반경 밖에서는 처절한 몸짓으로 사람들이 죽어갔다.
눈 뜨고는 못 볼 광경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사방에서 비명 같은 탄식이 쏟아졌다.
반 각, 결국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지자 진용도 내력을 거두어들이고 동굴로 신형을 날렸다.
3
동굴 중 하나에는 탕마단이, 다른 하나에는 천제성이, 그리고 나머지 하나에는 소문을 듣고 구경 왔던 무인들이 그들대로 모여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독탄이 터지면서 독연과 독 가루가 쏟아지자 모두가 일제히 안으로 들어갔다.
진용 일행이 동굴 입구를 통과했을 즈음에는 그 많던 사람들 대부분이 동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이후였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형제를, 스승을, 제자를, 동료를 놔둔 채.
남은 사람들은 각파의 수장들을 비롯해서 이백여 명. 그들이 남은 이유는 하나였다. 천혈교의 마수에 함께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것. 그리고 혹시라도 동굴이 무너지면 몰살을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나누어 들어가고자 한 것이었다.
진용이 동굴로 들어가자, 백리성이 우측 동굴 입구에서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군.”
진용은 백리성과 말도 나누기 싫었다. 처한 상황만 아니라면 한판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날 정도였다.
진용은 대꾸도 하지 않고 남궁창훈을 향해 물었다.
“왜 안 들어가시는 겁니까? 곧 독가루가 밀려들어 올 텐데요.”
남궁창훈이 악다문 이 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가슴이 아파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네. 그리고 솔직히, 저 안이 이곳보다 안전하다는 법도 없고 말이야.”
“그런데 왜 들어가는 사람들을 말리지 않은 겁니까?”
남궁창훈이 이마에 주름을 그으며 말했다.
“그들이 원했으니까. 나로선 그들을 막을 힘이 없었네.”
백리성이 또 나섰다.
“반드시 저 안이 더 위험할 거라는 법도 없잖은가?”
진용이 홱 고개를 돌리고는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더니, 그리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요.”
“건방진 놈! 감히 성주께 그따위로 말하다니!”
백리성의 옆에 서 있던 백리양이 진용에게 대뜸 소리쳤다.
그의 상대는 정광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네가 뭔데 어른들 말씀에 함부로 나서?”
백리양이 붉어진 얼굴로 정광을 노려보았다.
정광이 코웃음 치며 마주 쏘아보았다.
“흥! 이제는 전처럼 쉽게 안 될걸?”
“운 좋게 살아나간 말코 놈이 말이 많군!”
“겁먹은 강아지 새끼, 여기는 너희 집 앞이 아니란 걸 알아둬!”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두 사람.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만 같다.
하지만 진용은 두 사람의 말다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백리성과 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적유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적 대협과 그 괴물들은 보이지 않는군요. 백리 소협도 보이지 않고. 모두 안으로 들어갔나요?”
“그런 것 같군.”
남궁창훈이 대신 대답했다. 백리성은 진용만 쏘아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흥! 괴물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기가 껄끄러운가?’
진용은 내심 코웃음을 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삼킨 동굴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혈교에선 우리가 저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을 쓴 것이고요. 왜 그랬을까요? 설마 모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백리성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대화에 끌려가기가 싫었을 뿐.
“하지만 위험하다고 해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잖은가?”
“한 가지만 묻죠.”
“물어보게.”
“적 대협이 마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백리성의 이마에 진 주름이 깊어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적유라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느냐, 이 말입니다.”
“적 형은 외숙부의 제자였네.”
“귀명조 유승이라는 분 말이죠? 한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요?”
백리성이 같잖다는 듯 짧게 웃었다.
“훗! 우습군. 적 형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말하다니.”
“유승의 제자는 반시명이라는 분 한 분밖에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돌아가시기 삼 년 전까지는 말입니다.”
“적 형은 외숙부께서 나중에 받아들인 제자네.”
“삼 년을 배워 남의 눈에 띌 정도로 강해졌다는 말이군요. 아주 대단한 천재였나 봅니다. 한데, 유승이라는 분의 무공이 마공이었나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외숙부도 그렇지만 적 형도 마공을 익히지 않았네.”
“아닙니다. 비록 가려져 있긴 하지만, 분명 마공을 익혔습니다. 그것도 귀하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마공을.”
백리성은 강렬해진 눈빛으로 진용을 노려보았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진용도 백리성을 마주 노려보았다.
“천하에는 아무도 모르는 세력이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혈신을 추앙하는 무리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일도 많다는 뜻이지요. 한데 괴물을 만든 사람이 귀하입니까, 아니면 적유입니까?”
“그, 그건…….”
“만일 적유와 귀하, 두 사람이 동시에 다른 명령을 내리면 괴물들이 누구의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백리성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미처 그것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은 듯했다.
“한번 깊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괜히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나서 후회하시지 말고.”
진용이 싸늘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이를 악다문 백리성이 진용을 뚫어져라 직시했다.
그러자 반쯤 몸을 돌리다 만 진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의 일은 잠시 묻어두지요. 하지만 잊지는 않을 겁니다. 잊기에는 너무 큰 아픔이었으니까요.”
더는 못 참겠는지 천제성의 추혼검단주 윤자평이 노성을 질렀다.
“듣자 하니 정말 무례한 놈이로구나! 네놈이 감히!”
“감히라고!”
순간 진용이 홱 몸을 돌리고는 일권을 내쳤다.
콰릉! 쩌적!
굉음이 일더니 삼 장의 거리를 두고 시퍼런 번개가 작렬했다.
쾅!
“크억!”
단 일 권에 윤자평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졌다.
난데없는 상황에 모두가 진용을 바라보았다.
얼이 반쯤 빠진 표정들, 분노한 표정들.
진용은 자신을 노려보는 천제성의 간부들을 훑어보며 냉랭히 소리쳤다.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덤벼! 이제부터는 누구든 용서치 않을 것이다!”
뇌리를 하얗게 얼리는 차가운 음성. 절대음이 섞인 목소리다.
천제성의 간부들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바닥에 다리가 달라붙은 것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백리성마저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릅떴다.
‘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어떻게 된 놈이……!’
진용은 얼어붙은 그들을 쓱 훑어보고는 남궁창훈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희는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남궁창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들어가겠네. 밖은 이미 독으로 뒤덮여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 방법이 그뿐이라면 할 수 없지.”
탕마단의 사람들 중 남은 사람은 백여 명에 불과했다.
삼십여 명의 남궁세가 무사들을 중심으로 남궁창훈을 따르는 사람들만 남은 것이다.
정천무맹의 나머지 무사들은 이무령과 원로들을 따라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조심해야 하니 개별 행동을 하지 말라는 그의 말도 무시한 채.
팽기한마저 그들을 따라간 듯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맹주라 부르지 말게나. 허허허허, 아랫사람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맹주는 무슨……. 이제부터 나는 그저 남궁창훈일 뿐이네.”
남궁창훈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며 돌아섰다.
진용은 씁쓸한 마음으로 남궁창훈을 바라보고는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밖에서 독연이 밀려오고 있었다. 더 머뭇거릴 수 없는 상황.
이제 들어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4
사도굉이 빠져나온 것은 그나마 천행이었다.
갑자기 불어온 광풍 덕분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광풍이 사도굉에게 달려들던 자들을 날려버린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다리야 나 살려라!’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 달렸다.
덕분에 겨우 동백산을 빠져나온 사도굉은 약속 장소로 방향을 틀었다.
유태청 등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동백산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곳이었다.
사도굉은 숲과 바위 사이에 교묘하게 감춰진 마차가 보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유 선배!”
사람들이 모두 숨어 있던 곳에서 튀어나왔다.
사도굉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지만, 듣는 사람들을 경악시키고도 남았다.
그러다 어느 한 부분에 이르자 앉아 있던 유태청이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기관이 발동해?”
“예, 기관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수백 명의 비명이…….”
사도굉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는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으스스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유태청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빠져나온 사람들은?”
“그게…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아무리 기관이 발동했다고 해도 그렇지, 그곳에 간 사람만 이천이 넘네.”
게다가 고수들이 오죽 많은가?
“도주하느라 정신없어서 확인치 못한 탓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이 천혈교의 기관에 갇혔단 말인가? 대체 얼마나 범위가 큰 기관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을 가둔단 말인가?”
“기관을 작동하는 탑이 총단을 빙 둘러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모두 한꺼번에 작동했다면…….”
다시 한번 부르르 몸을 떤 사도굉이 멍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군웅들이 모여 있는 연무장이 폭삭 가라앉았을 수도……. 맙소사! 그러고 보니 지진이 난 것처럼 울렸던 그 굉음이 혹시……?”
자신이 말하고도 두려운지 사도굉이 탄식을 내뱉었다.
같은 마음이었다. 모두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군웅들이 모두 거대한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고 했다.
그런 연무장의 한쪽이 가라앉았다면? 절정고수들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깊다면?
적어도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거기다 기관의 노에서 발사된 철시에 피해를 입고, 천혈교 고수들의 공격을 받았다면,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고 공자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비류명이 다급히 물었다. 사도굉이 고개를 저었다.
“못 봤네.”
“모르긴 몰라도 고 공자는 빠져나오지 않았을 거네.”
유태청이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그러자 사도굉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어휴, 고 공자가 다른 사람을 놔두고 혼자 빠져나올 사람으로 보입니까요?”
두충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을 거야, 하는 표정으로.
그때 유태청이 무거운 표정으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네. 고 공자를 믿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야. 사도굉, 위도경과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동굴 쪽을 살펴본다고 갔는데,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 그렇다면 그들의 도움을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군. 어쩔 수 없지. 일단 우리라도 움직여 보는 수밖에.”